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년 한해 나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디븨디와 블루 레이를 선출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듀나게시판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연례 행사는 아직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디븨디와 블루 레이를 사모으는 패턴은 2012년이후의 완곡한 진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HD 트랜스퍼로 출시되지 않는 디븨디 타이틀을 대체하리라는 한 3년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워너 아카이브의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상당한 숫자의 디븨디로 출시되지 않는 보기 힘든 작품들도 그것도 HD 트랜스퍼로 틀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한달에 얼마 되지도 않는 사용료를 지불하느니 보다, 편당 20달러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타이틀을 하나씩 사 모으거나, 아니면 웃돈을 집어주고 클래식플릭스 같은 특화된 디븨디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5년말 시점에서는 넷플릭스와 훌루가 유일하게 월별 사용료를 지불하는 서비스로 남아있고, 이 두 레벨도 디븨디나 블루 레이로 볼 수 없는, 예를 들자면 넷플릭스가 자주 제작으로 만든 시리즈물이라던가 ([제시카 존스], [데어데블] 등) 훌루에 걸려 있는 크라이테리언 판권 소유작들을 주로 틀어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로 개봉한 신작들은 극장에서 보거나 아이튠이나 부두 (VUDU) 에서 한편당 얼마라는 식으로 받아보니 결국 배급권 지닌 측에서 보면 극장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한달에 얼마 이렇게 내고 받아보려면 넷플릭스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개척해 나가야 하는 거죠. 과연 지금 존재하는 수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들 중 몇 군데가 이런 지속적이고 꾸준한 투자와 콘텐츠 개발을 해나갈 여력을 키울 수 있을런지? 넷플릭스는 이제 4K 트랜스퍼에 투자를 해서 울트라 HD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인 모양인데, 아이러니칼하게도 한국처럼 인터넷 서비스가 앞서가있는 곳에서는 오히려 이런 기획이 먹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북미 시장은 아직 멀었어요.


자꾸 VHS 가 없어졌던 시절을 회고하시면서 광학 디스크 시장이 곧 죽는다 하시는 분들이 계신 모양인데 그때와는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북미 시장에서는 영화의 판본을 책처럼 소장하는 문화가 이미 뿌리를 내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영화를 수십 기가바이트짜리 HD파일로 5분만에 다운로드하고, 팔십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도 리모트가지고 마구 헤매지 않고 가정용 메인프레임에 저장해서 금방 불러다 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최소한 인구의 30% 정도에게 보급되어 영화를 보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되면, 그때가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가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근데 올해가 벌써 2016년입니다… 누군가 트위터에 써 붙였듯이 [블레이드 런너] 의 로이 배티가 세상에 태어난 해라구요.^ ^ 이제 겨우 무슨 4K 트랜스퍼 얘기를 하고 자빠져가지고 무슨 놈의 광학 디스크가 없어져…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에 쏘아올릴 화성탐사선안에서도 블루 레이로 영화 보게 생겼수다.


작년의 리스트에서 예고했다시피 금년의 리스트에서는 디븨디에 따로 할애한 항목은 없앴습니다. 디븨디의 구매 갯수를 실제로 세어보니 작년에 비해서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는 않았더군요. 여전히 30% 이상의 디스크가 디븨디였습니다만, 밑의 베스트 20장 리스트에는 얼마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야흐로 대부분의 타이틀들은 블루 레이입니다. 주된 구매처는 여전히 Amazon.com, Amazon.co.uk, Amazon.co.jp, YesAsia,그리고 각종 전문가게들입니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상당수의 디븨디와 블루 레이를 구입했습니다만 요번에는 연말 20편에 꼭 올리고 싶어질만한 타이틀은 결국 없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영상자료원의 일제 시대 영화 [수업료] 와 [저하늘에도 슬픔이] 복원판의 출시가 가장 반가왔습니다만 이 작품들은 학문적인 흥미가 개인적인 선호보다 좀 강한 한편들이었더군요. 2016년에는 플레인 아카이브, 영국의 Network, Arrow USA 등의 디븨디/블루 레이 전문 레벨들에서 더 많은 타이틀들을 구입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잘 아시는 바 대로 훌륭한 영화, 위대한 영화, 죽기전에 꼭 봐야하는 영화 (“죽기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 가 백 편밖에 안되거나 그런 경우는 완전 사기라는 것, 이제는 아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선출한 리스트는 전혀 아니고, 제 개인적인 기호와 편견과 애정이 가감없이 반영된 “퍼스널 베스트” 목록이라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바라고요. 무엇보다도, 금년에 들어와서야 출시된 위대하고 훌륭한 세계 각지의 고전영화, 사람들이 도시 모르는 재미있는 영화들, 너덜너덜하고 퇴색된 판본만 존재하다가 새로 태어났다는 표현이 적합하게끔 멋들어지고 아름답게 복원된 영화들, 이런 한편이 있는 줄도 까맣게 모르거나 전설처럼 영화관련 서적 어딘가에서 몇 줄 읽어본 것이 다였는데 작년에 비로소 마치 새로이 개봉되는 한편처럼 깨끗한 화질로 출시된 전설의 영화들, 중 많은 수가 제 리스트에서 아무런 뚜렷한 이유 없이 탈락되었다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영어판 리스트와 한국어판 리스트의 항목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점도 제 리스트의 특성의 하나라고 받아주시고 눈감고 넘어가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리스트로 진입합니다.


