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땅의 여자

2010.08.23 22:42

범인은미세스문 조회 수:3958

 

  제목 : 땅의 여자
  감독 : 권우정
  정보 : 2009 / documentary / color / hd / 95min
 

 권우정 감독은 <땅의 여자>를 통해서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세 여성 농민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들의 목표이자 영화의 목표인 '여성 농민 운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여성은 도시에서 살다가 농민운동을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농촌으로 시집을 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열정 넘치는 목표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평범함과 독특함이 공존한다. 농사를 업으로 하면서도 단순히 직업이 아닌 농민 운동의 일부로 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농민 운동 역시 농사만큼이나 중요하다. 한편으로 그들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집안의 며느리로서, 한국 여성에게 주어진 많고 복잡한 의무를 수행해야한다. 농사가 시간과 힘을 많이 소모하는 특성을 지낸데다, 보수적인 농촌에서 집을 돌봐야 하는 아내에게 주어진 많은 의무는 농민 운동을 병행하기 쉽지 않게 만든다.

  영화는 이들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 권우정 감독은 카메라를 대상에 밀착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간결한 나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정확히 정리한다. 도입부 소희주씨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처럼(왜 이런 것까지 찍느냐며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보이듯) 관객은 그들의 사소한 생활까지 목격한다. 영화는 부부싸움이나 고부간의 갈등처럼 타인에게 보여주기 힘든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관객은 차근차근 그들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세 사람은 출발은 비슷했을지언정 현재 처한 위치는 다르다. 소희주씨는 낙천적인 태도로 농사일과 농민운동을 열심히 진행하고,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는 남편을 설득하는데도 열심이다. 강선희씨는 농사를 짓는 대신 자신이 더 잘하는 일인 선생님으로서 남고, 영화 중반에는 아픈 남편을 간병하면서 동시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총선에 도전한다. 변은주씨는 농사일에 능숙하지 않아 집안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데다 이어지는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 한다. 그녀는 해결 방법을 찾지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영화가 드러내는 삶은 그저 타인의 상황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통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농촌 여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특히 남성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농사와 가사노동에 동시에 시달리는 그들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소희주씨는 그녀가 농민 운동과 농사를 병행하는 이유도 농민 운동에 있어서 농사를 중심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과 삶의 문제를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출마해서 운동의 결실을 이루려는 강선희씨의 노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변은주씨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 하는 것처럼, 농촌에서 농민 운동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는 여성 농민의 삶과 삶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관객 앞에 풀어놓고 있다. 이것은 언뜻 엄숙한 문제 제기로 보이지만, 권우정 감독은 때로는 코믹한 장면을 통해 또 중간 중간 농촌의 사계절 풍광을 삽입하면서 아름답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대조되고 또한 겹쳐지면서 최종적으로 풍부한 감정의 명암을 만든다. 세 인물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각자 커다란 일을 겪고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들은 농사꾼이 사계절에 맞춰 농사를 짓듯이 계속해서 삶을 일궈가며, 각자 다른 길을 걸을지언정 결국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일 년 반 동안 농촌에서 머물며 세 여성의 삶을 영화로 기록한 권우정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ps. 제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의 성함을 바꿔쓴 건 아닌지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 잘못이 발견되면 수정하겠습니다. 영화는 9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부산 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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