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솜니아 Hypersomnia


아르헨티나, 2017.      


An INCAA/BenteVeo/MySProduction/telefé Co-Production. 1시간 23분, 화면비 2.35:1


Director: Gabriel Grieco

Cinematography: Rodrigo Pulpeiro

Post-Production Supervisor: Gullermina Garcia Silva

Screenplay: Gabriel Grieco, Sebastian Rotstein

Music: Diego Hensel


CAST: Yamina Saud (밀레나/랄리), Gerardo Romano (페데리코), Vanesa Gonzalez (록시), Florencia Torrente (야스민), Sofia Gala (라우라), Nazareno Casero (니코), Jimena Baron (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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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여러 작품들 리뷰를 듀나게시판에 올린다. 영어판 리포트를 Koreanfilm.org에 올린 뒤에 남는 시간에 작성하는 것이라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뒷북 리뷰가 되기 십상이고, 또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제 기간중에 열 편 이상을 감상하기가 힘든 스케줄이지만 (거기다 더해서 금년에는 한국이 다리를 절면서 지팡이 짚고 다니는 중년 남성에게는 얼마나 기동력이 떨어지게 만드는 나라인지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나한테도 이럴진대 심각한 장애인들에게는 정말 얼마나 불편할 것인지 상상도 잘 가지 않는다), 그래도 아예 안 쓰고 넘기기에는 아직 내가 발등의 불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이퍼솜니아] 의 제목인 증상에 대해서는 예상에 반해서 극중에 설명이 약간이지만 나오는데, 정확하게는 과도하게 수면에 빠지는 상태를 총괄해서 일컫는 명칭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생시에 멀쩡히 활동을 하다가 순식간에 잠이 들어 꿈을 꾸는 증상을 가리킨다. 잠이 든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걷는다든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다든지, 심지어는 술집에 가서 바텐더와 회화를 멀쩡하게 구사하는 (실제로 임상적으로 관찰된 바 있음) 등의 행동은 사건수면 (parasomnia) 에 해당되는 것이고 과면증 (hypersomnia) 와는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 증후군이지만, 이 한편에서는 엄밀히 따져보더라도 주인공이 “다른 세상” 을 보고 있을 때에는 확실히 잠이 들어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제목을 잘못 붙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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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산 호러영화인 [하이퍼솜니아] 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장르적 접근 방식이 확연하게 둘로 나누어지는 한편인데, 나는 전반부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주인공인 어린 (얼핏 보면 스무살도 안 되어 보이지만 영화안에서는 구체적인 연령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연기자 지망생 밀레나가 성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는 일군의 성매매여성을 다루었다고 추측되는 연극에 오디션을 보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 연극의 연출자인 페데리코는 연극 안의 포주나 고객에 못지 않게 착취적인 재수없는 인간이다. 밀레나 자신도 상궤를 벗어난 집착과 함께 이 역할에 몰두하는데, 자신이 붉은 머리칼을 짧게 자른 “랄리” 라는 여성이고 낡은 건물에 갇혀서 온갖 남성들을 성접대해야 하는 노예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환각” 에 점점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전반부는 키슬로프스키의 환상적인 [베로니크의 이중의 삶] 를 연상시키는 전개를 보인다. [베로니크] 이외에도 많은 판타지와 SF, 심지어는 귀신 나오는 호러장르의 작품들까지도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또하나의 나” 라는 주제를 다루어 왔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특별히 새롭거나 독특한 점은 없는 아이디어이지만, 고의적으로 연극적인 무대를 연상시키는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카메라 블로킹을 통해서 밀레나의 내재적인 혼란과 고뇌를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밀레나가 “랄리”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평행세계가 그녀가 “연기” 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가상 인격의 구현인지, 또는 어떤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와 그녀의 인생이 오버랩되고 있는 것인지, 양쪽 해석이 가능한데, 이 두 가지 해석사이의 긴장을 계속 유지한채 심리적 미스테리로 끝까지 밀고 갔더라면, 영화판 [프랑스인 대위의 여자]를 안에서 밖으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흥미있는 결과로 이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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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후반부에서 이 미스테리에 대한 답이 주어지면서 [하이퍼솜니아] 는 급속도로 시시해지는데, 가브리엘 그리코는 이 미스테리를 해결하기 위해 불운하게도 린지 로한이 주연했던 모 괴작과 거의 같은 트릭을 원용하고 있다. 그 괴작을 괴작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던 황당무계한 트릭이, 더 예술혼의 장독에 오래 담갔다 꺼낸 아르헨티나영화라고 해서 제대로 기능할 리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매매여성들을 잔인하게 고문 살해하는 삼베자루 가면을 뒤집어쓴 “정원사” 라는 빌런이 등장하는 개소에 이르러서는 말해 무엇하랴. 그나마 스토리가 이 시점에서 완전히 공중분해하지 않은 것만 해도 좋게 봐주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코 감독은 페데리코 (펠리니에서 가져온듯?) 라는 연출자를 철저하게 추잡한 개저씨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가 밀레나를 떠보면서 장 뤽 고다르가 자기가 캐스팅하려고 했던 연기자와 저녁식사를 약속해놓고 일부러 먼 발치에서 관찰했다는 따위의 정말 너무나 진부해서 하품이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늘어놓는 부분에서는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연출자와 밀레나의 밀당이 묘사된 부분은 어쩌면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 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도 있다. 성매매 여성들에 관한 부분은 지나치게 몽환적거나 퇴폐적으로 그리지 않도록 배려한 부분은 좋았는데, 그런 깐에는 헤수스 프랑코 같은 착취성 감독분들 (일부에서는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고 있지만) 이 80년대에 급조한 “여자 감옥 영화” 를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남미영화답게 불편한 착취성과, 예쁘게 그림빨이 빠져나온 예술가연하는 탐미성 사이의 위험한 줄다리기가 매력의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한편이다 (그리코 감독 자신은 무척 사회비판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시각에 경도되어서 만들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딱히 착각은 아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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