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

2014.02.03 03:34

menaceT 조회 수:6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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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Llewyn Davis (2013)

2월 2일, CGV 신촌아트레온.

그간 코엔 형제는 꾸준히 장르적 문법을 빌려와 이를 조금씩 뒤집어 가며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을 그려내곤 했다. 우연과 불확실성 그 자체를 긍정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그들의 세계 안에서, 코엔 형제는 인물들을 늘 악동 같은 태도로 괴롭혀대곤 했다. 그러던 그들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 웃음기 쫙 뺀 서부 배경의 드라마와 거의 경박스럽다 할 정도의 블랙 코미디라는 양 극단을 거친 뒤에, ‘시리어스 맨’에선 욥기를 빌려와 그 동안 그들이 보여준 세계관의 어떤 정점을 찍기에 이른다. 그 뒤에 그들은 돌연 ‘더 브레이브’를 찍는다. 옛 서부 영화의 리메이크이기도 한 이 영화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서부극이다. 

‘더 브레이브’에서도 여전히 코엔은 우연과 불확실성을 긍정하고 있긴 하다만, 왜 하필 ‘시리어스 맨’에서 그들이 여태껏 보여준 세계의 정점을 찍은 뒤의 작품에서 그들은 별안간 지금까지의 태도와 사뭇 다르게 고전적인 세계로 방향을 튼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자리에 ‘인사이드 르윈’이 당도했다. 그리고 ‘더 브레이브’, ‘인사이드 르윈’, 이렇게 두 편을 놓고 감히 판단해 보건대, 코엔 형제는 이제 본인들이 여태껏 만들어 온 세계 자체를 보다 성숙한 태도로 재검토, 재직조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더 브레이브’는 분명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다르게 보면, 코엔 형제 본인들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와 서부극이라는 장르와 제브 브리지스라는 배우를 축 삼아 맞닿아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서부극의 코엔식 재해석과도 같았던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서부극 속 주인공의 완벽한 변형이었던 제프리 레보스키를, 코엔 형제는 보다 정석적인 서부극 무대 위의 루스터 콕번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제프리 레보스키를 잔뜩 괴롭혀 가며 조소 가득한 태도로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 그 자체를 그려내던 그들은, 이제 루스터 콕번의 시선을 통해 그러한 불확실한 세상 안에서 여전히 우리가 긍정하고 지켜내야 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사이드 르윈’의 경우는 어떠한가? 코엔 형제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이라면, ‘인사이드 르윈’을 다 본 뒤 이 영화가 그들의 어떤 영화와 맞닿아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일러)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는 코엔 형제의 세계관 속 전형적인 피해자처럼 보인다. 본인의 무책임한 실수에 온갖 불운이 겹치며 그의 며칠 간의 행보는 끝없는 악화일로처럼 보인다. 영화 내에 수 차례 등장하는 완벽한 대칭 구도 하의 좁은 복도처럼 그의 삶은 늘 어떠한 해답도 없이 그를 옥죄어만 간다. 이때 작품 속 노래들은 매번 르윈의 심정을 대변하며 애잔한 느낌을 더한다. 첫 장면에서 ‘Hang Me Oh Hang Me’는 르윈이 현재 처한 절망적인 심경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르윈이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재생시키는, 마이크의 파트가 고스란히 살아 듀엣 형태로 흘러나오는 ‘Fare Thee Well’은 자살한 친구로 인한 마음의 짐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르윈의 상태를 보여주는데, 이는 후에 골파인 교수의 아내가 마이크의 파트를 부르자 르윈이 버럭 화를 내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한 편, 짐과 진, 트로이가 함께 부르는 ‘500 Miles’는 뉴욕의 절망적 상황을 타개하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카고로 여정을 떠나게 될 르윈의 심정을 예고하며, 이는 ‘Please Mr. Kennedy’에서 우주로 강제로 보내지는 우주 비행사의 심정으로 익살맞게 다시 한 번 표현된다. 

‘뿔의 문’에서 르윈이 버드 그로스먼 앞에서 부르는 곡 ‘The Death of Queen Jane’에서는 이러한 점이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르윈은 자신의 앨범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Inside Llewyn Davis-영화의 원제이기도 하다.)’ 속 한 곡을 불러보라는 말에 그 곡을 부르며, 자신의 배를 갈라서라도 자신의 뱃속 아이를 살려달라는 제인 왕비의 말을 노랫말로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르윈을 바라보던 카메라가, 제인 여왕에게 헨리가 답하는 파트에서 갑자기 컷하더니 버드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바뀐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르윈이 자신을 제인 왕비에, 버드 그로스먼을 헨리에 대입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일러주는 듯하다. 즉, 르윈은 그만큼 절박하게 ‘르윈 데이비스라는 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음악을 살리고 싶다며 그에게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싸늘하다. 

