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4.01.25 12:23

menaceT 조회 수: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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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cerclerouge/40203408121

 

そして父になる (2013)

 

12월 23일, CGV 신촌아트레온.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가 취약한 부분만 골라서 노린 듯한 영화였다. 진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의 역할, 그와 아들의 관계, 그들이 속한 가정에 대한 고민을 신파조가 아닌 담담한 어조로 유의미하게 풀어내는 영화라면, 나는 십중팔구 그 영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들어갈 때부터 나름 기대하는 바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보는 내내 질질 짜고는 매우 만족스럽게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사실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시작부터 명확하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길을 유독 더 쉽게 가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영화가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작위적으로 두 가정과 그 안의 가장의 성격을 대비시킨 채 이야기를 진행시킴으로써, 절제가 돋보여 일견 현실적인 듯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결코 현실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불쾌해 했다. 다 맞는 말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빨대와 사진 찍는 포즈 등 관계를 강조하는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조금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분명 그런 점들은 결함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는 연출의 묘를 발휘해 이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 위에서도 끝끝내 이를 '현실'처럼 믿게 만들고 그 안의 메시지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관객을 능수능란하게 설득해 낸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신파조로 좀체 빠지지 않는다. 당연히 극중 인물이 눈물을 흘려 마땅할 것 같은 순간에조차 영화는 그 눈물의 순간을 축소시켜 버리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 '눈물'을 전시하지 않고서도 인물들의 감정의 결을 전달하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자신이 먼저 울어 제끼지 않고서도, 보는 이에게 울으라 강요하지 않고서도 보는 이를 이토록 울릴 수 있는 건, 보통 재간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고레에다는 영화에서 그려내고자 한 '진정한 아버지 상'을 영화적 언어로 구현해 내고 있기도 하다.

 

  케이타네 가족과 류세이네 가족이 만나기 전까지, 영화는 케이타네 가족만을 따라서 진행된다. 이때 영화를 지배하는 운동은 (프레임 내에서의) '수직적 운동'이다. 케이타를 비롯한 아이들이 비닐 봉지에 바람을 불어넣어 통통 튕기며 놀때, 비닐봉지 풍선들은 계속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 놀이가 끝나고 나면 케이타 가족은 다같이 모여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케이타의 아버지인 료타가 출근을 할 땐 부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케이타와 류세이를 둘러싼 진실을 듣기 위해 병원으로 향할 땐, 마름모꼴로 아득히 뻗어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숏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류세이네 집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영화를 장악하던 '수직적 운동'이 조금씩 '수평적 운동'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로 케이타네 가족이 차를 타고 류세이네 집으로 가서 케이타를 내려주고 류세이를 태운 뒤 돌아오는 과정에서의, 두 번의 수평적 이동 숏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포일러)

 

