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 파크 Gorky Park


미국, 1983.     ☆☆☆★


An Eagle Associates Production. Distributed by Orion Pictures. 화면비 1.85:1, 35mm Eastman Color, DeLuxe, Mono Sound. 2시간8분.


Directed by: Michael Apted

Screenplay: Dennis Potter

Based on a novel by: Martin Cruz Smith

Cinematography: Ralf D. Bode

Production Design: Paul Sylbert

Costume Design: Richard Bruno

Special Makeup Artists: Carl Fullerton, Neal Martz, David E. Smith Music: James Horner


CAST: William Hurt (아르카디 렌코), Lee Marvin (잭 오스본), Brian Dennehy (윌리엄 커윌), Ian Bannen (이암스코이), Joanna Pacula (이리나 아사노바), Michael Elphick (파샤), Richard Griffiths (안톤), Rikki Fulton (KGB 프리블루다 소령), Ian McDiarmid (안드레예프 박사), Niall O”Brien (KGB 요원), Alexader Knox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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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구 소비에트 연방하의 모스크바. 눈에 파묻힌 고리키 국립공원에서 얼굴이 도려내졌고, 손가락이 잘리우는 등 기타 누구인지 식별을 불가능하도록 참살된 세 사람의 시체가 발견된다. 모스크바 내무부 통제위원회, 즉 경찰에서 일하는 민완형사 아르카디 렌코는 KGB 의 프리블루다 소령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오히려 의구심을 가지게 되고 수사를 진행시키는데, 죽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젊은 미국인 기독교 전도사일 가능성이 드러나면서, KGB 뿐만아니라 통제위원회의 상관인 이암스코이와도 인맥이 닿아 있는 정체불명의 미국인 비지네스맨 존 오스본, 수제 (手製) 권총으로 조립할 수 있는 부품을 호텔방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또하나의 미국인 남성, 죽은 세 사람의 친구였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을 뿐더러, 반체제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숨기려 하지 않는 스크립트걸 이리나 등의 용의자들이 수면에 떠오른다. 렌코는 두 명의 미국인 뿐 아니라 KGB 를 적으로 돌리게 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세 희생자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골격에 살을 붙여서 생존시 모습을 복원해내는 법의학 전문가 안드레예프 박사에게 세 사람의 해골을 맡긴다. 과연 이 세 사람은 어떤 경위로 무참히 살해당하게 되었을까? 그 범인은 과연? 렌코가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은 누구이며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자는 또 누구인가?


[고리키 파크] 는 마틴 크루즈 스미스 작가가 1981년에 발표한 베스트셀러의 영화화 작품이다. 원작은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 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신 냉전적 사고방식이 득세하는 가운데, 소련인 형사가 소련 국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마치 뉴욕이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소설처럼 (아마도 적지않은 과장과 의도적 오류를 적당히 버무렸겠지만) 정치하고 상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미합중국의 당시 시대적 요구에 딱 맞아 떨어진 한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스미스 작가는 톰 클랜시처럼 틈만 있으면 (미 공화당) 보수파 만세를 외치면서 성조기를 휘둘러대는 저열한 수준은 아니라서, 특히 일부 미국인들이 소련인들의 물질적 박탈감을 교묘히 착취하여 이윤을 얻어내는 행태의 위선적인 실상을 렌코의 수사를 통해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화된 작품은 [스타 워즈] 이래로 80년대 이후로 이어진 “영국 스탭과 캐스트를 데리고 미국자본으로 유럽에서 찍은 헐리우드 영화” 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아마도 기획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인 아카디 렌코를 어떤 미국 배우에게 주어야 할 것이냐 였을 것인데, 줄리아드 출신의 엘리트 배우였고 [보디 히트] (1981) [빅 칠] (1983) 을 통해 명실공히 무비 스타의 위치에 막 등극했던 윌리엄 허트가 기용되었다. [고리키 파크] 의 렌코 캐릭터는 허트 연기자의 커리어 전반에 비추어 볼때는 그의 최고 수준에 속하는 연기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거미여인의 입맞춤] (1985) [브로드캐스트 뉴스] (1987) 에서 보여준 것처럼, 지극히 이지적인 용모와 목소리를 뒤집고 흘러나오는 감정의 숨김없는 굴곡의 표현이 말도 못하게 섬세하고 환상적으로 대단한 연기자인데, 렌코는-- 데니스 포터가 각본을 써서 그런지 몰라도-- 일면 영국식으로 감정을 억압하고 사무적인 과정에 편집적으로 집중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차드 버튼이나 더크 보가드를 연상시키는 그런 캐릭터다. 거기에 더해서, 주위의 러시아인역 조연들이 다 대영제국 액센트를 남발하는 영국배우들로 채워져 있다 보니, 상당히 “몰입형” 인 연기스타일을 구사하는 허트의 입장에서는 그들과 연기의 호흡을 맞추는데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신경을 소비하면서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블루 레이에 수록된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리 마빈이 이러한 허트의 괴로운 상황을 꿰뚫어보고 같은 연기자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칭찬을 하시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 한편의 서사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척추에 해당하는 인물은 렌코가 아니고 마빈이 연기하는 오스본이다. 척 보면 그 구렁이 같은 눈매하며, 구천의 암흑 같은 시커먼 뱃속이 금세 들여다보이는 캐릭터인지라, 이 사람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가 등을 다루는 서스펜스는 비교적 빨리 허물어져 버리지만, 마빈의 악역 연기는-- 그 허연 머리칼 밑에 구리빛으로 탄 피부에 자잘하게 파인 주름살이 실룩거리면서 움직이는 모습하며, 대사 한마디마다 배어있는, 아랫배 속의 납덩어리가 달린 추가 천천히 운동하면서 발산하는 것 같은 중후한 울림하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이분께서 떡 하고 털모자를 만지작 거리면서 소파에 앉아만 계셔도, 영화가 다 이분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정돈이 되는 것 같은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클라이맥스의 [서부의 사나이] 처럼 의표를 찌르는 심리 서부극적인 총격전의 임팩트도, 마빈의 다른 배우들을 띄워주는 “캐처” 로서의 연기에 기인하는 바 크다.


