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엑스/엑스 XX (2017)

2017.03.24 15:14

Q 조회 수:4289

엑스/엑스 XX


"네가 애기 때는 콧빼기도 보이지 않고, 나한테 모든 책임과 고생거리를 다 미루어놓고, 이제 와서 네가 어른이 다 되니까 어적어적 나타나서 아버지 행세를 하겠다고?!"


미국, 2017.    


A Snowfort Pictures in association with Scythia Films & XYZ Films. Red Epic Dragon, Redcode RAW negative. 화면비 2.39:1, 1시간 21분. 


Directors: Jovanka Vuckovec, St. Vincent [Annie Erin Clark], Roxanne Benjamin, Karyn Kusama 

Screenplay: Jovanka Vuckovec, Jack Ketchum, St. Vincent, Roxanne Benjamin, Karyn Kusama 

Cinematography: Ian Anderson, Taryn Anderson, Patrick Cady 

Production Design: Sally Baxter, Jen Dunlap, Anastasia Masaro 

Special Makeup Effects: Matt Falletta, Roy Knyrim, Chelsea Orduno, Josh Russell, Sierra Russell 

Music: Carly Paradis, St. Vincent, Craig Vedren 

Stunt Coordinator: Matt Leonard 


CAST: Natalie Brown (수잔 제이콥스), Jonathan Watton (로버트 제이콥스), Peter DaCunha (대니 제이콥스), Peyton Kennedy (제니 제이콥스), Michael Dyson (지하철의 옆자리 남자), Melanie Lynskey (메리), Sanai Victoria (루시), Angela Trimbur (제스), Breeda Wool (그레첸), Casey Adams (폴), Morgan Krantz (제이), Christina Kirk (코라), Kyle Allen (앤디), Mike Doyle (쳇), Morgan Peter Brown (데이튼 박사), Brenda Wehle (젱크스 교장) 


xx-poster.jpg


[XX]는 여성들만의 각본-감독으로 구성된 안솔로지 호러 작품이다. 흥미를 돋구는 기획이 아닐 수 없는데,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지 약간 야심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간결하고 (20-25분 정도의 단편을 네 개나 다섯 개 모아서 1시간 30-40분, 액자 시퀜스를 더해서 1시간 50분이나 두 시간이라는 포맷이 보통인데, 이 한편은 네 개의 단락에 액자 시퀜스를 추가해도 1시간 20분 밖에 안된다), 극장 공개까지 했는데도 PR 이 거의 안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런 글을 쓸 때에는 리뷰어의 편견을 맨 처음에 고백하는 것이 상도인데, 나는 사실 안솔로지 호러 필름을 좋아하는 편이다. 많은 분들이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하나의 호러 영화에서 두 개나 세 개만 마음에 들고 나머지는 꽝이라면, 영화 자체를 "별 볼일 없다" 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섯 개 중 세 편이나 네 단락 중 두 편정도의 타율이면 전체를 용서해 줄 수 있다. 또한, 일정한 배경, 세계관 또는 그 세계에 고유한 과학적 법칙이라는 전제를 일단 깔아야 전개가 편해지는 경향이 있는 SF 나 판타지보다도, 호러의 경우 극단적으로 압축되고 단순화된 상황 (어떤 남자가 밀실에 갇혀 있는데 왜 그 방에 갇혀 있는지 전혀 기억도 안나고.. 운운 등)을 놓고, 시적이고 비 논리적인 언어를 구사해서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0분이나 그보다 짧은 길이의 단편이라도 강렬한 호러 영상물의 재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있으니, [ABC 오브 호러] 같은 약간 무리스러운 컨셉도, 실제로 속편까지도 제작 공개될 수 있는 것이겠다. 같은 논리로, 스티븐 킹 같은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작가들은 호러라는 장르 안에서는 오히려 예외에 속하고, 호러문학의 걸작들은 단편의 수가 많은데, 유감스럽게도 고전 호러 단편들의 영화화 안솔로지는 그렇게 숫자가 많지는 않다 (페데리코 펠리니, 로제 바딤 그리고 루이 말이 협업해서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군을 영화화한 [죽음의 영혼 Histoires extraordinaires, 1968] 정도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 [XX] 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간결한 한 편이다. 영화의 길이만 간략한 것이 아니고 스타일 자체가 쓸데없이 늘어지거나 부연설명이 길어지는 구석이 없다 (물론 고어/폭력묘사나 잔학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유머 등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솔로지를 형성하는 네 개의 단편도 무슨 특별한 기믹이나 주제에 의해 선정된 것이 아니고, 될 수 있는 한 호러 장르의 넓은 의미의 외연을 보여줄 수 있는, 여성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여성의 "독특한" 시점이라거나 페미니즘적인 시점이라는 식으로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들이라는 느낌이다. 서브장르로 나누자면 첫 번째 스토리 [상자] 는 "먹는 행위" 에 관한 가족 심리 호러, 두 번째 [생일파티] 는 [해리의 소동 (1955)]을 연상시키는 호러 코메디, 세 번째 [떨어지면 안돼]는 빙의/변신/괴물 호러, 그리고 네 번째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은 [로즈마리의 아기] 의 계열에 속한 악마의 아기/임신 호러에 각자 해당된다. 굳이 랭킹을 매기자면 4-3-1-2 정도가 되겠지만, 사실 네 번째가 오랜만에 카린 쿠사마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수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단편들 사이의 퀄리티의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나는 나름대로 다 즐길 수 있었으며, 각 감독들의 장편을 장차 기대하게 할 만큼의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정직하게 보고할 수 있겠다. 


