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RE: CYBORG   009 사이보그


일본, 2012.     

 

A Production I.G./T-JOY/Amazon Laterna/VAP/Nippon Television Network/Ishimori Production Film. Distributed by Production I.G./Sanzigen (Japan), Funimation (U.S.A). 1시간43분. 화면비 1.85:1 


Director & Screenwriter: Kamiyama Kenji 神山健治 

Producer: Ishii Tomohiko 石井朋彦 

Executive Producers: Ishii Mitsuhisa, 石井光久Kii Muneyuki 紀伊宗之 

Based on the characters created by: Ishinomori Shotaro石森章太郎 

Character design: Aso Gato麻生我等 Music: Kawai Kenji川井憲次 

Editor: Sato Atsuki佐藤敦紀 


VOICE CAST: Miyano Mamoru 宮野真守 (시마무라 조오 009), Ono Daisuke小野大輔 (제트 링크 002), Saito Chiwa 斉藤千和(프랑스와즈 아르눌 003/토모에), Okawa Toru大川透 (하인리히 알베르트 005), Masuoka Taro増岡太郎 (장장호 006), Yoshino Hiroyuki吉野裕行(그레이트 브리튼 007) 


아직도 듀나게시판에 나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황당전사 욜라세다님의 오래된 리퀘스트-- 아마도 최소 2년정도는 경과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만-- [009 RE: CYBORG] 의 리뷰 올립니다. 이 한편의 블루 레이가 미국에서 출시된 것이 겨우 지난 2015년 여름이었으니, 그 세월 동안 리뷰를 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고퀄리티의 판본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리퀘스트의 시점부터 실현되기까지 늦장부리기의 기록을 세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마 아주 망각의 골짜기로 사라진 리퀘스트들도 분명히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욜라세다님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리퀘스트에 응답 못 받으신 분들께서도 혹시 이 글을 읽게 되시면 더불어 용서해 주시기를 빌고, 다시금 영화 타이틀 알려주시면 정말 5년이 걸리건 10년이 걸리건-- 듀나게시판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반드시 써드릴 것을 약속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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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009 RE: CYBORG] 는 왜 제작되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한편이다. 아니 물론 돈 벌려고 제작했지. 그건 안다. 답답해서 쓰는 수사법이다. 2012년의 일본 극장 개봉성적을 일별하니 종합 8위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프랑스와 오종 영화 같은 이런 혼란스러운 내용을 가지고 이렇게나마 돈을 벌었다는 것은, 009라는 캐릭터의 저력을 과시한다고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이 한편이 그렇게 어필할만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오시이 마모루가 감독을 하는 것을 전재로 I.G.에서 기획이 추진되었다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읽어본 오시이의 원래 아이디어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이시모리 쇼오타로오작가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분이 정말 왜 이러시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원작을 뜯어 고치… 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발기발기 생체 해부하는 성질의 것이었던 가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009와 001, 003 이외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 다 죽었고, 009는 히키고모리, 초능력베이비인 001은 왠지 개 (웰시코기인가?) 의 모습을 하고 등장하며, 003은 나이를 먹지 않는 009와 달리 58세의 중년여성 (!) 이 되었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설정들을 뚜드려 넣었는지 머리가 띵해지는 내용으로 가득한데, 내가 기획서를 읽어본 것도 아니고 하니, 이게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 보도인지는 물론 알 수 없다. 루머의 영역을 나서지는 않는다고 봐야 하겠다. 


어쨌거나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의 감독인 카미야마 켄지가 발탁되어서 각본을 다시 쓰고, 만화가 아소오 가토오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으면서 완성된 이 한편은, 그러나 여전히… 오시이 마모루 플레이버가 너무나 강하다. 오시이 팬들께선 잘 아시겠지만… 그가 손을 대는 작품들은, 특히 2000년대 이후의 제작들은, 좋게 말하면 에소테릭 (밀교적-- 아는 사람이 보면 재밌고,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뭔가 있는 것 같음) 하고, 나쁘게 말하면 자폐적 (남들은 이해를 하던 말던 자기 혼자서 웅얼거리고 끝남) 인 성향을 보이는데, 이 한편의 경우도 이런 성향이 자기 감독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아마 80퍼센트 이상의 보통 관객분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뭐가 뭔지 ZOT도 모르겠다" 가 [RE: CYBORG] 에 대한 정당한 반응일 것이다. 


