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 (2010)

2014.10.18 02:23

비밀의 청춘 조회 수: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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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이야기가 다 담긴 글입니다. 안 보신 분은 안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지속적으로 문장 비문 수정, 표현 가다듬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보기 최근 한 달 동안 나는 영상에 빠져 있었다. 하루에 거의 한 편씩 보며 영상 속에서 기쁨을 찾던 어느 날, 결국 나는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 음산한 기운, 잔혹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망설여졌던 찰나, 나는 이 영화를 재생하였다. 그리고 보는 내내 이 영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고, 불편했다. 한때 어린 나는 강하고 잔인한 영화를 잘 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철없이 굴었건만, 이제 나이가 좀 들었다고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버거웠다. 한숨과 또 이어지는 한숨, 끝나지 않는 김수현과 장경철의 지난한 이야기와 그 결말에 나는 이해할 수 없이 막연한 어둠에 사로잡혀 이 영화를 계속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영화를 제대로 사고할 수 없었다. 뿌연 연기 안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사소하고 사적인 일이 생겼고, 그 일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우연히 '악마를 보았다'를 다시 떠올렸다. 영화에 대한 단상과 나의 사적인 일에 대한 단상이 마치 끊어졌던 붉은 실이 다시 만난 것처럼 합쳐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일말의 사적인 통찰을 통해 이 영화의 불쾌함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흐린 연기 때문에 무서워서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다가 결국 등불 하나를 손에 들고 깊은 밤의 숲으로 발을 간신히 디디기 시작한 것이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장경철과 태주가 바로 그러한 인물들이다. 살육을 즐기는 자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평소에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산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의식하면 우리는 이 사회 밖에 나가서 살 수 없다.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괴물 같은' 인간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들은 우리를 분명 노리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부정보다 앞선다. 김수현과 그의 약혼녀 주연은 그런 의미에서 운나쁜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잘 조우하지 못하는, 살육을 쫓는 미지의 존재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해 참혹한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은 김수현과 주연을 같은 카메라 시야에 담은 적도 없다. 그들은 그저 느끼한 전화 통화 하나로 보여졌을 뿐이다. 감독의 관심사는 전혀 사랑이나 로맨스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깔끔한 전개는 오히려 효과적이다. 빠르게 전개되는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장경철을 잡고 풀어주는 김수현의 심리에 공감한다. 장경철은 보통 인간 사회에서 사랑 받을 수도 없고, 보듬어 줄 수 없는 인물이며, 보듬어서도 안 되는 인물이다. 흔히 밥 먹여주고 거두어주면 기운 내서 주인 물어버리고도 남을 개새끼를 이야기하는데, 장경철이 바로 딱 그런 짐승이다. 인간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 광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우리에 의해 비정상의 너머로 가버린 이해받을 수 없는 괴물이다.

  이 영화는 비극이다. 철저한 비극이다. 복수극이 아니다. 약혼녀 주연의 상실을 과연 김수현이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불가능하다. 주연은 무슨 짓을 해도 살아돌아 올 수 없다. 주연의 여동생이 김수현에게 전화로 호소한 것을 보라.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현은 괴물 흉내를 내서라도 자신의 약혼녀인 주연이 받은 괴로움을 돌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말했듯이, 이 영화는 복수극이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김수현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져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아리따운 아가씨가 참혹하게 조각내어 죽는 그 고통도, 그 어느 것도 그 어떤 것으로 보상 받을 수 없다. 피 1.5kg를 피 1.5kg로 교환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다. 고통 받았다면 그것은 김수현과 주연이 보통 사람들이고, 보통의 아름다움과 미래에 가치와 기대를 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회의 건전한 한 구성원으로 산 것이 그들이 한 행위의 전부였다. 

  장경철을 보라. 그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가치없다. 그에게는 먹고 자고 섹스하는 것만이 전부이다. 놀랍게도 그것만이 전부이며, 다른 존재를 괴롭히고, 착취하고, 죽이는 것이 즐거움이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든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김수현은 그것을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할 수 없다. 장경철이 무엇을 잃어야 김수현이 사랑을 잃은 그 고통만큼의 상실감, 한 여자가 느껴야 했던 신체의 고통, 미래 박탈의 어두움을 채울 수 있을까? 

  없다. 장경철에게 그 정도 가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가 이 세상에 부여한 가치란 없다. 만약 있다 해도 김수현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김수현은 단 한 번도 장경철의 시선에 서본 적이 없다. 그저 그 흉내만 내었을 뿐. 김수현은 장경철의 욕망을 끝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복수란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김수현은 맨 처음부터 진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결말을 보며 정확히 그러한 생각을 했다. 그가 결국 생각한 것의 최대치란 것은 결국 장경철의 가족이 장경철을 죽이게 하는 정도였다. 

