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속삭임 The Whisperer in Darkness


미국, 2011. ☆☆☆

 

A Fungi/Dilated Pixels 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43.

 

Director: Sean Branney

Screenplay: Sean Branney, Andrew Leman

Based on the Story “The Whisperer in Darkness” by H. P. Lovecraft

Music: Troy Sterling Nies

Cinematography: David Robertson

CAST: Matt Foyer (윌마스 교수), Barry Lynch (헨리 에이클리), Andrew Leman (찰리 포드), Matt Lagan (네이트 워드), Autumn Wendel (한나), Caspar Marsh (마스터슨), Daniel Kaemon (P. F. 노이스), Stephen Blakehart (찰리 타워)


흑백에 엄청 싸구려로 만든 러브크래프트 중편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자들] 의 영화화판이다. [크툴루의 부르심] 을 표현주의적 무성영화 단편의 기법을 통해서 영화로 만들었던 러브크래프트 광팬 팀의 차기작이다. 순전히 자신들이 보고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아마 팬미팅이나 독서회를 가질 때마다 여흥으로 틀어보기 위해서) 만들었던 전작이 디븨디로 출시되고 유튜브에 걸리고 하면서 완전 대박이 나자 차기작에는 좀 더 야심적인 소재를 취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둠속] 의 원작은 크툴루 미소스 중에서는 이외로 SF 색채가 강한 작품인데, 바로 그 “유고스에서 온 곰팡이 (?!)” 라는 외계 생물이 등장하는 일편이다. 모든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결코 영화화하기 쉬운 소설은 아니긴 해도, 어쨌거나 막연하긴 하지만 외계인의 생김새에 대한 묘사도 있고, 기본적인 미스터리의 설정은 러선생의 이리 꼬이고 저리 비틀리는 난해한 형용과 보여줄 듯 말듯 대뇌 피질을 근질거리게 하는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데에는 나쁘지 않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사 이런 이슈들은 러선생님의 상상세계 속에 푹 파묻혀 사는 브래니나 레만 같은 이들이 제일 잘 파악하고 있을 법 하다.

 

나한테 의외로 즐거웠던 부분은 전편 [크툴루의 부르심] 과 마찬가지로 샤프한 영상의 HD 카메라로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존 캐러다인이나 조지 주코 등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콧수염을 찍 기른 수트 차려입은 악당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과학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진 우주가 말씀이지요...” 라는 식으로 음흉한 구라를 푸는 1930-40 년대 저예산 미국 호러/스릴러 영화의 감각을 아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통성” 은 연기자들의 몸 쓰는 방식이나 요즘 영화 같으면 대충 대충 넘어가고 말았을 지극히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대사에서도 볼 수 있고 인류의 지식을 한참 넘어선다는 설정인 유고스 곰팡이들의 과학 기술이 굉장히 1930년대적인 모습을 하고 (토끼 안테나 처럼 생긴 영상 투상기라던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 대사로 상황을 짚고 넘어간다는 전략이 묘하게 관객들에게 먹힌다는 것인데, 외계인의 존재니 하는 이슈들에 대해 비판적인 윌마트 교수와 우호적인 찰스 포트 교수가 무슨 치약 회사 스폰서를 업고 라디오 쇼에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지루해야 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면들이 요새 장르 영화에 너무나 생략되어 버리고 없는지라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각본의 대사가 평균보다 더 유려하게 쓰여진 것도 지루함을 막는 데 공헌을 하고 있긴 하지만)


물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그냥 곧이 곧대로 필름으로 옮긴 것은 아니고, 도처에 얘기의 외연을 확장한 다던지 서간체나 플래쉬백으로 되어 있는 텍스트를 현재형으로 옮긴 다던지 그런 종류의 신중한 각색은 이루어져 있다. 윌마스 교수가 버몬트의 시골 농장에 헨리 에이클리 농부를 만나러 가면서 이야기는 본절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 버몬트에 도착해서 에이클리를 만나기까지의 부분이 유감스럽게도 저예산이 좀 서러운 부위이다. 세트로 다 지어서 완전히 인공적인 느낌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실제로 평지와 산에 건성으로 뿌리는 빗살이 어쩔 수 없이 불그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소설이 실질적으로 끝나는, 헨리 에이클리의 “정체” 가 밝혀지는 부분부터 사종교 집단이 본색을 들어내고 “셔브 니구라스! 수천개의 자식을 거느린 흑염소여~ 크툴루 프탕은!” 어쩌구 하면서 유고스와 지구를 잇는 웜홀을 만들겠다 하면서 쿵당둥당 푸닥거리를 벌이는 데까지의 클라이맥스는 1차대전 풍 비행기는 나르지, 무뇌인간 (이건 비유가 아니고 실제) 의 육체를 엄청 싸구려 방식으로 “영구보존” 하고 있는 외계인의 랩도 나오지,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한다.

 

 

난 전혀 예상을 안하고 봤는데 유고스에서 온 곰팡이도 막판에 가면 그 전모를 떡하니 드러낸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CGI 로 만든 것이겠지만 참 감탄스럽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혼란스러운) 오리지널 묘사에 충실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심지어는 지구인과의 의사 소통에 필요한 보이스 박스인지 헬멧 통신기 인지까지도 확실히 달고 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다. 그리고 이 유고스 곰팡이가 만들어놓은 “계단” 을 다른 예로 들자면, 영화 도중 한 캐릭터가 “계단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언급할 뿐만 아니라, 실제 생긴 것도 두 발로 밟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계단이 아니고 방사형 철봉을 아무렇게나 이어서 쌓아올린 것 같은 꼴을 하고 있는데, 손발 대신에 집게가 달린 게다리를 지닌 생물들이라면 사실 그렇게 만든다는 게 말이 된다. 이런 일반 관객 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디테일의 축적이 팬심에는 참 고맙다) 주인공이 온 몸을 희생해서 웜홀의 개통을 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셔브 니구라스! 찬양하라~ 이렇게 끝나는 엔딩도 “물론 러브크래프트 작품이라면 그렇게 결론 지을 수 밖에...” 이런 식으로 차밍하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서스펜스를 맛보게 해주는 그런 한편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건드리려고 하는 소스가 어떤 면에서 위대하고 어떤 면에서 (요즘 시각에서 보자면) 황당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결코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팬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인 작품이다. 브라이언 유즈나나 존 카펜터보다도 숀 브래니 팀에게 [인스머스에 드리워진 그림자] 의 영화화를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사족: “유고스에서 온 곰팡이” 라는 표현은 영화 안에서는 안나오지만 영화를 제작한 (아마도 임시로 설립된) 회사의 이름은 “균류 (菌類) 제작회사” 란다. ^ ^ 하하하 물론 얘네들은 우주생물이고 그 정체는 균류인지 뭔지 알 수 없다.

 

사족 2: 헨리 에이클리 영감의 목소리에는 특수효과적인 조치를 취하긴 했나본데, 이 영감택이 캐릭터가 써먹는, 웃는 것인지 괴로워서 숨이 넘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캐해해~” 하는 음성연기는 아주 효과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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