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언더 더 스킨

2014.07.22 17:27

tomk 조회 수:2960

언더 더 스킨
저자 미헬 파버르|역자 안종설|문학수첩 |2014.07.03
페이지 384|ISBN ISBN 안내 레이어 보기 9788983925206|판형 규격외 변형


주인공 이설리(Isserley)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붉은 색 도요타 콜로라를 끌고 스코틀랜드 북부 A9 도로를 달린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도로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을 태워주길 바라는 히치하이커다. 하지만 나름 원칙이 존재한다. 첫 째, 적당한 근육을 지닌 남자여야 한다. 너무 마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뚱뚱하지 않지도 않은 신체 건강한 남자. 둘 째, 자신이 은신해 있는 주변 이웃사람은 태우지 않도록 멀리 한다. 셋 째, 연고지가 확실치 않은, 부랑자나 실업자 혹은 독신 이혼남 등을 표적으로 삼는다. 경찰이나 타인의 관심은 가장 피해야 할 덕목이니까.
이야기는 초반 이설리가 히치하이커 남자들을 목전에 두고 서서히 그의 외모나 옷차림으로 나이나 환경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을 묘사한다. 히치하이커를 처음엔 지나치고 괜찮다 싶으면 뒷차가 그를 태우지 않기를 바라며 멀리서 유턴을 하며 반대 쪽 차선에서 다시 그를 확인하고 확신이 서면 또 다시 유턴을 해 그를 차에 태운다. 차에 올라 탄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이설리는 대화를 나눈다. 그의 사회적 위치나 연고지, 가족 유무를 파악해야 '보내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농장으로 데려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정서적 공감은 극도로 자제를 요구 받는다. '결단'을 내린 이설리는 차 내에 설치된 익파투아 스위치를 눌러 히치하이커를 마비시키고 자신 상사인 에스위스(Esswis)의 농장 '아브라크'로 데려간다. '엔셀'과 그의 몇몇 무리들이 마비된 신체를 은밀한 지하로 옮겨 싣는다. 그에 반해 이설리는 심드렁하고 무심하게 지친 놈을 뉘일 자신의 오두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선잠을 자며 고단한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히치하이킹 과정과 그에 따른 이설리와 낯선이와의 교류, 그리고 이설리의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초반 부분에 해당한다. 언뜻 이설리의 모습은 노동자 계급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가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 현실과 기민하게 근접해 있다. 게다가 히치하이커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전반에 깔린 불안과 문제점-실업, 가족, 종교, 매스미디어-들을 드러낸다.

중반에 접어들어 암리스 베스(Amlis Vess)로 인해 그녀는 내면에 꿈틀대던 자본가와 기업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그가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녀를 고용하고 지구에 사는 인간으로 변형케한 -난도질에 가까운 수술로써- 베스주식회사. 그 회사의 화장 아들인 암리스 베스는 에스위스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에게도 골칫덩어린 것은 마찬가지다. 그를 위해 극진한 요리는 물론이고 그가 보드셀(vodsel) -외계인들은 지구의 인간들을 보드셀이라 부르고 자신들을 인간(human)이라 칭한다- 을 풀어주는 소동에도 이설리를 제외한 다른이들은 딱히 암리스 베스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망친 보드셀들을 다 처리한 이설리의 분노에 암리스 베스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여유롭다 -상류층답게도- . 그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준 것뿐이다라고. 
암리스 베스의 꼬드김에 이설리는 농장의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암리스만큼이나 이설리도 보드셀을 직업의 수단이나 객체가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보게되는 단초를 마련한다. 우리에 갖힌 보드셀이 쓴 'mercy'라는 단어를 통해 이설리는 자신도 그 보드셀처럼 회사우리에 갖힌 하나의 부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히치하이커에게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설리가 기억해 내 쓴 'mercy'를 통해 확고해진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보드셀의 생산과정을 '에스테이트'로 내려와 처음으로 보게된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보길 원하는 이설리는 무리들에게 굴욕적으로 저지를 당하고 기절한다.
이설리는 무사히 깨어나고 암리스 베스와의 대화를 통해 부르주아의 변명과 베스주식회사에 대한 비판, 자신들 고향의 상황을 전해듣는다. 회사의 마케팅전략으로 보드셀의 터무니 없는 비싼 가격이 분배의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또한 육식의 부작용도 역설한다. 암리스 베스의 부탁으로 이설리는 자신이 자주가던 아브라크 들판을 지나 끄트머리에서 암리스를 데리고 바다를 구경한다. 눈이 내리자 암리스는 감탄을 쏟아낸다. 하늘에도 바다가 떠 있다고. 이설리는 그렇게 매번 보드셀을 태우던 조수석에 '마음을 나누는 인간'을 태운 것이다. 그리고 암리스는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기약없는 작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암리스 베스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설리와 완전하게 반대편에 서 있다. 상류층에 잘생긴 외모, 긍정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천진난만하며 이상적이다. 그는 세력이나 힘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혁명가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지수이다. 아니 가능성이 없다. 그도 그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을 기업가이기에 애석하게 그는 아버지에게 묶인 신세다. 처음 맛보는 세계를 경탄해하고 동경할 뿐이다. 반면 이설리는 암리스 베스에 모순된 감정을 품고 있다. 상류층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 그에 대한 열망이 뒤얽혀있다. 과거 버림받은 기억으로 인해 더더욱 타인에게 무심하게 반응하지만 암리스 베스에게만은 서서히 내적으로 그에게 기울기 시작한다. 그의 기품과 열정, 순수함이 그녀를 흔들어 놓는다. 말하자면 이설리가 보드셀에게 유혹적인 인간이라면 암리스 베스는 이설리에게 유혹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그녀는...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모를 일이다. 이설리가 바라던 대로 지구와 하나되는 윤회에 다닿랐을지, 아니면 그저 어느 세일즈우먼의 비참한 최후인지. 