21. 제 5전선 오리지널 시리즈 완전판 박스세트 Mission: Impossible -The Original Series Complete Box Set (Region 1, NTSC- Para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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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개시부터 약속위반! 죄송합니다. 막상 세어보니 스물 한편이었어요. ^ ^ 이 타이틀은 어영부영 위시리스트에 담가 놓고 있다가 우연히 손에 넣게 되었네요 (김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자그마치 46개의 디스크 (…;;;) 에 1966년부터 1973년까지 방영된 모든 에피소드 171편을 수록한 다음 한 박스에 몰아 넣어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판본입니다만 [제 5전선]은 (영화 시리즈가 TV보다 더 유명해지기 이전에는 한국에서는 항상 이 제목으로 불리웠죠) 실제로 무지막지한 싸이즈의 박스세트를 다 구입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0011 나폴레옹 솔로] 및 [6백만불의 사나이 (이 시리즈 리뷰는 늙어 죽기전에 듀게에 올릴 수나 있을까나?)], 그리고 심지어는 블루 레이로 대부분 구입한 [환상특급/제 6지대] 등과는 달리 사야지 사야지 라고 머리속에서 확인만 하고 있다가 끝내 놓쳐버린 고전 TV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로 앤 오더] 시리즈로 최근에는 더 얼굴이 알려진 스티븐 힐이 두령이고 금주의 “임무 (미션)” 를 전달하는 지령이 무려 LP 레코드 (…;;;) 로 녹음되어 나오는 초창기부터, [스타 트렉] 의 미스터 스포크로 더 유명한 레너드 니모이가 변장의 명인역으로 [에드 우드] 의 마틴 란도오 연기자를 대신하게 되는 후반부까지, 나찌독일같기도 하고 공산주의하 동유럽같기도 한 “모국” 을 배경으로 주로 벌어지는, 말이야 근사하게 첩보물이지만 실제 내용은 완전히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 멘붕으로 몰아넣는 프로 사기꾼들의 “한탕” 이 매주 벌어지는, 유니크한 시리즈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황 설명용의 대사 (expository dialogue) 를 대폭 줄이고 비주얼한 언어를 강조하면서, 모두에 에피소드의 하일라이트를 일초도 안되는 짧은 숏들의 나열로 빠르게 편집해서 미리 보여주는 오프닝 타이틀을 배치하는 등, 60년대 당시에서는 정말 아방 가르드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급진적인 영상기법을 풀하게 가동해서 보여준 혁신적인 시리즈를, 이제 언제라도 어느 시기의 작품이라도 간편하게 꺼내 볼 수 있게 되었군요.


20. 레퀴에스칸트 Requiescant (Region Free Blu Ray, Arrow Video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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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구입한 디븨디/블루 레이 중에서 가장 “엥?” 스러운 타이틀 중의 하나입니다. 설마하니 이런 영화가 실제로 존재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뭔고 하니... 음... 아아... 카톨릭계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바탕을 둔 (엥?), 평화주의자인데 권총을 잘 쏘는 재능을 타고 났으면서 말을 거꾸로 타고 프라이팬으로 채찍질을 하는 멍청이가 주인공이고 (엥엥?), [살로: 소돔의 백일] 으로 유명한 게이 반파시스트 극좌파 영화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이 멕시코인 신부 (엥엥엥??) 역으로, 또 파졸리니 영화에 출연하는 프랑코 지티 등의 레귤러들이 드라큘라 같은 망또를 두르고 시허연 메이크업을 하고 남부 액선트를 구사하는 지주 악당 마크 데이먼 (맷 데이먼 아닙니다... 썰렁개그 죄송 ;;;) 의 똘만이들로 출연하는 마카로니 웨스턴... ;;; 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초월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괴작들이 천 몇백편이 넘게 양산되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그것이 또 이 한편을 실제로 보면 황망하게 괴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짜배기 서부극을 보는 재미가 있다는... 이정도면 그냥 신기함을 넘어서서 신비스러운 느낌까지 들 정도입니다.


