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펙터 Spectre

2015.11.10 21:35

Q 조회 수:2808

스펙터 Spectre


영국-미국, 2015.   


A B24/Eon/Columbia Pictures/Danjaq/MGM Production. 2시간 28분. 화면비 IMAX 1.9:1, 보통 2.35:1

Director: Sam Mendes

Screenplay: Neal Purvis, Robert Wade, John Logan, Jez Butterworth

Cinematography: Hoyte Van Hoytema

Editing: Lee Smith

Production Design: Dennis Gassner

Costume Design: Jany Temime

Music: Thomas Newman

Producers: Barbara Broccoli, Michael G. Wilson, Daniel Craig, Stacy Perskie, Andrew Noakes, David Pope

Executive Producer: Callum McDougall


Cast: Daniel Craig (제임스 본드), Léa Seydoux (마들렌 스완), Christoph Waltz (프란츠 오버하우저), Ralph Fiennes (M), Ben Whishaw (Q), Naomie Harris (머니페니), Andrew Scott (C) , David Bautista (힝크스), Monica Bellucci (루치아), Jesper Christensen (미스터 화이트), Alessandro Cremona (마르코 시아라), Roy Kinnear (태너), Marc Zinga (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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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펙터] 에 대한 평론가들의 의견들을 읽어보면, 별점/비교평가에 있어서는 대충 [스카이폴] 이나 [카지노 로얄] 보다는 못하지만 [퀀텀 오브 솔레스] 보다는 낫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막상 평론들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강점이라고 일컫는 요소가 다른 이에게는 약점으로 다가오고, 또 한 기자에게 치졸하고 지루하게 여겨지는 설정이나 전개들이 다른 리뷰어에게는 클래식 본드 영화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가상한 노력으로 보여지는 등, 콘센서스와는 거리가 먼 좌충우돌의 의견충돌의 양상을 노정하고 있는 듯 하다. 확실히, [카지노 로얄] 와는 과격하게 떨어져서, 적나라하게 본 시리즈에 가까운 스타일로 연출되었던 [퀀텀 오브 솔레스] 보다는 [스카이폴] 과의 연속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많은 설정, 캐릭터 디자인, 액션 상황 등을 대놓고 염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 [스카이폴] 이 그랬듯이 의외로 로저 무어판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대한 각종 오마주 및 언급이 만재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샘 맨데스의 취향인 듯) 대니얼 크레이그가 본드 역을 맡은 이후로 가장 회고적 (노스탈직) 인 모드의 한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007 죽느냐 사느냐], [007 살인면허], [007 유어 아이즈 온리] 등의 과거 작품들을 강렬하게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오슨 웰즈 감독의 [악의 손길] 의 롱테이크 오프닝의 변주라고도 말할 수 있는 (폭탄이 오프 스크린에서 터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볼 수 없는 [악의 손길] 과는 달리, 대폭발과 더불어 빌딩 하나가 완전히 폭삭 무너져 버리는 장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악의 손길]의 팬들에 던지는 세련된 농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멕시코 시티의 "사자 (死者) 의 날" 축제를 배경으로 한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이 프리크레딧 시퀜스에서 본드가 힘겹게 처치한 이탈리아인 테러리스트 마르코 시아라에 대한 암살 지령은 [스카이폴]에서 사망한 M의 유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시아라의 배후를 추적해서 로마로 날아간 본드는 그의 미망인 (너무나 짧게 등장하는 모니카 벨루치), [퀀텀 오브 솔레스] 에서 적측이 다시 빼돌려간 악당 미스터 화이트 (제스퍼 크리스텐슨) 그리고 스위스의 고급 클리닉에서 일하는 정신분석의 마들레느 스완 (레이아 세이두) 등과 접촉하면서 수수께끼의 조직 "스펙터" 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한편은 영화판 제임스 본드의 숙적이자 셜록 홈즈에 대한 모리아티교수에 해당하는 에른스트 슈타브로 블로펠드와 그가 총괄하는 국제 테러조직 스펙터 (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 "대정보수집, 테러, 보복과 공갈을 위한 특별 행정부"-- 근사하지 않나?-- 의 약자가 S.P.E.C.T.R.E. 라는 것이 원작 소설의 설정인데, [스펙터] 에서는 이런 설정은 방기된 듯 하다)를 소개하는 역할을 지닌 한편이다. [스카이폴] 이 리부팅된 제임스 본드의 정체성의 기초를 다시 세웠다고도 볼 수 있으니, 그로부터 한 발 더 나가서 그가 상대하게 될 악의 세력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챕터를 그 다음에 배치하는 것은 어찌 보자면 굉장히 논리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스펙터] 도 여전히 재미있게 보았다. [스카이폴]에서처럼 양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주체를 할 수 없었던 감동은 느낄 수 없었지만, 샘 멘데스의, 요즘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는 혼란스러운 편집과 파편화된 구도를 완전 배제하고 고전적인 헐리우드 영상예술 (누벨 바그 이후의 자의식 충만한 "영상예술" 이 아닌) 의 전범을 추구하는 자세는 여전히 나에게 신뢰감을 안겨다 준다. 프리 크레딧 시퀜스의 롱테이크 연출도 그렇지만, [선더볼 작전] 의 전개를 거의 답습하는 이탈리아 시퀜스의 뜸을 들인 중후한 전개, 레이아 세이두가 연기하는 마들렌과 스펙터의 "해결사" 힝크스 등의 캐릭터들의 장르적 과장을 될 수 있는 한 배제한 묘사, 그리고-- [스카이폴] 의 로저 디킨스의 광적으로 아름다운 촬영보다는 확실히 한 단계 떨어지긴 하지만-- [인터스텔라] 의 호이테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과 전편에 이어서 귀환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스 그래스너 등의 스탭이 빚어내는, 그 아름다움과 장중함에 깜빡 넋을 잃게 만드는 초일류의 입체적 예술로서의 "배경화면" 등이, 거의 모든 시퀜스들이 지닌 올드팬을 겨냥한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니얼 크레이그에 [카지노 로얄] 과 [스카이폴] 처럼 "감정 연기"를 할 기회를 미처 주지 못한 것은 각본상의 실수지만, 그와 세이두의 화학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다. (크레이그와 세이두가 티격태격하면서 친해지는 부분 역시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배합한 고전기 헐리우드 영화의 잔상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스펙터] 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이 한편의 실책은 한가지로 귀결된다고 본다. 