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키스/다시 만날때까지 안녕, 내 사랑 Arrivederci amore, ciao 

 

이탈리아-프랑스, 2006.   ☆☆☆★★

 

A Studio Urania/Rai Cinema/Wild Bunch Production, with the financial support from MiBAC. 1시간 47분, 화면비 2.35:1

 

Directed by: Michele Soavi

Screenplay: Marco Colli, Franco Ferrini, Lorenzo Favella, Luigi Ventriglia, Michele Soavi

Based on the novel by Massimo Carlotto

Cinematography: Giovanni Mammolotti

Production Designer: Andrea Cristanti

Editor: Anna Napoli

Music: Andrea Guerra

 

CAST: Alessio Boni (조르지오), Michele Placido (아네다), Alina Nedelea (로베르타), Isabella Ferrari (플로라), Riccardo Zinna (베수비아노), Carlo Cecchi (브리아네제 판사)

 

황당전사 욜라세다님의 리퀘스트 [굿바이 키스 (영어제목입니다만 실제 영화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작별 키스를 하는 장면은 안나옵니다. 원제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 내사랑] 은 영화의 막판에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고 등장합니다만)] 갑니다. 욜라세다님과 이메일주신 친구분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덕택에 아주 잘 봤습니다.

 

[굿바이 키스] 는 한때 다리오 아르젠토의 제자 노릇을 하던 배우 출신의 미켈레 소아비 감독의 작품입니다. 이분은 [교회], [무대 공포증], [델라모레 델라모르테] 등의 나름대로 저명한 호러영화를 90년대 초까지 제작하다가, 이탈리아 TV로 활동영역을 옮긴 후 빠른 리듬과 강렬한 폭력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범죄영화장르에서 크게 성공을 한 모양입니다. [울티모 3부작] 과 [하얀색 우노] 가 특히 유명한데 (후자는 영미권에서도 디븨디로 출시되었습니다) 이런 제작품과 [굿바이 키스] 의 예로 판단하자면 영화를 잘 빚어내는 스킬과 통제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제는 아르젠토보다 훨씬 앞서 나가있다고 봐야 정당할 것 같습니다.

 

[굿바이 키스]는 일단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마력 (馬力) 이 센 한편이고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상당합니다만 그 내용 자체보다는 혼성장르적인 매력이 더 큰 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액션 장르의 탈을 뒤집어쓴 인간의 타락과 그 정신적 댓가에 관한 고찰? 젠체하면서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다.

 

기생오라비스럽게 좋지 못한 의미에서 “잘생긴” 반면에 또한 재구어와 같은 고양이과 포식동물을 연상시키는 쪽으로 “멋있는” 주인공 죠르지오 (한국어 자막에서는 자꾸 “죠지아” 라고 여자 이름을 가져다 쓰는데 왜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알레시오 보니 연기자는 절제된 내면적 심리 연기도 포함해서 아주 잘 해내고 있습니다) 는 이탈리아의 부르조아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까지 다녔지만 공산당 과격파에 가담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모국에서 '혁명전사'로 투쟁하다가, 일이 잘 안풀리자 자기 친구를 뒤통수에다 대고 쏴죽이는 '처형' 임무를 마지막으로 자기 나라에 귀국합니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죠르지오 같은 학생들을 외국에서 게릴라활동을 하도록 선동했던 좌파 먹물선생님은 추리소설가로 탈바꿈해서 잘먹고 잘살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아무런 도움도 안됩니다. 죠르지오는 좌충우돌하다가 웬만한 암흑가의 보스 정도는 뼈까지 갈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최악의 오직 (汚職) 경찰 아네다에게 잡혀서 그 꼬붕 내지 정보원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죠.

 

결국 그는 자기의 옛 혁명가 동지들을 모조리 팔아먹고 역시 뱃속이 시커먼 검사영감 브리아네제에게서 사면의 약속을 받아냅니다. 일단 감옥에서 석방된 죠르지오는 그러나 곧 베수비아노 (베수비우스 화산에 비유한 이름인지 아니면 그 지방출신이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베수비오라는 것은 시가 태울때 쓰는 성냥 이름이기도 한데 '갑자기 달아오르는' 다혈질인간을 빗대는 표현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별 콩알지식을 다 얻는군요) 라는 깡패두목이 경영하는 룸살롱에 취직하면서 범죄의 길로 빠져들어갑니다. 마약거래, 협박, 공갈, 곧 테러리스트도 찔끔하고 찌그러질 정도로 살벌한 은행강도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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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키스]는 la reabilitazione 라는 이탈리아의 사면제도에 관한 법률을 소개하는 자막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죠르지오는 이 사면을 통해서 스스로를 '정당한' 이탈리아 시민으로 복권하기 위해 안달복달을 합니다만 그 과정을 바라보는 미켈레 소아비 감독의 눈길은 차가운 것입니다. 죠르지오는 기본적으로 글러먹은 인간이거든요. 절대로 뭔가 중요한 것을 맡긴다거나 흉허물없이 마음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대상이 못되죠. 이런 인간과 말려들어가는 여성들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소아비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부르조아적 “좋은 남자”의 사회상에 부합하도록 일구어내야 하는 그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그 비열하고 폭악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은행강도-살인범-경찰 끄나풀로서의 실제 모습이 대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총쏘고 차를 들입다 몰고 하는 액션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죠르지오의 캐릭터에 부여합니다.

