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

2016.02.14 10:01

menaceT 조회 수: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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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단어 선정 및 내용에 있어 잘못된 이해 내지는 무지에 기반한 부분이 있다면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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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롤>에서 가장 빛나는 점 중 하나는 인물의 심리를 탁월하게 담아내는 연출이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인물을 프레임 중앙 중경에 둔 상태에서 프레임 한 쪽 측면 전경에 기둥 혹은 벽 등을 두고 반대쪽 측면은 공란으로 두는 숏을 자주 쓰는데, 이를 통해 인물의 고립감이 효과적으로 드러나 보인다.

2. 흐린 유리의 이미지 역시 연출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다. 일례로, 캐롤이 길을 걷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뒤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한 소리 하자 유리벽 너머의 공간으로 들어가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는 이 뒤에 바로 테레즈가 있는 건물의 유리창 너머로 리처드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이는 숏을 붙여놓는다. 유리창이 등장하는 두 개의 숏의 연결만으로도, 캐롤과 테레즈의 동질감(유리창 내부의 영역), 테레즈와 리처드 사이의 감정적 괴리감(유리창 내부와 외부), 캐롤과 테레즈 두 사람과 사회 사이의 간극이 한꺼번에 드러나 보인다.

3. 자동차라는 공간과 겹쳐질 때 흐린 유리창의 이미지는 더욱 강력해진다. 유리 내부의 공간에서 캐롤과 테레즈는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하지만, 유리 외부의 세상과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희뿌연 유리창이 벽처럼 존재한다. 카메라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유리 건너의 캐롤 혹은 테레즈를 바라보는 숏들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는 이들과 그들 밖의 사회 사이의 거리감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캐롤은 남편 하지와 관련된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자신이 사랑하는 테레즈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떠나지만, 여전히 이 유리창이 그들과 사회 사이를 가로막는 이상 그들은 영영 해방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도사리고 있다(반면,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순간의 해방감을 느끼는 씬은 깨끗한 유리 거울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따라붙던 흐린 유리창의 불안은 결국 특정 인물의 등장으로 실체화되고야 만다.

4. 한 편, 많은 이들이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데이빗 린의 1945년작 <밀회(Brief Encounter)>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사랑'을 다룬 멜로물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밀회>의 요소들을 차용해 온 것은, 시대적 분위기를 살리는 데도 효과적이며 익숙한 장르 관습을 통해 관객이 짧은 시간 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밀회> 속 핵심 모티브의 변용을 통해 영화는 단순한 오마주 그 이상을 해내며 한 차원 위의 지점에 이른다.

(스포일러 있음)


5. <밀회>는 두 개의 레일 위를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열차가 순차적으로 지나가는 오프닝 숏으로 시작한다. 이는 목요일마다 캐치워드에서 밀포드로 와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캐치워드로 돌아가야 하는 로라와, 캐치워드의 정반대 방향인 철리와 밀포드를 오가는 알렉을 상징한다. 정반대로 달리던 두 열차가 교차되듯 캐치워드에서 온 로라와 철리에서 온 알렉이 만나는 밀포드 역의 휴게실, 밀포드의 극장 등은 영화에서 둘이 사랑을 나누는 핵심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밀회>는 출발지 혹은 행선지가 정반대인, 그래서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열차의 운동과 그 두 열차의 교차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정반대로 달리던 열차가 잠깐 동안 교차하더라도 결국엔 각자 갈 길로 떠나야 하듯, 각자 배우자가 있는 로라와 알렉 두 사람의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밀회>의 입장이었다.

6. <밀회>가 열차와 함께 시작했듯 <캐롤> 역시 지하철이 내는 소음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테레즈와 캐롤을 처음 연결해 주는 물건인 '장난감 기차'로 이어진다. 그런데 <밀회>가 정반대로 달리는 두 열차의 움직임과 그 교차의 순간을 보여준 반면, <캐롤>은 원형의 트랙 위를 순환하는 열차의 움직임에 방점을 찍는다. <밀회> 속 열차의 움직임은 마치 로라와 알렉이라는 두 열차가 애초에 출발지이자 행선지를 각자의 가정으로 정해둔 상태에서 잠시 교차할 뿐이라고 미리 못박아놓은 듯한 움직임이었다. 만약 이 둘의 관계가 영원하려면 두 열차는 모두 각자의 트랙으로부터 탈선해야만 한다. 그러나 <캐롤>은 애초에 열차를 두 대나 마련해 놓지도 않는다. 트랙 위를 달리는 열차는 언제까지나 한 대 뿐이다. '자동차'라는 공간이 열차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본다면(<밀회>에서 열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 로라의 모습에서 액자 구성이 열리고 닫힌다면, <캐롤>에서는 그 열차의 역할을 자동차가 대체하고 있기도 하다.), 이때 캐롤과 테레즈는 그 열차 위에 동승한 두 사람이다. 누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더 먼저 깨닫게 되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처음부터 함께 달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탈선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단지 세상이 그들의 사랑을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탈선'으로 정의하고자 했을 뿐이다.

