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6.06.03 19:32

Q 조회 수:2475


서프러제트 Suffragette 


영국, 2015.    

 

A Ruby Films/Pathé/Film 4/British Film Institute/Canal+ Production in association with Indigenous Media, distributed by Focus Features. 16mm, 화면비 2.35:1, 1시간 46 분. 


Director: Sarah Gavron 

Writer: Abi Morgan 

Producers: Alison Orwen, Hannah Farrell, Faye Ward, Andy Stebbing 

Cinematography: Eduard Grau 

Production Design: Alice Normington 

Art Direction: Jonathan Houlding, Choi Ho Man 

Costume Design: Jane Petrie 

Makeup Artist: Laura Blount 

Music: Alexandre Desplat 


CAST: Carey Mulligan (모드 와츠), Helena Bonham-Carter (이디스 엘린), Anne-Marie Duff (비올레트), Ben Whishaw (소니 와츠), Romola Garai (허프턴 부인), Meryl 

Streep (에멜린 팽크허스트), Brendan Gleeson (스티드 경감), Natalie Press (에밀리), Adam Michael Dodd (조지), Geoff Bell (테일러), Grace Stottor (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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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영국. 런던 이스트 엔드의 거대한 세탁소에서 근무하는 모드 와츠는 막 10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십장역을 맡고 있는 베테랑 노동자이다. 거의 대부분이 여성들로 구성된 노동자들은 독한 화학약품이 섞인 수증기를 끊임없이 들이마셔야 하는 조악한 환경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동시에, 세탁소 사장 테일러를 위시한 남성들의 끝없는 성희롱과 인격무시에 시달려야만 한다. 와츠 자신 사장의 "특별한 관심"을 물리치고 다른 어린 일꾼들을 돌보면서, 집에서는 "내연의" 남편인 소니와 (아마도 사장의 성폭행으로 생긴 듯한) 어린 아들 조지에게 엄마 노릇도 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다. 어느 날 모드는 자신이 일시나마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백화점 쇼 윈도우가 일군의 여성들이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라고 소리치면서 던진 돌에 의해 박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서프라제트" 들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조지의 몸살 때문에 친하게 된 약사 이디스 엘린이 서프라제트 운동의 중견 간부라는 것을 알게 된 모드는, 얼굴에 심각한 폭행을 당한 세탁소 동료 비올레트 대신에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서게 되는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참정권 운동의 핵심 멤버로 성장하게 된다. 


프로듀서, 각본, 감독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서프러제트] 는 불행하게도-- 이 한마디의 함의는 이 게시판에서 내가 쓰는 리뷰를 읽는 독자들에게라면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기를 바랄 뿐이지만-- 2016년도 한국의 관객들에게 너무나 시의적절한 한편이다. 영화 예술의 혁신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한편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활동사진이라는 매체가 그렇게 한 가지 방식으로 가치판단을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아니 모든 예술은 다면적인 층위에서 관객/소비자/관람자들에게 그 존재를 어필하는 것이고, 그 층위에는 분명히 모르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는 교육적인 지점과 ("상식" 이라는 가면을 쓴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지식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더욱 더 '아는 체 하는 것' 과 '실제 아는 것' 의 괴리가 심각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또한 멜로드라마를 포함하는 갖은 종류의 스토리텔링의 구현을 통해서 관객들의 감성에 호소하면서 그들에게서 어떤 테제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을 끌어내는, “대중적 예술” 로서의 지점도 존재한다. 일단 그러한 다양한 평가의 지점들이 존재한 다는 것을 인식한 다음에 그 퀄리티의 여부를 따지면 되는 것이지, 모든 음악이 모짜르트의 [마술 피리] 나 베토벤의 제 5 교향악이 이루어낸 정점을 기준으로 존재해야 된다는 식의 “예술지상주의” 는 사실상 모짜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 자신들이 보아도 답답하고 찌질하게 여겨질 그런 태도일 것이다. 