작가는 절제된 표현으로 이설리의 불안하고 예민하게 떨리는 감정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히치하이커와 조우, 농장군상들과의 관계, 암리스 베스와의 교감, 내적갈등이 차분하게 서술됨으로써 오히려 긴장을 유발하고 몰입감을 준다. 
이설리를 전반에 배치하고 그들 주변인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재밌는 부분은 히치하이커의 내면을 따로 1인칭으로 서술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1인칭 시점이 혼용되는 부분은 이 부분으로 말미암아 생겼다. 사실 유명 소설가들도 언급을 했지만 소설이 1인칭, 3인칭 구별해서 쓰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타인의 생각을 오히려 과감하게 1인칭화 서술한 부분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할 중요한 대목에서 문장이 길어지고 자칫 루즈하게 이어졌을지도 모를 테니. 다만 처음엔 이 1인칭 서술이 이설리의 싸이코메트리적인 능력인가 싶어서 혼동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상당 부분 블랙유머로 가득하다. 이설리(외계인)에게 너 같은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고 한탄하는 히치하이커나, 아브라크 절벽 아래 양 떼를 본 암리스가 이설리에게 먹어본 적 있냐고 묻자 우리처럼 네발로 걷는 동족을 어떻게 먹냐고 어이없어 하는 모습 등 군데군데 활력을 불어넣는 에피소드들이 적지 않다.
이야기에 깔린 세계관이 내밀하고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다. 베스주식회사는 단순 farming회사인지,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구에 왔는지, 왜 인간을 이런 식으로밖에 납치할 수밖에 없는지, 이설리는 왜 팔리듯 베스주식회사에 왔는지 등등. 하지만 이 소설을 즐기는 데 그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봐왔던 부수적인 부분들은 가지치기하고도 남을 정도로 독자들도 각자의 상상과 클리셰는 준비되어 있을 테니.

p.s 어제 밤에 동명의 영화 vod로 봤는데요.. 물론 영화 자체는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잘 살렸던데 이럴 거면 왜 판권을 사서 각색을 한 건지가 납득이 안 갔어요. 영화에서 원작이랑 겹치는 부분은 여자 외계인이 차를 몰고 남자를 태운다 그리고 유인해서 가둔다입니다. 물론 영화가 원작의 재현이 아닌 거 압니다. 헌데 이설리의 연약하고 세심한 캐릭터 설정마저도 다 날렸어요. 그러고보니 영화에서 주인공 이름은 로라(Laura)더군요. 인트로 부분과 음악은 참 여운이 남도록 좋던데.. 마치 백남준 아트비디오 같더군요. 타악기에 신경을 거스르는 사이키델릭한 노이즈와의 조화 혹은 불협화음이 말이죠. 영상도 탁월하고.
이런 부분에서 느끼지만 작가나 감독은 소재나 타이틀을 뽑는 능력이 탁월해야 할 것 같아요. 언더 더 스킨, sci-fi 이미지와 미에 대한 탐구, 히치하이킹, 영감이 책을 읽은 감독 머리에서 번뜩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책 따로 영화 따로니 원작 읽으신 분들은 책 내용을 기대하지 마시고 관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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