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미 (Ajami, 2009)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대립이야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국제뉴스이긴 하지만 이스라엘 안에서도 일은 복잡합니다. 작년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 상을 받고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스라엘 영화 [아자미]는 우리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는 그곳 사회의 한 거친 단면을 박진감 있게 전달합니다. 한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폭력의 끝없는 사이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화는 그 가차 없는 메커니즘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파를 끼치는 지를 아프게 그려가기도 합니다.

 

본 영화의 제목은 텔 아비브-자파(혹은 텔 아비브라고도 합니다) 시의 빈민 구역의 이름입니다. 아랍계 구역인 이곳에서는 영화에서 보여 진 것처럼 이스라엘 경찰들은 주민들의 반감 때문에 업무 수행에 상당한 차질을 빚기도 하고, 그들 통제권 밖에서 놓인 거나 다름없는 동네 분위기는 LA 빈민가 구역만큼이나 험악하기 그지없습니다. 대낮에 난데없이 누군가로부터 총을 맞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에 이어 그 일 때문에 또 총격 사건이 터질 수도 있고 또 그리고 다른 폭력이 거기에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밤 골목에서의 단순한 말다툼 같아 보였지만 어느 덧 상황은 격해져 버리고 그러다가 더 이상 팔짱 끼고 구경할 일이 아니게 됩니다.

누군가 뒤로 물러서야 일이 잘 풀리겠지만 그 복잡한 동네 사정을 보면 그건 쉽지 않습니다. 이웃인 유대계 주민들과 갈등하는 것도 그런데 아랍계 주민들 사이에서도 기독교냐 회교를 믿느냐에 따라 분리되어 있고 여기에 도시 근교에 있는 베두인 집단도 있습니다. 이런 전통과 종교로 인한 대립에 범죄까지 섞여 들어가니 그들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지고 상관을 하고 싶지 않아도 상관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한 아랍계 청년인 오마르(샤히르 카바하)의 경우, 단지 그의 삼촌이 베두인 조직과 문제를 일으켰을 뿐인데 당사자인 삼촌이 총 맞는 것도 모자라서 오마르의 가족도 도매금으로 넘어간 신세가 되어 버리지요.

엉뚱한 사람이 집 앞에서 총 맞는 일까지 생기니 고향이라고 해도 당연히 그 동네를 떠나는 게 상식이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자는 어머니의 간곡한 말에도 불구하고 오마르는 겁쟁이로 여겨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이게 모든 분쟁의 주요 원인이곤 하지 않습니까?) 계속 남아 있기로 결정합니다. 다행히 그는 상대편과 함부로 부딪힐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고, 나중에 한 중재 모임에서 내려진 협상 조건을 통해 그의 가족은 다시 안전해졌습니다. 한데 그 대신에,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 주기로 약속한 다른 조직에게 상당한 빚을 지게 된 처지에 놓였고, 그러니 목돈이 거저 굴러들어올 수 있다면 그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입니다.

본 영화는 실제 아자미 출신인 아랍계 이스라엘인 스칸다르 콥티, 그리고 유대계 이스라엘인 야론 샤니에 의해 공동으로 만들어진 장편 영화 데뷔작입니다. 공동 감독뿐만 아니라 같이 편집도 하고 각본도 쓴 이들은 이냐리투의 3부작 등을 통해 우리에게 많이 익숙해진 비선형적 내러티브 전개 방식으로 오마르뿐만 아니라 그만큼이나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들을 챕터 별로 시점과 시간을 달리 하면서 총 다섯 장의 이야기를 굴려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통해 흥미가 자극되는 동안, 우리는 이들이 겹쳐지게 되는 한 종착점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관한 사정들과 뒷사정들을 하나씩하나씩 알아가게 되는 거지요.

 

이야기 속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막 싫어하거나 증오하지는 않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타자들이 아주 가까이 접근할 때는 머릿속에 오랫동안 잠재하고 있던 스위치가 자동적으로 켜지곤 합니다. 옛날에 군 복무 중 팔레스타인 근처에서 별안간 사라진 동생 때문에 부모만큼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자신이 필요한 가정과 험한 직장 생활 사이에서도 갈등하는 와중에서도 이스라엘 경찰인 단도(에란 나임)은 거의 늘 침착한 편입니다만,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고 동생과 관련된 일과 대면할 때는 평정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종교나 출신에 별 상관하지 않고 자신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눈총을 받곤 합니다. 오마르의 친구인 빈지(공동 감독인 스칸다르 콥티)는 이스라엘 애인을 둔 탓에 주위에 친구들에게 냉대를 받는 것도 그런데 나중에 늦은 밤중에 이스라엘 경찰로부터 가택수색까지 받으니 괴로울 따름입니다.

 

콥티와 샤니는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건조한 방식을 택했했고 여기에 상당한 기간 동안의 오디션을 거쳐서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했습니다(많은 경우 실제 그 동네 출신입니다). 대부분 그들의 첫 출연작이다 보니 대사처리 등에서 투박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줄거리와 상황들이 대략적으로 정해진 각본을 바탕으로 배우들과 교류하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걸 찍은 결과에선 다듬지 않은 생생함이 화면에 존재합니다. 픽션일지언정,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이 그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하지요.

 

이리저리 시점과 시간대를 옮기곤 하는 분주한 줄거리 틀 안에서 주인공들은 정해진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그 와중에서 터지는 일들은 그들 일상과 대비가 되면서 더욱 슬프게 느껴집니다. 누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거나, 다른 누구는 세상을 떠날 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기꺼이 국경을 넘어 와서 열심히 일하고, 또 다른 누구는 고용인들과의 종교적 믿음의 차이가 있어도 자상하게 대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가서는 어느 순간 그들이 속한 사회의 편견들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리고 이런 연쇄반응은 계속 이어집니다. 폴 해기스의 [크래쉬]는 사람들의 그런 성향은 구제불능이지만 그래도 선택을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불행히도 [아자미]의 세상에서는 그런 것마저도 제시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각박하고 암담합니다. 본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그 동네 좋은 영화들이 추구하는 역지사지의 가능성이 아직 완전 사라지지 않길 빌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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