그 뒤 르윈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르윈은 자신의 아들과 그의 어미가 살아있을 지역으로 향하는 길을 보지만 그곳으로 향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던 고양이로 추정되는 동물을 차로 들이받기까지 한다. 자신의 무책임했던 과거도 똑바로 대면할 자신이 없고, 꿈 하나 믿고 달려온 현실은 시궁창에 처박혀 버린 그의 처지를 닮았다. 그 상태에서 음악을 포기하고 배를 탈 결심을 한 르윈은, 꿈 없이 배를 타며 고기나 낚아 올리며 시체처럼 살아온 아버지 앞에서 ‘The Shoals of Herring’을 부르는데, 배 낚는 이들이 늘 청어 떼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노랫말은 마치 르윈이 그 새로운 길을 택하더라도 여전히 그 속에 꿈을 포기하지 못하리란 암시와도 같다. 그런데 설상가상 그는 배를 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그는, 진을 조롱하는 ‘가스등 카페’ 사장의 말에 부아가 치밀어 한때 자신이 꿈꾸고 사랑했던 노래하는 행위 그 자체를 조롱해 가며 난동을 피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날 밤, 오갈 데 없는 그가 다시 골파인 교수의 집을 찾았을 때, 기적적으로 다시 고양이가 집을 찾아왔음을 알게 되고, 그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스’였음을 알게 된 순간, 그간의 그의 여정은 그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 듯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던 관객들 역시 그 순간, 여태까지 보아 온 영화의 내용을 다시금 복기하며 그의 기록을 다시 따라가야 할 필요가 생긴다.

르윈 데이비스가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눈을 뜨고 그 고양이 ‘율리시스’와 대면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시간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이라고 볼 때, 사실상 영화 내에서 르윈 데이비스의 이야기는 ‘율리시스’와 함께 시작하는 셈이다. 또한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고양이를 차 안에 두고 내린 뒤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늘 르윈이 율리시스, 혹은 그를 대체한 고양이와 동행한다는 점이나, 르윈 데이비스가 뉴욕에서 시카고로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후에 영화 포스터 속 수백 마일(시카고로의 여정을 떠나기 전 르윈의 마음을 대변했던 곡 ‘500 Miles’와 맞닿아 있는 문구이다.)을 여행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점(그 포스터 속 영화는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고양이가 집을 찾아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 ‘머나먼 여정(Homeward Bound)’를 연상시킨다.)에서 고양이 ‘율리시스’는 르윈 데이비스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율리시스’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라틴어로 옮긴 것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 오디세우스 신화 모티브는 꽤 잦게 등장하는 편이다. ‘뿔의 문’에서 버드 그로스먼과 계약을 맺었다며, 르윈이 시카고로 여정을 떠나게 되는 첫 계기를 마련한 인물의 이름은 ‘트로이’ 넬슨이다. 오디세우스가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펼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었다. 하필이면 극중 트로이 넬슨은 미군인데, 직업 군인은 아니고 곧 전역을 앞둔 상태이다.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 전쟁에 징집되지 않으려 미친 척까지 하지만 결국 그 전쟁 동안 군인으로 참전하게 된다. 트로이가 진의 집을 떠나는 순간, 율리시스도 마치 그를 떠나듯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르윈이 뉴욕에 머물기 괴로워지는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난다는 점도 의도적인 연결점처럼 보인다. 또한, 르윈이 시카고로 향하기 직전에 골파인 교수 집에서 르윈이 수컷 고양이 대신 암컷 고양이를 데려 왔음이 밝혀지는데, 이 역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향하던 길에 아킬레우스를 데려가려 할 때 아킬레우스가 ‘여장’을 하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한 것을 연상시킨다. 그 뒤 르윈이 뉴욕에서 시카고로,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그 자체로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서 트로이로, 다시 한참을 헤매어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닮아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오는 내내 포세이돈의 진노를 산 대가로 온갖 비현실적인 역경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르윈 역시 영화 내내 온갖 불행한 우연의 연속으로 끝없이 추락해 가지 않던가? 

‘오뒷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갖은 고행을 겪는 동안 고향 이타카에는 오디세우스가 죽었으리란 소문이 퍼지지만, 기적적으로 오디세우스는 살아 돌아와 부인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싸그리 죽여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율리시스의 자리를 잠시나마 대체했던 암컷 고양이는 르윈의 차에 치여 중상을 입은 듯하지만(그 고양이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 다시 골파인 집에 찾아가 보니, 율리시스가 다시 그 암컷 고양이를 대체한 채 멀쩡히 살아 돌아와 있다. 그리고 이로써 영화 내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했던 두 가지 장면은 전혀 다른 맥락 하에 재해석된다.

