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버스 Grabbers <부천영화제>

2012.07.23 14:34

Q 조회 수:5890

그래버스 Grabbers

 

아일랜드-영국, 2012.    ☆☆☆

 

A Forward Films/High Treason/Irish Film Board/Nvizible/Samson Films Co-Production. 화면비 2.35:1, 1시간 34분

Directed by: Jon Wright

Screenplay: Kevin Lahane

Music: Christopher Hanson

Special Effects: Shaune Harrison, Nvizible

CAST: Richard Coyle (오셰이 경관), Ruth Bradley (리사 놀런 경관), Russell Tovey, (스미스 박사), Lalor Roddy (패디)

 

 

 

예 부천영화제에 왔습니다. 수술을 네번이나 하고 여전히 또 병원에 가서 뭔가를 잘라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천영화제와는 여전히 인연이 닿아서 꼭 오게 되는 군요. 한 사흘 정도는 아예 부천에 오지도 않을 건데 막상 영화를 보는 편 수는 줄지 않았어요. 각종 행사를 스케줄에서 빼버리니까 오히려 영화를 볼 시간은 늘어난다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부천에서 씨네21이 내놓는 데일리 읽으시는 분들은 맨 마지막에 달랑 두페이지 실린 영어 섹션을 읽어보시면 저와 우리 팀이 쓴 리뷰나 그런 것들이 실려있습니다. 이상 CF 였습니다.

 

요번 부천에서 본 영화 제 1호 [그래버스] 올립니다. [그래버스] 는 아일랜드 어촌판 [트레머스] (한국에는 [불가사리] 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지 않았었나?) 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에린 아일랜드라는 한지의 외딴섬 근해에 별똥별을 타고 도착해서 어부들을 먼저 잡아먹고 섬에 상륙합니다. 이 우주괴물은 수생생물이라서 물이 있어야지만 서식이 가능한데 때마침 태풍이 몰려와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뭍으로 기어나오죠. 주정뱅이 노인네 패디가 “생포” 해서 욕조에다 받아놓은 암놈 괴물을 찾아서 거대한 숫놈 괴물이 쏘다니는 와중에, 불행한 과거를 잊느라고 알콜중독이 다 된 오셰이 경관이 본토에서 파견된 대쪽같은 성격의 (인 것처럼 겉은 행동하는) 놀런 경관과 티격태격 하면서 진상에 접근합니다.

 

[그래버스] 는 아일랜드사람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거의 민족차별적인 스테레오타이프 중 하나인 “술 잘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놈들” 이라는 “문화적 특색” 을 쪽팔리는 기색도 없이 그냥 괴물영화의 설정으로 천연덕스럽게 이용해 먹습니다. 이 괴물이 글쎄 우주 공간을 날라서 지구에 와서 유전자를 포함한 기본 화학적 구조가 다른 생물들을 우적우적 잡아먹는 수퍼 생명체인 주제에, 알코올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알코올 농도가 어떤 수준을 넘어서는 혈액을 먹게 되면 우웩 하고 토하고 뻗어버린다는 웃기지도 않는 설정인 겁니다. 자 이러니 괴물한테 잡혀먹지 않으려면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면 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하이고... 이 영화 기획할때 약주 얼마나 드시고 하셨어요 라고 질문하고 싶어지는 상황이죠. 난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알콜농도가 높으면 안잡아먹는다는 설정일까. 그게 아니고 패디가 만든 밀주에 들어있는 특이한 성분이거나 뭐 그런 다른 요소겠지” 라고 지레 짐작을 하고 봤는데 아니더군요. 진짜로 고주망태면 안 잡혀 먹힙니다. OTL... ;;;;  물론 안 잡혀 먹는다는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걸로밖에는 안보이는 설정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고 보자면 영화는 토속적인 매력과 매끈한 기술적 성취도가 적절히 결합되어 있는 괜찮은 상업작품입니다. 주연 연기자들도 곧잘 하고요. 황당하거나 허리에서 힘이 빠지는 OTL 설정의 영화들을 다룰 때에는 영어권 유럽의 연기자들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상황에 대해 “이건 대놓고 농담으로 만든 거지? 그러니까 나도 웃기는 연기 좀 해도 되는거지?” 라는 식의 깨는 접근법을 하지 않거든요. 이거는 연기의 테크니칼한 실력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태도의 문제죠.  같은 영어권이라도 미국 영화에서는 이런 “시치미 떼는 진지함” 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농담은 하는 사람들은 사못 진지하게 해야지, 또는 같이 웃자고 열린 태도로 해야지 웃기지, “농담인데 뭐 어때, 아무렇게나 하면”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죠.

 

개인적으로는 “과학자” 스미스 박사가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기기 일보직전에다가, 입을 쩍 벌리고 쳐들어오는 괴물에 대처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신의 안부를 무시하고 직업 의식을 발휘하는 그런 "본인은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영 아닌" 상황을 젊은 배우 러셀 토비가 잘 묘사해주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의 매력은 1급 헐리웃 영화에서는 좀체로 느끼기 힘들고 딱 이런 저예산 괴물영화에서나 제대로 맛볼 수 있죠.

 

 

괴물의 디자인 그런 요소도 저예산인깐에는 괜찮습니다. 물론 CGI 이긴 한데 디자인 보다도-- 디자인은 사실 리메이크판 [더 씽] 에 나오는 우주생물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하는 짓거리가 더 좋습니다. 경찰차의 사이렌이 왱왱거리자 뭐야 이거 하고 물러났다가 쾅쾅하고 주둥이로 박아서 깨뜨리는 행태 같은 거요. 아마도 제작비는 몇 배 이상 더 들이고 특수효과도 더 세련되었을 [다크 아워] 의 에너지 괴물보다 훨씬 그럴듯합니다. 어깨 힘 빼고 즐기면서 보시기에는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무섭지는 않은데... 괴물들은 오히려 귀여워요.

 

근데 러브크래프트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바다에서 기어오는 불가사리/말미잘 계통의 촉수 달린 괴물 얘기를 하시려면 존 윈덤의 [크라켄 깨어나다] 정도를 언급하신다면 또 모를까... 요즘 괜히 러선생께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데 심기 불편합니다.

 

사족: 찍찍거리는 새끼 괴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레믈린] 을 연상시킵니다. 얘네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일이 다 잡아죽인 것 같지도 않고.

 

사족 2: 배경에 잡힌 두네갈인가 하는 아일랜드 지방의 풍광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레드 원 카메라로 찍었다는데 거의 관광영화 수준입니다.

 

사족 3: 아일랜드에서는 경찰을 “가르드” 라고 셀틱어로 부르는 걸 이 괴물영화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에 바탕을 둔 한자어를 일부러 안 쓰고 “우리말” 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다른 문화권에 대한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 디테일한 일상 생활적 지식들은 저는 “예술 영화” 를 보고 배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괴물영화를 보고 배웠으면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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