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스트 앤 본

2014.08.11 23:26

underground 조회 수:2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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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및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주관적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몸은 내 존재의 물질적 근거이다.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부러지거나 잘릴 수 있다는 사실은 그런 연약한 몸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여자주인공 스테파니의 다리는 영화가 시작한지 몇 분 후에 사고로 잘려 나가고, 남자주인공 알리의 손은 영화가 끝날 때쯤 뼈가 부서진다. 몸은 또한 나와 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이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몸을 움직여 행동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살아나간다. 몸의 일부가 손상될 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세계 속에서 살아나가는 방식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스테파니는 두 다리의 종아리 부분을 잃었다. 몸의 일부를 잃는 것은 그 몸에 기능적 손상과 미적 손상을 야기한다. 다리의 일부를 잃음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능을 잃었고 온전한 다리가 갖는 아름다움을 잃었다. 이 영화는 스테파니가 겪은 몸의 기능적 손상과 미적 손상이 알리와의 만남을 통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리의 미덕은 몸의 물리적 손상을 몸의 기능적 손상과 미적 손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리는 스테파니에게 수영하지 않을 거냐고 무신경하게 묻고, 알리의 말에, 그의 수영하는 모습에 자극받은 그녀는 수영을 시도한다. 다리의 물리적 손상에도 불구하고 수영할 수 있음을 알았을 때 스테파니는 잠시나마 자신의 몸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고 후 처음으로 즐거워한다. 그녀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고, 의족의 사용으로 스스로 걷을 수 있게 된다. 스테파니의 몸의 기능적 손상은 점차 회복되어간다.

 

비록 알리의 무신경한 제안으로 시작되었지만 스테파니 자신의 노력으로 회복된 몸의 기능적 손상과는 달리 미적 손상은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 자신을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하는가? 다른 사람이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때, 그 결과 나를 욕망하는 타인의 시선을 느낄 때이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남자들은 스테파니의 철제 의족을 보는 순간 그녀에게 욕망을 느끼지 않고, 그 순간 스테파니는 몸의 물리적 손상뿐만 아니라 미적 손상을 실감한다. 그런데 알리는 수영 후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스테파니의 몸에 눈길을 보낸다. 알리가 스테파니에 대해 갖는 성적 욕망은, 그가 그녀를 매력적인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원초적이고 조작될 수 없는 증거이다. 스테파니는 알리와 함께 있을 때 그의 욕망을 통해 자신을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하고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의 미적 손상은 회복된다.

 

알리를 통해 몸의 기능적 손상과 미적 손상을 회복해 가던 스테파니는 돌고래 조련사로 일하던 옛 직장을 방문하여 동료들과 돌고래를 만난다.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몸의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박탈되는 것이 아니었고, 돌고래와 대화하는 것 역시 몸의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그녀가 잃은 것은 오로지 무릎 아래 종아리라는 물리적인 것으로 최소화된다. 의족을 사용하여 스테파니는 몸의 기능을 회복해 나갔고, 그것은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축소되었던 그녀의 몸의 공간을 확장시켰다. 물리적 소유 혹은 결여는 있고 없음의 문제이지만, 기능적 소유 혹은 결여는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의 가능성의 문제이다. 가능성의 영역은 언제나 확장될 수 있다. 그녀는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고 더욱 더 잘 할 수 있었다.

 

스테파니가 몸의 기능적 손상과 미적 손상을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알리는 몸의 기능에 온전히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의 불안한 삶을 보여준다. 튼튼한 몸뚱이가 전 재산인 알리는 도박 킥복싱 경기에서 그의 몸이 상대방을 때려눕힐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갖고 있음을 보임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한다. 때로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 때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맞붙게 되는 그 세계에서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는 몸뚱이 하나에 가치가 매겨지는 그의 존재는 불안하고 위태롭다.

 

알리가 싸움을 할 때 스테파니는 차 안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그녀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했을 때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느끼기 시작하고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몸의 기능적 회복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감으로써, 그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알리의 삶의 방식을. 그러나 몸의 기능적인 확장에도 한계는 있다. 몸의 기능적 확장을 향해 무모하게 나아갈 때 그는 언젠가 몸의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고 그때 그의 몸은 손상될 것이다. 알리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의 몸이 갖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고 그때 그의 몸은 손상될 수밖에 없음을 스테파니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에 의미를 준 것,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확장시키려는 욕망,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알리의 삶의 방식을 스테파니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알리가 스테파니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할 때 그는 자신의 몸의 한계를 경험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들이 얼음이 언 호수에 빠졌고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는 맨주먹으로 얼음을 깨야 했다. 그는 손을 다쳤고 병원에 데려간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때 그는 스테파니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존재의 가치는 전적으로 그의 몸뚱이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알리는 알게 된 것이다. 이 세계 속에서 그의 몸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 또한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던 그녀, 킥복싱 경기에서 그의 몸이 부서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줬던 그녀, 지금 그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똑같이 느꼈을 그녀를 떠올리며 알리는 깨닫는다. 그녀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그의 몸과 그의 불안한 삶을 그녀가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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