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 A Quiet Place


미국. 2018.      ★ 


A Platinum Dunes-Sunday Night Co-Production, distributed by Paramount Pictures. 1시간 30분, Panavision 35mm, 화면비 2.39:1 


Director: John Krasinski 

Screenplay: Bryan Woods, Scott Beck, John Krasinski 

Cinematography: Charlotte Bruus Christensen 

Production Design: Jeffrey Beecroft 

Music: Marco Beltrami 

Special Makeup Effects: Andy Bergholtz 

Special Visual Effects: Industrial Light and Magic, Reynault VFX, Cadence Effects, Powerhouse, Gotham Digital. 


CAST: Emily Blunt (이블린), John Krasinski (리), Millicent Simmonds (리건), Noah Jupe (마커스), Cade Woodward (보), Leon Russom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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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미 극장에서는 다 내렸을 텐데, 나는 이제 겨우 미국 동네 극장에서 봤네요. 공개된지 꽤 되었는데 관객들이 상당히 들어왔습니다. 새삼 탑 텐에서 7주이상을 버틴 (공식 국내 박스오피스는 1억 7천만달러라는데, 대충 제작비의 열 배네요. 이러니 거대 스튜디오들도 중저예산 호러 영화를 안 만들 수가 없는 겁니다) 히트작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팝콘을 먹고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 동네는 관객들 배려심 정도가 높은 편이라 웬만하면 서로 떠들고 얘기하고 스마트폰 켜대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정식으로 시작하는 부분에 이르르자, 정말 쥐 잡은 듯이 조용~ 해지더군요. 극장에서 이렇게 관객들이 찍소리도 안내고 관람한 것은 역시 우리 동네에서 [겟 아웃]을 본 이래로 오래간만입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는 원래 공동각본가 브라이언 우즈와 스콧 벡 팀이 ([나이트라이트] 라는 저예산 호러 영화의 각본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한 번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2013년경에 쌍제이의 [클로버필드] 확장우주 (?) 의 일환으로 써먹을 생각으로 집필한 각본이라고 합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 는 원래 아무런 관계가 없던 각본을 배드 로보트에서 돈을 대면서 클로버필드 세계관에 편입한 케이스인데, 이 경우는 반대군요. 이 사실을 알고 접근하면 왜 주인공 애버트 가족이 농장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괴물 내지는 외계인의 독특한 생리학적 구조라든지, 그런 사항에 대한 배경설명들이 원래는 있었는데, 존 크라신스키가 직접 감독을 맡은 독립 프로덕션으로 가게 되면서, 많이 잘려 나갔다는 인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볼 수 있죠. 단적으로 말해서 이 한편은 이러한 지구 멸망 테마 서바이벌 호러를 만드는데 있어서, 이러한 종류의 "개연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보나 설명이 거의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 말이죠. 아니, 좀 더 나아가서 이런 종류의 영화들-- 고립된 환경에서 제한된 수의 캐릭터들이 위험에 처하는 종류의 모든 호러나 스릴러-- 에 너무나 쓸 데 없는 대사가 많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까발겨 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종류의 영화들은 사실 캐릭터들이 도무지 내용이 있는 대사를 할 거리가 없음- 쓸데없는 대사를 계속 주절거리면서 관객들에게 "이놈들은 죽어도 싼 멍충이들" 이라는 인상을 계속 주게 됨- 관객들이 얘네들이 빨리 죽어 나가기를 은근히 바라게 됨- 원래 그런 캐릭터들이니 더욱 의미 있는 대사를 기대할 수 없음, 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면 대사를 아예 없애버렸으니, 처음부터 관객들이 본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잉여의 캐릭터 상호 작용들을 괴물이 나타나서 사단을 벌일 때까지 끙끙거리면서 참고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만 해도 답답한 구석에 숨통을 확 틀어주는 것 같은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각본 자체의 구성과 애버트 가족 내에서만 벌어지는 캐릭터들의 갈등의 묘사도 무척 간결하면서도 정교합니다. 프롤로그에서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외계인/괴물의 공포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가족들 각자에게 가장 연약한 구성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새로이 태어나려는 갓난아기를 둘러싼 불안과 희망의 감정을 중심에 놓은 서사는, 확실하게 그 드라마적인 결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각본도 좋지만 존 크라신스키의 감독이 쓸데없는 과잉이 없이, 그러나 가족들의 유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안배를 열심히 한 탓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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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블런트는 원래 남편보고 감독 하라고 시키기는 했지만 자기는 엄마 역할을 안 하려고 했다는데, 제가 원래 호감을 느끼는 연기자이긴 하지만, [루퍼] 와 [시카리오]처럼 내부에 강한 중심을 지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민감하게 주위의 상황에 반응하는 그런 여성의 역할에 참 어울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반대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역은 스칼렛 요한슨 등과 비교해서 잘 안 어울려요. 앞으로도 수퍼히어로 영화 같은 장르에는 출연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나의 평가는 쇼트건 장총이나 거대한 도끼를 둘러메고 괴물이나 외계인 헌팅을 하고 말고, 그런 "액션" 적 요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언급해 둡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의 엄마 이블린도 한국 드라마식으로 구축된 "모성" 중심의 여성상과는 동렬에 놓기 힘든 존재죠). 아버지 역의 존 크라신스키, 자신의 공포와 투쟁을 벌여야 하는 큰아들 역의 노아 주페도 우수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영화의 사실상의 주인공은 큰 딸 역의 밀리센트 시몬즈이고, 이 한편이 이 젊은 여배우한테는-- 제니퍼 로렌스가 [윈터스 본]을 통해 그러했듯이-- 출세작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네요. 시몬즈는 실제로 농인이고 영화 속 캐릭터 리건도 그러하기 때문에, 농인이 겪는, 보통 들리는 사람들이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 있는 이슈들도 각본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마도 외계인 침략 전의 직업은 엔지니어였던 것인지, 짬을 내서 리건의 청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보청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설정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보는 순간 내가 아는 50년대 외계인 침략영화의 공식 중 하나에 이용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물론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고요. 


