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노 Inferno

 

INFERNO-%20ROSE%20DECAPITATED.jpg


이탈리아, 1980.     


A Produzioni Intersound 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47분


Directed by: Dario Argento

Screenplay: Dario Argento, Daria Nicolodi

Cinematography: Romano Albani

Editing: Franco Fraticelli

Special Effects: Mario Bava

Assistant Director: Lamberto Bava

Music: Keith Emerson


CAST: Leigh McCloskey (마크), Irene Miracle (로즈), Eleanora Giorgi (사라), Daria Nicolodi (엘리제 반 알더), Alida Vali (캐롤), Sacha Pitoeff (카자니안), Veronica Lazar (간호부), Feodor Chaliapin Jr. (아놀드 박사/바렐리), Ania Pieroni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젊은 미녀) Gabriele Lavia (카를로)


[인페르노] 는 다리아 니콜로디 연기자-각본가가 구상한“세명의 마녀”3부작의 두번째 작품에 해당된다. 첫번째 작품은 세명의 마녀 중 독일에 거주하는“한숨의 어머니 (Mater Suspiriorum)”가 운영하는 발레스쿨에 덜컥 다니게 된 미국인 소녀의 혼비백산 경험을 그린 [서스페리아] 였고, 아르젠토는 거의 20년이 지난 연후에 로마를 본거지로 하는“눈물의 어머니 (Mater Lachrymarum)” 를 주된 악역으로 내세운 [눈물의 어머니] 를 감독했는데, [서스페리아] 에서는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세 마녀들에 관한 설정을 대폭 확장-정리하여 내놓은 1980년도 작품이 바로 본편 [인페르노] 다. 팬들한테는 헷갈리게도 [서스페리아] 와 [눈물의 어머니] 에 비하면 본편의 내용과 관계가 없는-- “화염지옥”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클라이막스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어거지로 연관성을 만드려면 그렇게 할 수 있긴 하지만-- [인페르노] 라는 제목이 달려있는데, 세 마녀 중 “가장 포스가 쎈” 뉴욕시의 “어두움의 어머니 (Mater Tenebrarum)” 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일단 내용이다 (바로 이 다음에 만든 한편이 주역에 미국 배우들을 기용해서 찍은 [테네브레 Tenebrae, 1982] 인데, 내용을 고려하자면 Tenebrae 가 본편의 타이틀이 되었어야 적합하다).


특별한 골동품 가게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명품 기화 (奇貨)-– 크리스탈로 정교하게 만든 해골이라던지, 특이한 환각 작용을 가져다주는 만화경이라던지 그런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동시에, 또한 괴이하고 흉칙한 물건들-- 가 소유자에게 가져다주는 괴팍한 즐거움을 영화 감상을 통해 맛보시려면, 바로 [인페르노] 를 보시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편이 범용한 호러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가뿐히 넘어서버린 일종의 초월적인 한편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문제는, 이 한편을 보고 실제로“재미”를 느끼거나 최소한 얼이 빠진 상태에서라도 끝날때까지 영화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느냐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서는 심한 개인차가 존재할 것이다.


결론을 미리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현대 한국 관객분들께는 [인페르노] 는 추천드릴수 없다. 어느정도 그림빨 예쁘고 여자도 예쁜데 내용은 산으로 가고 절간으로 가는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전통에 익숙해진 다음에, 아니면 최소한 [서스페리아] 를 보시고 말초적인 쾌감이라도 느끼신 분들께나마 추천드릴 수 있을 것이다. “앞뒤가 안맞는” 영화를 보면 짜증이 나시는 분들은 극력 피하시기 바란다. [인페르노] 야 말로 앞이 어디고 뒤가 어딘지 아무리 여러번 봐도 알쏭달쏭한 호러영화의 전범 같은 한편이기 때문이다. [서스페리아] 를 보시고“비주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스토리텔링이 덜컹거린다” 라는 비판에 심히 공감하실 분들께도 경고하는데, [인페르노] 의 불가해함은 “스토리텔링이 덜컹거린다” 는 수준이 아니다.