7. <밀회>와 <캐롤>은 모두 두 연인이 대화를 나누던 중 제3자가 대화에 끼어들고 화자 격 인물의 상대방에 해당하는 인물이 화자 격 인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자리를 뜬 뒤 화자 격 인물이 열차 혹은 자동차에 몸을 실어 창밖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는 장면을 두 번에 걸쳐 등장시키며, 이를 액자로서 활용한다(이러한 액자 구성도 <밀회> 속 열차의 움직임보다는 <캐롤> 속 열차의 순환적 움직임과 더욱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영화가 전혀 다른 열차의 움직임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두 영화는 유사한 액자 구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맥락 하에 놓여 있다. <밀회>의 액자 밖 부분에서 두 연인은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데 사실상 합의를 본 상태였다. 알렉은 로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가 떠난다. 그리고 로라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품에서 오열하고 남편은 로라를 용서하며 그들의 가정은 다시 온전해진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도록 영화가 호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캐롤>의 경우는 어떠한가?

8. 자동차 여행이 비극으로 끝난 뒤 캐롤은 편지 하나를 남기고 테레즈를 떠난다. 이때 캐롤은 편지에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full circle'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full circle은 <캐롤>이 강조하는 열차의 순환 원 운동과 연결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캐롤은 열차의 순환 운동을 출발점과 도착점이 정해진 <밀회> 속 열차의 운동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테레즈가 일하던 장난감 가게로부터 캐롤이 사 왔던 장난감 기차는 동력을 끊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는 열차로, 그런 열차에 시발점 및 종착점이 정해져 있을 리 없다. 더불어 앞에서 말했듯 테레즈와 캐롤은 애초부터 같은 열차를 타고 달리던 두 사람이기에, 테레즈 없이 캐롤의 열차가 돌아가야 하는 제 자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캐롤이 자신의 사랑을 사회의 통념에 따라 비윤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이혼한 남편의 정숙한 아내인 체 하는 것이 제 자리인 것일까? 테레즈가 뒤늦게 깨닫게 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 제 자리인 것일까? 아니, 그들은 애초부터 그들의 트랙으로부터 벗어난 적조차 없었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캐롤은 그의 사랑 앞에 양육권을 무기처럼 휘두르던 남편과 사회 앞에서 보란 듯 자신의 사랑을 긍정해 보이고 테레즈에게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다.' 즉, <밀회>에서 액자 밖 부분에서의 두 연인의 만남이 마지막 탈선의 현장이었다면, <캐롤>에서 액자 밖 부분에서의 두 연인의 만남은 잠시간 탈선할 뻔했던 상대방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뒤 화자에게도 제자리로 돌아와 달라 애원하는 현장인 것이다. 그리고 <밀회>에서는 로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것이 알렉 한 명뿐이었다면, <캐롤>에서는 캐롤 뿐 아니라 캐롤과 테레즈의 재회를 방해한 제3의 인물까지도 테레즈의 어깨에 손을 올림으로써, 그리고 그 뒤 누구를 따라갈지 머뭇거리는 테레즈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즉, 이것이 <밀회>에서처럼 애초에 트랙 위에 정해진 종착점에 내리는 시점이 아닌, 자기 자신을 부정하여 원형의 순환 트랙으로부터 영영 탈선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긍정하여 그 트랙 위로 다시 동승할 것인지를 테레즈가 선택해야 할 시점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캐롤>이 표현하고자 했던 열차의 운동은 바로 이런 것이다.

