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당거래(2010)

2010.11.02 10:47

푸른새벽 조회 수:5503

 

 
 
서울에서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상대로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경찰은 범인의 윤곽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다 유력한 용의자를 사살하는 일까지 생깁니다. 이에 대통령이 직접 경찰을 방문해 범인 검거를 닥달하게 되고 경찰 수뇌부는 가짜 범인 '배우'를 동원하기로 합니다. '배우'를 이용해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는(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은 인물은 광역수사대의 실력파 최철기(황정민) 반장. 그는 실적이 매우 좋음에도 불구하고 조직내에 연줄도 없고 비 경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승진에서 누락돼 왔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나 뿐인 여동생의 남편이 수사 대상인 해동 건설 장석기(유해진)로부터 뇌물을 받아 감찰반의 내사를 받게 되고 직위해제까지 당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국장(천호진)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죠.
 
주양(류승범)은 태경그룹 김회장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일명 스폰서 검사입니다. 김회장은 최철기로 인해 구속당했다 담당 검사인 주양이 뒤를 봐줘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게 되는데 그 이후 주양에게 최철기를 손봐달라고 부탁합니다. 한편 최철기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일을 장석기에게 부탁하고 장석기는 최철기의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자신의 뒤를 봐줄 것을 공공연히 요구합니다. 장석기는 태경 김회장과 앙숙 관계입니다. 말하자면 최철기는 장석기와 그리고 주양은 김회장과 서로 뒤를 봐주는 관계인데 이들의 관계는 다시 최철기와 주양, 그리고 장석기와 김회장으로 대립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철기와 장석기, 주양과 김회장이 서로 뒤를 봐주는 관계라고 해서 그들끼리 사이가 원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각자 서로의 지위 혹은 약점을 빌미로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를 뜯어내고 뜯겨야만 하는 껄끄러운 관계이기도 하죠.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배우'를 만들어 연쇄살인 사건을 마무리 짓는 대목은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이 네 인물이 서로 얽히게 만드는 도구 정도로 봐도 크게 무리가 아닐 듯. 최철기와 주양은 장석기와 김회장으로 인해 한 번 엮이고 '배우' 사건을 통해 다시 엮이게 되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배우'를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지닌 흥미성을 보자면 그 내용이 그런 정도로 밖에 다뤄지지 않은 점은 어떤 면에서는 균형 맞추기에 실패한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당거래>는 결국 끔찍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수사극이라기보다는 유능한 경찰과 검사가 재계 인물들과 부당거래를 주고받는 내용이 주가되다보니 자연스레 사회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속에 경찰 내부의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의 갈등, 검찰과 경찰의 관계, 권력과 금력의 유착 등이 무척이나 직설적인 방식으로 등장하기에 영화 외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더군요. 요즘 같은 시기에 <부당거래>가 그런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일입니다만 영화적인 측면에서는 초반의 흥미로움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데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장황하게 벌려놓기만 했지 마무리 짓는 결정적인 한 방이 약하다랄까요.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자주 느끼는 점입니다. 


중반까지는 네 사람의 관계라든가 '배우' 사건이 무척이나 긴장감있게 전개되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맥이 풀려버리고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막 치고오르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려버리니 두 주인공의 동기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양아치스러운 느낌의 스폰서 검사로 그려졌던 주양은 알고보니 검찰내에 꽤 괜찮은 연줄이 있는데다 장인이 무려 재계 거물급 인사인 잘나가는 검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봐도 끽해야 중견 건설업체 사장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물론 영화에선 그룹회장으로 소개되긴 합니다) 김회장의 스폰서를 받는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물론 현실 속에서도 부장검사씩이나 하는 양반들이 지방 유지에게 술 얻어먹고 사이좋게 원정오입도 하고 그런다지만 그 양반들한테 재계 거물급 장인이 있었어봐요. 시시하게 지방유지 같은 사람한테 술 얻어먹고 뒤봐주고 그랬겠어요.)
 
게다가 주양은 영화 속에서 류승범 특유의 양아치스러움만 잔뜩 드러낸 캐릭터였을 뿐 이렇다할 검사다운 모습을 보여준 대목이 없었습니다. 주양이 검사로서 영화 속 사건과 관련해 한 일은 그저 어리버리한 수사관을 닥달해 최철기를 미행하게 시키고, 장석기의 통화 기록을 확보하고, 최철기의 주변 인물을 소환한 것 밖에 없죠.  최철기 역시 그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주양과 마찬가지로 최철기도 '배우'를 만들고 주양을 괴롭히는 일까지 스스로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굵직한 사건은 모두 장석기의 소행으로 이루어지고 두 주인공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장석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한 개씩 얹는 꼴이죠.     


