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와 천사들 Outlaws and Angels 


미국, 2015.     

 

A Redwire Pictures/No Remake Pictures/New Golden Age Films/Casadelic Pictures Production. Distributed by Orion Pictures/Momemtum Pictures/VMI Worldwide. 화면비 2.35:1, Panavision 35mm (Kodak Vision Film), 2시간. 


Written and directed by: J.T. Mollner 

Cinematography: Matthew Irving 

Production Design: David Baca 

Music: Colin Stetson 


CAST: Chad Michael Murray (헨리), Francesca Eastwood (플로렌스), Ben Browder (조지), Teri Polo (에이다), Madisen Beatty (샬로트), Keith Loneker (리틀 존), Luke Wilson (조사이어), Steven Michael Quezada (알론조), Nathan Russell (찰리), Frances Fisher (에스터), Luce Rains (오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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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해서 타이틀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는 아주 나쁜 인상을 받았다. 다른 봐야 되는 작품들이 꾸역꾸역 대기 중인데 뭐 이딴 걸 봐, 그만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 정도로 안 좋았는데, 먼저 바지가 벗겨진 채 항문에서 피를 흘리며 자빠져 있는 남자의 시체를 보여주고, 그 시체를 넘어서 친구와 재잘거리며 걸어가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의 반이 유탄에 맞아 없어지는 (그것도 최근의 한국영화에 비교해도 널널하기 그지없는 특수 메이크업에다가, CGI로 피를 그려넣는) 울트라 고어 묘사를 서브-타란티노적 감각으로 보여주는 데부터 "아이 씨… 뭐야" 라는 반응과 함께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여보쇼, 몰너군, 댁은 [요짐보] 의 쿠로사와 아키라 아닙니다), 이어서 흰 수건을 그냥 얼굴에 덮어씌운 듯한 무성의한 복면을 뒤집어쓴 강도단의 무리가 말에 올라타는 신들을 일부러 만화 패널을 연상시키는 그림으로 바꾸어서 한 샷 씩 집요하게 보여주는, "아트하우스" 적인 미장센에서 정말 호감이 바닥을 쳤다 (댁은 [시계장치 오렌지] 의 스탠리 큐브릭 아닙니다…). 거기다가 캐릭터들은 미국인들도 "쟤가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니?"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과도하게 양식화되고, 고의로 불쾌감을 조성하는 대사를 읊는다 ("You're joshin'?" 댁은 [밀러스 크로싱] 의 코엔형제들 아닙…). 이런 투의 비루하고 지저분한 폭력묘사, 돌았거나 위선적이거나 머리속이 텅 빈 인간들이 계속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대사를 읊는 캐릭터 설정, 거기다가 예술영화 삘이 빡세게 꽂힌 "아트하우스" 미장센이 45분이면 끝났을 스토리를 두 시간에 걸쳐 엿가락처럼 늘리며 계속된다. 이런 상황이면, 끝까지 영화를 봤을 뿐 아니라 60점이라는 점수를 줄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다. 


내가 추측컨데, [무법자와 천사] 가 만일 무슨 디트로이트의 교외의 한 가정에 들이닥친 은행강도 라던가, 그런 설정의 현대극이었다면, 난 도중에서 감상을 포기하던가, 최후까지 버텼어도 평균점보다 한참 낮은 점수를 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취향과 접근 방식의 부조화스럽고 껄끄러운 결합이 서부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나름대로 독창적인 결과물로 낙착이 된다는 점이다. 서부극은 "정통" 서부극이 되었건 "수정주의" 서부극이 되었건 (잘 아시다시피 나는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개념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샘 페킨파나 세르지오 레오네가 서부극을 "혁신" 했다는 투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혁신적" 서부극을 안 만들어본 60년대-70년대 메이져 미국 감독이 몇 명이냐?) 아마도 호러영화를 제외하면 가장 정형화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 장르의 규범을 고의적으로 깨뜨리거나 전복하는 형식적, 또는 사상적 실험에 도전하기에는 의외로 풍요한 토양을 제공한다 (미국 영화에서는 제시 제임스가 드라큘라와 만나거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서사를 서부 개척지의 한 도시에 뚝 떨어뜨리는 [카우보이와 에일리언] 같은 작품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퓨전 사극" 이라는 절라 이상한 장사용 레벨-- 이건 장르의 카테고리라고 봐 줄 수 없다-- 아래에서 이런 시도들이 보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정통성"을 독점하려는 내셔널리즘의 영향이 과도하게 강하다). 


