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서운집

2015.08.20 14:10

menaceT 조회 수: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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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집 (2015)

8월 19일, 미로스페이스.



<무서운집>을 극장에서 감상한 경험은 여러 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놀라웠던 점은, 예고편부터 대놓고 개판 같아 보였던 이 영화가 곳곳에 그러한 개판이 의도된 것임을 드러내 보이는가 하면, 그 안에 나름 통찰 비스무레한 게 들어있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맨 첫 장면은 마네킹을 조립해서 치장하는 장면이다. 마네킹은 총 셋인데 하나는 신랑, 하나는 신부, 하나는 소복 입은 처녀 귀신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구윤희 여사는 신랑 신부 마네킹을 한 구석에 오순도순 세팅해 두고서 정작 자기는 처녀 귀신 마네킹과 부둥켜 안고 괜히 비명을 질러 대며 사진을 찍는다. 이때 사진기를 들고 있는 자는 극중에서 그녀의 남편 역을 맡았으며 실제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양병간 분 되시겠다.


만들어진 신랑, 신부의 모습, 그리고 처녀귀신 마네킹을 부둥켜 안은 아내, 이를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 남편. 이 구도부터 뭔가 그림이 나오지 않나? 이제 남편은 사진 찍어 온답시고 훌쩍 집밖으로 나가 버리더니, 영화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한 편, 아내 구윤희 여사는 이제 영화 끝날 때까지 집이란 공간을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한다. 


마네킹 깜짝쇼 한두 번이 지나면, 이제 거의 상영 시간 반토막에 이를 분량이 구윤희 여사의 집안일과 먹방에 할애된다. '먹는 즐거움은 모든 두려움을 잊게 해 준다지'라며 빠다코코넛과 제크와 믹스커피(이 조합은 미로스페이스에서 '구윤희 여사Set'란 이름으로 단돈 천 원에 판매 중이다.)를 잡수시고, 설거지를 하시고, 바닥을 쓰시고, 대변을 보시고, 화장실 청소를 하시고, 소시지와 양상추와 계란 끼운 토스트와 슬라이스 치즈를 드시고, 설거지를 하시고, 바닥을 닦으시고, 빨래를 걷으시고, 김장을 하시고, 소변을 보시고, 짜장라면을 드시고(짜장 소스는 따로 웍에 조리하신다. 주부 50단이시다.), 설거지를 하시고, 하는 게 진짜 죄다 나온다. 그리고 그게 다 끝나면 이미 해가 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부 구윤희 여사님은 중간중간 혼잣말 내지 친구와의 통화로 고단한 가사노동에 대해 한탄하신다. 정말이지 중산층 전업주부의 고단한 일과를 담은 기록물이라 봐도 좋을 정도이다. 정말 하루 종일 끼니만 때워 가며 내내 집안일을 하는 걸 보여준다. 남편은 나가서 안부전화 한 통이 없는데!


영화는 구윤희 여사의 가사노동을 보여주면서 지속적으로 집이란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집이란 공간이 참 묘하다. 설정이 정확히 어떤진 몰라도 얼핏 보아 구윤희 여사 부부가 그 빌라 건물을 통째로 산 모양인데, 지하엔 마네킹 셋이 놓인 스튜디오가 있고, 대충 3, 4층 정도로 각 층마다 있는 집들은 죄다 주인 없이 비어 있고, 옥상에는 옥탑방이 있다. 그런데 정작 부부는 다른 방 다 비워놓고 굳이 옥탑에 산다. 그런데 또 그 옥탑방도 더럽게 넓어서 집안일이 해도해도 끝이 없다. 집이 넓다는 건 구윤희 여사의 대사로도 계속 지적된다. 한 마디로 분에 넘치는 집을 장만한 셈이다. 