[상자]: 영국 내지는 캐나다라고 여겨지는 한 도시의 지하철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한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동생이라는 핵가족 집안이 집에 도착해 멋있게 포장한 선물 상자를 열어볼 것을 기대하면서 즐겁게 담소하고 있다. 그런데 막내 대니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약간 괴기스럽게 생긴 아저씨가 들고 있는 상자에 관심을 보이자, 아저씨는 "보고 싶니?" 라고 물어온다. 결국 막내는 상자 안을 엿보게 되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그것을 본 막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다른 가족들은 이 에피소드를 곧 잊어버리지만 대니는 그 이후로 진수성찬으로 부모님이 차리는 저녁식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부모님도, 아들이 눈에 띄게 여위어 갈 정도로 음식을 거부하자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지만… 대니에게 그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물어봐도 "Nothing (영어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두 가지의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이 가능)" 이라고 던지듯 대답할 뿐이다. 


잭 케첨의 원작에 기초를 둔 심리적인 호러 단편. 여러가지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다. 감독은 호러 덕후들에게 명망 높은 [루 모르그] 잡지의 편집장을 역임한 요방카 부치코비츠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 놀라케 만드는 호러영화적 묘사는 전혀 없고, 주연 배우 나탈리 브라운에 중점을 두고 막연한 불안이 가족이 붕괴되는 공포로 전이되어 가는 과정을 비교적 담담하게 추적하고 있다. 질척한 신체 훼손 장면이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의무방어 수준이다. 내가 보기에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잘 빠져나온 한편인데, TV 시리즈 [균주 The Strain] 에 나오는 브라운의 캐스팅이 조금 어긋나게 여겨진다. 굉장히 아니메이션적으로 선이 뚜렷한 연기자라서, 이미 일이 불거지기 전해 과도하게 신경증적인 인상을 주는 구석이 있다. 좀 더 에이미 애덤스계의 낙천적인 인상의 여성연기자였더라면 최후의 독백 등이 더 효과적으로 다가왔을 듯하다. 


[생일파티]: 케이트 윈슬렛과 더불어 [천상의 피조물] 의 주연배우였던 멜라니 린스키가 정신줄을 놓고 사는 메리라는 여성으로 나온다. 왠지 모르게 흑인 소녀 루시를 입양해서 (아니면 전 남편이 흑인? 아무튼) 데리고 사는 메리는 루시의 생일 파티를 거하게 치르려고 애를 쓰는데, 남편 데이빗이 집의 사무실에서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의자에 앉은 채 사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분이 아주 확 꼭지가 돌아가버린다. 당장 병원에 연락을 할 생각은 커녕, 어떻게 해서든지 데이빗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서 루시의 생일 파티에 "참석" 하게 만들려고 획책하는데… 


리뷰들을 읽어보니 이 한편이 가장 인기가 없던데, 사실 아이디어는 그저 그렇다. 이 한편의 내실은 사태의 황당함과 (의도된) 조잡함을 대폭발 직전까지 서서히 증폭시켰다가, 마지막에 자막과 슬로우 모션을 써서, 정말 너무 시금털털해서 어이가 명왕성으로 날라가는 농담을 툭 던지고는, 딱 끝나버리는 화술에 있다. 아마 취향을 많이 타지 싶은데, 나는 이 엔딩에 배꼽 잡고 웃었으니, 만족한 편에 붙은 게 되겠네. 물론 "공포" 는 기역자도 안 나오니까, 그런 면에서 관객 분들께서 "사기" 라고 비난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감독 애니 클라크는 "센트 빈센트" 라는 예명으로 그래미상도 받고 토킹 헤즈의 데이빗 번과 앨범도 같이 내는 등, 음악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다. 몰랐습니다, 새삼 감탄. 