Arrow USA 가 출범하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만 금년에는 예상보다 기발하고 끝내주는 출시작의 수가 많지는 않았는데 뭐 작년에는 겨우 발동이 걸렸다고 봐야겠죠. 금년부터가 기대됩니다.


19. 트와이스 어폰 어 타임 Twice upon a Time (Region 1- NTSC, Warner Archiv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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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포스] 때문에 루카스필름의 욕을 듀게에서도 제가 좀 하고 그랬는데, [스타 워즈] 프리퀄로 말아먹기 전에 루카스가 자기 동료-제자들 데리고 그럴듯한 영화들을 만들 가능성이 전혀 없었냐하면 그런 건 아니구요.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아마 거의 없을 이 1983년도작 [트와이스 어폰 어 타임] 은 이른바 페이퍼 컷 아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든 소품입니다. [이워크 어드벤쳐] 등을 제작했던 존 코티 감독이 애니메이터 찰스 스웬슨과 함께, [스타 워즈]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팝 컬쳐의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풍미를 곁들인 캐릭터와 디자인의 취향을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던 한편이지요. 대사를 읇는 대신에 영화의 클립을 얼굴에 비춰 보여줌으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악당의 헨치맨 (헨치유인원?) 비데오 고릴라부터 어떤 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상황 타개에 도움이 안되는 “만능동물” 랄프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들이 먼저 지극히 매력적이고, 그들이 겪는 상황도 몬티 파이손과 [스타 워즈] 를 뒤섞어서 MAD 매거진의 엑기스를 조금 뿌린 것 같은 독특한 운치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블루 레이로 출시해 주었더라면 더 고마왔겠지만, 도무지 아무데서도 구할 수가 없어서 “이런 영화를 내가 본게 맞는건가?” 하고 본인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까지 갔던 과거를 생각하면 출시해 준 것만해도 고맙긴 합니다.


18. 팬 Der Fan (Region A- Blu Ray, Mondo Maca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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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980년대로부터. 엘렉트로닉 댄스 계통으로 독일에서는 한때 유명했던 밴드인 모양인 라인골드의 프론트맨 보도 스타이거가 16세의 어린 사생팬의 강박적 팬질의 대상인 “R” 이라는 록 가수로 출연합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사생팬의 점차로 에스컬레이트되면서 광기와 폭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팬질을 묘사한 일종의 심리 공포영화입니다만, 이 한편 역시 [레퀴에스칸트] 와 마찬가지로 대체 이걸 만든 사람들은 뭘 먹고 살기에 이런 영화를 머리속에서 구상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한편입니다. 내용은 결국은 지극히 엽기적인 방향으로 갑니다만, 그 묘사의 방식은 아마도 일반적인 한국 관객 분들의 입장에서는 감정이입의 접점을 거의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곤충들의 포식과 교미를 섬세하게 찍은 도큐멘터리 같은 “비인간적인” 톤으로 이루어집니다.


보고 나면 일반적으로 잘 만든 호러영화를 보고 났을 때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식은땀이 삐직 흐르면서, 세상에는 정말 무섭고 괴이한 작품들이 많구나 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17. 슈거랜드 익스프레스 The Sugarland Express (Region A- Blu Ray, Universal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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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출시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니버설시기 블루 레이 콜렉션은 미처 구입하지 못했습니다만, 2015년에 낱개로 판매된 블루 레이들은 하나 하나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의 미국 영화를 논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들입니다. 심지어는 로저 이버트와 진 시스켈이 스컹크 방구같은 망작이라고 비웃었던 [1941년] 까지도 극장 공개시 잘려나갔던 부위를 복원한 완전판으로 출시되어서 재평가의 대상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이 뭇사람들의 존경을 못받는 역작 코메디뿐 아니라 스필버그의 데뷔작인 [결투 ('격돌'이라는 일본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도 리스트의 이 자리와 경합을 했습니다만, 결국 [크림슨 피크] 의 각본가 매튜 로빈스와 그의 오랜 파트너 할 바우드가 쓴 각본을 영화화한 1974년작 [슈거랜드 익스프레스] 가 선출되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 이후의 무지막지한 상업적 성공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그림자에 가려져 왔던 한편이고, 현재의 시점에서 감상하자면 골디 혼이 연기하는 방정맞은 무책임녀 캐릭터를 지나치게 싸고 돈다는 인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80년대 이후,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자라난 캘리포니아의 교외로 귀환하여 사적인 판타지에 몰두했다고도 볼 수 있는 스필버그가 아닌, 70년대 뉴 어메리칸 시네마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영화 작가” 스필버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흥미있는 작품입니다.


