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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메탈리카 영화라길래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주말에 용산 CGV까지 상경해서 본 영화... 영화 한 편 보러 서울까지 갔다 왔으니 제 삶에서 가장 비싸게 본 영화로군요...=_=;;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꽤 재미있었지만 역시 공연장에서 느끼는 그 열기와 온 몸을 울리는 강렬함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는 것. 그래도 시티 브레이크 때의 감동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느꼈다는 데 포인트. 


처음에 데인 드한이 나오는 메탈리카 영화라길래 4명의 덕후들이 KISS의 공연을 보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디트로이트 락 시티' 같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아니면 마이클 잭슨의 공연실황 + 뮤직비디오 + 마이클 잭슨이 영웅이 되어 마약상을 무찌르고 아이들을 구출하는 판타지가 뒤섞인 괴작 '문 워커'의 헤비메탈 버전 같은 영화이길 바라는 기대도 좀 있었고요. 사실 '문 워커'는 팬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참 유치하고 오글오글한 영화지만, 락밴드는 좀 과장되고 유치하게 허세 & 자뻑질 하더라도 그 또한 멋이죠. 헤비한 사운드와 기괴한 페이스 페인팅으로 유명한 KISS를 주인공으로 악마들과 싸우는 듀크 뉴켐 스타일의 FPS 게임 "KISS : Psycho Circus The Nightmare Child"라든지, 헤비메탈 덕후 잭 블랙이 판타지 세계에 떨어져 오지 오스본, 주다스 프리스트 등 락 레전드들과 함께 마왕을 무찌르는 "브루탈 레전드(Brutal Legend)" 같은 게임도 있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예고편에서 아포칼립스 물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모습의 말탄 녀석과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제 이런 기대는 커져갔고, 영화 초반 스테이지에 오르기 전 로버트 트루질로가 앰프로 가득 둘러싸인 방에서 연습을 하고 그가 베이스를 튕길 때마다 벽이 울리며 천장에서 돌가루들이 떨어져내리는 연출에서 '현실감 따위 내려놓고, 유치할망정 덕후의 혼을 불태우는 메탈리카 버전 문 워커로 가는구나!'라며 거의 확신하기에 이르렀더라죠.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 부푼 기대는 그냥 기대로만 남게 되었...=_=;; 영화에는 분명 판타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데인 드한이 출연하는 파트에서만 그렇고, 메탈리카가 등장하는 부분은 그냥 착실한 콘서트 실황입니다. 게다가 데인 드한 파트는 5분에 한번 쯤 한 30초 나오다가 끊겨버리고, 이야기 자체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많이 부실한 편이라 왜 나왔나 싶을 정도고요. 메탈리카 멤버들은 90분 동안 공연만 열심히 하고 데인 드한 파트의 스토리 진행에 단 1%도 관여하지 않아, 두 파트는 거의 완벽하게 분리된 따로 국밥을 보여줍니다. 뭐 막판에 데인 드한이 오함마질로 도시의 절반을 날려버리며 공연장도 흔들리게 한 게 두 파트의 유일한 접점이라면 접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탈리카 팬 입장에서는 메탈리카 공연의 거대한 스케일과 완벽한 호흡을 3D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꽤 재미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보를 내면 친숙한 옛 히트곡들을 들려달라는 팬들의 기대를 외면한 채 새곡 홍보에 여념없는 다른 밴드들(특히 라디오헤드라든지...-_-+)과 달리, 메탈리카는 팬들이 왜 이곳에 있고 어떤 곡을 듣고 싶어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또 팬들의 기대에 100% 부응하는 밴드죠. 'Creeping Death', 'Master of Puppets', 'Enter Sandman', 'The Memory remains', 'Battery', 'Orion'까지 그들의 대표곡들로만 채워진 셋리스트는 정말 잠시도 쉬어갈 틈을 주지 않고 쉴새없이 몰아붙입니다. 특히 시티 브레이크 때의 셋리스트와도 많이 겹쳐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많아 좋았어요. 


또한 공연 중 수많은 무대장치와 조명, 불꽃효과 등을 통해 각 앨범의 커버를 스테이지 위에 재현하는 연출이라든지, 특히 Justice for All의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지고 다시 무너져내리는 장면(게다가 무너져내린 조각은 데굴데굴 구르며 라스 울리히의 드럼 옆을 스쳐지나가죠.)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듭니다. 마치 F1 경기에서 머신이 피트인한 불과 몇 초 동안 십여 명의 스텝들이 달려들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바퀴를 교체하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에요. 숙련된 장인과 기술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완벽함의 한 정수를 보는 듯 하달까요? 최고의 공연을 위해서는 최고의 밴드 뿐 아니라 최고의 스텝과 최고의 장비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실 어떤 영상이나 음반도 라이브 공연장에서 내뿜어지는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귀 뿐 아니라 온 몸을 진동시키는 강렬한 사운드와 땀냄새 배인 열기, 무엇보다 내가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목청 터져라 부르고 있다는 그 생생한 현장감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어요. 하지만 한발짝 뒤로 물러서 스크린을 통해 현장에서는 터질듯한 열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었던 메탈리카의 스테이지 구석구석과 그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다양한 각도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차라리 이런 쪽을 살려 분위기나 진행 면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데인 드한 파트를 빼고 공연실황 + 다큐로 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진짜 공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팬 입장에선 꽤나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영화인만큼 일반적인 극장 예절 따윈 깡그리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채 소리 질러대고 아는 노래 나올 때마다 목청껏 싱얼롱하는 광란의 상영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기대가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다들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얌전히 영화를 봤다는 게 아쉬움 아닌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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