 

악인은 결코 벌을 받지 않고, 선인은 승리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치는 비겁하고 잔인한 악과 무력하거나 상황 타개에는 도움이 안되는 딴소리만 하고 자빠져있는 선 사이에 치어서 우왕좌왕하는 “적당히 타락한 주인공들” 에게는 오로지 지옥으로 가는 일방통행 도로만 열려 있는, 그런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품들을 우리가 필름 느와르라고 부른다면 (반대로 우왕좌왕 하건 말건 우리는 결국 다 천국에 갈 운명에 있다-- 심지어는 하느님이나 천사가 직접 개입해서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라는 결론으로 끝나게 마련인 정신적으로 낙천적인 영화군을 '필름 블랑 [블랑이란 프랑스어로 하얀색]'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굿바이 키스] 는 훌륭한 필름 느와르 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썩어들어가는 지옥판위에 혼자서 고고히 그 아수라장을 씨니컬하게 내려다보면서 구원의 가능성을 점치는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멀로우같은 주인공은 없지요. 우리는 죠르지오의 인생을 보면서 그 찌질스러움과 불안감에 공감을 하기도 하고 그가 폭발적으로 폭력을 휘둘러서 적대세력을 박살을 낼때는 상당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나쁜놈이거든요. [L.A.에서 살기와 죽기] 에서 그리섬 반장님 윌리엄 피터슨이 연기했던 “잘못하다 내 총에 맞아 죽으면 니 책임이다” 경찰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 소아비 감독이 (영혼의) 구원이라는 문제를 도외시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한편에서 벌건 대낮에 벌어지는 총격전이나 그런 종류의 “액션” 과 시체를 담은 차를 크레인으로 늪에 처넣으면서 천연덕스럽게 “이런 (사람 죽이고 시체 처리하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편하다. 마치 집에서 노는 것 같다.” 라고 읊어대는 죠르지오의 드라이한 너레이션 등의 “미국 범죄영화적” 요소들이 그의 “생활” 을 묘사하는 데 쓰이고 있다면, 그의 “영혼” 의 갈등은 우리가 이탈리아 고전 호러 영화에서 많이 봐 왔던 극채색적이고 파편화되었거나 시간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미장센, 편집과 카메라워크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물의 수면을 핥듯이 미끄러지듯 활강하는 카메라, 재판정의 인물 구도를 기묘하게 찌그러뜨리면서 희화화시키는 파리 한마리에의 클로스업, 화면 가득히 펼쳐진 탁한 녹색의 강에 슬로우 모션으로 빠져드는 십자가: 70년대 지알로영화에 집어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장면들이죠. 그러므로 죠르지오가 마침내 그의 영혼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하는 클라이맥스가 마치 고급 슬래셔영화에서 “주인공” 과 “괴물” 이 최후로 마주쳤을 때의 시간과 (복도등의) 공간이 부자연스럽게 연장되는 시퀜스를 연상시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리고 그 스타일의 재주넘기적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곤조통” 은 1밀리그램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경제적인 접근방식에 있어서도-- [굿바이 키스] 는 의외로 아르젠토보다 마리오 바바를 연상시킵니다. (최소한 한 장면의 조명설계는 [블랙 사바스] 의 한 신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라고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국도를 차를 몰면서 질주하는 장면이 그 한 예입니다만, 무슨 컴퓨터 그래픽으로 지도에 선을 그어보인다던지 그런 게 아니고 바닥에 깔려있는 종이지도를 카메라가 죽 훑으면서 이동합니다! 이거야 말로 “'남들이 1억원 들여 하는 것을 5십만원 들여서 더 잘하기' 바바식 영화만들기” 의 정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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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에 나온 작품이지만 음악이나 프로덕션 디자인에서 여러모로 1980년대의 ([마이아미 바이스] 나 그런 작품들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합성수지적인 미학에 경도되어 있는 한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들에 가끔가다 보이는 (지금은 의도치 않은 코메디로 전락한) '골이 텅 빈 쿨함' 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플라스틱 골빈당 미학을 비웃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그 시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보고 난 다음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던지 그런 지점에 도달한 한편은 아닙니다만 같은 레벨의 (아마도 제작비를 몇 배 더 들였을) 헐리웃영화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배제한 터프하고 드라이한 범죄영화를 선호하시는 분들, 필름 느와르의 팬 분들, 유럽산 장르영화의 독특한 미적, 철학적 접근방식에 흥미 있으신 영화팬들께 추천드립니다.

 

사족: 이탈리아의 문화활동 및 상품관리청 (정확한 옮김인지는 자신없습니다. Ministero per i Beni e le Attivita Culturali) 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제작된 한편입니다. 이렇게 지독하게 정부, 경찰과 법조계를 까고 뭉개고 씹는 (깡패들보다 경찰과 검사들이 몇 배는 더 악랄하고 추잡스럽게 나오는) 상업용 범죄영화를 정부 지원으로 만들수 있다니 좋습니다. 한국정부에서는 이런 행태나 이탈리아에서 베껴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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