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2014)

2014.08.17 22:53

쾌변 조회 수: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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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을 보았다. 처음에는 굳이 극장에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천만 관객 기록을 단숨에 깨면서명량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등장시킨 영화라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예매를 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좌석은 2/3쯤 찼고 관객 가운데 반은 중년으로 보였다. 옆 좌석의 관객도 중년 부부였다. 중년의 관객 가운데에서 영화를 보는 건 드문 경험이었다기대가 없었으니 큰 실망도 없었다. 이순신 역을 한 최민식이 아니라 최민식 같은 이순신만 보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음악은 시종 거슬렸다. 다들 좋게 말해 주는 해전 장면 . . .  달리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없다. 이제 우리 영화도 해전 씬을 웬만큼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도 영화를 통틀어 별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사방에 이 영화의 관객 동원 기록을 분석하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참된 지도자에 대한 열망과 최근 군사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며칠 전 진중권 교수가 트위터에 이 영화를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글을 남긴 뒤 논란이 일었다. 천만 국민과 대통령까지 본 영화를 한 마디로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건 오만한 엘리트 의식 아니냐는 식으로 나무라는 신문 칼럼까지 나왔다. 진 교수 말마따나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그런 현상 자체가 하나의 신드롬이라 여겨질 지경이다.

 

신드롬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별로 없다. 다만 계속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라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의 소감만 한두 가지 간단히 적어 두고자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굳어 있는 표정의 최민식 한 사람만 있다

 

영화는 명량 해전이라는 사건을 다룬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해상 전투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비대칭 전력과 맞선 과정과 그 극적 결과는 그 자체로서 서사시적 요소를 충분히 갖춘 소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해전 자체보다 그 해전의 승리자인 이순신의 위대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목은명량이라 붙었지만 내용은 이순신을 이야기하는 영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일까?

 

전쟁 영화에는 보통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지휘관과 장교와 병졸이 등장하여 서로 다른 개성으로 부딪히고 어울리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싸운다. 이런 영화에서는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도 중요하다. 그런데 [명량]에서는 기억나는 조연이 없다. 이순신을 제외한 인물들은 다 흐릿하다. 배설이라는 장수와 이순신의 아들 이회가 몇 장면에 등장하고, 두세 명의 왜장이 등장하지만 그들 역시 배경에만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 사람을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다 블러 처리한 느낌?

 

한 인물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되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와 대립하는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다. 전쟁이 배경인 영화에서는 보통 불화하는 자기 편의 장교나 지략이 뛰어난 적장이 이 역을 맡는다. 혹 배설이라는 인물이 그 역할을 맡나 했으나 그의 존재감은 끝까지 미미했다. 그의 상관 암살 시도는 극적 긴장을 유발하지 못하고 해프닝처럼 처리되고 만다. 왜장들과의 지략 대결도 팽팽하지 않다. 왜장들은 의상만 요란하다. 만만찮은 적수로서 기대되었던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이렇다 할 전술을 보여주지 못한다. 패배를 예감한 뒤 장군의 배에 뛰어든 그는 화살받이가 된 채 이순신에게 달려들었다가 단칼에 죽고 만다.

 

