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픽스/ 사령 The Asphyx


영국-미국, 1972.   ☆☆☆★


A Glendale Film Production. 1 시간 23(극장공개판), 1시간 35(수출판). Filmed in TODD AO-35, 화면비 2.35: 1


Director: Peter Newbrook

Screenplay: Brian Comport

Story by: Christina & Laurence Beers

Music: Bill McGuffie

Cinematography: Freddie Young

Editor: Maxine Julius

Producer: John Brittany

Makeup: Jimmy Evans

Set Decoration: Arthur Taksen

Special Effects: Ted Samuels


Cast: Robert Powell (자일스), Robert Stephens (휴고 커닝햄), Jane Lapotaire (크리스틴 커닝햄), Alex Scott (에드워드 바레트), Ralph Arliss (클라이브 커닝햄), Fiona Lewis (앤 위틀리), Terry Scully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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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픽스' 라는 표현은 현대 영어에서는 'death by asphyxiation' 라고 할때의 '질식' 이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지만 원래는 그리스어로 '맥박이 멈춘 상태' 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려가는 asphyx 라는 이름의 저승사자 귀신이 원래 존재하는 것처럼 구라를 늘어놓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그런 그리스 전설은 없고, 처음부터 각본가 팀이 창작한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어스픽스] 는 요즈음 유행하는 일본식 호러물의 분류법을 쓰자면 '심령사진' 에 관한 영화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사진 기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때 사진기에 찍히면 찍힌 사람의 영혼이 사진기의 건판이나 사진에 흡수당한다던지 그런 류의 미신적인 사고방식이 적지 않게 떠돌았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러한 민속적 믿음에 마치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처럼 설정을 해놓고 있죠.


휴고 커닝햄 경은 교수형에 반대하고 빈민 구제에 관심이 많은 빅토리아조 시대의 좌파적 자유주의자인데, 사진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쪽으로도 꽤 유명한 명사입니다. 그는 아들 클라이브와 딸 크리스티나, 그리고 양아들 겸 조수 겸 데릴사위 후보자인 자일스로 구성된 가족에 두번째 아내 엘레나를 소개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행하게도 그의 맨션에서 뱃놀이를 하던 엘레나와 아들 클라이브가 익사한다는 끔직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의 순간을 우연히 잡아낸 손으로 돌리는 영상기의 필름에 거무스름한 연기 비슷한것이 포착됩니다. 다른 사진사들이 죽음의 순간들을 찍어낸 사진들에도 연기 같은 것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휴고 경은 강박적으로 이 연기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플래쉬 대신에 청백색의 광선을 피사체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 특수 카메라를 개발합니다. 그런데 휴고 경은 놀랍게도 이 청백색 광선이 이 연기 같은 실체의 흉칙한 진짜 모습 (특수효과상으로는 상당히 어설프지만) 을 폭로할 뿐 아니라, 그 영체를 사진에 흡수하듯이 한 곳에 붙박혀 있도록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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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어스픽스] 의 설정은 그냥 'SF 가 아니다' 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에쿠 이게 웬 괴작이냐' 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만, 이 검은 연기 비슷한 것은 여러분들 중 어떤 분들이 미루어 짐작하시듯이 죽는 순간에 사람의 몸을 떠나는 영혼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지러 오는 저승사자 같은 역할을 하는 추악하게 생긴 영체의 일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기가 각본에서 불분명한 부분입니다. 어스픽스는 도대체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뭘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영혼을 먹고 사는 걸까요? 각본에서 주어지는 단서로 볼때는 각 개인마다-- 심지어는 랩 마우스까지도-- 고유한 어스픽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설정인 모양인데, 혹시 우리가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기간동안 우리의 완전한 실존에서 깨져 흐트러진 영적 파편 같은 것인지도 모르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스픽스라는 존재가 어딘가에서 무한고통을 받으면서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라는 휴고 경이 아무 근거도 없이 설파하는 이론이 이런 가설을 어느정도 뒷받침해주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청백색 광선을 쓰는 카메라가 이 어스픽스를 꼼짝 못하게 포착할 수 있으니 이 카메라를 이용해서 어스픽스를 고정시킨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영혼을 가지러 오는 이가 없다... 즉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일스의 극중 대사가 아니더라도, “이건 과학이 아니잖습니까! 이 소위 말하는 실험을 그만두세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죠. 아무리 고전 호러영화식 설정이라 하더라도 무리가 너무 많습니다. 어스픽스를 잡아 놨는데 폭탄이 터진다든지 해서 몸이 완전 다 파괴되는 형태로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몇 조각 안되는 육체의 파편이 꿈틀거리면서 '살아' 있게 되는건가? 구공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뇌사상태에 빠지면? 그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슬금슬금 머리를 드는데, 거기다가 또 평안하게 잠자듯이 죽으면 어스픽스가 닥쳐오는 순간을 포착할 수 없으므로 될 수 있으면 죽음의 고통의 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자살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정이 더해져서, 인체 손상의 고어 묘사만 없을 따름이지 개념적으로는 [쏘우] 시리즈에 전혀 떨어지지 않는 고강도의 고문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그 와중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유산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길로틴에 목이 날아가고... 난리도 아닙니다.