우선 아버지에게 청어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르윈은 꿈이 짓밟혔다고 믿고, 시카고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처럼 꿈을 버리고 뱃사람이 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앞에서 청어 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그가 여전히 꿈을 그리워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비탄이 서려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율리시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오뒷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온갖 역경 끝에 이타카에 돌아오지만,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무찌르기 위해 우선 노인으로 분장을 한다. 즉,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기 전 잠시간 ‘노인 분장’을 했던 것처럼, ‘시체처럼 살아가야 했던,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의 길’은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르윈이 잠시 거쳐야 하는 ‘노인 분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분장을 벗고 구혼자들을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한 것처럼, 어쩌면 르윈이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은 자신 본연의 모습, 그가 버드 앞에서 자신의 뱃속 아기라며 간절히 노래했던 바로 그 ‘음악’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항해를 나갈 수 없도록 온갖 우연이 겹쳤던 것은 사실 불운이 아니라 행운인지도 모른다.

‘뿔의 문’에서의 오디션 장면 역시 새로운 맥락 하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오뒷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을 믿지 않는다. 그때 그녀는 ‘뿔의 문’과 ‘상아의 문’ 비유를 드는데, ‘뿔의 문’을 통해 전달되는 꿈들은 모두 실현되지만 ‘상아의 문’을 통해 전달되는 꿈들은 모두 거짓 꿈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는 꿈이 ‘상아의 문’을 통해 들어온 꿈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오디세우스는 돌아오고, 그 꿈은 결국 ‘뿔의 문’을 통해 들어온 꿈인 셈이 된다. 즉,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뿔의 문’은 꿈이 실현되는 공간인 동시에 집으로의 귀환을 약속하는 공간인 셈이다. 더군다나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귀환하며 들고 오는 소식은 ‘트로이’에서의 승전 소식이기도 하다. ‘뿔의 문’에서의 르윈의 오디션은 실패로 돌아갔고 르윈은 그 순간 ‘트로이’라는 청년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 느낀 바 있다. 그러나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스’임이 드러나는 순간, ‘뿔의 문’에서의 오디션은 여전히 그의 꿈이 ‘유효’하며, 결코 ‘트로이’에 르윈 자신이 패배한 것도 아니며, 다만 그 꿈이 실현되는 곳은 멀리 떨어진 시카고가 아니라 그가 귀환한 집, 바로 자신이 머물러 있는 뉴욕이라는 공간, 바로 그 곳이리라는 희망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 르윈은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 이때 우리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이 시점의 장면을 미리 보여줬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오프닝과 이 부분은 조금 차이가 있다. 오프닝에선 생략되었던 정보들이 비로소 이 부분에 와서야 덧붙여진 것이다. 같지만 다른 두 장면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닮은 르윈의 여정 앞뒤로 붙어 있다. 때문에 이 장면 역시 ‘율리시스’라는 이름과 함께 오프닝에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각기 다른 맥락 하에 전혀 다른 해석으로 다가오게 된다. 

