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  The Mummy


영국, 1959.     


A Hammer Film Production. 화면비 1.66:1, 1시간 27분, Eastman Color, Panavision, Mono Sound Mix.


Director: Terence Fisher

Screenplay: Jimmy Sangster
Cinematography: Jack Asher Associate Producer: Anthony Nelson Keys Producer: Michael Carreras Makeup: Roy Ashton Music: Franz Reizenstein Production Design: Bernard Robinson CAST: Peter Cushing (존 배닝), Christopher Lee (카리스), Yvonne Furneaux (이소벨/아낭카 여사제), George Pastell (메헤메트 베이), Michael Ripper (밀렵꾼), Felix Aylmer (스티븐 배닝), Eddie Byrne (멀루니 경위), David Browning (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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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헤메트 베이: 당신은 편협한 분이군요.

존 배닝: 편협한 게 아니고, 현실적인 것이겠죠.

베이: 편협한 겁니다.


블루 레이를 손에 넣었을 때 진작에 올렸어야 했을 것을, 크리스토퍼 리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나서야 이 고전 해머 고딕 호러의 걸작의 리뷰를 쓰게 되니 송구스런 마음이 앞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리 선생님의 대표작을 200편이 넘는 타이틀 가운데서 한 편 고르라고 한다면 물론 1958년판 [드라큘라의 공포]가 선두주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50년대와 60년대 고딕(및 SF) 호러의 세계적 부활을 주도한 영국 스튜디오 해머 프로덕션이 피터 쿠싱과 리 두 분의 압도적인 재능을 기용해서 제작한 고전 호러영화 중 최고작은 나에게는 앞으로도 이 [미이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가 메리 셸리의 위대한 초창기 SF소설의 영화화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30-40년대의 유니버설판 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메디컬 호러의 요소를 끌어들여 감각적 공포영화의 신기원을 구축하는데 공헌한 한편이었다면, [드라큘라의 공포]는 토드 브라우닝판 [드라큘라]에서 볼 수 있던 무대극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배제하고,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격렬하되 명료한 액션신과 (벨라 루고시를 비롯한 다른 백작의 묘사에서는 은유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드라큘라 백작의 섹스 어필을 전면에 내세운 크리스토퍼 리의 맹수와 같은 카리스마 등, 그때까지 존재했던 고딕호러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가히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제작자 마이클 카레라스와 테렌스 피셔 감독은 [미이라]를 영화화하는데 있어서는 의외로 과거의 유니버설 작품군이 지니고 있던 구시대적인 로맨티시즘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가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드라큘라의 경우, 해머 후세대의 백작님의 묘사에는 그의 인간이던 시절에 대한 노스탈지어 등 기타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는 경향성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를 이러한 트렌드의 정점에 놓고 있는데, 나는 반대다. 내가 보기에는 코폴라에 나오는 드라큘라 백작은 왜소하고 매력이 부족하다. 리처드 매시슨이 각본을 쓴 TV판 [드라큘라] 의 잭 팰런스나, 존 바담 감독의 70년대 리바이벌 연극의 각색 버전 [드라큘라] 의 프랭크 란젤라가 이러한 "인간적인 드라큘라" 에 더 합당한 예이다), 해머 드라큘라의 경우 그런 "인간적인" 면모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요즘 나오는 마블이나 디씨의 수퍼빌런보다도 훨씬 더 과묵하고, 액션으로 의사표현을 하시는 분이신 거다 (백작님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발산되는 시선이 몸에 꽂힌 사냥감에게 무슨 명령조의 대사가 더 필요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리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갈수록 각본이 처참해지는 드라큘라 시리즈 다섯 여섯편에 연속 출연하시다 보면, 언제까지 이놈의 뻘건 콘택트렌즈를 끼우고 으르렁거리는 "연기"를 계속하란 말이냐, 라고 지겨움에 몸서리치게 되실 만도 하셨을 법하긴 하다). 그러나 [미이라]에서 크리스토퍼 리가 연기하는 카리스는, 그 파워 넘치는 몸쓰기에 있어서는 드라큘라에 한 발도 꿀리지 않지만 (그리고 여전히 과묵할 수 밖에 없는-- 혓바닥이 없으니!-- 운명이지만), 백작님과는 전혀 다른 동기와 방향성을 지닌 캐릭터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플래쉬백에서, 카리스는 자신의 상사인 여사제 아낭카와 금단의 사랑에 빠졌을 뿐 아니라, 그녀가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죽은 사람을 황천에서 불러올 수 있는 "사자 (死者) 의 서 (書)"를 통해 그녀를 되살리려는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 죄값을 물리어, 혓바닥이 잘리우고 온몸에 방부조치를 당한 채 산채로 매장당한 카리스는 영국인 고고학자 배닝이 아낭카의 무덤을 열고, 그녀의 시체와 같이 봉인된 사자의 서를 경솔하게도 소리내어 읽자 되살아난다. 그는 이후로 고고학자들의 신성모독행위에 대한 복수를 획책하는, 카르낙교 (敎)의 이집트인 사제 메헤메트 베이 (해머의 "외국인" 전문 연기자 조지 파스텔) 의 지시에 따라 발굴팀 멤버들을 영국까지 쫓아와서 하나씩 살해한다.