  만약 정말 똑같은 복수를 해야 했다면, 장경철의 가족을 장경철 앞에서 죽여야 했던 것 아닐까? 그러나 김수현은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는 니체의 격언도 부족해진다. 심연을 바라보았고, 심연도 그를 바라보았지만, 김수현은 심연 그 자체는 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장경철의 죽음을 장경철의 가족들로 하여금 시행시켰을 뿐이다. 역시,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말이지만, 복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감독이 이것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죽이는 것이 여전히 복수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복수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김수현이 한 짓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다. 김수현이 장경철을 죽이지 않은 덕분에 여러 명의 여자가 살았고, 어쩌고 저쩌고 같은 것은 그저 발생한 결과를 수식으로 붙인 것에 불과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장경철 때문에 김수현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약혼녀를 잔인하게 죽인 그 놈을 붙잡기 이전에는 절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그러한 존재가 지구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그 자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전히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이상, 그는 자신의 복수가 철저히 실패할 것이고, 사랑한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이러한 복수를 성공시킨다 하더라도 영원히 마음에 큰 구멍이 남아 휑한 바람만 불어 우울함과 괴로움 속에서 살게 될 것임을 알았어도 장경철을 잡아서 괴롭히고, 고문하고, 죽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능력만 된다면 김수현처럼 복수를 선택할 것이다. 이 영화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받은 것을 언제나 되돌려주고 싶어한다. 여러 이유로 우리는 보복의 욕망을 참는데, 자신의 안전을 굳이 복수한다는 미명 하에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서거나 혹은 기분은 나빴어도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고통과 쾌락에 분명히 반응하는 살아있는 동물들이지만, 고통과 쾌락에 언제나 격렬히 반응하지는 않는다. 무시할 만한 것들에는 무시한다. 그러나 감각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반응은 격렬해지고, 어떤 것들은 그 흔적이 평생을 가간다. 우리는 그 흔적이 즐거움과 쾌락일 경우에는 추억이라고 부르지만, 고통일 경우에는 영원한 보상과 벌충을 필요로 하는 악몽이라 부른다. 

  사실 굳이 살인과 범죄라는 극한 경우를 가정하지 않아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김수현과 같은 상황에 항상 놓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 역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해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한 바대로 피해를 줄 때가 있다. 가끔 어쩔 때 보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장경철의 짐승 같음에 치를 떨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떠한 지점에 치를 떨기도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일들이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면 현실부정이 된다. 그러나 존재가 당위를 앞선다. 그러한 존재들은 분명히 있고, 그러한 경우들도 분명히 있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무서운 이야기말고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애타게 사랑한다고 해도, 그 존재가 꼭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말이다.

  이 세상은 그렇게 불공평하다. 왜 주연처럼 예쁘고 창창한 아가씨가 그런 짐승 같은 놈의 손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야 했는가?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일어난 일이다. 왜 그와 내가 헤어져야 했는가? 왜 그녀는 나를 떠나야 했는가? 내가 그렇게나 잘해줬고, 우리는 정말 즐거웠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일어난 일이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보상받고, 받은 아픔을 되돌려주기를 원한다. 내가 쏟은 만큼 돌려받고, 내가 일한 만큼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 불공평함에 우리는 분노하고 좌절하고 울게 되고, 심지어는 잠도 못 이룬다.

  그래서 아주 재미나게도,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때에 우리에게는 김수현에게 닥친 것처럼 선택권이 생긴다. 이러한 일들을 깔끔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그저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는 부분에 치열하게 그리고 독하게 도전하든지. 김수현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잠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지금 안 하면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고, 영원히 후회할 것 같고, 마음 속에 천불이 일어나 이 천불로 인해 내가 죽을 것 같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선택에 의미가 생겨난다. 그리고 가치도 생겨난다. 게다가 아주 드문 경우지만 심지어 생각지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에, 김수현의 경우에는 기적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결말은 눈물 뿐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의 결말처럼, "수현 씨는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 사실 기적 없고, 아무 일 없이 예상했던 수순으로 흘러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하지만 어쨌든 천불에 의해 집어삼켜졌고, 괴로워졌을지라도 김수현은 이제 잠에 들 수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주연의 가족마저 다치고 죽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이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김수현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은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을 한 것이고, 그렇게 복수의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장경철을 죽였다. 김수현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그렇게 무슨 일이라도 하면 혹여 누가 아는가? 저 멀리 저승길에서 오르페우스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자가 산 자로 돌아오는 기적이라도 생길지?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며 이 사회 그리고 세상의 불공평함, 불공정함, 무심함이라는 악마를 본다.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 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도망조차 치지 못한다. 언제나 행위하는 것이 행위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적어도 잠에 들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천에 하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벼랑 끝의 거센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같이 있을 '변화' 혹은 '기적' 혹은, '구원'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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