이 한편은 J.T. 몰너 각본가 겸 감독이 분명히 일정 수준의 장르 전복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접근 방식은,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오페라적 감수성 보다는 세르지오 코르부치 ([쟝고], [The Great Silence]) 나 세르지오 솔리마 ([빅 건다운]) 의 감정적으로 껄끄러우면서 약간 찌질스럽게 관객들의 잔학성을 조금씩 불러 일으키는 가학적 마카로니 웨스턴의 터치에 더 가깝다. 주인공 헨리는 토마스 밀리언이 맡아서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더라면 딱 좋았을 캐릭터고, 실제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타이틀 ("신은 용서하지만 나는 안 한다," God forgives, I don't)로 쓰인 대사를 읊기도 한다. 루크 윌슨이 연기하는 바운티 헌터 조사이어도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에 나오는 헨리 폰다처럼 이탈리아 서부극에 출연하면서, 나름 진지한 본인의 연기가 어딘지 모르게 가짜스럽고 허접스러운 주위 환경과 은근하게 충돌하는, 그런 분위기를 잡아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류크 윌슨의 느릿~느릿한 남부 억양의 대사치기-- 및 뜬금없이 삼입되는 너레이션--가 과잉으로 양식화되어서 신경에 거슬린다 (조사이어와 에이다의 돈꾸러미를 둘러싼 "액션" 의 경우, 나좀보소 상징주의 냄새가 풀풀 나지만, 그나마 윌슨과 테리 폴로 연기자들이 열심히 어필을 하기는 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예 대놓고 헐리웃의 최신 영화적 스킬과 자본의 힘을 총동원해서 막장서부극의 본색을 보여주겠다고 난리 쳐대는 [헤이트풀 에이트] 등과 달리, 이러한 비루하고도 뭔가 합이 잘 안 맞는 부조화스러운 질감이 나름대로 독특한 영화적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가 "기-승" 에서 "전" 으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인질로 잡힌 가족들의 반응에 집중하면서, 사람을 파리 죽이듯이 죽이는 은행 강도단이 "아무 죄도 없는" 하느님 열심히 믿는 개척지 가족의 구성원들보다 더 "도덕적" 으로 보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어느 정도 살리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헨리역의 채드 마이클 머레이와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15세 소녀 플로렌스역의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의 케미스트리가 엄청 중요했는데, 예상을 뒤집고 괜찮았다. 자꾸 이스트우드 가족의 혈연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스코트 이스트우드의 경우도 그랬는데) 좀 그렇긴 하지만, 프란체스카의 경우도 기본적인 연기력 어쩌구하는 논의를 까마득하게 떠난 시점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2.35: 1 의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눈을 크게 뜨는 정도의 표정연기로 확 점거해버린다. 이거 진짜 범접하기 힘든 유전자의 포스인가. 아무튼 감독의 의도대로, 페미니즘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니힐리스틱한 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저 폼재느라 가져다 붙였다는 인상이 강한 코다에도 불구하고) 플로렌스 캐릭터의 포물선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몰너 감독이 타란티노처럼 필름으로 찍은 파나비젼 와이드스크린 비주얼에 집착한다는 것이 도처에서 느껴지는데, (영화의 크레딧 타이틀에 아예 "코닥 필름으로 찍었음" 이라는 로고가 뜬다!) 피사체가 움직이는 화면에서 줌 인을 확 넣는 기법이라던가, 대형 화면을 인물의 눈을 중심에 넣은 얼굴로 꽉 채운다던지 하는 비주얼은 감독의 기호를 과시하는 것 이상의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소한 이러한 기법의 원용에 있어서는 세르지오 레오네를 좀 더 공부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국은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 (또는 채드 마이클 머레이) 가 크게 출세한 다음에 발판이 된 이색 서부극으로 역사에 규정되어 남을 가능성이 가장 큰 한편이다. 예상보다 흥미 있긴 했지만, 좀 더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발전적인 캐릭터들과 설정을 구비한 좋은 각본을 쓸 수 있었더라면 훨씬 더 우수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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