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터매스의 실험 The Quatermass Xperiment


영국,1955.     


A Exclusive Film-Hammer Film Production. Distributed by United Artists (later MGM) 화면비 1.66:1, 흑백, Mono Sound. 1시간 23 분. 


Director: Val Guest 

Screenplay: Richard Landau, Val Guest 

Based on a Teleplay by Nigel Kneale 

Cinematography: Walter J. Harvey

Special Effects: Les Bowie, Roy Field 

Makeup Effects: Phil Leakey 

Producer: Anthony Hinds 

Music: James Bernard 


CAST: Brian Donlevy (퀘이터매스 박사), Richard Wordsworth (빅터 카룬), Jack Warner (로맥스 경감), Margia Dean (카룬 부인), Thora Hird (로즈마리), Gordon Jackson (BBC 제작부장), Lionel Jeffries (블레이크), David King-Wood (브리스코 의사), Jane Asher (어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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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터매스의 실험] 은 구미 SF와 호러 영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한편이지만, 최근의 (한국) 관객들이 보면 [환상특급] 같은 구식 흑백 TV 시리즈의 에피소드와 거의 차별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흑백TV 시리즈의 걸작 에피소드들의 공력이 웬만한 극장영화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퀘이터매스] 의 경우는 공개 당시의 영미권 사회에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으로, "보통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모종의 금기사항을 다룬 엽기적인 한편으로 인식되었다. 제작사인 해머에서는 이미 16이세 이하 관람 불가인 "X" 등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제목에다가 일부러 "Xperiment" 라는 철자법을 기용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떡밥을 던졌을 정도였으니까. 소설가 나이젤 닐이 집필한 [퀘이터매스의 실험] 은 놀랍게도 1953년의 초창기 BBC TV에 티븨 드라마로서 데뷔하였다 ([닥터 후] 보다 자그마치 10년, [환상특급] 오리지널판 보다 6년이나 앞선 등장이다). 해머 프로덕션이 3년후에 공개한 극장판은, 퀘이터매스박사를 위시한 과학자팀과 경찰 및 보안팀들로 구성된 다소 장황한 대사를 구사하는 캐릭터들의 묘사와, 기본적으로 우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해명하는 추리 스릴러적인 플롯 등, TV 시리즈적인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지금 봐도 충분히 관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스멀거리는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독특한 질감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2005년에 BBC 에서 리메이크한 TV 미니시리즈 버젼은 그런 점에서 완전 실패작이다. 특수메이크업이나 괴물의 묘사 등을 완전히 배제하고 대사와 광학적 촬영만으로 무대극적, 상징적인 방식으로 "외계생명체" 를 표현하려고 한 모양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지루하다). 


해머 극장판은 또한 현재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특이한 서브텍스트를 하나 이상 내포하고 있다. 먼저 미국인 연기자 브라이언 돈레비가 분한 퀘이터매스 박사 자신이 도무지 이러한 SF 작품의 히어로라고는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압적으로 명령을 퍼붓는 것은 기본이고, 자기가 팀 리더였던 로켓 프로젝트의 수행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비행사들의 목숨쯤은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드는, 오히려 "악당" 에 가까운 상당히 재수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의 행태는 원자력 개발을 위시한 냉전시대 미-소간의 과학력을 통한 경쟁을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과학 강국" 이념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의 거의 폭압적 이다시피 한 태도에 어느 정도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발 게스트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나이젤 닐 작가의 원래 의도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참고 삼아 부언하자면, 돈레비는 [퀘이터매스 2] -- 본편만큼 찝찝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역시 상당히 선구적인 외계 침략 SF 작품-- 에서도 박사님을 연기하고 있지만 이 한편에서처럼 재수없는 강박증 환자로 그리고 있지는 않다. 유일하게 귀환한 생존자 카룬의 묘사도 지극히 효과적이면서 섬뜩하다. 리처드 워즈워스 연기자가 시종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데 안면 근육이 마비되어서 울지도 못하는 남자 같은 모습을 하고, 대사가 없이 뛰어난 표정과 몸의 연기로 외계생물에게 몸과 마음을 점차 점령당하는 인간의 공포를 그려내고 있다. 워즈워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육체에 가두어진 카룬의 정신이 겪고 있는 지옥의 고통을 상상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런 것을 두고 바로 훌륭한 호러 연기라고 하는 것일 터일지니. 


