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교도섬- 나혁진

2014.12.05 19:04

herbart 조회 수:2005

취향이 만들어낸 놀라운 에너지

-순도 100%의 엔터테인먼트, 나혁진의 교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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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취향을 위한, 취향에 의한. 작가 나혁진의 두 번째 작품 교도섬은 취향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진지하게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취향이 만들어낸 놀라운 에너지를 선보이는 이 작품은 분명 한국 장르 소설의 새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앞선 주장에 당신이 어느 정도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작품이 당신이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멀지 않은 근 미래. 한국 정부는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모아 카베사라는 필리핀의 외딴 섬으로 영구 추방해 버린다. 전직 경찰 간부인 장은준은 복수를 위해 범죄를 위증하여 스스로 이 교도섬에 들어간다. 은준의 예상과 달리 <교도섬>은 일종의 자족사회를 형성하여 움직이고 있고, 은준의 복수 상대는 교도섬 지배 세력의 일부가 되어 복수를 어렵게 만든다. 은준은 전직 전문 암살자였던 추응과 도박사 이강생과 합심하여 복수에 나선다.

 

 

 

취향()의 결합이라는 흥미로운 착점에서 출발하지만, 작가는 착점의 지속력을 위해서는 굳건한 세계관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 듯 하다. 나작가가 이 이야기를 떠받드는 교도섬이라는 무대를 탐구해 가는 방식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데, 그는 우선 이 교도섬의 지리적, 물리적 환경을 디테일하게 제시하고, 그 다음에는 섬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씩 덧붙이며 이 존재하지도 않은 공간에 매우 그럴싸한 옷을 입히고 있다. 암중모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 섬의 탐색 과정에 이 교도섬에 들어온 인간들의 욕망과 인간성, 비인간성이 뒤섞이자 교도섬은 말 그대로 살아움직이기 시작한다. 철저히 고립된 섬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가장 활발한 지점이며, 때론 주인공들에게 무자비하게 가혹하면서도 때로는 무한한 자비를 선사하는 땅.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교도섬, 그 자체이다.

 

 

 

이런 교도섬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온갖 취향들을 마음껏 풀어놓는 작가는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다. 감옥 풍운을 위시한 교도소 장르물, 무협 소설, 복수극, 갱스터 물, 본격 추리 소설, 격투기, 홍콩 무술 영화, 사냥 소설 등 모든 남성미 넘치는 취향들이 분명한 자기 자리를 잡아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다양한 취향들의 결합에서 이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결국 갱스터 장르와 무협 소설의 정신인데, 이 두 가지 장르의 태생적인 대척점에는 묘한면이 있다. 현재까지 갱스터 장르의 전통은, 결국 갱스터들의 우정과 의리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허망한가라는 주제로 귀결되고 있다. 배신과 모반이 횡횡하는 갱스터 장르에서 신뢰라는 것은 부도수표로 바뀐지 오래며, 그 고질적인 가족적 이기주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에 무협 소설이라는 것은 어떤가. 여기서는 결국 생면부지의 선한 사람들이 끝까지 의리와 도의를 지켜 승리를 쟁취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싸그리 대중적인 장르 문화라고 일괄도매로 취급당하지만, 엄연히 이 두 장르는 다르다.

 

 

나작가는 이 두 가지 장르에서 한 쪽에서는 미장센만 빌려오며(갱스터물의 구조), 한 쪽에서는 소설의 주제인 의리’(무협물의 주제)를 되살리는 전략을 취한다. 여기서 형님과 가족이라 부르고 불리운 대상들은 모두 몰락하며, 반대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한 은준, 추응, 강생만이 결국에는 살아남는 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매력적인 모순이다.

 

 

 

갱스터물의 뼈대, 무협 소설의 정신이라면, 본격 추리소설은 이 작품의 동력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트릭과 자잘한 추리소설의 장치들이 있다. 첫 번째 트릭은 작품의 배경과 무대의 고유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빼어나다. 반면에 두 번째 중심 트릭은 이 작품 갈무리로는 분명 미흡한 면이 있다. 오히려 추임새같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자잘한 본격 추리소설적인 장치이다. 미세한 관찰이 이루어낸 등장인물의 정체, 도박장의 집단 사기, 배신을 간파하는 추응의 관찰력들은 소소하지만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두 번째 트릭이 미흡한 점, 추응이 지나치게 전지전능하게 그려진다는 점, 그리고 표면적인 위악성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알고 보면 의인이었다는 식의 구성 등 이 소설에 내려지는 합당한 비판은 여기저기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판이 하나있었다. 그건 이 작품에 지나치게 많은 장르가 섞여있어 혼란스럽기 때문에, 그냥 한 가지 장르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퓨전이라는 말이 구태의연한 표현이 된 지금, 여러 장르의 요소만 모아 얼기설기 붙이는 광경은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여러 요소들을 모아놓았던 작품이 장르에 대한 통찰과 이해 없이 막무가내로 이어붙이기를 반복하는 조작을 횡행한 반면, 교도섬에 나작가는 자신의 취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실한 접근법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장르의 형식이 완결성을 내보이는 이 작품은 조작이 아니라 통제.

 

 

 

오히려 이 소설을 만나는 충격은 옛날 세르지오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처음 선보였을 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정체 불명의 갱스터 물을 들고 나왔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가까워 보인다.

 

 

 

모든 장르적 취향이 결합하여, 거침없는 박력을 끝까지 밀어 붙이는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순도 100%의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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