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페리아 Suspiria

 

이탈리아, 1977   ☆☆☆★★

 

A Seda Spettacoli Production. 화면비 2.35:1, 1시간 37

 

Directed by: Dario Argento

Screenplay: Dario Argento, Nadia Nicolodi

Cinematography: Luciano Tovoli

Production Design: Giuseppe Bassan

Music: Goblin

 

CAST: Jessica Harper (수지 배니언), Stefania Casini (사라), Udo Kier (프랭크 만델), Alida Valli (태너 여사), Joan Bennett (블랑크 여사), Flavio Bucci (다니엘), Miguel Bosé (마크), Eva Axen (패트리시아)

 

 

cadenza 님의 리퀘스트 [서스페리아] 갑니다. 왜 [서스피리아] 라고 안 쓰냐면 제대로 읽으려면 [수스피리아] 라고 읽어야지 뒤켠의 “i”만 제대로 모음 발음을 해줘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영어권 친구들이 이 영화를 호칭하는 발음이 되어 버리잖아요. 전 겉뿐만 아니라 속도 뼈저리게 미국사람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한국사람들이 유럽영화 제목을 미국식으로 읽고 쓰고 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요. 

 

하여간에 이런 엉터리 발음이 된 것은 일본 개봉당시 제목이 [사스페리아 サスペリア] 였던 걸 고대로 베껴서 그랬던 거고요. 일본 수입사에서는 “서스펜스” 가 있다 할때의 그 서스펜스 (라틴어로 “매달리다” 라는 말에서 근원하는 단어) 와 관련이 있도록 만들려고 꼼수를 부린건지 아니면 진실로 착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원제의 “수스피리아” 는 그 서스펜스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라틴어로는 “숨이 가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탈리아어로 suspiri (수스피리) 라는 단어는 “한숨을 내쉬다” 라는 뜻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시라면 아아 바로 마녀 할망구가 코를 드르릉 골면서 들이내쉬는 숨 얘기구먼 하고 납득이 가시겠지요.

 

photo SUSPIRIA- BAD LIGHT_zpskzmkcfcz.jpg

 

아무튼 [서스페리아] 는 70년대에 다리오 아르젠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러영화 감독으로 발돋움하게끔 기회를 마련해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디프 레드] 가 더 제작연도가 이르지 않느냐고 하실 지 모르겠는데 전세계적인 배급 규모로 보면 [서스페리아] 가 훨씬 더 성공작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디프 레드] 는 한참 나중에 거의 3분의 1 정도가 잘려나간 삭제판으로, [서스페리아 2] 라는, 제작진한테는 거의 모욕적이라고도 할 만한 제목을 달고 공개되었었죠. 주지하시다피 [서스페리아] [인페르노] 그리고 말을 안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 망작 [눈물의 어머니], 이 세 작품은 당시의 아르젠토의 인생 파트너이자 창조적 협력자였던 다리아 니콜로디의 각본에서 나왔고, 다른 아르젠토 감독작과 주제와 작풍에 있어서 차별됩니다. 동물 삼부작과 [디프 레드] 가 기본적으로는 주술과 영혼이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세계와 무관한, 히치코크풍 스릴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서스페리아]의 “사탕 색깔로 버무러진” 괴이한 세계는 패션잡지 포토 스프레드처럼 극단적으로 양식화되고 미화된 잔혹 동화의 그것입니다.

 

[서스페리아]는 처음 한국에 공개되었을 때에는 마치 [엑소시스트] 나 [로즈마리의 아기] 같은 헐리웃 호러영화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관객의 감각에 직통으로 비수를 박는 아방가르드 영화인것처럼 선전이 되었습니다만, 70년대 후반 그때 당시 여자고등학생 이셨던 분들이 보러 가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제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알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한편을 극장에서 튼다면 관객여러분 중 [엑소시스트] 나 [로즈마리의 아기] 가 어김없이 파생시키는 심리적으로 압박해오는 공포와 불안을 느끼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물론 쿠콰쾅하는 커다란 음향 또는 갑자기 화면에 무시기가 줌~ 하고 확 나타나는 깜짝비주얼로 놀래실 수는 있겠네요. 그러나 이런 건 진짜 공포에 떨면서 이빨을 딱딱 맞부딛히면서 영화를 보는 거하고는 다르죠. 심지어는 끄악 하는 비명을 지르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킬킬거리면서 보게 되는 [이블 데드] 도 [서스페리아] 에 비하면 한~ 참 진짜로 무셔운 한편입니다.

 

[서스페리아] 의 “재미” 또는 “예술적 가치” 는 그러므로 통상적인 호러영화의 강점과는 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한편은 서사의 정합성을 포함한 논리적인 카테고리로는 심하게 덜컹거리는 결함상품인데도 불구하고, 그 감각적인 디테일에 있어서 기묘하고 섬뜩하게 “실감” 을 불러 일으키고 정서적 감정이입을 유도한 다는 측면에서 수준 높은 일본만화와 닮았습니다. 일본 (의 젊은 여성 관객들사이) 에서 대 히트를 친 것이 충분히 납득이 가지요.