  이러한 수직적 이동과 수평적 이동의 대비는 케이타네 가족과 류세이네 가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아버지 료타와 유다이가 가정 안에서 아들을 대하는 자세의 대비를 영화가 서로 다른 프레이밍을 통해 보여줄 때 더욱 부각된다. 영화는 아이의 시점을 표현하려는 듯 주로 낮은 시점을 취하고 있는데, 이 낮은 시점에서 영화가 프레이밍을 시도할 때 료타의 공간 안에서는 이 프레이밍이 주로 시선의 수직적 교차를 담고 있는 반면, 유다이의 공간 안에서는 이 프레이밍이 주로 시선의 수평적 교차를 담고 있다는 데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가 료타와 케이타를 한 프레임 안에 잡을 때 료타의 눈은 거의 매번 프레임의 중상부에 위치한 채 케이타를 '내려다 보고' 있고, 케이타는 프레임의 중하부에서 료타를 '올려다 본다'. 극중에서 료타의 장모는 케이타네 가족이 머무는 고급 아파트가 마치 호텔 같다며 불편하다 말하고, 후에 그곳을 처음 방문한 유다이 역시 그곳을 호텔에 비유한다. 이처럼 수직적 관계가 지배하고 있는 료타의 가정은 사실상 '집'이 아닌 단순히 숙식의 기능을 하고 있는 '호텔'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케이타네 가정을 보여줄 때에, 영화의 초반을 지배하는 것은 수직적 움직임이고 그 가정을 지배하는 것은 수직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카메라는 수평적 움직임인 패닝을 일삼는다. 카메라가 낮은 시점에 머물러 료타보다는 케이타의 시점을 대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는 케이타가 자신에게 좀 더 가까운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원하고 있음을, 수평적인 시선의 교류를 갈구하고 있음을 카메라가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말한 수직적 움직임과 수직적 관계는 어디까지나 프레임 안에서의 운동과 프레임 안에서 드러나는 관계를 말한다. 카메라 자체가 수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아이의 시점을 대변한다고 볼 때, 수직적 운동와 수직적 관계는 아이의 시점으로서의 카메라에 의해 '발견'되는 것다. 만약 카메라 자체가 수직적으로 움직여 버리기 시작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맥락이 될 것이다.) 이를 대변하듯, 케이타네 가정에서 케이타와 료타가 수평적으로 놓이게 되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순간에, 케이타는 아빠, 엄마와 나란히 누워 그들의 손을 잡은 채 '사이좋은 사람'이라 반복적으로 말하며 무의식 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관을 드러낸다. 그에겐 그와 함께 사이좋게 시간을 보내주는 이들이 가족이고, 그렇기에 그는 더욱 그 사이좋은 사람들과의 사이좋은 시간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족관과 그 갈구는 곧 (그 명칭부터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교환'에 의해 배반당하고 만다.

 

  그렇다면 료타와 대비되는 위치에 선 또 다른 아버지 유다이를 아이들과 함께 등장시킬 때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하는가? 놀이방에서 유다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장면을 보면 그는 종종 바닥에 눕거나 뒹굴곤 하는데,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과 한 프레임 안에 담긴 아이들과 수평적 시선을 유지하게 된다. 케이타와 욕조에서 물을 뿜어가며 놀아줄 때에도 그는 케이타와 한 프레임 안에서 수평적으로 시선을 교차한다. 케이타네 가정 안에서는 의자가 높은 탓인지 의자에 앉은 료타가 그 의자 곁에 서 있는 케이타를 볼 때 자연스럽게 '내려다 보는' 방식으로 시선이 교차하게 되었던 반면, 유다이의 가정에서는 의자에 앉아 전기상회 일을 보는 유다이가 케이타를 바라볼 때조차도 수평적 시선이 유지된다. 심지어 유다이의 아내인 유카리가 케이타에게 윙크를 해 주는 장면 같은 데서도, 영화는 일부러 케이타를 문지방 위에 세우거나 혹은 두 인물을 각각 두 숏으로 분리해 양쪽 모두를 프레임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지속적으로 시선이 수평적으로 교차하게끔 한다. (두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료타는 케이타가 자신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케이타로부터 수직적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는 반면, 유다이는 스스로 몸을 낮추어 가며 아이들과 뒤섞인 채 사진을 찍는다.)

 

