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2008

2010.09.11 01:20

jikyu 조회 수:5330

 

 Jim이: 아내가 결혼했다의 로맨스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들으며 자란 보통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한국 남자들에겐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모잘라 그걸 공공연히 하고 심지어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거죠.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서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죠. 그, 한국 남자들이, 나이를 먹어 호르몬 탓에 중성화가 된 시어머니들이 집착하는 것 있잖습니까, 핏줄! 도대체 이 애는 누구 애냐고오?!


 Kim이: 그러고 보면 왜 그렇게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는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별점만 보더라도 저렇게들 싫어하는데! 이게 만약 현실이었다면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 했을 법한 짓들은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서도 노덕훈은 그런 짓들 중 두, 세 가지를 합니다. 물론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기에 그 끔찍한 짓들은 진짜 끔찍해지기 직전에 잘려나갑니다. 본격 치정물이었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영화가 됐을 거에요.


 Jim이: 로맨틱 코미디와 이 이야기가 잘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시도는 좋은데 무리해서 이야기에 장르를 맞추다 보니까 일관성이 떨어지는 거죠. 특히 노덕훈의 캐릭터가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생각없이 이야기에 치여 굴러가기만 합니다. 김주혁 같은 능구렁이 배우를 외피로 입고 있길 다행이지...


 Kim이: 노덕훈의 캐릭터는 영화의 일관성과는 별개로 둬야할 것 같습니다. 노덕훈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에요. 사실 노덕훈은 이 영화에서 제일 현실에 근접한 캐릭터입니다. 주인아가 별 볼일 없는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와 지옥도를 반반 섞어 놓은 머리속 세계의 팜므파탈이라면, 노덕훈은 버스나 지하철 따위에서 매일 오고가며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현대 남성들이지요. 자기 생각이란 건 찾아볼 데가 없고 하는 말과 행동은 어디서 주워들은 것뿐인... 그런 생각 없고 일관성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에서 생각과 일관성을 찾으려 하면 안 되죠. 물론 그렇다해도 이야기와 장르가 자주 엇갈리는 건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계속 기계장치의 신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고...


 Jim이: 그래도 결과물은 생각보다 잘 빠졌어요.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무리 기계장치의 신이라고 해도 노덕훈의 캐릭터와는 잘 어울리고 거슬리지 않습니다. 먼저 말했지만 이건 다 김주혁의 공입니다!


 Kim이: 김주혁도 김주혁이지만, 손예진도 손예진입니다. 근데 이건 손예진에게 돌릴 공은 아니군요. 손예진은 일류 배우지만 그 연기가 작품을 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무방비 도시를 떠올려 보세요.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은 저 두 영화의 손예진과 별 다르지 않은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소설이 원작인 덕에 대사가 조금 낫고 설정이 많이 좋아서 손예진의 매너리즘이 리얼리즘을 부여받은 거죠.


 Jim이: 배우의 세밀한 감정 묘사를 잡아내는 정윤수 감독의 능력도 높히 살만 합니다. 손예진이 연기하는 주인아는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예민한 인물이고 감정기복이 큰 인물인지라 작은 몸짓 하나, 표정 하나를 잡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이 영화는 그 작은 것들을 모두 잡아내며 주인아라는 캐릭터를 관통해 보입니다. 왜 그렇게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한국에서 데이트 무비의 주도권을 가진 게 여성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였지 않나 싶습니다. 주인아는 보통의 한국 남성들에게 국민썅냔일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에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슈퍼우먼이니까요.


 영화의 주제를 안 집고 넘어갔군요.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Kim이: 상식-이라고 쓰고 고정관념이라 읽는다-을 벗어나 보자, 가 이 이야기의 주제가 아닐까요? 영화는 여러 가지를 전복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남자와 여자를 배와 항구로 비유해온 고전적 성역할의 전복인데, 이건 사실 별 의미가 없죠, 매맞는 남편이 등장한 지금에 와서는. 사실 영화는 주제에 있어서 그리 화끈하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 온건하지 않습니까? 덕훈이 우려하던 건 모두 오해였음이 증명되고 결말은 "'대안'가족의 탄생"이라기엔 그냥 미운 놈 떡하나 더주기, 소원들어주기 정도니까요. 왜 몇몇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그토록 싫어했는지 이해가 가요.


 그래도 아내가 결혼했다는 좋은 연애물입니다. 작은 것에 오해하고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만, 결국은 다름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긍정이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립니다. 현실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영화의 엔딩이 감동적이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Jim이: 좋은 오락물이라는 것도 빼놓으면 안 되죠. 김주혁의 핫바지 연기는 배꼽빠질 정도로 웃기고, 손예진은 존재 그 자체로 발광합니다! Kim이씨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김주혁은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했길래 손예진 같은 여자를 만나는 거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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