고급 빅토리아조 멜로드라마로 나가는 플롯 (유려하게 로맨틱한 음악과 더불어) 에 갑자기 이런 불교적 오뇌의 형상화를 연상시키는 괴이하고 과격한 그랭 귀뇰 장면들이 벌어지니, 해머 영화들 등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진땀이 흐르는 찝찝한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이 독특한 분위기는 사실 웬만한 호러영화에서는 좀체로 보기 힘든 것이어서 이 작품의 명성을 떨치는 데 큰 요인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요즘 일부 관객들처럼 영화외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플롯의 개연성 등을 영화 시작하자 마자 따지고 들어오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전혀 즐길 수가 없는 영화라는 것이죠. 황당하다는 느낌만 강하게 드는데, 연기자들이나 감독이나 너무나 성실하고 진지한 연극적 연기를 벌이면서 장난은 커녕 유머감각도 기대할 수가 없으니, 그런 분들께서는 보시고 계시노라면 벽을 타고 천장으로 기어오르고 싶으신 심정일 겁니다.


그래도 웬만한 흡혈귀영화 정도는 정말 쨉도 안되는 강도와 집요함으로 '불사' 라는 인류 최고의 목적 중 하나를 쫓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해 줄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설정의 말이 안되는 정도는 보통을 한참 넘어서 특-회덮밥에 메추리알 얹혀서 나오는 수준의 특수함이긴 합니다만, 아무리 각본을 비웃어도 보고 나서 찝찝한 생각을 떨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되는 점이야 한 다스 찍어낼 수 있지만 아름다운 화면빨과 거의 병적으로 집요하게 이슈를 붙잡고 늘어지는 지극히 비타협적인 각본이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정신을 포착해가지고 놔주질 않으니 양심상 이 작품의 파워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자렛 예수] 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출연했던 로버트 파웰이 관객입장의 대변인 역이지만 휴고 경을 연기하는 로버트 스티븐스의 호연이 강력합니다. 이 휴고 경은 요즘 한국에 살았더라면 단연 희망버스도 지지하고 경찰 과잉진압 사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고 뭐 그랬을 것 같은 착한 분인데 그런 착한 사람의 맹점이랄까,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폐해가 아예 썩어빠진 나쁜놈이 불러 일으키는 해악보다 더 클수도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잘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징벌의 처참하고도 불쌍한 결과를 현대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에필로그는 좀 허술하긴 하지만 스티븐스의 연기가 알맞은 수준에서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고전 호러영화의 팬들이시라면 한번은 보실 가치가 있는 역작입니다. 엄청 재미없으실 분도 계실거라는 전제하에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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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븨디 구매를 고려하시는 분들께서는 암탉의 이빨 (진짜 레벨 이름이 이렇슴) 회사에서 내놓은 미국제 1번코드 디븨디는 가급적 피하시고 영국 오데온에서 작년에 출시된 두장짜리 2번코드 판본을 추천드립니다. 아나몰픽으로 풀어지지 않았던 1번 판본보다 월등히 우수한 2.35 1 와이드스크린에 리마스터가 된 버젼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도 잡티하나 없이 조명과 구도에 프레디 영 ([아라비아의 로렌스] 의 촬영감독) 이 기울인 세심한 배려를 정당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완전히 딴 영화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그런데 오데온에서 디븨디 카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스페셜 에디션' 이라고 부르기에는 서플은 초라합니다. '피처레트' 라고 써있는 것은 옛날에 크라이테리언에서 해주던 복원 전과 복원 후 비교영상이고요. 영화의 내용이라던가 프로덕션 히스토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의해서 읽으시면 '수출판' 이 오히려 런닝타임이 길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영국) 극장공개판이 거의 12분 가까이 짧은데, 이경우는 수출판에서 주로 대사와 캐릭터 묘사의 일부를 잘라냈더군요. 큰 차이는 없고 메이져한 장면들은 다 극장공개판에 남아 있습니다. 수출판 즉 미국 버젼 중 극장공개판 즉 영국판에 없는 장면들은 질이 훨씬 떨어지는 원재료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금방 구분이 갑니다. 그래도 영화가 영화니만큼 이정도로 깨끗하게 닦아서 내준 것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므로 디븨디 점수는 미 () 를 주겠습니다.


사족: 2009년에 앨리슨 두디 ([인디아나 존스와 성배]) 주연으로 리메이크 만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엎어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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