1964년의 [ 7세이후] 부터 2012년의 [56세 이후] 까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그룹의 영국 어린이들이 중년 어른이 될때까지 7년마다 한번씩 지속적으로 도큐멘타리 연작을 찍어낸 “업” 시리즈의 창조자로서 세계 영화사에 이미 부동의 자리를 확보한 마이클 앱티드 감독은 [007 언리미티드] 를 비롯한 극단적인 상업영화도 꽤 만드셨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이분은 언제까지나 바넷사 레드그레이브의 최고 연기 중 하나를 감상할 수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 실종에 관한 미스터리 영화 [아가사] (1979) 의 연출자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마디로,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감칠나게 맛 볼 수 있는 유려하고 맵시있는 일품요리같은 한편을 뽑아내는 감독님이시라는 거겠다.


앱티드 감독이 그려내는 80년대의 소비에트 연방은 핀란드에서 이루어진 (소련 당국에서 “이런 식의 끔직한 살인사건은 자본주의 서방사회에나 있지 우리 나라에는 없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치를 거짓 선전에 이용하지 말라” 라는 식으로, 공식적으로 로케이션 불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로케이션을 풀로 활용한 결과, 약간 인공적이고 지나치게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광활하고 탁 트인 공공시설과 공원 등의 자연적 배경과, 촘촘하게 생활의 때가 묻어있고, 잡동사니들이 들어찬 사적 생활의 장의 대치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명인 리처드 실버트의 형제인 폴 실버트로 1978년에 [천국은 기다릴 수 있다] 로 아카데미상 수상) 등의 공간 감각에 있어서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배우들이 다 영국 액센트로 말하고 있어도 이 한편의 풍광은 소비에트 연방 “처럼” 보인다는 거다.


지나치게 80년대적인 트렌드에 갇혀 있는 부문이라면 개인에 따라 선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타이타닉] [브레이브하트] 의 작곡가 제임스 호너가 맡은 음악을 거론할 수 있겠다. 카차투리안의 발레 음악을 연상시키는, 러브신에 붙여진 로맨틱한 멜로디는 감미롭긴 하지만, 70년대의 제리 골드스미스의 명작들이나 나중에 담당한 [러시아 하우스] 스코어에 비교하더라도, 좀 시끄럽고 뻔한 방식으로 “서스펜스” 와 “액션” 을 따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액션-첩보영화적인 요소는 어차피 본령이 아니고 곁들이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을 바에는, 좀 더 본격적인 미스터리 영화의 내실에 충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고급 엔터테인먼트이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리 마빈과 윌리엄 허트의 팬 여러분께서는 필견의 명작으로 등급을 수정하시기 바란다.


원작에서는 아마도 납득이 가는 설명이 주어졌으리라고 짐작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생긴 한 두 가지 의문을 재미삼아 적어본다. 하나는 흑담비 털가죽이 웬만한 범죄영화의 마약 보따리에 해당되는 중요한 물품으로 등장하는데, 그게 고급인 건 알겠는데 살아있는 흑담비 암-수 커플이 그렇게 비싼건가? 영화의 설정상 (80년대 당시의 가격으로) 몇백만달러 내지는 몇천만 (!) 달러 정도의 가치는 있어야 스토리가 성립이 되는데


그리고 다음 사항은 의문이라기보다는 지적하고 싶은 것인데, 어째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 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는 것이, KGB 요원들이 너무 약하다는 거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일개 민간인인 미국인 (,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간인” 은 아니다. 스포일러니까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에게 콩팥 부위에 한 방 퍽 얻어맞고 고대로 인사불성이 되는 것이, 왜 저렇게 비실거려? 라는 생각이 쓴웃음과 더불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막상 영화에서 이렇게 가장 쎈 두 캐릭터-- 오즈본과 브라이언 데네히가 연기하는 수수께끼의 미국인-- 의 대결은 오프 스크린에서 벌어져서, 관객들은 그 불곰과 핏불의 결투 같았을 싸움을 보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감질나네)


사족: 이것은 리뷰 때문에 나도 검색해보고 처음 알았는데, 모스크바의 경찰은 군대와는 관계가 없고 헌병 (military police) 도 당연히 아니지만, 밀리치아 (мили́ция) 라는 러시아어로 불리기 때문에 혼동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판 블루 레이의 영어 자막에서도 렌코가 도주하는 수상한 인물에게 “밀리치아다! 거기 서라!” 라고 경고를 발하는 장면에서 Militia 라고 표기가 되어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물론 어원을 따지면 러시아어 “밀리치아” 도 볼셰비크 혁명 당시 쓰던 “시민군” 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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