9. 여기서 잠깐 화자 격 인물인 테레즈가 사진작가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심결에 스쳐 지나가는 세상의 풍경 중 특정 부분을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다시 보는 행위이다. 주로 자기 주변의 풍경(그들을 둘러싼 사회)에만 카메라를 들이대던 테레즈는 캐롤을 접한 뒤, 그리고 캐롤에게서 카메라를 선물받은 뒤 본격적으로 캐롤을 카메라 안에 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캐롤이라는 피사체를 카메라 안에 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도구 삼아 캐롤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나아가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프레이밍을 통해 테레즈는 비로소 세상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재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테레즈의 카메라(=테레즈의 눈) 외에 또 다른 카메라가 존재한다. 바로 감독 토드 헤인즈의 카메라이자 이 영화라는 카메라이다.

10. 이 영화가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고 액자 내부의 영역이 철저히 화자인 테레즈의 경험에 한정되어 있다고 본다면, 사실 양육권을 둘러싼 캐롤의 다툼이나 애비와 캐롤의 관계 등이 영화 내에 시각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캐롤이 다시 테레즈를 찾아 나설 때에는 캐롤의 시점 숏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니 말 다 했다. 이런 점은 <밀회>에서도 존재했다. <밀회>는 알렉과의 마지막 만남 후 집에 돌아온 로라가 남편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참회를 한다는 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고, 따라서 액자 내부 영역을 로라의 나레이션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의 친구에게 불륜 현장을 들킬 위기에 처해 로라가 집밖으로 뛰쳐 나갔을 때 알렉과 그의 친구가 나누는 대화 장면은 사실 시각적으로 구현되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밀회>는 이를 대충 꼼수 부리듯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캐롤>은 일단 테레즈의 나레이션 같은 것을 넣거나 테레즈의 내적 참회 같은 요소를 집어넣지도 않아서, 화자로서의 테레즈의 역할을 희석시킨다. 그러나 <캐롤>은 이를 통해 <밀회>가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 함정을 피해가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함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든다. 비록 화자로서의 역할을 희석시키긴 했으나 액자 구성을 열고 닫는 엄연한 화자 격 인물인 테레즈의 눈이자 테레즈의 카메라가 액자를 지배하고 있다면 등장할 수 없는 장면들을 부러 여러 번 등장시킴으로써, 이 영화에 또 다른 눈이자 또 다른 카메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1. 이것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영화의 엔딩이다.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캐롤의 호소를 외면하려 했던 테레즈도 결국 캐롤이 말해 주었던 장소로 향함으로써 제자리로 돌아온다. 두 인물이 모두 방황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옴으로써 열차의 순환 운동은 온전해졌다. 이 상황에서, 영화는 캐롤을 찾아 헤매는 테레즈의 시점 숏을 등장시킨다. 그 뒤엔 이에 대한 역숏이 등장하고, 그때부터 테레즈의 시점 숏과 역숏이 계속 번갈아 이어진다. 테레즈의 시점 숏이 등장했으니 그 역숏은 캐롤의 시점 숏이 되어야 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때 역숏은 (아마도 맨 마지막 역숏 정도를 제외한다면) 캐롤의 시점과 일치하지 않는다. 심지어 테레즈의 시점 숏은 그녀의 감정의 격랑에 따라 떨리기까지 하는 데 역숏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이 역숏은 테레즈와 캐롤 그 누구의 시선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눈, 이 영화의 카메라일 수밖에 없다.

12. 그렇다면 굳이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 밖의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케 하려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테레즈는 자신의 카메라를 통해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운 세계를,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자신의 내면을 다시 발견하는 새로운 눈이다. 관객은 극장 안에 있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스크린을 통해서만, 그 스크린을 통해 제시되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감독의 카메라는 결국 관객의 눈이다. 토드 헤인즈는 액자 구성의 함정을 역이용함으로써 서사 밖의 카메라의 존재감을 서서히 끌어올리더니 엔딩에서 이를 극대화하였다. 이 엔딩에서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순간, 우리 관객들은 테레즈가 캐롤에게서 선물받은 자신의 새로운 눈으로 캐롤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내면, 그리고 세계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의 연장선 상에서 우리 역시 테레즈의 카메라와 토드 헤인즈의 카메라, 즉 그들로부터 선물받은 새로운 눈으로 테레즈와 캐롤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토드 헤인즈는 테레즈에게 찾아왔던 그러한 재발견과 깨달음의 순간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 우리 관객들에게도 찾아오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난 분명 그 카메라에 어떤 염원이 담겨 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군가는 인지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기를, 그리고 또 눈감고 있던 누군가는 오늘도 열차 위에서 함께 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뒤늦게라도 온맘으로 긍정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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