그것은 제목에 나오는 서사의 중심이자 목적론적인 탐구의 대상이었어야 할 "스펙터" 가 약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약체라는 것은 물론 영화안의 스펙터가 웬만한 작은 국민 국가는 찜쪄먹을 수 있을 만한, 돈을 물쓰듯 쓰는 거대 비밀 범죄조직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안된다. 크레이그를 본드로 고용하면서 이언 프로덕션에서 성공적인 리부트를 거쳐 대성공을 거두었을 당시,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소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정치적, 사상적으로 요즘 세상에 맞게 업데이트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언 플레밍 원작으로 회귀함으로써, "불안정하고 자기 감정을 통제할 줄 모르는 결함상품" 본드, 미숙한 깡패 살인자 본드로 다시 캐릭터를 재정립하는 용기와 통찰력이었다고 나는 본다. 그러한 불완전하고 자기 모순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본드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가 몸담은 세계의 위선과 모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다루었어야 말이 되는 것이었고, 실제로 [스카이폴] 에서는 M 을 죽여버린다는 파격을 저지르면서까지도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스펙터] 에서는 가장 원대한 악의 조직인 "스펙터" 를 이러한 방식으로 혁신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언 플레밍이 애초에 [선더볼], [여왕폐하의 007] 그리고 [007은 두 번 산다] 를 통해 구축해놓았던 블로펠드와 스펙터라는 조직의 성격을 무시하고, 각본가들이 "모든 감시와 통제" 도구를 장악한 수퍼 비밀조직으로 어설프게 업데이트를 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노정하게 된 이유를 따지자면, 물론 백 퍼센트 각본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초기의 테러를 장사의 대상으로 삼는 국제기업이라는 현실적인 모습에서 점점 "부하가 조금만 뭘 잘못해도 피라니아떼 한테 산채로 잡혀 먹히게 만드는" 싸이코 CEO 가 지배하는, 그로테스크하게 비현실적인 컬트 떼거리로 퇴화하게 된 영화판 스펙터의 역사를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다. 초반부의 로마에서의 스펙터 총회 등의 그 본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래도 괜찮지만, 크리스토퍼 발츠가 연기하는 오버하우저가 등장하고, 또 원작에서는 전혀 없는 제임스 본드와의 개인적인 관계까지 어거지로 찡겨넣으면서 그나마 지녔던 [선더볼 작전] 수준의 고전적인 중후함도 휘발되어 버린다. 거기에다가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는 것이 헬리콥터가 추락한 직후의 최후의 제임스 본드의 행위이다. 이 부위는 작중의 M의 대사 "살인 면허라는 것은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소… 상대를 죽이지 않을 선택권도 행사해야만 하는 거요." 에 댓구를 이루는 신이라고 여겨지지만, 미안하지만 전혀 캐릭터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소한 앞뒤를 가리지 않는 즉물적인 행동 양식에 그 오진 매력이 있는 크레이그판 본드를 놓고 볼 때에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 물론 프랜차이즈의 연속을 위한 "어른의 사정" 이 있다는 것은 알지…  우리는 이언 플레밍의 사상성 (특히 그 인종차별주의적 성향!) 과 마초적 느끼함을 여러모로 비판하고 욕할 수 있지만, 최소한 그는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를 소설외적 편의에 따라 뒤틀어버린 적은 없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다. 플레밍이 쓴 [선더볼] 에서는 블로펠드가 어떤 억만장자 집안의 열 일곱살된 딸을 유괴해서 몸값을 뜯어내는 "사업"을 수행한 후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그 딸이 유괴를 담당했던 팀 중 누구에겐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 블로펠드는 인질과 함께 몸값의 일부를 돌려보내주고, "나는 도덕이나 윤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우리 조직이 일단 약속한 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악평을 받는 것에는 지대한 관심을 지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부모들에게 '무사히 돌려보내드리겠다' 라고 약속을 했소. 그 아가씨가 성행위에 동의를 했건 말건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오." 이러면서, 부하들을 추궁한다. 결국 그 중 성폭행을 했으면서 모른 체 했던 부하를 의자에 설치한 전기 장치로 구워버린다.


어떤가?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007 세계의 악당" 과는 적잖이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가? 소설의 블로펠드는 후기 007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주체를 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가 전혀 아닌, 현실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기업가나 정치인에 불편스럽게 가까운 인물인 것이다. 이왕 현실의 우리가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상을 만들어 놓고도, 이러한 "새 시대에 적합하면서도 원래 소설의 원형에 바탕을 둔" 블로펠드상을 구축할 기회는 요번에도 아깝게 놓쳐버렸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이러한 약체 스펙터를 놓고 다시 이 서사를 계속 풀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시리즈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살짝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사실 [카지노 로얄] 과 [스카이폴] 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아닌밤중에 홍두깨로 갑툭튀한 걸작들이었으니 여전히 이언 프로덕션 팀에 기대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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