유대인 학살에 관한 프로젝트를 십 몇 년동안 준비하다가 결국 실현에 옮기지 못한 스탠리 큐브릭이 스필버그의 [신들러스 리스트]를 보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600명 [실제로는 1,200명을 상회함: 인용자 주] 의 생존자에 관한 영화라고? 그게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나? 실제로는 육백만명이 학살당했는데?" 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고 친다면, 논리상으로 큐브릭 (그만 이런 논지의 비판을 한 것이 아니다. 뉴욕의 [빌리지 보이스]에서도 비슷한 관점에서 스필버그를 마구 까댔던 기억이 새롭다) 은 여전히 틀렸지만 그것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하게,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고려에 넣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드는 발언이다. 아니, 본인이 고고하게 범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찍는 다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남들이 해놓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의도와 아젠다를 지닌 작업을 폄하할 때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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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리 방어용 방패 (실드) 를 로마 병사들이 하는 것처럼 겹겹히 쌓아놓은 걸 보시고, [서프라제트] 라는 영화는 속내는 엥간히 후졌는데 정치적인 의무감때문에 보길 권고하는 그런 한편인가보다 라고 지레 짐작하실 필요는 없다. 이 한편은 자신이 놓여진 문화-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 (많은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에미나이들 끼리 끼리 보고 질질 짜라고 만든 규방멜로드라마” 라고 넘겨짚을 것이라는 것) 에 대해 거의 완벽한 이해와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만들어진 한 편이기 때문에, 전기영화가 지닌 구태의연한 면모를 애써 실험적인 묘사와 스타일로 박탈하려는 그런 자격지심적인 “예술가연” 하는 태도도 지양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의 능란함과 연기의 탄탄함에 있어서 웬만한 모멸적인 깎아내림에는 굴하지 않을 퀄리티를 지켜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프라제트] 는 주인공 모드처럼, 격렬한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그야말로 단장 (斷腸) 의 고통을 가져다주는 박해에도 결코 굴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서구 사회의 여성으로서의) 자기 만족감을 자제하고, 자신의 삶을 넘어선 먼 미래에까지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알고 있는 한편이다. 일부의 관객들이 시놉시스를 훑어보고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여자들이 길거리에 모여서 이럽시다 저럽시다 “시위” 를 하는 것을 “참 좋죠~?” 하면서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따뜻한” 영화는 더욱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러분들이 [서프라제트] 를 보시고 “아련한 감동” 을 느끼기 보다는,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함과, 공적인 장소에서 토로를 해봐도 이해를 못하는 인간들의 돌팔매질이 거꾸로 날아올 것이 뻔한 종류의 울분을 느끼셨다면—그래서 이 한편을 “데이트 영화” 나 그런 소비상품으로 “즐기” 실 수 없었다면—감독 사라 가브론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에두아르드 그라우 촬영감독이 일부러 16밀리 카메라 (어쩌면 수퍼 16밀리? 기술적인 디테일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로 찍어서 빚어낸 거칠고 졸아붙어 화려함이 완전히 탈색된 비주얼과, 앨리스 노밍튼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제인 페트리 의상 디자이너가 고심해서 실제로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의상을 어렵사리 구입해서 캐릭터들에게 입히는 등, 여러 각도에서 낡고 바랬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박진성을 가미한 주인공들의 삶의 묘사는, 애초에 [서프라제트] 를 부르조아 여성영화의 구도에서 저만치 벗어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치 개라도 때려잡는 듯이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경찰들의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어깨가 부서져 쓰러지는 시위대의 여성들, 참정권 운동의 여성들이 사람을 실제로 죽이는 것만 가까스로 피했다고 여겨질 정도로 거리낌없이 터뜨리는 폭탄 등의 완벽하게 “멋있음” 이라는 색깔이 벗겨지고 없는 폭력묘사는, 쓸데없이 스타일상의 “나좀보소” 표현주의나 상징성에 기댐이 없이, 그 덤덤한 일상성으로 하여금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화나게 하게끔 인도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웬만한 스파이 영화와 맞먹는 서스펜스를 생성해내는 경마장에서의 “조지 왕 면전에서의 시위” 시퀜스에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이 시퀜스는 역사상으로 실제 있었던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스 사건을 거의 도큐멘타리에 가까울 정도의 사실과의 근접성을 가지고 그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종류의 영화에서는 보통 기대하기 힘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실존적인 허무함과, 동시에 한 여성의 의지에 대한 장중한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이렇게 “여성” 영화로서, 또는 정치적인 아젠다를 짊어진 “착한 한편” 으로서, 예쁘게, 조화롭게 서사와 만듦새를 다듬어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것, 그래서 상당수의 (비단 남성들 뿐만 아닐 것이다) 관객들로부터 던져질 “그저 그렇다” 또는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는데, 더 좀 잘 만들면 안되나” 라는 류의 비판을 기꺼이 감수하고도, 당시의 역사상의 인물들의 삶과 정신에 더 가까이 근접하려는 태도, 나는 이것을 [서프라제트] 의 진정한 강점으로 꼽고 싶다. 