16. 불타라 마녀여 Burn, Witch, Burn (Region A- Blu Ray, Kino Lo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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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특급] 등의 각본가로 잘 알려진 리처드 매시슨과 찰스 보오몽이 20세기 호러- 판타지 징르의 숨은 (숨었다고 해봤자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뿐이지만) 거장인 프리츠 리버 (“Sword and sorcery” 장르라는 용어를 아예 이 분이 만드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게 기억에 남는 이분의 작품들은 죄다 호러고, 특히 귀신과 마녀의 저주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네요) 의 소설 [주술자 아내 Conjure Wife] (1943) 를 미국의 B급 장르영화 명가 어메리컨 인터네셜의 수주 (受注) 로 영국의 스탭과 연기자들이 제작한 고전 괴기영화의 한편입니다. 뉴 잉글런드의 작은 대학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소시민적인 학원 멜로드라마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긴장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시퀜스들이 누적되어 가면서, 끝판에는 등골에 진땀이 삐직 흐르게 파워 넘치는 괴기영화로 탈바꿈하는, 그 화술의 묘미와 배우들의 정교한 연기가 대단한 수작입니다.


이미 영국에서 리젼 2로 [독수리의 밤 Night of the Eagle] 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시된 바 있지만, 블루 레이로 대폭 향상된 화질과 음질은 지갑을 털어 재구입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15. 스페이스 1999 제 2 시즌 Space 1999: Season 2 (Region B- Blu Ray,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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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알아요, 이 시리즈의 제 2 시즌은 이미 하드SF 팬들에게는 무시와 매도의 대상인 전체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무시와 매도를 당하고 있다는 것. 시청률 타개를 위해 영입된 프레드 프라이버거 제작자가 [스타 트렉] 을 빠꾸리한 부분은 뭐 그래도 넘어가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1 시즌의 스토리라인을 버젓하게 리메이크 하기 시작하는 걸 보면 이걸 참 어찌 해야 좋을지 라는 생각이 앞섭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서 제 2시즌의 디븨디를 다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돈을 또 내고 리젼 B 만으로 틀 수 있는 블루 레이를 사지 않을 수 없었네요. 마야가 바퀴벌레로 변신하는 장면을 꼭 HD로 봐야 하냐고요? 예, 봐야 하는데요. 팬심이란 이런 것이죠.


그리고 내가 예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블루 레이 트랜스퍼로 가장 빛을 보게 되는 종류의 타이틀은 60년대, 70년대 고전기에 35mm 로 촬영해서 방영되었던 TV 시리즈들입니다. 당시에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들은 이렇게 깨끗하고 선명한 영상으로 시리즈를 본 적이 없거든요.


14. 내가 잘 아는 사형집행인 Mine Own Executioner (Blu Ray- Region B, Network/Studio C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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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태어날 때부터 아저씨였던 것 같은 풍모와 캐릭터의 성격배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록키] 의 트레이너나 [배트맨] TV 시리즈의 펭귄 역 등으로 유명한 버제스 메레디스도 그 중 한분인데, 이 분이 40살 이전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지, 보통 상상이 안가죠. 그 메레디스 연기자가 트라우마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2차대전 직후의 런던에서 개업한 미국인 정신과 의사 역을 맡아서, 적군에게 고문을 받고 풀려나와서 크나큰 정신적 손상을 입은 전역군인의 케이스를 중심으로 주위의 편견과 스스로의 진단에 대한 의구심 등의 난제와 고군분투하는 스토리입니다만, 이 1947년작 영화에서는 메레디스 연기자의 젊디 젊은, 그러나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이지적이고 사색적인 대사를 읊는 위대한 성격배우의 초창기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는 또 그것대로 헐리웃적인 필름 느와르나 사회파 드라마의 공식에서 벗어나 있는,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한편입니다. 이 한편의 정치적인 함의를 분석하라는 숙제를 영화학 강의에서 한번 내주고 싶어지네요. 요즘 한국영화처럼 "새누리당이 쥑일 놈들이다" "자본과 신자유주의와 재벌이 개새끼다" 라고 하면 정치적 분석은 그걸로 끝, 이런 접근 방식을 하는 분들에게 이런 한편의 분석이란 불가사리가 흑판에 쓰여진 적분 수식을 촉각으로 더듬어서 푸는 것 같을 것이지만.


