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너무 복잡해 (It's Complicated, 2009) ☆☆1/2

 

조조 상영로 본 영화가 끝나자마자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 바로 부랴부랴 옆의 상영관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아직 상영은 시작되지 않았었고 앞에 있는 아주머니 외엔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서 전 아침에 미리 사 둔 우유 한 팩과 던킨 도넛들을 편한 분위기에서 먹었습니다. 첫 도넛은 맛은 괜찮긴 했지만 플라스틱 맛과 같은 어색한 느낌이 돋아나오니 전 급히 이를 우유로 땜질한 뒤 나머지 도넛들을 해치웠고 그 이상한 맛은 금세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이 경험은 동시에 막 상영이 시작된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 대한 인상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영화에는 초콜렛 크루와상을 비롯한 맛있는 제과점 제품들이 간간히 보이는 가운데 입맛 다실 로맨틱 코미디 재료들이 널려있지만, 우리가 얻게 되는 건 시트콤 수준의 코미디들이고(이러니 ‘rom-com'이란 단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평탄한 이야기 전개에 전 슬슬 권태로움을 느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로 보러 오신 분들에게는 친구 부부의 야외 파티에 참석한 제인(메릴 스트립)과 제이크(알렉 볼드윈) 애들러가 친구들 못지않게 결혼 생활을 오래 한 부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아닙니다. 이미 10년 전에 이혼한 이후로, 제인은 제과점을 운영하면서 세 자녀들을 거의 다 훌륭하게 장성시킨 싱글 맘으로 별 부족함 없이 살아 왔지요. 제과점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상당히 비싸게 보이는 캘리포니아 교외 주택을 갖게 되었는지 전 궁금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 코미디와 같이 판타지에 근접하는 코미디 장르에선 직업은 풍족한 가정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가운데 이야기상에서도 액세서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으니 상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작년에 본 [디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어머니께서는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음에도 불구 상당히 으리으리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제인의 경우에도 놀랄 건 아니지요.

 

여러분들이 이 두 남녀를 부부로 착각하기도 전에, 짜잔, 제이크의 두 번째 아내 아그네스(레이크 벨)이 금세 화면에 등장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익숙한 스테레오타입들 중 하나인 성질 더러운 미녀인 아그네스와 그가 어쩌다가 바람을 피우고 또 어쩌다가 나중에 결혼을 했는지 몰라도 그녀는 이야기 상 도구로써 제이크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를 해줍니다.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아버지인 아들 하나 있지만 제이크에게 또 자식 한 명 갖자고 닦달해대고 있고, 이러니 제이크는 전 아내에게 점차 시선이 돌아가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둘 사이에 일이 정말 생겨버립니다. 그들 아들의 졸업식 때문에 뉴욕으로 온 그들은 같은 호텔에 머무르게 되고 그러다가 호텔 바에서 저녁 식사를 친구로써 같이 하다가 술 한 잔 땡기고 또 한 잔 땡기고, 또 한 잔 땡기고...... 그리하여 그날 밤 그들은 한 침대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메릴 스트립과 알렉 볼드윈은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 커플들 못지않게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에게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양쪽 다 오랜 만에 기분최고이지만, 전 남편과 전 아내라는 사이도 어색한데(그들은 제임스 카메론과 캐스린 비글로에게서 배울 게 많습니다) 제이크에겐 아내가 있고 제인에게는 다 큰 자식들이 있으니 그들은 이 일을 그냥 원 나잇 스탠드로 접어두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습니다. 옛 정을 다시 불태우게 된 제이크는 다시 제인에게 접근하고 그녀도 이를 거부할 수 없고 그리하여 그들은 호텔에서 몰래 만납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게 정말인지 마침 호텔에 있었던 그들의 사위인 할리(존 크래진스키)는 너무 많은 걸 아는 남자가 되는 곤란에 처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인은 자신을 위한 넓은 부엌을 지어줄 건축가 애덤(스티브 마틴)에게도 호감을 서서히 가지게 됩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낸시 마이어스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안전한 로맨틱 코미디들을 만들어 왔는데, 그녀의 전작들 중 [사랑을 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관객들과 함께 부담 없이 잘 웃을 수 있었던 좋은 기억을 제게 남겨 준 코미디 영화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영화처럼 본 영화도 나이 든 주인공들을 갖고 코미디를 시도하려고 하지만 이번엔 딱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웃기는 순간들이 나오지만 웃어댈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간질거리는 정도에 머무를 따름이고, 이야기 후반에 나오는 한 장면은 [사랑을 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그 배꼽 빠지는 장면의 재탕에만 머무릅니다. 그러니 제목과 달리 너무 쉽게 돌아가는 이야기 전개나 깊이 없는 캐릭터 묘사 등의 결점들은 더더욱 쉽게 보이지요.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데에는 메릴 스트립의 공로가 큽니다. 어릴 때는 그저 이름만 듣다가 21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디오들을 통해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의 강렬한 드라마 연기들을 죽 돌아보면서 말로만 들었던 그녀의 위대한 연기력을 생생하게 체험한데 이어 곧바로 [어댑테이션]과 맞닥뜨린 이후로 출연작들이 싫든 좋든 간에 전 스트립 아줌마가 지난 몇 년 간 즐거운 코미디 연기를 연달아 펼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걸 무척 재미있게 보아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다우트]와 같이 진지한 드라마에서도 위력적인 연기를 펼치는 가하면, 바로 그 다음엔 [줄리 & 줄리아]에서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들도 입에서 칭찬을 가득 쏟아내게 하는 대단한 코미디 연기로 그녀는 16번째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습니다. 스트립이 세상의 모든 고뇌와 고통을 한 몸에 끌어안는 양 연기한다는 그 누구의 비판은 이제 완전 효력을 잃었습니다.

 

올해 골든 글로브 코미디/뮤지컬 여우주연상 후보에 그녀는 본 영화와 [줄리 & 줄리아]로 나란히 오른 가운데 후자로 상을 타갔는데 그럴 만합니다. 후자에서는 스트립에게 더 많은 연기 테크닉이 요구되는 가운데 그에 따른 개성도 있고 하니 더 많이 인상적이지요. 그렇다 해도,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 안에서도 얄팍한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본 영화에서의 그녀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코미디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알렉 볼드윈도 재미있는데 그는 여러 대사들을 유들유들하게 소화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 후반 장면에서의 볼드윈을 보면서 전 이번 주에 본 오스카 시상식에서 스티브 마틴이 공동 사회자인 볼드윈을 가리키면서 잭 애프론과 테일러 로트너에게 “이게 너희들 5년 후 모습이야!”라고 말한 게 그냥 가벼운 농담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뻔한 기성품 로맨틱 코미디들에 저도 슬슬 질려가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입장료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웃을 거리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서 배우들 조합은 좋은 편이지만 심심한 줄거리는 이들이 정말 웃기게 나올 가능성을 그리 잘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마틴이나 크래진스키와 같은 좋은 코미디 배우들에게 별다른 기회를 주지 않은 가운데 제인과 친구들의 만남에서 보여 지다시피 주변 캐릭터들은 주인공들에게 반응을 보이는 역할 외엔 별다른 역할이 없습니다. 웃음 강도는 약해도 그럭저럭 볼만 하고 스트립과 볼드윈은 재미있는 한 쌍이지만 더 맛좋은 기성품 빵들이 널려 있는데 굳이 이걸 택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제 제 머리가 복잡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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