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led  누명  A martfüi rém

 

헝가리, 2016.    


A FocusFox Studio/Big Bang Media Co-Production, distributed by Hungarian National Film Fund. 1시간 58분, 35mm, 화면비 2.35:1 


Director and screenwriter: Árpád Sopsits 

Cinematography: Gábor Zsabo 

Production Designer: Zsuzsa Horváth 

Costume Designer: Györgyi Szakács 

Music: Márk Moldvai 


CAST: Karoly Hajduk (보그나르 팔), Gabor Jaszberenyi (레티), Zsolt Anger (보타 형사), Peter Barnai (졸탄 찌르마이), Szofia Szamosi (리타), Zsolt Trill (카토나 지방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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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캐스트 정보를 확인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IMDB 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 디븨디나 블루 레이가 손 닿는 곳에 없는 상황에서, 폴란드 (!) 에서 운영하는 유럽 장르 영화사이트까지 찾아가본 다음에야 겨우 누가 누구 역할을 했는지 배우 이름과 역할명을 연결시킬 수가 있었다. [누명] 은 부천영화제에서는 “헝가리판 [살인의 추억]” 이라는 슬로건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이것도 딱히 틀린 소개는 아니다. 사실, 영화의 초반부에 보타 형사가, 레일에 벌거벗긴 채 눕혀져서 하마터면 기차 바퀴에 여러 조각이 날 뻔한 생존자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 현장에서 검증을 지휘하면서 증거를 구둣발로 밟지 없애지 말라고 소리지르는 둥 허둥거리는 대목은, 송강호형사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살인의 추억] 의 유명한 원테이크 장면에서 고대로 가져왔다는 느낌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봉준호 감독의 한편보다 훨씬 어둡고 (문자 그대로 많은 장면들이 해가 넘어간 이후에 벌어지고, 60년대의 헝가리의 길거리 전등 상황은 당시의 한국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굳이 적나라하게 다루지 않았던 성폭행 (강간) 살해 사건의 전모를 거의 착취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 해피 엔딩 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살인의 추억] 에 비해서도 더욱 음험하고 사악한 권력측의 기운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결말,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해결로 끝난 [살인의 추억] 의 배경이 된 화성 살인사건과 달리, 이 한편에서는 진범인이 잡혔다는 사실 등을 제시할 수 있겠다. 


[누명] 은 겉으로는 실화에 바탕을 둔 범죄드라마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우회로 Detour]나 [L. A. 콘피덴셜]등을 연상시키는 경파의 필름 느와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파드 소프시츠 감독은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서 교수형을 언도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레티라는 남자의 지옥 같은 수감 생활을 먼저 소개한 뒤, 몇 년이 지난 다음에 한 마을의 신발 공장을 중심으로 여성 근로자들과 인근의 소녀가 잔인하게 성폭행-살해당하는 사건이 발발하는 사건들을 적나라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레티의 여동생이고 공장 여공들의 매니저인 리타는 줄기차게 오빠의 무죄를 주장하고, 사건 수사를 맡았던 보타 형사는 점차 레티를 무기징역으로 몰고 간 사건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속살인 사건의 피의자와 같은 범인의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며, 당시 지방 검사였던 카토나의 제자이고 후임으로 부임한 젊은 찌르마이 검사는 "인민의 법체제에 대한 믿음" 에 금이 갈 수 있는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공산당의 압력에 노골적으로 시달린다. 


소프시츠 감독은 딱히 재기가 넘치거나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누명] 의 모든 요소에 대해 꽤 강력한 통제력을 구사하고 있으며, 무엇인가 표면에 나서지 않고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아마도 외국 관객들인 우리는 잘 모르는 헝가리 역사의 암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현대 헝가리 사회의 위선에 대한) 분노의 덩어리 같은 것이 감지되는, 억압적이리만큼 중후한 필치로 고뇌에 찬 캐릭터들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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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몇 가지 선택지는 지극히 흥미롭다. 예를 들자면, 살인범으로 몰린 레티와 진짜 살인범인 보그나르 팔이 (이 살인범은 실제 인물로 페테르 코바치라는 이름이었다. 역시 헝가리 출신의 한 유명 축구선수와 동명이인. 이건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지식이네 ㅠㅠ) 영화 안에서는 얼핏 보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 (둘 다 훌렁 벗겨진 대머리에 중키, 그리고 빈약한 콧수염을 길렀다). 재미있는 것은 정면으로 얼굴을 바라보는 클로스 업이 원용된 장면들에서 찬찬히 보면 이 둘의 얼굴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인데, 이 둘의 "인상"을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던 연출자의 의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실제로 이 두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교차 편집되면서 관객들에게 그들을 혼동할 것을 종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억압되고 처절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데 일조하는 것이 사운드 디자인인데, 특히 범인이 목을 졸라서 실신시키거나 살해한 여인들의 옷을 사납게 찢어서 벗기는 장면의 북 북 하는 음향이 지극히 효과적이다. 


범인이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장면들을 그렇게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을 제기할 여지가 있겠다. 때로는 소프시츠 감독이 마치 관객들을 도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이 보그나르의 시점에 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여성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 예상된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오빠를 끝까지 응원하는 리타가 그 오빠를 체포한 보타 형사와, 그에 대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서로 로맨틱한 관계 비슷한 것에 도달하게 되는 일막도, 최소한 나에게는 캐릭터들을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집어넣었다는 투의 작위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풍스럽고 낡아빠진 동유럽 계통의 건물과 가구들 사이에서 수사관과 법조관 사이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하고, 도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 5전선] 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가 낡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데, 가보르 짜보라는 70년대 말부터 작업해온 중견 촬영감독이 작업한, 60년대의 영국산 고딕 호러 (프레디 프란시스라던가 테드 무어 같은 영국 DP 들이 주로 담당한) 들이 연상되는 빼어난 영상미-- 특히 철도와 공장 부근의 피폐한 불빛을 풀하게 이용한 조명 설계라던가-- 가 그 큰 이유중의 하나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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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즐겁게 웃으면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살인의 추억]만큼의 임팩트는 줄 수 없었지만-- 일정 이상의 감동을 선사해주고 헝가리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궈준 준수한 스릴러였다. 어둡고 우울하지만 그 나름의 처절한 아름다움과 고통스러운 자기 나라 역사의 암부와 맞서서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춘 예술작품이라고 불러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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