의외로 많은 리뷰와 지인들이 외계인/괴물의 인상적인 디자인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던데, 내 입장에서 보자면 1) 굉장히 무섭고 효율적인 괴물인 것은 맞고요, 2) 잘 만들었어요, 특히 얼굴이 갈라지면서 드러나는 "귀" 의 질감 등, 그러나 "디자인" 자체는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기묘한 이야기] 의 이차원 괴물 따위도 대체로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이런 "눈 없는 장갑 (裝甲) 곤충형" 괴물 말고 좀 다른 형태를 보고 싶습니다 (저의 취향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외계인 디자인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가 더 나았네요). 엔딩도, 듀나님 말씀대로 각본상 캐릭터들의 딜레마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주려고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역시 약간 지나치게 "장르 공식적" 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도 마찬가지). 리건의 동생의 죽음으로 생긴 죄책감을 둘러싼 가족들과의 정서적인 화해가 서사의 중요한 감성적 엔진 중의 하나였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리건의 시점에서 매듭을 짓는 것을 보여주고 끝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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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이러한 SF 적인 설정이 다소라도 섞인 영화를 보게 되면, 계속해서 그 논리정합성과 과학성을 따져 묻는 것은 별로 좋은 버릇이 아닙니다만 (내가 누차 얘기했듯이, 인류 역사상에서 그 위대함을 감히 따져 물을 수 없는 고전 SF 영화 또는 소설들은, 거의 다, 후대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비논리적인 요소들을 하나 이상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때문에 당시에는 새로웠던 것이 요즘에는 구식으로 보인다, 이런 종류와는 별개의 문제에요), 이 한편의 경우, 외계인/괴물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 또는 생물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면, 그냥 무작위로 발생하는 "소음" -- 예를 들자면 썩은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생기는 소리라던가. 우리 집 마당에서는 가끔가다 오밤중에 "부시럭 쿵" 같은 소리가 나는데 사람은커녕 너구리도 관계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식물과 마루바닥 등도 혼자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내거든요-- 과 인간이 관여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소음"-- 작은 아들이 돌린 비행기 장난감 같은 인위적인 소리 말고, 예를 들자면 작중 캐릭터들이 내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하는 구둣발로 마른 가지 같은 것을 밟았을 때 내는 소리-- 을 어떻게 구별하느냐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요. 아마 실제로 이런 생물병기 (아무리 봐도 얘네들이 직접 "외계인" 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겠죠. 아-초광속 [亞-超光速] 비행은커녕 치킨 굽는 것도 못할 것 같이 생겨먹은 친구들인데) 를 배치한다면, "이런 소리는 무시하고 저런 소리는 사냥감이 낼 공산이 높다" 라는 기초적인 프로그램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말씀입니다. 


그러나 뭐, [콰이어트 플레이스] 처럼 소리를 전혀 안 내야 되는 사람들이 갓난아기를 낳는 얼핏 보면 무모한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애기 우는 소리를 차단하는 여러 가지 수공업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그런 묘사의 정치함을 보면 위에서 말하는 "문제점" 같은 것은, 그냥 장르적 공식의 일부로서 접어주고 가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냐 라고 하신다면, 반대는 할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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