네트워크의 고전 영국영화 출시작 시리즈인 'The British Film' 임프린트에서 내놓은 한편인데, HD 트랜스퍼에도 불구하고 어떤 타이틀은 디븨디, 어떤 타이틀은 블루 레이 이렇게 나누어서 출시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여기에도 어떤 상업적인 고려가 연루되는 것인지…


13. 하느님이 시켜서 죽였다 God Told Me to (Blu Ray- Region Free, Blue Under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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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블루 언더그라운드입니다만 (수장이 다른 회사들 메이킹 도큐 그런거 수주 받고 또 자기가 나서서 장르 회고형 도큐멘터리를 찍고 돌아다니느라 회사 돌볼 틈이 없는 거 아닌지 의심스러운데), 그래도 옛적 디븨디들을 복원해서 블루 레이로 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따름이죠. 여전히 각본가로 활동하고 있고 [내가 심판자다 I, The Jury] 나 [그것은 살아있다 It's Alive] 같은 아이코닉한 장르영화의 각본을 집필했던 래리 코엔이 증말 미친척하고 자기의 개인적인 우주관(!) 을 모조리 한편의 영화에 쏟아부은 저예산 SF 대작 (?!-- 영화 자체는 저예산이고 싸구려지만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기독교의 진정한 유래까지 아우르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니까) 입니다. 사상적으로는 [2001년 우주 오디세이] 따위는 저만치 내팽개치고 광적 스피드로 질주하는 한편이고 그 질알맞음의 레벨이 [신세기 에반젤리온]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이 마침내 대면한 남자 "악당" 이 자신의 가슴에 형성된 여성의 성기 (…;;;;) 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결합에서 완벽한 유전자를 지닌 구세주가 탄생할 수 있을 거야" 라고 구애 (?!) 를 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는…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더티 해리] 식 70년대 폴리스 액션 영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번 보시라고 할 수 밖에는…


12. 샹하이에서 온 여인 The Lady from Shanghai (Blu Ray- Region A, Mill C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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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에는 복잡하고 답답한 블루 레이 출시의 역사가 있는데, 보통 소니 타이틀을 독점해서 블루 레이로 내놓는 Turner Classical Movie 케이블 채널에서 이걸 맡아서 BD 로 내놓았는데, 화질이 너무나 구렸던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새롭게 복원된 블루 레이가 출시되긴 했습니다만, 그 사이에 소니에서 주도한 HD 트랜스퍼는 원래 쇼오와 가메라 영화나 스파게티 웨스턴등을 내놓던 싸구려 블루 레이 전문 레벨 밀 크리크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밀 크리크에서 나온 트랜스퍼가 너무 밝다느니, 웃기지마라 TCM 에서 나온 게 너무 어두운거다 등등 팬들끼리 말이 많습니다만, 어쩌구나 마나 저는 TCM에서 새로 내놓은 복원판을 구입할 길이 없으니 이걸로 봤고 아주 아주 만족스러운 화질이었음을 간증하는 바입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별로 따로 할 말이 없군요. 다시 한번 블루 레이로 보고 나니, 그나마 두기봉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영화 클라이맥스의 "거울의 방" 장면을 제대로 오마주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1. 리오에서 온 사나이/중국에서의 중국식 모험 That Man from Rio/Up to His Ears (Blu Ray- Region Free, Cohen Medi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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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영화를 꽤 많이 보았는데요. 찰리 채플린, 성룡 그리고 장 폴 벨몽도.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세 사람 다 한 5층쯤 되는 건물을 스턴트맨 안 쓰고 자기네들이 쓱쓱 기어서 맨 밑바닥부터 꼭대기 층까지 몇 분만에 기어올라가는 장면을 찍은 적이 있다는 거죠. 장 뤽 고다르, 알랑 레네, 그리고 프랑소와 트뤼포와 누벨 바그의 연작들을 찍은 프랑스인 배우가 또 이런 경신술 (輕身術) 의 대가라니, 유쾌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달랐다면 최소한 성룡과 벨몽도의 콜라보레이션 정도는 충분히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아마도 자신이 어린 시절 즐겁게 보았던, 무슨 남아메리카의 정글에 간다고 갔는데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마천루에 도착해서 주인공들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다가 갑자기 삼바 음악에 맞춰서 신나게 춤추고 그랬던, 그러다가 갑자기 [레이더스] 처럼 아마존의 비보 (秘寶)가 어떻고 그런 모험 영화의 정석을 밟기도 하고… 하여간 그 즐겁고 아름다운 활극사진! 바로 [리오에서 온 사나이] 였습니다.


코엔 그룹의 트랜스퍼는 텔레비전 방영때 어떻게 이걸 영화라고 볼 수 있었지 하고 턱을 빼고 한탄하게 만드는 극선명 해상도와 선명도의 최우수 버젼입니다. 아,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나온 후속편격인 [중국에서의 중국식 모험] 도 수록되어 있지만 물론 [리오] 에는 못 미칩니다.