[떨어지면 안돼]: [그 언덕에는 눈이 있다] 를 연상시키는 미국 남서부 사막지대에 하이킹을 온 남녀 커플 두 쌍이, 전인미답의 동굴 속에서 인디언인지 북미 대륙 선주민인지가 남긴 수수께끼의 벽화를 발견한다. 그 벽화에 그려진 무시무시한 마귀가… 이하 [이블 데드]와 동문.


[하우스] 의 미술 감독으로 일하다가 썩 괜찮은 로드무비/남부 사막지대 호러 [사우스바운드] 로 감독 데뷔한 록산 벤자민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캐릭터 고찰이니 배경설명이니 뭐니 다 내다버리고, 오로지 멀쩡했던 친구가 괴물로 변해서 다른 친구들을 도륙하는 과정에 집중해서, 짧고 굵게 밀어 부친다. 괴물이 사람들을 작살내는 것만 보여주고는 칼로 자르듯이 끝나버리는, 지극히 단순 명쾌한 단편. 마귀의 메이크업이나,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의 묘사 등, 저예산이지만 디테일에 손이 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박력이 넘친다. 마귀에 들린 여주인공의 심리적 서브텍스트에 대해 (친구들의 그녀에 대한 은근스럽게 계급적인 선망과, 그에 대한 주인공의 이드의 복수?) 분석을 하려면 할 수도 있을 한편인데,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위의 두 편과 달리 이 단락은 싹막하게 무섭다는 거.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 [걸파이트] 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장편영화에 관한 한 A리스트 진입에 난항을 겪은 카린 쿠사마 감독이 TV 배우 크리스티나 커크를 데리고 [로즈마리의 아기] 후일담적인 상황을 겪는 남부 백인 여성의 고뇌와 공포를 그린다. 이 한편이 아마도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단락일 텐데, 모두의 인용구가 시사하듯이, 사탄을 "여성을 임신 시켜놓고 막상 애기를 키우고 돌보는 과정은 완전히 무시했다가 애가 거의 성인이 다 된 다음에야, 니가 내 애비다, 하고 나타나서 부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또라이 남충 새끼"로 노골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한 시각의 변화 때문에 [로즈마리의 아기] 적인 설정이 어떻게 변화되는 가라는 상당히 흥미있는 주제 의식을 제외하고서도, 어디까지나 커크가 연기하는 코라를 중심에 놓은 서사를 효율적으로 펼치고 있다. 전반적인 정서적 반응은 여전히 공포라기 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극도의 짜증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지만, 아마도 20대 이상의 여성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공력을 지닌 한편이라고 생각한다. 


액자구조를 뒷받침해주는 단편도 따로 있는데, 이것은 소피아 카리요라는 분이 제작한 동유럽 풍의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이다.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게 된 "인형의 집" (사람모양의 인형이 아니라 인형의 얼굴이 대문간에 박힌 "집") 이 자신이 속한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여기를 꾹 눌러보고 저기를 한번 쿵 박아보고 하는 동안에 새 에피소드가 시작된다는 설정인데, 귀여우면서도 불쾌하게 퇴락한 분위기를 잘 조성해주고 있다. 이 액자 단편도 물론, "인형의 집" 모티브를 적절하게 비튼 반전 엔딩을 갖추었다. 


호러영화의 팬들에게는 일단 마음 놓고 추천드릴 수 있는 한편이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페미니즘적이라는 태도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V.H.S] 시리즈 등의 최근의 안솔로지 호러에 비해 확실히 다른 풍미를 감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북미 영화계에서 호러를 만드는 여성 감독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긴 하는데, 호러라는 장르를 여성주의에 적대적인 무엇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바라건대, [XX] 의 속편이라는 식의 프랜차이즈공식으로 나가지 말고, 평소에 남자들 시각밖에 반영되지 않은 ([이블 데드], [엑소시스트] 등의 고전 명작들도 말도 못하게 남성중심적이라는 사실은 우리 다 알잖아) 호러 서브장르를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 식으로 여성중심적 시각을 반영해서 재구성한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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