 [인페르노] 에는“스토리” 와 “설정” 의 논리적인 설명과 더불어, 한 시퀜스와 그 다음 시퀜스를 연결해주는 영화적 문법이 부재한다. 한마디로 뭐가 뭔지 알수가 없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젠토는 특정 시퀜스의 시각적 또는 청각적 단서들에 거의 편집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서 마치 “무언가 우리가 놓친게 있는 것처럼”착각을 하게 만들고, 그 신경증적인 긴장 상태를 교활하게 잡아 늘려놓는다. 그러다 보니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진땀이 삐직 흐르고 손톱을 자근 자근 씹을 수 밖에 없는 호러스러운 시퀜스가 연속된다. 대뇌피질을 통해서는“이게 대체 뭔 일이여?” 라고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소뇌와 중뇌의 작용에 있어서는“어어... 저거 뭐야 저거... 저 여자 발밑에...” 라고 안절부절하면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거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로즈가 아파트의 지하실의 물 웅덩이를 살피다가 물속에 침수된 “비밀의 방” 을 발견하고 그 바닥에 떨어뜨린 열쇠꾸러미를 줏으려고 다이빙을 하는 시퀜스를 한번 보자. 이 영화에서는 도무지 “왜” 이 여자가 이런 말도 안되는 위험스러운 일을 하는지, 지하실에는 “왜” 들어갔는지, 아니 머리통부터 시작해서 건축가 바렐리의 [세명의 마녀] 가 어쩌구하는 잡썰에 “왜” 그렇게 공포에 떠는 척하면서도 집착하는지 (그 아파트가 문제면 이사를 가던가!) , 따져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 로즈가 이 방에서 발견한 뭔가가 “사건해결” 에 도움이 되는 점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침수된 방은 이 시퀜스에 달랑 한번 나오고는 잊혀진다.  이 시퀜스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물에 잠긴 19세기풍의 저택 방이라는 극도로 쉬르레알한 공간에서 유영 (遊泳) 하는 로즈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가 산채로 껍질이 벗겨져 죽은 것 같은 미이라화된 남자의 시체와 부닥뜨리는 장면의 쇼크와 괴이함에 있는 것이다. 흥미있는 사실은, [인페르노] 를 예닐곱번을 보고 또 다시 보는 나조차도 이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웅크러지면서 눈을 가리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 한다는 점이다. 왠지 모르지만 이 시퀜스는 범용한 호러영화의 깜짝 놀래기 장면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의 파워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본편의 이러한 괴이한 초현실주의적 성향이, 아르젠토가 일부러 난해하게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잘난체하면서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도, 다른 한편 강렬하게 포착이 된다. 아르젠토 자신은 뭔가 명료한 썰을 푼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거다. 뭔가 굉장히 근사한 내용의 시를, 서툴기 이를데없는 제 2외국어로 열나게 읊고 있는 재능이 넘치는 시인을 보는 것 같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첨언하자면 지금 말한 것은 대사나 플롯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고, 영화의 만듦새 자체 그리고 시각언어에야말로 해당되는 분석이다).


INFERNO-%20MATER%20LACHRYMARUM.jpg


[인페르노] 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영화매체의 모든 요소를 꿰뚫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감독이 만든 한편은 아니다.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구석이 여기저기 노정되어 있을 뿐더러, 연기지도라는 개념은 아예 눈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명색이 주인공인 리 맥클로스키는 자기가 도대체 어떤 영화에 들어가 박혀 있는지 이해나 하고 찍었는지 의심스럽고, 그나마 악역의 베테랑 이태리인 조연들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긴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예 대놓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이 오히려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아파트의 각 층밑에 어른이 쭈구리고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높이의 비밀공간을 마크가 발견하는 시퀜스, 고양이들에게 잔인한 짓을 한 로즈의 옆집 꼰대 책방 주인 카자니안이 그 벌 (?) 로 하수구의 쥐들한테 습격당하는 (실제의 뉴욕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장대한 고딕적 개천[??] 에서 벌어지는) 시퀜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의 어머니가 인간 모습의 변장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의 거울을 이용한 시적이기까지 한 클라이맥스 (이 장면은 [인페르노] 의 다른 시퀜스들과 달리 지극히 명료하게 전개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조감독인 아들 람베르토의 초빙으로 왕림하신 마리오 바바 감독의 설계와 감독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등은 전체 영화와의 연결고리야 어떻든 그 자체로서 [사이코] 의 샤워신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자랑한다.


언제나처럼 빨주노초 파남보로 휘황찬란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먼지가 쌓인 노쇠함이랄까 퇴폐적인 때깔이 묻어나는 로마노 알바니의 촬영은 블루 레이로 보면 거의 최면술에 걸리랴 싶게 멋지지만, 각본가 니콜로디 이외에 이 한편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공헌자를 꼽으라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키보디스트였던 키스 에머슨이 되겠다. 어떻게 해서 에머슨이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를 맡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서스페리아] 의 고블린은 상대가 되지 않는 엄청난 음악적 기량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베르디의 [나부코] 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재해석한 멜로디를 메인 테마로 원용해서, 각 시퀜스마다 오페라적으로 장황한 스코어, 현대적 호러영화에 흔히 보는 미니멀한 전자음 중심의 호러 사운드, 그리고 제리 골드스미스의 [오멘] 을 연상시키는 고딕적 코럴 뮤직 등 배경과 분위기에 맞춘 음악의 어렌지 솜씨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영화 자체는 마음에 안드신 분들도 영화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신 분들께는 [인페르노] 사운드트랙 CD를 절대적으로 추천드리는 바이다.


