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는 숲 (Mogari no mori, 2007) ☆☆☆

 

 

영화 중간에서 주인공의 직장 동료는 그녀에게 "정해진 규칙 따위는 없어요."라고 얘기합니다. 그 말이 영화에 완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와세 나오미의 [너를 보내는 숲]은 미리 정해진 공간 안으로 일단 들어가면 이야기 틀에 굳이 연연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흘러갑니다. 그런 동안에 주인공들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 여정을 거치는 그들 안에서는 존재하는 깊은 상처가 보여 질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의 양로원에서 막 일하기 시작한 마치코(오노 마치코)는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을 보살피는 동안 그들 중 중 한 명인 시게키(우다 시게키)에게 주목합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이 노인은 33년 전에 잃은 아내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고 그 때문에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때로는 적대적이기 까지도 합니다. 어쩌다가 나무 위에 올라타거나 아니면 양로원 근처 밭에서 애처럼 뛰놀기도 하는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 관해서는 폭력적으로 돌변하면서 마치코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럼에도 마치코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데 그건 아마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으로서 그의 무표정함 안에 있는 걸 감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그 드넓은 시골 풍경 공간 밖 어딘가에 있는 지방도시에 있는 그녀의 집 안을 잠시 보기도 하고 그녀 머릿속에 플래시백 장면이 살짝 지나쳐 가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그녀는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었고 그 일로 인해 그녀가 받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 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의 페이스는 느리지만 편안합니다. 산들 바람이 논밭의 푸른 벼 잎들을 가볍게 쓰다듬고 그에 이어 양로원 주위의 울창한 숲의 나무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을 흔들곤 합니다.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 저 높이 떠 있기도 하는 가운데 따가운 햇볕이 느껴지는 여름날 분위기가 양로원을 감싸곤 하고 그곳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직원들의 보살핌 아래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스님이 그곳을 방문해서 그들과 살아있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가 하면 그들은 직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그 넓은 푸른 밭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 보기 좋은 풍경들이 세심한 정성을 들인 화면 안에서 등장하곤 하는 나른한 일상이 이어지다가 우연히 일어난 일을 계기로 마치코와 시게키는 한 여정을 시작하고 영화도 전보다 흥미로워집니다. 시게키를 숲에 있는 아내의 무덤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서 그를 자동차에 태우고 가던 도중 가벼운 사고가 생기게 되어서 둘은 도주에 발 묶인 신세에 놓입니다. 여기에 그녀가 도와 줄 사람을 찾으려고 잠시 자리를 떠난 동안 시게키는 바로 옆에 있는 숲으로 들어가고 마치코는 이에 엉겁결에 따라가지요.

 

 

목적지인 시게키 아내의 묘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둘은 정처 없이 숲 안을 걸어갑니다. 잎사귀들에 가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공간 안에서 그들은 별 말을 나누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 반 동안 이들이 겪게 되는 감정적 여정 속에서는 죽은 자를 놓아 주지 못한 산 자들의 비탄뿐만 아니라 타자에게 위로와 도움을 기꺼이 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친절함도 보여 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와세 나오미는 앞에서보다 더 확연히 의식되는 핸드헬드 촬영을 통해 두 배우들을 가까이서 따라가고 오노 마치코와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인 우다 시게키는 잘 맞는 주연 배우들입니다.

 

 

옆길로 벗어난 후 영화는 다시 안으로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헤매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느긋하고 담백하게 풀어내고 전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다서 DVD 서플인 메이킹 필름을 보니, 가와세가 계획하고 촬영까지 했던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영화에게 기대할 법한 엔딩이었지만 그녀는 현명하게 그 장면을 영화에 넣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공간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가 그런 장면과 부닥치면 좋은 꿈꾸다가 누가 깨우는 것과 같지요.

 

 

비록 처음은 느리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가 요구되면서 거리감이 존재하는 차분한 아트하우스 영화이지만, [너를 보내는 숲]은 끝에 가면 얻는 게 많은 영화입니다. 도입부의 마을 장례 행렬을 시작으로 해서 죽음과 관련된 산 자들의 문제들이 담담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그 푸르른 울창한 숲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를 보는 동안 문득 제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시골 마을의 옛 모습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마을 외곽엔 숲이 우거진 곳이 있었고 그 안에도 조용하고 어스레한 작은 세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나무들을 베어 버렸고 이제 그 세상은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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