재미있는 건, 실상 클라이맥스 부분을 제외하곤 마네킹 귀신이 하는 일이라곤 구윤희 여사를 성가시게 하는 것뿐이며, 그를 통해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 귀신의 공포보다는 집의 공간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귀신이 나올 때마다 구윤희 여사님은 귀신으로부터 도망치겠다고 내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점점 나를 열받게 만드는' '노이로제' 귀신을 찾아 '요절'을 내겠다고, '사생결단'을 내겠다고(진짜 대사에 저렇게 나온다.) 옥탑의 방들을 뒤지시고, 옥탑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옥탑으로 계단을 오르내리시며(엘리베이터도 없다. 무조건 계단인데 계단 오르내리는 걸 잘 편집도 안 한다.), 매 층에 있는 원룸을 몇 개씩은 꼭 확인해 보신다. 그러고 있으니 귀신이 등장해도 귀신의 꼴은 외려 우스꽝스럽고, 정작 두려움은 귀신이 또 나왔으니 또 그 더럽게 큰 집을 구석구석 쏘다니겠구나 하는 데서 나온다. 이쯤 되면 <무서운 집>이란 제목도 리얼로 다가온다.


이렇게 구윤희 여사가 연기하는 캐릭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분에 넘치는 집을 장만해 놓고 그 집의 공간성에 억눌려 있으며,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을 기다리며 가사노동을 하고 남편을 그리워 하는 모습(그녀는 그 넓은 집에서 남편 없이 쉬이 잠들지 못하더니 새벽에 남편에 전화를 건다. 남편이 받지 않자 그녀는 "이 늦은 밤에 전화도 안 받고 뭐하는 거야"라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린다.)을 보인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종속성, 남편에 대한 종속성, 이렇게 이중의 틀에 묶여 있는 구윤희 여사의 모습은 가부장제 하에서 전업주부로, 아내로 타자화된 여성의 모습 그 자체이다. 구윤희 여사가 극중에서 딱 두 곡의 노래를 부르는데, 하필이면 그 두 곡이 <즐거운 나의 집>과 <베사메 무쵸(키스 좀 많이 해줘잉)>이라는 점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극중에 오붓하게 놓여 있는 신랑 마네킹과 신부 마네킹은 모두 사람의 손에 의해 조립되어 치장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 역시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구윤희 여사는 사회에 의해 구성된 가부장제 하에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여성성에 따라 역할을 수행해 온 셈이다. 한 편, 처녀귀신 마네킹 역시 구윤희 여사에 의해 조립되고 치장되었다. 위와 같은 시각에서 볼 때, 결국 처녀귀신 마네킹은 타자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결혼 이전의 자신을 무의식 중에 욕망하며 만들어낸 분신이나 다름없다. 한국 공포영화의 스테레오타입인 처녀귀신을 고스란히 역이용한 셈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처녀귀신 마네킹과 구윤희 여사의 대치 장면도 이런 맥락 하에서 읽어볼 수 있다. 구윤희 여사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처녀귀신 마네킹은 아내의 역할을 수용한 현재의 구윤희 여사를 상징적으로 죽이려 들고, 구윤희 여사는 아내로서, 주부로서 올바르지 않은 자신 내부의 욕망에 맞서려 드는 것이다. 구윤희 여사가 귀신에게 승리를 쟁취하는 데 핵심이 된 것이 '김장할 때 파를 썰며 단련한 주부 50단으로서의 칼질 실력'이라는 것도, 그녀가 귀신에 대해 전의를 불태울 때나 귀신의 목을 딴 뒤에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담은 <베사메 무쵸>를 부른다는 것도 이러한 구도를 뒷받침해 보인다. 그렇게 보면, 영화 초반, 구윤희 여사가 자기 내부의 욕망의 화신인 처녀귀신 마네킹 곁에 있는 모습을 남편이 자신의 카메라 안에 담는 행위는, 결국 구윤희 여사가 남편의 카메라로 상징되는 타자화의 틀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려 들 것임을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을 보면, 남편이 곧 귀가할 것이라는 전화를 받는 구윤희 여사가 처녀귀신 마네킹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말을 두고 양병간 감독은 GV에서 '주인공은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구윤희 여사는 결국 최종적으로 처녀귀신으로 표현된 자기 내부의 욕망에게 자신을 내어주어 아내로서의 여성성 하에 자신을 가둔 가부장제 그 자체를 박살내기 위해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적 메시지로 가득했던 <에일리언>에서 시고니 위버는 스스로 여성성에 함몰되지 않은 채 남근을 상징하던 에일리언에 맞선 바 있다. 이제 <무서운집>에서 타자화된 여성성을 박살내고 자기 내부의 욕망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어준 구윤희 여사의 차례이다. 신세기 여전사 시구윤희 위버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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