INFERNO-%20THE%20SECRET%20FLOOR.jpg


훌륭한 영화라기보다는 괴작이나 망작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어야 마땅한 한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떨치고 있는 명성이 왜 생겨났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그러한 모순적인 공력을 지닌 호러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알아서 감상하시길.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한편의 판본을 손에 넣고 싶으신 분들께는, 독일 코흐 비데오 (독일제지만 영어 자막 지원) 또는 영국 애로우 비데오에서 출시한 리젼 B 코드의 블루 레이를 먼저 추천드리고 (전문가들에 의하면 촬영감독 로마노 알바니는 독일 버젼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런 말들은 사실 백프로 신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애로우 판본은 포장에는 리젼 B 라고 써있지만 실제로는 코드 프리라서 한국제 플레이어로도 볼 수 있다), 유럽쪽에서 구매하기가 불편하신 분들은 블루 언더그라운드가 2011년에 내놓은 미국판 블루레이를 구입하시기 바란다.


첨언하는데 [서스페리아]와 [인페르노] 를 비롯한 아르젠토와 바바 전성기의 이탈랴 호러영화들의 경우, 구린 화질로 보신 분들은 그냥 안 보신걸로 치시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대로 된 평가도 내릴 수 없다.  어둠의 경로로 따운받아 토렌트로 봤다, 이런 감상문들은 최소한 이런 비주얼로 살고 죽는 작품들에 관한 한 완전무시하시길.


사족: 영화의 도입부 베르디 감상 수업시간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젊은 미녀는 아무리 봐도 “눈물의 어머니” 인 것 같습니다만 나중에 확인할 기회는 당연히 없으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그녀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만 “너 뉴욕에 가면 죽는다 까불지말고 가만히 있어라” 정도가 아닐지싶네요.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리뷰엔 사진이 필요합니다. [32] DJUNA 2010.06.28 78622
24 [애니메이션] 데빌맨 크라이베이비 Devilman Crybaby [1] Q 2018.04.23 2831
23 [영화] 제 3의 공포 The Stuff (래리 코엔 감독) <뭐 이딴 괴물이 다 있어> Q 2017.10.22 1274
22 [TV] 페니 드레드풀 1 시즌 Penny Dreadful Season 1 [4] Q 2016.09.21 1436
21 [영화] 소르겐프리: 격리된 마을 What We Become <부천영화제> Q 2016.07.26 844
20 [영화] 환상동화 Horsehead <부천영화제> <유로호러-지알로 콜렉션> [6] Q 2015.07.28 2020
19 [영화] 하빈저 다운 Harbinger Down <부천영화제> [2] Q 2015.07.21 2603
18 [영화] 팔로우 It Follows [1] Q 2015.04.12 3673
17 [영화] 더 블롭 (1988년도판) The Blob [3] Q 2015.03.08 3267
16 [영화] 프롬 비욘드/지옥 인간 (스튜어트 고든 감독) [1] Q 2014.11.09 2976
15 [영화] 새턴 3호 SATURN 3 [2] Q 2014.10.09 2741
14 [영화] 다리오 아르젠토의 드라큘라 Dario Argento's DRACULA <유로호러-지알로 콜렉션> [3] Q 2014.06.27 3235
» [영화] 인페르노 INFERNO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유로호러-지알로 콜렉션> [2] Q 2014.06.18 3757
12 [영화] 고질라 Godzilla (2014) Q 2014.05.18 3870
11 [소설] 퍼시픽 림 (한국어 번역본) [37] Q 2013.09.22 4035
10 [애니] 신세기 에반젤리온 극장판 Air/진심을 그대에게 The End of Evangelion (일단 15금적 묘사 있습니다) [7] [10] Q 2012.08.24 5667
9 [영화] 시타델 Citadel <부천영화제> [30] Q 2012.07.29 6098
8 [영화] 그래버스 Grabbers <부천영화제> [18] Q 2012.07.23 5780
7 [영화] 존 카펜터의 괴물/더 씽 (리메이크와 프리퀄) [11] [23] Q 2012.03.23 8909
6 [영화] 돈 비 어프레이드 Don't Be Afraid of the Dark-- 사족에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3] [24] Q 2011.09.04 5350
5 [영화] 7광구 (하지원, 안성기 주연) [2] [9] Q 2011.07.27 756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