10. 허니문 킬러스 The Honeymoon Killers (Blu Ray-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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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시켜서 죽였다] 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토니 로 비앙코 연기자가 신문에 실린 짝짓기 서비스를 통해 외로움과 세상에 대한 증오에 시달리는 과체중의 간호사 낸시 스톨러와 만나서 중년 아줌마들을 결혼 사기로 등쳐먹고 나중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느끼한 사기꾼역으로 나옵니다. 이것도 시놉시스의 설명만 가지고는 왜 이 한편이 이리 불편하고 괴이한 매력을 지닌 영화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어요. 극저예산에다가, 마치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실제 인물들의 침실과 화장실에 흑백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은 것 같은 극자연주의 필치는 우리가 "헐리웃" 영화 또는 유럽식 "예술" 영화를 보고 익숙해 졌을 만한 접근 방식을 머리통부터 깨부셔 버리는 불가해한 파워를 지녔습니다. 요즘 구미의 영화들에는 이런 파워가 태부족합니다. 모두들 겉멋만 잔뜩 들어서… 아니면 폭력묘사의 테크닉만 갈수록 세련되어가고…


이렇게 거칠은 화면의 흑백영화니까 블루 레이라 해도 큰 차이는 없겠지 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웬걸. 35밀리미터 카메라 네거티브에서 4K 해상도로 트랜스퍼한 블루 레이인데, 디븨디 시절과 비교해서 완전 운니지차입니다. 솔직히 최근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싸구려 영화일수록 더 블루 레이를 일부러 찾아서 관람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9. 바운티호 The Bounty (Blu Ray- Region A, Twiligh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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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호] 는 내가 80년대에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는 특히 강한 인상을 지니고 남아있는 한편입니다. 나는 이 한편이 [브레이브하트] 같은 역사적 해석이라는 측면으로 보나 오리지날리티로 보나 한참 모자라는 "대작"들에 비해 명성을 못 얻고 있는 것이 큰 불만입니다만, 사실 왜 인기가 없는지 이유가 짐작이 안되는 것은 아니죠. 뭔가 백인 중심주의적인 호쾌한 모험담을 기대하신다면 캐릭터들의 나약함과 자기 모순을 적나라하게 까발기는 로버트 볼트의 각본에 걸릴 것이고, 그렇다고 헤어조크 식으로 백인들이 "야만인들" 로 상징되는 "자연" 에 포식되는 처참한 과정을 오페라틱하게 묘사한 그런 "예술 영화" 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볼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훌륭한 역사물임과 동시에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사상적 경향을 지닌 사극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지능과 실력이 모자라는 인간들은 이러한 각 캐릭터들의 복합적인 성격을 주도 면밀하게 파헤치는 접근 방식을 그냥 "보수" 나 "제국주의적" 으로 분류하고 넘어가버리겠죠) 향후 30년동안 북미 영화계를 갈아 엎었던 남성 연기자군-- 안소니 홉킨스, 멜 깁슨, 다니엘 데이-루이스, 라이엄 니슨-- 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재미가 아마도 닳아 없어지는 날이 오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 한편은 평생 내가 가장 처음 구입했던 디븨디 출시작이었는데, 블루 레이는 트와일라이트 타임에서 내준 것이, 퀄리티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아주 조~금 불만스럽기도 하네요. 플레인 아카이브나 그런 데서 새로 깨끗하게 정리한 한국어자막이 달린 스틸북으로 내주어서 많은 한국 관객들이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8. 허리케인 The Hurricane (Blu Ray- Region A, Kino Lo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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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벌거벗고 드러낸 타히티 여인들이 떼거리로 등장하지만 전혀 착취적이지 않고 오히려 타히티의 원주민들의 반제국주의적 서러움과 정치적 명민함을 강조하는 [더 바운티] 와는 달리, 식민지적 지배가 너무나도 당연한 백인의 권리로 그려지고 있으며, “테랑기” “마라마” 같은 이름으로 불려지는 캐릭터들이 아무리 보아도 겨우 햇볕에 탄 얼굴을 한 백인연기자들에 의해 묘사되고 있는 1937년도작품 [허리케인] 은 정치적으로 볼때는 과거의 시점에 갇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존 포드 감독작품은 포드의 작가주의적 분석 이런 문제를 까마득히 떠나서 하나의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써 너무나 잘 만든 한편이올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의 태풍을 묘사한 특수 효과에 관한 한, 그 박진감과 박력에 있어서 최근의 CGI 도배를 한 헐리웃 대작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저거 저렇게 위험스러운 연기를 정말 배우들이 “날로” 한건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면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초기 존 포드 작품이니까 한 번 봐볼까하는 의무감 내지는 호기심때문에 구입한 한 편인데, 2015년에 본 엔터테인먼트적 가치를 가지고 따지자면, 거의 최고작품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고전 헐리웃영화의 뚝심과 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7. 스파르타쿠스 2015년 복원판 Spartacus: 2015 Restored Edition (Blu Ray- Region A, Universal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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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리스트에 올리고 싶었지만 그 트랜스퍼의 저열한 퀄리티때문에 번번히 누락되어야만 했던, 스물 일곱살의 준예 스탠리 큐브릭이 프로듀서 커크 더글러스에게 Zot-na 얻어 터지면서 (이것은 은유가 아닙니다 ^ ^) 그래도 완성해낸 세기의 명작 [스파르타쿠스] 가 마침내 거의 모든 트랜스퍼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2.20:1 (2.35:1 이 아님!) 화면비에다가, 알렉스 노스의 스코어에 전후중간 다 왜곡이 없는 깔끔한 상태로 복구되었습니다. 2015년에 들어와서야 바야흐로!