 

패트리시아가 정체불명의 털보 팔을 지닌 살인범에게 잡혀 죽는 모두의 시퀜스를 보시면, 장면들 사이의 연결이 도무지 논리적이지 않고, 여성 연기자들의 연기와 화면의 공간 배치도 따로 따로 놀고 있음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한국 감독분들 아마 일부러 이렇게 허술하게 찍으라고 해도 쪽팔려서 못하실 겁니다. (패트리시아의 얼굴을 유리창에다 밀어붙여서 일부러 “사팔눈 문어” 얼굴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선생의 여배우 다루기의 괴팍함도 시비를 걸자면 걸 수도 있습니다만)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이 시퀜스의 포스는 그 개연성과 필연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공작 날개처럼 펼쳐지는 휘황찬란함에서 나옵니다. 이 한편의 아르젠토는 마치 “저녁노을을 그리라” 고 숙제를 주었더니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끔직스럽게 새빨간 진홍색 물감으로 도화지를 도배를 해서 가져온 학생 같은 거지요. 미술 선생님이 그 그림에 빵점을 줘도 별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의 눈은 거기에 쏠리게 마련이니까요.

 

photo SUSPIRIA- CONFRONTATION_zpskqnq0q6a.jpg

 

그런데 [서스페리아] 는 의외로-- 그리고 이 점이 “잔혹동화” 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제시카 하퍼가 연기하는 수지의 시점에 맞추어서 보면 [인페르노], [눈물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후기 아르젠토 작품보다 감정이입이 쉬운 한편입니다. 그래서 결국 왕년의 헐리웃 대배우 존 베네트가 연기하는 블랑크 부인은 “한숨의 어머니” 와 무슨 관계인 것인지? 왜 수지한테 약을 먹이면서까지 발레학교에서 재워야 했는가? 장님 피아니스트 다니엘은 뭘 잘못했길래 자기 개한테 물려죽는건지? 뭐가 어쨌다는 것인지, 따지고 보자면 논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수지가 느끼는 정서나 감각적 상태는 거의 물리적인 포스를 지니고 관객들에게 전달됩니다.

 

영화 보신분들 그 장면 혹시 기억나시나요? 수지가 복도를 걷다가, 가정부 아줌마가 손에 들고 있는 프리즘 같은 물체가 갑자기 반사하는 태양광에 눈을 쬐이고, 그녀는 그로 말미암아 발레 연습 중에 결국 쓰러지는 시퀜스 말씀이지요. 이걸 보고 나면 어두운 건물을 걷다가 갑자기 햇빛이 눈을 강타했을 때 머리가 띵 하고 현기증을 느끼는 그런 실제 경험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습니까? 비슷한 방식으로 [서스페리아] 의 온갖 전혀 “말이 안되는” 호러 셋 피스들은--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철조망 덤불에 빠져 죽기” 시퀜스 아닐까요? 참 용케도 저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 들지 않나요. 각본에 정말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덤불에 빠져서 헤메다가...”라고 집필을 하고 영화를 찍은 것인지-- 묘하게 우리의 감각신경을 자극하는 저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한껏 비웃을 수 있어도, 눈과 귀는 이 묘한 물건에 휘둘림을 당하게 되는 그런 한편인 것이지요.

 

photo SUSPIRIA- KILLER KILLS_zpsfdi3hqk7.jpg

 

거기다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바르베트 슈뢰더감독과도 콤비를 했던 루치아노 토볼리 촬영감독이 빚어낸 극채색의 화면과 주세페 바산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담당한 “아트 데코 고딕” 적인 미술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겠죠. 색감을 제대로 살려주는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 그 좀 오글거리면서도 화사한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기분이 아니 들 수는 없습니다.

 

고블린의 음악의 경우는 저는 팬은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겠군요. 좀 시끄럽다고 느끼는 편이고, [엑소시스트] 의 마이크 올드필드의 영향을 대놓고 드러내놓고 있는 반면에는 별로 창의적이지도 못합니다. 동물 삼부작을 맡은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은 물론이고 같은 록 뮤지션 계열에서 나온 [인페르노] 의 키스 에머슨도 몇 배는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이것은 취향을 타는 이슈이니까. (잔소리 한마디 더 하자면 가뜩이나 푸휴휴 끼이익 하고 귀에 거슬리는 숨소리가 음향효과로 넘쳐나는 영화인데 음악에서까지 “위치!”어쩌구 하면서 지분거리는 목소리를 쓰는 것은 과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스페리아]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수정날개] 와 [아홉 꼬리 고양이] 보다 뛰어난 한편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망서리게 되는군요. 그러나 여름 시즌마다 한국에서 호러영화를 볼 때마다 스토리의 “반전” 이나 자본주의 비판, 한국 세태 비판 이런 거는 좀 안 해도 좋으니까 [서스페리아] 처럼 확 제정신이 아니게 보일 정도의 휘황찬란함을 과시하는 그런 “퇴폐적인” 호러 영화 한편 안 나오나 하는 생각이 은근히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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