오해하실까봐 부언하는데, 이건 이 애니가 "액션이 부족하고 지루하다" 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주인공들은 여기저기 붕붕 날아다니면서 총도 쏘고, 불도 뿜고, 빌딩도 때려부시고, 심지어는 핵폭발에 도시 하나가 날라가는 것 까지 나오는데 (누가 일본 애니 아니랄까봐), 이러한 짓들이 어떤 구체적인 맥락을 따라 전개되는 스토리에 복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뭐가 어쨌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기가 어렵다. 화석화된 천사들의 유골, 그리고 뜬금없이 비~ 하고 나타나는 어린 소녀의 환영을 본 007과 008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왜 끝판에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천연덕스런 얼굴을 하고 다시 출현하나? 005는 왜 아무 죄도 없는(…) 종교학자 머르치아 엘리아데까지 끌어들여서 인간의 진화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인가? 그리고 그 베니스의 호텔방에서 003이 물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엔딩 시퀜스는 [Being There] 의 오마주인가? 009는 분명히 클라이맥스에서 핵미사일인지 뭔지가 터지는 거 막지 못한 것 같은데, 보통 유럽이나 미국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면, 등장인물들이 다 죽어서 천당에 간 겁니다 여러분, 이라는 해석 밖에는 나올 게 없다. 그게 엔딩의 정체인가?! 하여간 나한테 묻지 마세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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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패트레이버] 등에서 오시이 마모루가 집요하게 추구했던 "미국의 전방위 핵우산 체제하의 일본 국가의 비겁함" 이라는 주제가 009와 (미 행정부의 에이전트로 일하는) 002의 알력이라는 형태로 또 다시 등장하는데, 자기가 만들어낸 캐릭터나 가상세계 안에서 그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다만, 애초에 UN처럼 각종 민족과 인종이 모인 정의의 팀이라는 설정으로 시작된, 케네디대통령 시절의 낙관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세계관 (월남전의 발발로 인해 수그러들고 말긴 하지만) 에서 기원된 [사이보그 009]에까지 무리하게 자신의 편집적인 관심사를 접붙이기해야만 속이 시원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 그런 식으로 갈거면 다른 멤버들의 (9.11 사태 이후의 세계에 살아가는 능력자들로서의) 민족/인종적 정체성에 관한 이슈도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다루었더라면 좋았을걸. 그러나 결국 009와 002의 관계도 원작자 이시모리 쇼오타로오가 오리지널 만화에서 이미 써먹었던 "그들은 대기권을 뚫고 떨어지는 별똥별이 되었다…" (지극히 신파적이지만 효과적이기도 한) 적 전개로 해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보면, 일-미관계에 관한 넋두리 역시 깊이있는 천착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것은 원작과 함께 자란 올드팬의 입장에서의 불만이지만, 블랙 고스트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009들에게 적대하는 세력이 무엇인지 좀 확실히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시모리 쇼오타로오작가 자신도 "천사편" 을 그리는 후반부가 되면 점차 유사종교적이고 우생학 (優生學) 적인 방향성으로 가게 되는데 ([마징가 제트] 의 나가이 고오도 좀 그런데가 있지만, 이분의 후기 만화도 뭔가 굉장히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일본 사회의 억압에 대한 불만을, 초능력을 구사하는 "신인류" 의 등장에 의한 [유년기의 끝] 적인 인류사의 혁파를 통해서 해소한다는 비젼을 선호한 나머지, 파시스트까지는 안 가더라도 개마초적이고 뇌 대신에 Zazi 로 생각하는 남자 아색기들적인 경향을 보이게 된다), 오시이-카미야마 팀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우생학적, 파시스트적 방향으로 빠질 만큼 머저리들은 아니라는 점은 평가해도 좋지만,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해서 주인공들끼리 오순도순 모여서 우리가 왜 아직도 살아있지? 초지성인지 뭔지가 도와준걸꺼야 하고 해답없는 토론을 하고 당돌하게 끝나버리는 스토리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평가해주기도 힘들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착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만든 필름 블랑크 (필름 느와르의 반대적 개념-- 아무리 세상일이 더럽고 끔직하고 부조리해도, 결국 하느님과 천사들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낙관적 우주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It's Wonderful Life] 라던가 [A Matter of Life and Death] 등의 고전작품들이 있다) 하고 뭐가 다른가? 