인력자원부 (Ressources Humaines, 1999) ☆☆☆
 

    작년 가을에 한겨레 21 표지를 장식한 기사가 제 시선을 끌었었는데 어느 중소기업 공장에서 한 기자가 한 달 동안 근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 진 연재 기사들 중 첫 편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한 뒤 오전 8시 반에 작업은 바로 시작되었고 점심시간과 짧은 휴식 시간 몇 번 빼고는 분업화된 제작 라인에서 맡겨진 단순 노동을 근로자들은 날이 저물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했고, 때로는 생산이 밀린 탓에 거기에다가 3시간 마라톤 야간작업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생계는 이어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그 긴 하루를 묵묵히 견디어야 하고 그동안 그들의 심신은 날마다 지쳐가곤 했습니다.


    주당 35시간 근무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때 나왔었던 프랑스 영화 [인력자원부]에서 보여 지는 공장 근로자들의 작업 환경은 한겨레 21 기사가 전달하는 우리 현실보다 더 낫게 보이긴 하지만, 본래 모습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프랑(Jalil Lespert)의 늙은 아버지(Jean-Claude Vallod)가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맡은 역할은 단지 부품 하나 끼워 넣는 것이고 그 다음은 기계가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한 시간 동안 700개를 할 수 있다는 그는 작업 중 내내 서 있는 동안 이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그런 모습에서 오래 전부터 자존감이 거의 사라진 사람이 보입니다.


  그런 일을 무려 30년이나 계속 해 오면서 그는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고 그 덕분에 아들 프랑은 파리에 가서 대학도 졸업한 가운데 아버지 회사 인사부의 인턴 자리를 잡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정도면 금의환향인 가운데 아버지는 그를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이 알던 사람들 간에 존재하는 간격을 느껴 갑니다. 옛 친구들은 이제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그가 그들과 함께 어울릴 때는 늘 어색함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무직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그런 방식이 몸에 깊숙이 박힌 아버지도 아들에게 그러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안쓰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워합니다.

 

인사부에서의 첫 날부터 주당 35시간 근무제 도입에 관련된 경영진과 노조 간의 협상 자리에 참여하는 프랑은 이 근무제가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면서 여느 신참 직원들만큼이나 열심히 활동합니다. 격식 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사장(Lucien Longueville)에게 제안한 방법으로 사장 눈에 들어오게 된 프랑은 근로자들 상담 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근로자들을 여기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키는 일을 맡지요. 그는 근로자들에게 질문들을 함으로써 협상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지만, 노조 중요 인사들 중 한 명인 괄괄한 아줌마인 아르노 부인(Danielle Mélador)는 이 일이 자신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반대합니다.


   그러다가 프랑은 어떤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난감한 처지에 빠집니다. 알고 보니 설문은 해고 구실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었고 나중에 그는 자기 직속상사의 컴퓨터에서 해고 관련 문서를 찾아내게 되는 데 해고될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도 끼어있습니다. 몇 년 만 있으면 정년 은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이익 때문에 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른 늙은 근로자들은 그냥 잘라 버리려고 하는 거지요. 사장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면 그에 따라 열려질 수 있는 성공의 길이 눈앞에 보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다 이용했다 하면 무정하게 버리려고 하는 회사의 처우를 무시할 수 없으니 프랑은 갈등하지요.


  그에 비해 아들을 통해 자신이 잘렸다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이런 일에 거의 무감각한 모습을 보입니다. 여러 다른 동료들이 이에 행동을 개시하도 그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다시 공장에 들어가는데 그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오는 동안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나 감정을 가질 능력을 거의 다 잃어버렸고 프로그램 된 로봇처럼 늘 하던 대로 일터로 돌아가고 여느 때처럼 같은 일을 계속합니다. 그나마 다른 동료들과 달리 그는 연금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그 일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수 없고 그가 비로소 감정을 화면 밖에서 표출하게 되는 자신이 지금까지 바친 희생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나서이지요.

 
  곧 국내 개봉될 그의 네 번째 작품인 [더 클래스]로 2년 전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로랑 캉테는 본 데뷔작을 통해 근로 환경의 차가운 현실과 이에 영향 받게 된 사람들의 모습을 아프게 보여주었습니다. 줄거리에 구애 받지 않는 건조한 접근 방식으로 전달되는 공장근로자들의 일상엔 묵직한 사실감이 있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동안 그들을 사람이 아니라 자원인 양 다루는 시스템의 부당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광경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긴 하지만 그 한겨레 21 기사가 지적하듯이, 불행히도 영화에서 보여 지는 것들보다 우리 주위에서 더 심한 일들이 벌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꿀 권한을 쥐고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도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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