영화도 영화지만 이 트랜스퍼의 고화질이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아아 누가 극장에서 이 복원판 6K 디지털로 틀어주오!


이제 2016년에 100세가 되시는 커크 더글러스옹, 본편에는 심장마비 후유증으로 발음이 석연찮은 99세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임하신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위대하신 영화인이시여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큐브릭 말고 더글러스 할아버지).


6. 무법자의 날 The Day of the Outlaw (Blu Ray- Region B, Eureka!/Masters of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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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지 거의 매년마다 “아니 무슨 이런 서부극이 다 있단 말이냐!” 라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고전 서부극 장르의 한편—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부극의 정석과 공식들은, 이미 1970년이전의 미국산 서부극 자체내에서 몽조리 다 와해, 붕괴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이 반드시 올라가곤 합니다. 최근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에이트] 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눈덮인 산속 로케이션이라는 설정 얘기를 들으니 곧바로 이 한편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러나 과연 타란티노의 신작이, 안드레 드 토스 감독이 눈에 파묻힌 오레곤 산속의 로케이션에서 캐스트를 완전히 조지면서 찍은 이 “반 (反)서부극” 처럼 관객들을 후드려 패는 광적인 에너지를 지닐 수 있을런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이 한편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닫는 사실인데, 로버트 라이언처럼 여자고 어린이고 뭐고 일시에 다 쳐죽여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폭력적 증오와 자기혐오를 용광로처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도덕적인 선택으로 자신을 기울이려고 하는 반광란의 어메리칸 히어로역의 연기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동림선생도 이 부문에서만은 라이언공에게 밀리는 것 같습니다.


5. X 레이 눈을 지닌 사나이 X: The Man with X-Ray Eyes (Blu Ray- Region A, Kino Lo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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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는 래리 코엔이 해까닥 미쳐서 자기 우주관을 쏟아부은 작품을 만들면 어떤 게 나오느냐의 일례로서 [하느님이 시켜서 죽였다] 를 올렸습니다만, 로저 코어먼 감독님은 아마도 코엔의 괴작보다도 더 구두쇠로 돈을 아껴가면서도, 사상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전혀 꿀리지 않는 굉장한 작품들을 하나 이상 만들었죠. 그 중에서도 한 번 보면 뇌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한편이 이 [X 레이 눈을 지닌 사나이] (1963) 입니다. 우주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각을 발달시킨 한 과학자의 운명을 그린 이 영화는, 특수 효과란 기술의 발달이 포인트가 아니고 그 디자인이 표상하려고 하는 의미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전범과 같은 한편입니다.


하나의 가설이나 상황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정말 갈 수 있는데까지 논리적으로, 타협없이 밀어붙이는 것-- 한국 영화에서 가장 제가 보고 싶지만 도무지 보기 힘든 퀄리티 중의 하나입니다 (감독분들께서는 신문 칼럼 나부랑이 쓰면서 지 잘난맛에 사는 먹물들이 되시고 싶으신 것인지?). 더도말고 [X 레이 눈을 가진 사나이] 같은 기백이라도 지닌 한편이 나오면 쌍수를 들고 지지할 텐데 말입니다.


4. 괴담 Kwaidan (Blu Ray-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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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와 마찬가지로 도무지 새시대에 적합한 화질로 볼 기회가 없었던 한편입니다만 마침내 크라이테리언에서 (“복원판” 이라고 일단 표시가 되어있는데, 그렇게까지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블루 레이로 내주었군요. 십 몇년전에 극장에서 같이 보러 간 한 지인이 시큰둥한 반응 가운데 언급했듯, “서양 사람들 보고 좋으라고 만든 [전설의 고향] 이네 뭐…” 라고 단정해 버릴 수도 있는 한편이긴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한편을 제외하고 영화에 있어서 “영상미” 라는 개념 자체를 논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일본사 개론 수업시간에 [귀 없는 호오이치] 에피소드의 모두에 등장하는 [헤이케 모노가타리] 의 단노우라의 해전 (海戰) 부분의 비파법사 낭송의 시각적인 해석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곤 합니다. 양식화된 압도적인 비주얼과, 억울함과 비애와 비장미가 용솟음치면서, 그야말로 “단장을 끊”는 다는 표현을 실감하게 만드는 타케미츠 토오루의 음악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단편영화의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괴담] 이야말로 그냥 아무 장면에서나 잘라내서 보여주면, 마치 반 고호나 밀레의 회화를 보면서 우리가 거기에 온갖 함의를 스스로 투영해서 읽을 수 있듯이, 관객들을 혹하게 만드는 파워가 있습니다. 이 파워야말로 몇백년간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문화적 저력이 응축된 그것이 아니겠나요? '일본놈들' 이 그런 것 있다는거 인정하기 싫은 인간들이 참 많겠지만.