그리고 외계 생물의 구상과 묘사도 원전 TV 시리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원전에서는 단지 비행사들을 흡수한 채 무한증식 하는 균사 (菌絲) 를 연상시키는 식물성 생명체였지만, 극장판에서는 특정한 조직만 추출한 채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남겨놓기도 하고, 동물원에서 여러 동물들을 잡아먹고 달팽이처럼 점액질의 지나간 자욱을 내면서 이동하는 등 여러가지 단계로 변화하면서 서스펜스를 강화시킨다. 클라이맥스에서 어딘지 모르게 인간의 비명을 연상시키는 사운드 디자인과 더불어 드러나는 흉한 모습에는, 일그러진 인간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것 같은-- 특히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퀭한 눈알!-- 착시현상을 교묘히 이용한 듯 하다. 물론 요즘 기술에 비추어 보자면 (단순히 CGI 가 아니라 라텍스나 폴리우레탄으로 만드는 조형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잡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하게 징그럽고 무서운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단지 촉수를 뻗고 기어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것뿐 아니라, 이 흉한 원형질 덩어리가 한때는 멀쩡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디자인을 통해 상기시키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다 (괴물이 등장하는 방식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생방송을 하는 BBC TV 의 카메라에 괴물이 우연히 포착된다는, 요즘 리얼리티 TV에 갑자기 괴물이 등장하는 것과도 유사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그 밖에도 발 게스트 감독의 효율적이고도 창의적인 전략이 돋보이는 한편인데, 우주선 안에 침투한 외계 생명체의 움직임을 우주선 안에 장치된 카메라 (55년에 만든 영화니, CCTV 나 심지어는 비데오 카메라도 아닌 필름으로 찍은 영상이다!) 가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우주 비행사들 시점에서 사운드가 없이 포착한 영상이라던가, 외계 생물의 조직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박스를 둘러싼 퀘이터매스 캐릭터의 유리 문을 사이에 둔 움직임 등, 지금 보아도 충분히 효과적이고 서스펜스 만점인 터치가 여러 군데 보인다. 단지 [퀘이터매스] 의 경우, 단순히 스릴러적인 서스펜스에 그치지 않고 등골이 써늘해지고 땀이 삐직 나는 본격 호러영화적인 "공포" 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은데, 이러한 호러영화적인 효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제임스 버나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버나드 허먼의 [사이코] 와 마찬가지로 관악기를 거의 쓰지 않고 현악기로만 구성된, 관객들의 신경을 손톱으로 박박 긁는 것 같은 신경증적인 스코어지만, 기법뿐 아니라 그 절제된 원용 방식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모더니즘적이다. 


종합적으로 보건대 [퀘이터매스의 실험] 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적인 SF 영화이며, 단순히 UFO 를 타고 광선총을 손에 들고 지구를 침략하는 짱구 머리통의 외계인이라는 식의 이미지가 대다수의 "SF영화" 를 섭렵하고 있던 시절에 정말 목 뒤 털이 쭈빗하고 솟지 않을 수 없는, 냉전시대 테크놀로지의 불안정성과 러브크래프트적인 미지의 외계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동시에 강렬하게 자극하는 "외계 생물" 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현대 호러영화의 한 획을 긋는 뛰어난 한편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퀘이터매스의 실험] 은 오랫동안 1.33:1 화면비의 오픈 매트의 낡은 프린트로밖에는 감상할 수 없었으나, MGM 에서 마침내 새롭게 아래위를 마스킹한 1.66:1 화면비의 HD 아나모르픽 트랜스퍼를 단행했다. 그 버전은 MGM Made on Demand 디븨디로 출시되었고 2014년에 들어서 키노 로버에서 블루 레이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블루 레이는 이 영화의 광팬인 ([프린스 오브 다크네스] 에 각본을 집필했을 때 "존 퀘이터매스" 라는 필명을 썼을 정도) 존 카펜터 감독의 인터뷰, 발 게스트 감독과의 인터뷰 (나이에 비해 엄청 정정하신데 이상하게 머리에 반창고를 두 개 붙이고 인터뷰에 임하심… ;;;) 와 오디오 코멘터리, [기어다니는 미지의 물체] 라는 제목이 붙은 미국 공개판과 오리지널을 비교한 동영상, 미국 공개판 예고편을 보여주면서 어네스트 딕커슨 감독이 영화의 해설을 하는 [지옥에서 온 예고편] 웹 시리즈 중 [퀘이터매스의 실험] 편 등의 상당히 충실한 서플이 수록되어 있다. 오디오 코멘터리와 피처레트의 내용이 상당히 중복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크라이테리언이나 애로우도 아닌 키노 로버가 출시한 블루 레이에서 이 정도면 좋게 봐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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