  료타는 극중에서 자신이 이상적이라 여겨왔던 아버지 상이 사실은 자신이 그토록 닮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가 하면, 사이키 부부와 싸우고 아내와 다투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되짚고, 결국 가족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유의미하다는 것을(영화는 이런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듯, 유독 어떤 움직임의 과정을 부각하는 이동 숏이나 설정 숏들을 짧지 않게 보여주기도 한다. 류세이가 처음으로 케이타의 집에 오게 되었을 때 케이타의 엄마와 류세이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도, 영화는 암전을 중간중간 삽입함으로써 그들에게 여태껏 부재해 있던 시간을 시각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케이타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생각케 했던 그 성장 환경의 비화조차도 자신의 성장 환경을 닮아 있을 정도로 케이타가 어떤 의미에선 자신을 똑 닮은 아들이었음을 깨달아 가며 진정한 아버지로 차츰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과정은 료타가 '수직'의 공간에서 '수평'의 공간으로 자신의 공간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료타는 류세이와 친해지려는 과정에서 서로 장난감 총을 겨누며 수평적으로 시선을 교환하는가 하면 같이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움으로써 수평적인 관계를 시도한다. 한 편, 료타는 뒤늦게 케이타가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료타가 잠들어 있을 때 케이타가 료타를 내려다 보며 찍은 사진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에서 프레임은 곧 아이의 시선과 동일시된다.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수직적 관계들은 모두 아이가 생활 속에서 무의식 중에 감지하는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관계인 셈이다. 이 영화의 프레임이 그렇게 그 자체로 아이의 눈을 대변하며 실제 가정 속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담지해 보인다면, 영화 속의 또 다른 프레임, 즉, 케이타가 들고 사진을 찍을 때 케이타가 자신의 의도대로 지정하게 되는 그 디지털 카메라의 프레임은 케이타가 진정으로 염원하는 관계를 담지해 보여준다. 즉, 케이타가 찍은 잠든 아버지 사진들은 케이타가 자신과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아버지에 섭섭함을 느껴 왔음을 보여주는 증표인 동시에, 그간 료타가 케이타에게 취해 온 수직적인 관계를 디지털 카메라의 프레임 내에서라도 정반대로 전복시켜 버림으로써 그 수직적 관계 자체를 무화시키고자 한 일종의 발악의 흔적이기도 하다. 케이타가 진정 원하는 아버지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는 사이좋은 사람이다. 료타는 이를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료타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피보다는 시간에 있음을 느끼고 진정한 아버지 상을 깨달은 뒤 케이타와 화해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케이타가 더 높이 올라가는 갈림길을 걷게 되고 료타가 더 낮게 내려가는 갈림길을 걷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케이타가 걷는 길 쪽에서 료타를 내려다 보는 시점의 숏과, 료타가 걷는 길 쪽에서 케이타를 올려다 보는 시점의 숏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 케이타가 디지털 카메라로 시도했던 수직적 관계의 전복이 비로소 료타의 자발적 시도를 통해 실제로 구현되는 시점이다. 자신의 아들 케이타를 처음으로 '올려다 봄'으로써 자신이 그간 취해 온 수직적 관계를 모두 청산해 낸 료타는, 마침내 두 길이 다시 맞닿는 지점에서 뜨겁게 아들을 껴안는다. 그렇게 화해한 부자가 다른 이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 그 두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사이키 가족의 공간인 전기상회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집'이라기엔 '호텔'에 가까웠던, 수직적 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 기존의 료타의 공간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 유다이의 공간 안으로 두 가족 모두가 들어선다는 점에서, 이제 케이타네 가족과 류세이네 가족은 비로소 모두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되었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 중심에 서서 변화해 가는 주체는 아버지 료타이지만, 이를 영화로 구현해 내는 프레임은 아들 케이타의 눈을 대변하고 있다. 료타가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그와 닮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자신의 나름대로 이상적인 아버지 상을 세워 갔던 것과 같이(그러나 그 이상적인 아버지 상은 결국 료타의 아버지가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였음을 료타는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료타가 그간 잘못되어 있던 자신의 아버지 상을 재구축해 가는 과정의 기록인 동시에 그를 지켜보며 자신의 아버지 상을 구축해 가는 케이타의 시선의 기록이기도 하다. 즉, 료타가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게 되는 변화는 단지 그 하나만의 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프레임, 케이타의 시선을 타고 대물림되어 갈 장기적인 변화의 시작인 셈이다. 아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끔찍한 '교환'을 시도했던 아버지는 그렇게 진정한 아버지가 되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즈음 훈훈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는 이 가족, 그리고 그들을 아버지로 보고 자랄 또 다른 아이들, 다시 그 아이들에게로 이어져 갈 더욱 밝은 미래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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