3. 아푸 삼부작 The Apu Trilogy (Blu Ray-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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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에 관해서는 별로 따로 할 말이 없어보이는군요. 오랜 동안 HD화질로의 복원을 기다려왔던 세계적인 명작 중에서도 사트야지트 라이의 “아푸” 삼부작은 가장 끈질기게 회자되면서도 막상 실행은 되지 않았던 일군입니다. 크라이테리언이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불타 없어진 상황에서, 온갖 오지랖과 불평불만이 난무할 것을 각오하고, 자신들 레벨의 명예를 걸고 복원한 [작은 길의 노래/파테르 판찰리] (1955), [정복되지 않은 자/아파라지토] (1956), [아푸의 세상/아푸 산사르] (1959)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1080p 해상도의 흑백영상으로 여기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긁히고 부지직거리고 채도가 제멋대로 튀는 “옛날필름” 의 비주얼을 마치 원래 그런 모습으로 보는 것이 제대로 된 감상인양 착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지요? 그러한 “노스탈지아” 야 말로 식민성과 제국주의에서 발호된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2. 특별한 날 A Special Day (Blu Ray-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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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스콜라 감독이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소피아 로렌이라는 세계적인 명배우들을 데리고 찍은 이 한편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폭력장면도 없고, 관객들이 증오를 퍼부을 수 있는 군바리 파시스트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피아 로렌이 연기하는 중년의 “가정주부” 안토니에타의 남편은 골수 파시스트며 그녀를 물건 취급하는 한심한 인간입니다만, 누군가를 고문하거나 체포하거나 심지어는 당국에 고발하는 것 같은 "애국적" 인 행위와도 거리가 먼 소시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인간에게 "애국심" 이란 주렁주렁 달린 애들을 데리고 파시스트들이 라디오 등의 근대 매체를 총동원해서 벌이는 각종 동원의 의식에 마치 디즈니랜드 구경하듯이 열심히 참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용하고도 슬픈 영화는 내가 이때까지 본 모든 반 파시스트 영화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서너 개에 들어가는 걸작입니다.


금년에 여든 한살, 아직도 정~정하게 멋진 안경과 패셔나블 드레스를 쭈악 차려입고 독한 액센트 있는 영어로 등장하시는 소피아 로렌 여사님의 인터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게 감동적입니다.


1. 피와 검은 레이스/살인범을 위한 여섯명의 여인들 Blood and Black Lace (Blu Ray- Region Free, Arrow Video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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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서 마침내 원래 자리로 회귀한 감이 없지 않아 있군요. 금년 최고의 블루 레이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북미에서 디븨디 혁명을 선도했던 호러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걸작 [피와 검은 레이스] 에게 돌아갔습니다. 애로우 USA 에서 출시일을 박아놓고, 결국 몇 개월이나 지연시키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뭐 어때요? 아마존 유케이에서 오히려 싸게 주고 구입한 영국산도 거뜬히 미국 기계에서 돌아가는데.


올해의 영화인은 토니 로 비앙코입니다.


올해의 레벨상은 키노 로버와 크라이테리언에게 동시수상합니다. 애로우 USA 아깝게 놓쳤는데 2016년에는 분발할 것이 기대됩니다.


올해의 카버 디자인상은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스포일러 한국 타이틀…끄응;;; ) A Girl Walks Home Alone at Night] (Kino Lorber)에 드립니다. 차점작은 [지금 보면 안돼 Don't Look Now] (Criterion) 와 [바바둑 The Babadook] (Shout! Factor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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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작년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습니다. 만일 영화를 사랑하신다면, 본인의 나이보다 더 오래 전에 제작된 (늙은) 영화들을, 스무 편에 모자라도 좋으니 한달에 한 편만이라도 골라서 보시도록 하세요.


"옛날영화"를 사랑하지 않는 영화계에 미래는 없고, “옛날영화”를 보지 않는 관객들은 결국 영화를 저버릴 것입니다.  젊은 영화인 여러분들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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