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13

2014.12.13 22:15

곽재식 조회 수:1975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대표작으로 꼽는 소설 중에 "813"이 포함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813"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보자면, 아르센 뤼팽이 살인범으로 몰리게 되자 진범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막대한 유산을 둘러싼 수수께끼에 휘말리게 되고, 그걸 파헤치다 보니 국제적인 음모에도 연결되어서, 여러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소개 되는 가운데 뤼팽이 모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813이라는 것은 수수께끼를 풀고 유산을 손에 넘을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다는 암호 숫자입니다.

이 책은 범죄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모험을 다루면서, 숨겨진 사실이 “너는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비밀이야!”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계속 궁금하게 만들면서 이어지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많이 쓰는 형태라서,100년전 소설에 이런 것들이 잘 갖춰진 면이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정말 뤼팽 시리즈의 대표작, 걸작으로 꼽아 보기에는 약간은 모자란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 책의 명망이나 방대한 분량을 생각하면 더 아쉬웠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본래 2부작으로 나위어 있었던 각 부분부분의 결말 반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크게 두 가지 반전이 나오는데, 하나는 뤼팽쪽의 반전이고 다른 하나는 악당쪽의 반전입니다. 둘 다 충격적인 반전을 하나 터뜨려야겠는데... 싶어서 확 터뜨려버린 느낌으로, 보면 약간 신기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 반전이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한다든가 복선과 잘 이어져서 기막힌 느낌을 준다든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반전 덕분에 앞뒤 상황이 더 박진감있게 변하게 되었다든가한 것도 아니라, 그저 “범죄물이라면 의외의 반전 하나는 있어야 끝이 좀 덜 허하지” 싶어서 확 때려 넣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꽤 긴 분량을 써서 여러 국면을 다루는 이야기면서도, 깊게 이야기에 빠져 들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뤼팽하면 생각할만한 “범죄의 천재”라는 감흥이 잘 살아나는 대목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뤼팽 같이 도둑이지만 멋부리는 괴상한 인물다운 면이 적고, 오히려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의리있고 용감한 정의의 영웅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또 다른 것으로는, 그야말로 할리우드 영화처럼 “과거를 지우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정체성을 바꾼 사람” 으로 다시 태어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아까웠습니다. 이 인물은 등장이 그럴듯해서, 어떻게 될까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실망스럽게도 사건의 중심에서 대활약할 것처럼 분량을 많이 들여 등장한 것에 비해서는 이 인물의 활약도 무척 적고 맥없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어서 아쉬웠습니다.

장점을 찾아 보자면, 뤼팽이 잡히기도 하고 죽을 뻔하기도 하고 탈출하기도 하고 출생의 비밀도 나오고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것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기 때문에 한 도막 한 도막 따라가면서 읽어 가는데 큰 힘 안들이고 부드럽게 줄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일단 생각 납니다. 그래도 전체 분량이 길고 줄거리에 뜸을 들이는 부분이 몇 있기 때문에 약간씩 속도가 떨어질 때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외에는, 이 이야기에서 드러날 “어마어마한 비밀”이라는 것이 굉장히 19세기 유럽 사회에 걸맞는 형태라 지금 보면 예스러운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아주 살떨리는 거대한 비밀처럼 묘사하는 내용입니다만, 지금 비슷한 비밀이 드러나 봐야 얼마나 가볍게 다뤄질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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