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스틸 Lovely, Still

 

 

미국, 2008.   ☆☆☆★

 

A North Sea Films/Parts and Labor/Sterling Productions/White Buffalo Entertainment Production. Distributed by Monterey Media. 1시간 32분, 화면비 1.85:1

 

Written and directed by: Nicholas Fackler.

Cinematography: Sean Kirby.

Music: Mike Mogis, Nate Walcott.

Executive Producer: Martin Landau, Danny Garcia.

Production Design: Stephen Altman.

 

Cast: Martin Landau (로버트), Ellen Burstyn (메리), Elizabeth Banks (알렉산드라), Adam Scott (마이클), Leo Pitzpatrick (약제사), Zoey Newman (미셸).

 

 

[러블리, 스틸] 이라고 꼭 영제 곧이 곧대로 불러야 직성이 풀리나? [사랑스러워, 아직도] 라던지 얼마든지 “아름다운 우리말” 로 제목을 표현할 수 있을텐데. 뭐 “우리말” 을 그렇게들 사랑하시는 분들이시니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마는. 아무튼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약간 눈썹이 올라갔습니다. 아니, 이 계절에 잘 맞는 영화이긴 합니다. 단지 이 필름은 좀 특이한 방향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개봉될 때에는 그 핵심에 있는… “반전” 이라고까지 부를 만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캐릭터들의 숨겨진 동기들이 의도치 않게 뽀록나버리거나 (예를 들자면, 아무래도 뭔가 부자연스러운 영어 대사의 자막 번역이라던지 그런 거의 어쩔 수 없는 “실수” 를 통해서일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자막이 그 동기를 숨기느라고 일부러 어리벙벙하게 넘어갈 경우 막판까지도 쓸데없는 혼란을 겪으시는 관객들이 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벌써 눈치 빠른 관객분들은 “진상” 에 급속 접근 하실 위험이 있지만, 이 영화의 트릭은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들— 60대 중반이나 그런 분들 말고 완연히 노인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확실한 70대 내지는 80대의 “어르신” 들— 이라도 새파란 어린 것들이 마구 “마이클” 이니 “리처드” 니 하면서 이름을 부르면서 건방지게 굴어도 아무런 사회적 제재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미국의 문화적 배경이 없다면 성립이 되기가 힘듭니다. 아 물론 이 작품의 스토리가 한국 TV 드라마 같은데서 베껴먹기에 곤란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이러한 문화적 차이점을 일단 걸러내는 “번안” 의 공정을 거쳐야 하겠죠. (물론 그런 배경을 전제하고라도 미국 아색기들 중에 너무한다 싶은 예는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금연못] 에 나오는 줘 패주고 싶어지는 꼬마 건달 녀석. 결국 헨리 폰다 할아버지한테서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먹고 찔끔해서 찌그러지긴 하지만. 전 이 꼬마 깡패녀석이 보기 싫어서 [황금연못] 을 재관람 안하고 있을 정도니까)

 

하여간에 이 영화를 보실때면 그 “반전” 인지 “진상” 인지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실 필요가 없습니다. [러블리, 스틸] 을 보실 이유의 75% 이상은 [엑소시스트] 의 리건 엄마 역할,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 의 앨리스역부터 가장 최근에는 [L&O:SVU] 에서 심각한 양극성장애를 앓는 엘리엇형사의 어머니역까지 온갖 명작 걸작 저예산 이색작에 50년 넘게 출연해오신 엘렌 버스틴 여사와 [제 5전선] 의 티븨스타로 시작해서 역시 온갖 괴작과 타작을 포함하는 수백편의 영화에 출연하신 마틴 란도오 연기자들의 공연이 되겠죠. 물론 이 두 분연기자들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마음을 열고 보시면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만, 평론가분들의 대부분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한 편이 되리라고 짐작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개가 있습니다만 먼저 영화 찍을 당시 스물두살밖에 안되었던 니콜라스 팩클러 감독의 서사와 화법에 대한 태도가 허리가 굵고 중심이 딱 잡힌 “안정형” 이 아니고 이른바 “발랄재기형” 이라는 점이 걸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러블리, 스틸] 은 카메라가 동네의 집들을 쓱 흝어가다가 어느 집 앞에 바싹 다가가자 문이 저절로 덜커덕 열리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도입부에서 보듯이 (이런 몽환적인 시퀜스들은 주인공들이 서로 입맞춤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일단 논리적 설명들이 주어지긴 합니다만) 별로 리얼리티에 관심이 없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안의 세계는 완전히 주인공인 로버트 영감님의 주관적 시점에서 전개되는 세상입니다. 영감님이 무슨 괴로운 생각을 떠오르시는 순간 화면 자체가 어두침침하게 변하면서 색깔이 쭉 빠져버리는 탈색현상이 일어나지요. 이러한 터치가 그 자체로서 부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러블리, 스틸] 에서는 이러한 “감독의 손길” 이 지나치게 나서서 눈길을 끕니다.