동시에 이러한 태도야말로-- 이제는 세계적으로 별로 꿀릴 것이 없는 한국영화가 도무지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영화예술에 발로된 진정한 역사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캐스팅은 뛰어나다. 전해 듣건데 영화 전편을 통해 거의 메이크업과 헤어 디자인을 하지 않고 등장하는 케리 멀리건은 격렬하면서도 섬세하게 디자인된 연기를 선보인 [셰임] 이나 [네버 렛 미 고] 보다도 더 내면으로 가라앉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러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합성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 직설적인 존재감에는 흔들림이 없다. 앤 마리 더프, 헬레나 본햄 카터 등의 보조적 캐릭터들도 쓸데없는 감정적인 쏠림을 배제한 안정적인 연기를 피로하고 있으며, 19세기부터 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온 유명인사 서프라지스트였던 에멜린 팽크허스트 (1858-1928) 역의 메릴 스트리프의 경우도, 배역의 등장 시간은 짧지만, 가끔 그녀의 헐리웃 스타연기에서 보이는 투의 희극적인 제스처는 사라지고 없다. 남성 캐릭터들 중에서는 모드의 어정쩡하게 이해심을 보여주다가 결국 가슴에 못을 박는 “내연의” 남편 역의 벤 휘쇼 보다도, 여성들의 정치적 참정에 대한 욕구를 오로지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고위층 경찰 역의 브렌단 글리슨이 더 흥미있는 존재이다. 각본가 모건과 가브론 감독이, 글리슨이 연기하는 스티드 경감의 캐릭터의 포물선에다가 트라이포드를 쓰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면서도 안정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감시 카메라의 개발이라는 사이드 스토리를 연루시킨 것은, 암암리에 이 캐릭터로 하여금 “나는 여성과 남성의 차별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나의 직무에 충실할 뿐이다” 라는 그럴 듯한 레토릭 하에서 “여성의 대상화” 라는 “카메라의 시점” 을 당연하다는 듯이 취해 온 수많은 남성 영화인/예술가 들을 표상시키려는 의도가 개제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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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제트] 는 어떤 면에서는 조심스러운 한 발자국을 확실하게 내딛기 위해, 크게 점프를 하는 “예술적” 욕망을 초기 단계에서 희생시킨 한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또한 작극법에서나 영화의 만듦새에 있어서나,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떨리는 영상이라던가, 당시 유명했던 여류작가의 문장을 인용한 너레이션의 구태의연한 방식의 원용 등 비판의 여지는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이 한편의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 가치를 부당하게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영화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작품들을 우리가 보고, 그 당시 여성들이 느꼈던 모멸감, 분노와 희망이 바로 우리들이 요즘 우리 사는 세상의 꼬라지를 보고 느끼는 모멸감, 분노와 희망이라는 것, 최소한 그것과 시대와 문화와 언어를 떠나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1913년 당시의 도큐멘터리 필름을 보여주며 끝나는 [서프라제트] 의 에필로그 자막에서는 영국이 1928년에 되어서나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었다는 사실과, 또 다른 나라들이 언제 여성 참정권이 부여했는지 스크롤로 보여준다. 미국 1920년, 프랑스 1944년, 중국 1949년, 스위스 1971년... 이 부연 설명없는 연도의 나열만큼, 이 영화가 던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얼마나 “현재적” 인 것인지 웅변해 주는 에필로그는 구상하기 힘들었으리라. 


나의 결론은: 의무감에서 보실 의향이셨다면, 아예 보지 마시라. 귀엽고 착한 영화도 아니요, 속 시원하게 남충들을 날려버리는 판타지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머리통을 부여잡고 괴롭고 힘든 현실에 눈을 돌리게끔 하는 한편이다. 그나마 한국 드라마처럼 여자들을 눈물 펑펑 쏟으면서 조지고 또 조져서 남성들의 “여린” (비꼬는 표현임: 필자 주)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건드려보려는” “노력” 도 “건방지게” 전혀 하지 않는데는, 어쩔 것이냐. “별것도 아닌 멜로다” 라는 투의 인터넷상의 “비평” 이 이미 눈앞에 떠다니네. 


러나 바로 그 때문에도 나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서프라제트] 를 2016년에 한국에서 공개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편중 하나로 지정하고 싶다. 다시 나의 결론은: 꼭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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