오프닝에서 르윈이 부르는 ‘Hang Me Oh Hang Me’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르윈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언급한 듯 보인다. 그리고 오프닝에선 르윈이 ‘Fare Thee Well’을 솔로로 부르는 장면이 생략된다. 때문에 그 뒤에 ‘마이크랑 부르던 곡이잖아.’라는 대사가 이어지면, 관객은 자연스레 ‘Hang Me Oh Hang Me’가 마이크와 르윈의 듀엣곡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맥락 하에서라면, 마이크가 자살할 당시의 현재와 르윈의 절망적인 현재가 겹쳐진 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한 편, 오프닝에선 르윈이 정장 입은 사내에게 맞을 때도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르윈이 ‘공연이잖아요.’ 등등의 말을 하는 것만 남아, 마치 르윈의 공연 자체가 그 남자에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져 그가 얻어맞은 것처럼 그려지게 된다. 그렇다면 르윈의 음악은 여전히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태이며, 그의 미래는 더욱 암담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르윈의 여정이 지나고 ‘율리시스’라는 이름이 밝혀진 뒤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르윈은 ‘Hang Me Oh Hang Me’를 부른 뒤 바로 뒤이어 ‘Fare Thee Well’을 솔로로 불러 호응을 얻는다. 이제 그 뒤에 이어지는 마이크와의 듀엣 운운하는 대사는 바로 ‘Fare Thee Well’을 가리킨 대사였음이 한층 더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Hang Me Oh Hang Me’에서 ‘Fare Thee Well’로 이어지는 르윈의 공연은 이제 미국을 돌아온 여정 끝에 비로소 르윈이 마이크라는 죽은 친구의 환영을 극복하고(그와 ‘Fare Thee Well’이라는 노랫말이 가리키듯 작별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뉴욕, '가스등 카페'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르윈이 카페를 나서려 할 때, 밥 딜런으로 추정되는 이가 'Fare Thee Well'가 유사한 제목의 곡 'Farewell'을 부른다는 것도 이러한 해석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정장 사내에게 얻어맞는 부분에서도 정장 사내의 대사가 추가됨으로써, 그가 그 전 날 자신의 아내가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 이를 조롱하며 난동을 부렸던 르윈의 행동 때문에 르윈을 때렸다는 것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그 전 날 저녁만 해도, 즉, 르윈이 ‘율리시스’라는 이름을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르윈에겐 희망이 전혀 없었다. 삶은 온갖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르윈을 몰락시켜 가는 듯했다. 그렇기에 르윈에게 더 이상 음악이라는 꿈은 웃음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고, 진이 무대를 서기 위해 자신과 잤다는 식의 말을 듣고 난 뒤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율리시스’라는 이름 하에 그 생각은 완벽하게 전환되었다. 이제 음악은 다시 그의 꿈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렇기에 정장 사내가 르윈을 폭행한 뒤 자신의 아내는 단지 노래하고 싶은 열망으로 무대에 선 것이라며 말할 때, 르윈의 표정은 오히려 밝아 보인다. 꿈 하나만으로 노래를 불렀던, 어쩌면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같은 그 여인을 조롱했던 그 날 자신의 행위가 그렇게 다시 한 번 부정된다는 점에서, 음악이라는 꿈이 다시금 긍정된다는 점에서, ‘율리시스’ 이후의 르윈은 오히려 정장 사내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르윈은 정장 사내가 탄 택시가 떠나가는 것을 보며 “Au revoir!”, ‘다시 만나자’는 의미의 인사를 던진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코엔 형제는 이전에 이미 ‘오뒷세이아’를 다룬 바 있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가 바로 그 영화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율리시스’였으며, 그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오뒷세이아’ 속 세이렌이나 퀴클롭스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에서 퀴클롭스에서 따 온 듯한 외눈박이 캐릭터를 존 굿맨이 연기하는데, 그는 ‘인사이드 르윈’에서도 유사한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한다.)을 거치며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비슷한 비현실적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여정을 겪게 된다. 또한 그 영화에서도 음악이 자주 등장했는데(컨트리, 포크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도 연관성이 있다.), 서사시였던 ‘오뒷세이아’에서처럼, 그리고 ‘인사이드 르윈’에서처럼 음악이 스토리텔링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즉, ‘더 브레이브’가 ‘위대한 레보스키’와 맞닿아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사이드 르윈’ 역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심지어 ‘인사이드 르윈’이 ‘더 브레이브’ 다음 작품인 것처럼,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도 ‘위대한 레보스키’ 다음 작품이다.). 그리고 ‘더 브레이브’가 ‘위대한 레보스키’와 달리 우연과 불확실성이 지배한 세계 그 자체가 아닌 그 속에서 긍정하고 포용해야 할 무언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인사이드 르윈’ 역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당시의 코엔 형제가 외면했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가 ‘오뒷세이아’를 종교와 이성이 부딪치던 시점의 30년대 미국 남부로 옮겨와, 익살스런 태도로 종교도 이성도 답이 될 수 없는 우연과 불확실성의 세계 그 자체를 그려내려 했던 반면, ‘인사이드 르윈’은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개인의 음악과 현실을 훨씬 미시적인 시각에서 다루어 가며 우연과 불확실성에서도 끝끝내 스스로의 어제와 오늘을 긍정하고 내일로 내일로 버텨낼 수 있도록 하는 꿈과 희망을 보여주려 한다(작품 내내 우울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고 푸근한 느낌의 화면 역시 이러한 영화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율리시스’라는 고양이 이름 하나가 마치 신탁처럼 한 사람의 운명 같은 것을 돌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놓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신탁, 예언처럼 인생을 확정짓는 어떤 것, 그런 것은 코엔 형제의 세계에선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 하나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절망 가득한 상황을 희망으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새로운 인생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만 있다면,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든 바뀌어갈 수 있으리라고, 아니, 최소한 그 사람이 생을 버텨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인사이드 르윈’을 만든 2013년의) 코엔 형제는 믿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세월이 갈수록 무뎌지고 말 그대로 ‘늙어갈’ 뿐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 세월을 고스란히 체화해 자신의 작품 안에 녹여낸다. ‘시리어스 맨’ 이후 코엔 형제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그들이 겪어낸 세월의 깊이를 아직 그 세월을 겪어보지도 못한 나 같은 이에게까지 이해시키고 있다. 이런 작품 앞에선 그야말로 경외감이 어떠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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