 

 반면 그런 과잉스러운 손길이 오히려 영화에 나름대로의 따뜻한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지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삼스럽게 연애질은 무슨 하면서 멋적어 하기도 하지만 메리와 만나서 저녁 먹고 데이트를 할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나는 독수공방 노신사의 일상 생활 같은 것도 리얼하게 찍으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불편하고 안쓰러운 심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여기에서는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에서 나오는 빛처럼 약간 비현실적이지만 여전히 온화한 색감을 중심으로 한 스타일이 그러한 현실세계의 찬 바람이 새들어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사실 로버트 영감님의 “의식세계” 와 “무의식세계” 의 경계선을 표현하는 것 처럼 여겨지는 “붉은 신기루” 비슷한 영상을 삼입하는 등의 팩클러의 창의적인 비주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건 이런 대 배우님들을 섭외해놓고 갑자기 만난 두 노인네들의 귀엽고도 가슴이 쓰린 연애담으로 단순히 끝날 수는 없지요.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로버트의 주관적인 세계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메리의 어떤 자잘한 실수를 계기로 해서 급속히 무너집니다. 이 부분에서 마틴 란도오 영감님은 이 연기자님의 특기인 “심리적인 방어선이 모두 무너진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앞부분에서 보여주었던 포근하고 점잖은 모습을 팽개친 채 끔직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해 보여주시는데, 아마도 연로하신 부모님들이나 조부모님들이 계신 분들이라면 눈물없이 보기 힘들 것입니다. 엘렌 버스틴 연기자님께서 여기서는 [밀양] 의 송강호씨가 했던 것처럼 “받아 주는” 캐처적 역할인데 그 연기의 디테일과 중후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기의 모든 측면을 자연스럽게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깨끗하게 다듬어내는—기술과 영감의 차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경지라는 점에서 새삼스럽게 찬사를 보내기도 무엇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재미있는 현상인데 두 분이 너무나 연기를 잘 하시다 보니까 이 분들의 연기를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러블리, 스틸] 의 “진상” 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로버트와 메리가 처음으로 수인사 하는 장면에서 로버트 영감님이 “그런데 댁의 이름은 무엇이오?” 라고 물었을 때의 엘렌 버스틴 여사의 반응을 주의깊게 한 번 봐보세요. 너무 미세해서 처음 봤을 때는 놓칠 수도 있습니다만. 란도오 연기자의 연기도 마찬가지로 자세히 신경을 쓰면서 보시면 로버트 캐릭터가 자기의 주관적 상황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어떤 경우에 놓여 있는지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전 바깥분과 같이 봤는데 둘 다 막판에는 눈물을 눈가에서 닦으면서 감명 깊게 보긴 했습니다만, 바깥분의 시각은 (참조로 말씀드리면 바깥분의 경우 직장 관계로 연로하신 분들과 만날 기회가 아주 많고 죽음의 문턱에 선 분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로버트 영감님같은 분에게 벌어질 확률은 아주 적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꾸며냈다는 티가 너무 나는 인공적인 상황” 이라는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좀 더 훌륭한 작품이라면 지금처럼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들려주는 한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라는 식의 닭살돋는 소개문이 연상되는 수준보다는 더 나아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로는 아쉬운 영화입니다만, 이런 좋은 의미로 사랑과 존중이 넘치면서도 나름대로 슬픔과 잃음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주기도 하는 작품은 사실 요즘 세상에는 별로 많지 않죠.

 

그런 면에서 역시 추천드립니다. 너무 거창한 기대는 하지 마시고...  마틴 란도오 영감님을 "제 5전선에서 나오던 그 남자" 로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이나 그런 나이 드신 분들 모시고 같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이미 그런 기회가 없어진 것이 유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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