나는 이회가 부친에 대해 양면감정을 가진 아들로 그려지기를 기대했다.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무모해 보이는 결단에 회의하고 불안해하며,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는 아들의 캐릭터로서 말이다. 그는 제대로 된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지지 않았다. 아버지 이순신의 마음을 어쩌다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기 위한 통로로서만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전쟁 영화는 장군의 영화이면서 병사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병사들의 이야기가 없다. 하나같이 무개성의 병사들뿐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사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인물은 탐망꾼 임준영뿐. 그 말고는 아버지를 잃고 장군을 찾아와 대장선에 태워 달라는 소년 하나가 겨우 기억될 정도이다. 영화는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 삶의 내력이나 전쟁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결국 이순신 한 사람으로 이순신을 그리려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굳은 표정의 최민식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이따금 내비쳐지는 불안한 표정의 순간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줄곧 중요하게 내세워지는 것은 자신의 판단에 결코 흔들림이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이다. 나머지는 고뇌의 표정이 다 말해 주니 관객이 다 알아서 이해하라는 뜻인가. 아들 이회와의 대화가 드러내 주는 내면의 내용도 빈약하다. 장군이 말하는 비장한 경구 몇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감독은 왜 장군이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명량]의 이순신이 위대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인물 묘사의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이순신은 어떤 인물일까? 뛰어난 리더십으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한 영웅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영화는 무한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가진 인물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고 본다. 영화 속의 이순신은 모든 여건이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이 지지 않아도 되는 막중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 임금의 교지는 수군을 이끌고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임금과 백성과 나라를 진정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명령을 따르면 백성과 나라를 잃게 된다. 백성과 나라를 잃으면 임금도 없다. 그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맡음으로써 모두를 구한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무한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상적인 지도자였을까? 다시 말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잘 이끌어 나간 사람이었을까? 탈영하였다 붙잡혀 온 병사를 즉결 처형하는 장면이 있다. 병사가 변명을 늘어놓자 장군은하고 싶은 말 다 했느냐?” 하고서 다른 아무 말도 없이 직접 목을 베어 버린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병사들은 충격을 금하지 못한다. 장군의 이러한 징벌은 엄한 군율을 세워 유약해지려는 병사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심문과 재판도 없이 이루어진 그 징벌을 병사들이 합당하게 받아들일까. 적에 대한 공포심을 더 큰 공포심으로 억누르고, 그 공포심으로 통솔하는 지휘관의 전투가 효율적일 수 있을까. 지도자는 큰일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이 무서워 달아났던 탈영병도 그가 구하려 하는 백성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영화 속의 이순신에게는 소통이 없다. 작전을 묻는 장수들에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장군은 병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가 영화 속에서 병사들에게 하는 유일한 말, "죽기를 각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 말은 병사들을 감복시켰을까? 병사들은 그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주는 것은 용기가 아닐 것이다. 병사들은 새로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장수들은 출전할 때까지 그들의 사령관을 믿지 못한다. 장군은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야 아들 이회는 장군에게 어찌 저 울돌목의 회오리를 이용하실 생각을 하셨던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그는 위대한 승리자이긴 하지만 독단적인 지도자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그가 장수들을 설득하거나 병사들을 감복시키는 장면을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다. 병사들은 그들의 지휘관을 신뢰하기보다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뿐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온 장군의 지략과 목숨을 아끼지 않은 그의 솔선수범에 대한 경탄과 고마움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일어난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를 자신의 공포감과 싸워 이겨낸 사람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감독의 의도가 지금 언론이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이 시대에 필요한 위대한 지도자의 상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실패작이라는 것이 나의 소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구하기 위해, 감독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이 영화가 방향을 약간 달리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애초에 내면의 공포심과 싸우는 인물을 그리는 영화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초점을 그쪽에 맞추고 이 영화에서 문제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잘 가공하면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영웅영화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심리영화 한 편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이순신은 백성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적의 막강한 전력에 공포를 느낀다. 그는 자신이 그 공포심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 두려움이 부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엄격한 군율과 필사의 각오를 다짐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공포감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운다. 그는 전투에 승리한다. 그리고 영웅이 된다. 이런 식으로.

 

신비화된 영웅은 현실 속에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그를 향한 열망이 극장에 천만 관객을 끈다 해도 현실에서 그러한 지도자가 태어날 가능성은  꿈으로 남을 뿐이다. 그것이 영화 속 영웅을 소망하는 현상의 아이러니이다. 또 하나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은 신비화된 영웅의 경우, 때로 그의 위대성과 함께 그가 가진 오만과 독단, 공포를 이용한 통치 방법까지도 신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억압적인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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