웬만한 "예수 믿으세요" 메시지로 일관된 필름 블랑크보다 더 시시하고 답답하다. 죄송하지만 이런 걸 가지고 세련된 SF 라던가 심오한 사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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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CYBORG]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아니메이션이긴 하다. 캐릭터들의 설정 자체는 마음이 안 드는 부분도 많다. 하나만 시비를 걸자면, 009 시마무라 조오가 왜 "고딩" 으로 나오나? 그리고 혼자서 나이를 먹지 않고 살아야 하는 트라우마를 견디게 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일부러 상실케 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아니, 그러면 나중에 기억을 갑자기 되찾았을 시점의 트라우마는 몇 십년 동안 뭉근하게 반추해왔던 고통에 비해 몇 배 더 쇼크가 클 텐데? 캐릭터들의 행동에 이런 과도하게 복잡한 설정들이 전혀 반영이 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더라도 올드 팬의 입장에서는, 딱 60년대 일본의 고딩 애들이 상상했던 중학생 여자애 수준의 행동거지를 보여줬던 원작의 003과는 달리, 완전히 성인 팜므 파탈로 등장하는 프랑스와즈가 옷섶을 풀어 헤치고 갈색 머리칼의 미소년 조오에게 화가닥 달려들어서 러브 신을 연출하는 따위의, 사실 플롯이나 캐릭터 계발에는 도움이 안 되는 장면들의 미적 공력이 일시적이나마 몰입을 유도한다. 002, 005, 006, 007 등 다 원작의 기본 골격에 바탕을 둔 채 적절하게 "실사영화화" 적인 입체화가 이루어진 모습들을 하고 있다. 혹자는 비행기와 합체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나르는 제트의 디자인 등을 문제삼기도 하던데, 완전히 실사판으로 만들었다면 모를까, 아니메이션 극영화를 다루는 것인데, 제트 링크가 어떻게 구두도 안 벗고 그냥 로케트 엔진을 발바닥에서 꺼내느냐 따위의 소소한 의문들을 재미삼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이슈들을 가지고 오타쿠적인 혐오성 비난을 퍼붓고 싶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뭉클하게 자극 받으면서, 그 당시 사랑했던 캐릭터들의 멋지게 업데이트된 새 모습을 보는 즐거움 정도는 제공해주는 한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009가 가속장치를 틀었을 때의 초고속 이동의 묘사가 최근의 헐리웃 영화적인 ([매트릭스] 로 대표되는) "천천히 날아가는 총알" 식 스타일과는 달리 (그런 묘사도 있긴 있지만) TV 시리즈 [사이보그 009] 의 평판한 스타일을 계승하는 2D 고전 애니메이션적인 취향을 적극적으로 원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 취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부분이, 조오가 폭발을 막지 못한 원자폭탄의 폭풍보다 빨리 달려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장면인데, 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 줄 알지만, 어떻게나 영화적인 과장이 없이도, 관객들에게 납득을 시키는 포스를 발휘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카와이 켄지 작곡가의 음악이, 불경을 읊는 것 같은 대사에 대신해서 장면 장면들의 감정적 핏치를 정확하게 짚어주면서, 커다란 공헌도를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오시이 마모루 팀이 [사이보그 009] 를 다루는 것은 J.J. 에이브람스가 [스타 트렉] 리부트를 맡은 것 보다도 훨씬 더 궁합이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시모리 프로에서는 후속작이라고 내놓은 것이 [사이보그 009 대 데빌맨] 이니 뭐… 말 다했지 ;;;) 유일하게 캐릭터 디자인의 업데이트된 미적인 시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렇다면, 캐릭터 포트폴리오 디자인으로 패키지해서 파는 게 정직한 거지, 왜 무슨 스토리가 딱 있는 극영화인 것처럼 관객들에게 사기를 친대유, 라고 I.G. 팀을 비난을 하신다면, 딱히 제작자들을 옹호할 논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사이보그 009] 의 어릴 때부터의 팬이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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