비록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 국장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긴했지만 최철기는 능력있고 제 식구들을 챙길 줄 아는 나름 직업정신이 투철한 경찰이었습니다. 그는 장석기나 주양을 대하는데 있어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 번도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꺾지 않습니다. 그가 초반에 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혼자만 살려는 것이 아닌 부하들과 하나뿐인 여동생 가족을 위해서인 것처럼 그려지죠. 그런 그가 주양과의 대립이 극한까지 이르러 갑자기 맥없이 꺾여버린 대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옷까지 벗고 주양에게 굽신굽신대는 대목에선 뭔가 또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그저 굽신댄 거더군요. 최철기의 행동에 대해 가장 쉬운 해석은 주양이 볼모로 삼은 가족과 부하직원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점을 감안해도 앞에서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대목은 이후 본분을 망각하고 폭주하기 시작하는 부분과도 잘 이어지지 않았죠. 최철기가 폭주한 동기가 경찰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서인지 오락가락해 몰입이 잘 되지 않았는데 그냥 '아 황정민 또 왜 저러냐 좀 적당히 하지 저러다 일내지ㅉㅉ'싶더군요. 앞부분에서 보여준 최철기의 캐릭터라면 당연히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했서였을 터인데 동고동락했던 부하직원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전부터 이미 그들의 원망을 받게 된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고선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데 '어떻게 캐릭터의 동기가 한 가지로 명확할 수가 있냐 원래 인간이란 갈등하고 후회하는 존재임'이라고 생각하고 좋게 보려해도 이 영화의 마지막 20여 분은 초중반에서 보여준 장점을 다 까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꼭 이쯤했으면 됐다싶은 대목에서 더 나가고 더 나가고 하더니 결국은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꼈던 아쉬움이 다시 느껴졌죠. 시나리오도 그렇고 연출도 그렇고 초반의 쨍한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했더라면 훨씬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1. 이 영화가 왜 19세 이상 관람가일까요? 딱히 잔인한 폭력 장면도 없고 야한 장면은 커녕 이렇다할 여배우도 안나오는 영환데. 설마 권력의 어두운 모습을 그렸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겠죠? 이 정도가 청소년 관람불가면 <PD수첩>은 뭐 제한상영가 정도 될랑가요?


2. <부당거래>는 가볍지 않은 내용이면서도 꽤 웃깁니다. 류승범이 황정민에게 대놓고 대사로 숟가락 드립을 펼친다든가 어리숙한 공 수사관(정만식)과 아웅다웅하는 부분에서 깨알같은 재미가 있더군요. 주양이 공 수사관과 서로 굽신굽신 하는 장면은 그 유명한 우왕ㅋ굿ㅋ 만화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던데... 이준익, 황병국 감독의 뜬금없는 까메오 출연도 재밌었습니다.


3. 코믹한 장면들과 감독들의 까메오 출연을 보니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장진 식의 코미디로 각색해서 만들었어도 괜찮았겠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스폰서 검사 어쩌고 이런 거 실제 내용 자체가 완전 코미디잖아요. 그 잘난 양반들이 그깟 공짜술에 아랫도리 간수 제대로 못해 TV에 오르락내리락하고 PD 협박하고 얼마나 웃겼습니까. 


4. 요즘 송새벽 무지 많이 나오네요. 이 배우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로 나올 때 어눌한 말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얼마전에 본 <시라노>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똑같은 이미지로 나오더라고요. <방자전>과 <해결사>에서도 빵빵 터뜨려줬다던데 그 영화들은 못봤습니다. 참. CF에도 나오더군요. 완전 대박. 배우들 유명해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에요. 물론 지극히 일부의 배우들만 누릴 수 있는 기회긴 합니다만...


5. 박찬욱의 몽타주를 보면 박찬욱 감독이 류승완, 류승범 형제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박찬욱 감독은 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두 형제에게 존경을 표했는데요, 특히 류승완 감독과의 일화를 얘기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어느 날 류승완 감독이 고졸 영화감독으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부당한 대우와 한계 등을 떨쳐버리고자 대학에 가겠다고 했는데 박찬욱 감독은 그럴 필요 없다며 극구 말렸다고 합니다. 또 2002년 효순.미선 사고때는 갑자기 삭발식을 하자고 하는데 대학물 좀 먹고 운동권에 몸담아 본 사람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군요. 박찬욱 감독이 류승완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가 걸작이었는데 고졸인 류승완 감독이 하자고 했는데 그래도 가방 끈이 더 긴 자기가 안한다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아서였다라나.

아무튼 보통 류승완 감독에 대해 액션 영화 전문 감독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겐 <부당거래>처럼 사회성 강한 영화를 찍을 만한 의지랄까 내적 역량이랄까 뭐 그런 게 있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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