위의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이, [미이라]에서는 속전속결, 스피디한 무대극적인 국면의 전환을 특기로 하는 해머 영화의 일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고대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아낭카의 죽음과 관련된 종교 의식과 카리스의 처벌에 관한 내용이 런닝 타임의 거의 1/3을 차지한다. 이 플래쉬백 시퀜스는 촬영을 담당한 잭 애셔 기사의 출중한 실력을 거의 최대한도로 뽑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약간 색이 바랜 듯 소프트한 질감을 유지하면서, 청색과 녹색에 기초를 둔 엑조틱한 색감을 버나드 로빈슨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실제화한 고대 이집트적인 사물들과 조화롭게 그려내는 데, 블루 레이의 고화질로 보면 그 물리적인 제작규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몽롱한 듯 하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아름다움을 구가한다. 최소한 내가 봐온 해머영화 안의 드라큘라의 트랜실베니아 성곽은 이러한 몽환적인 위엄을 지니고 다가온 적이 없는 듯 하다. 대사가 거의 없이 피터 쿠싱 선생의 담담한 너레이션과 프란츠 라이젠슈타인의 장중한 음악만으로 진행되는 이 시퀜스는 그 자체로서 독립된 한편의 중편영화로서, 일종의 의사(疑似) 도큐멘터리적인 감흥을 지니고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해머판 [미이라]는 1932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유니버설판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행각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인데, 물론 기본적인 스토리는 해머프로덕션의 모든 작품들을 일관성있게 관통하는 "야만"의 "전통적, 인습적 사악함" 에 맞서는 서구적 "문명" 의 "합리적 이성" 내지는 "기독교적 신앙에 기초를 둔 선" 이라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념구도에서 크게 일탈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 생스터가 집필한 각본에서는 이집트의 미이라를 움직이는 장본인인 메헤메트 베이의 종교적 신념과, 자신이 속한 문화를 매도하고 수탈한 대영제국의 하수인들에 대한 분노가 여과없이 표현된다. [드라큘라] 시리즈에서 보는 것처럼 성체나 성수와 같은 기독교적 상징이 동원되어 "외국에서 온" 사악한 존재를 물리친다는 설정도 없다. 비록 "사악한 존재" 라는 식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한편에서 진정한-- 죽음과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것은 영국인들이 아닌 "괴물" 카리스이며, 그에 대항하는 피터 쿠싱선생이 연기하는 존 배닝에 있어서는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약삭빠르게 문화가 다른 이들 (피식민자들) 의 순수한 감정을 나쁘게 이용해서 파멸로 몰아넣는 위선적인 "문명인 (식민주의자들)" 의 면모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제국주의 비판 (또는 제국주의자의 "죄책감" 또는 "뜨끔함")을 담은 서브텍스트라는 관점에서 이 한편의 사상적 백미라고 일컬을 수 있을 부분은 배닝이 (미이라가 들은 관을 짊어지고) 자신의 저택이 있는 마을에 이사를 온 메헤메트 베이를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방문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배닝은 "카르낙이라는 신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삼류 신이었죠. 이런 신을 믿는 사람들은 지능이 떨어지는 무리였을 것이 분명하오…" 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욕적인 발언을 던지고, 베이는 또 그것을 받아서 "음 아버님께서 살해당하셨다고요? 아, 제 무례한 태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의 역사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문명인입니다." 라는 식으로 아이러니가 뚝뚝 듣는 코멘트로 응수한다. 관객의 역사적, 문화적 입장에 따라서 이 장면의 사상적 함의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 흥미있는 시퀜스다. 


그러나, 쿠싱선생과 파스텔선생의 명연에도 불구하고 [미이라]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시는 분은 결국 크리스토퍼 리 선생일 수 밖에 없다. 당시 최고의 육체적 컨디션을 자랑했던 리 선생은 스턴트맨의 도움이 없이 가슴에 주먹 하나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 보이는 산탄총 구멍이 뚫리는 특수효과를 감수하면서, 호흡기관을 거의 완전히 막아버린 미이라 메이크업을 뒤집어쓴 채, 엄청난 박력의 육체적 연기를 보여주신다. 유니버설판의 미이라는 보리스 칼로프의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천천히 움직이는데 왜 희생자들이 도망을 못가고 죽임을 당하는지? 라는 의문을 불식시킬 수가 없는데, 해머판의 리는 정말 오밤중의 한산한 공원 같은 데서 딱 마주치면 그 자리에서 졸도하거나 허리에 힘이 빠져 쓰러져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용모뿐만 아니라, 전속력으로 도망쳐도 한달음에 쫓아와서 목을 비틀어버릴 것 같은 스피드감을 발산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카리스가 아낭카와 꼭 닮은 존 배닝의 아내 이소벨 (프랑스 출신 절세미인 이본느 퓌르노우)을 보는 순간 모든 사제의 명령과 종교적 의무를 잊어버린 채 그녀에게 애타게 손을 뻗고, 또한 그 사랑의 결실의 불가능함을 기억한 듯, 애처롭고 슬픈 눈망울로 힘없이 고개를 내리는 신의, 리 선생님의 대사가 일체 없이 보여주는 "눈의 연기" 는 말도 못하게 감동적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이소벨이 카리스에게 떨면서 말하는 대사, "카리스… 나를 내려줘요,"를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불쌍한 카리스! 자신이 섬기는 종교에서는 배교자로 찍히고, 수천년을 산 송장으로 무덤 속에 파묻힌 채 지내다가, 겨우 숨통을 틀고 가까스로 자신의 사랑의 대상과 꼭 닮은 여인네를 찾자마자, 제국주의자 양놈들에게 괴물로 몰려서 총탄 세례를 받다니… 카르낙이 되었던 여호와가 되었던, 하느님이 계시다면 카리스의, 방향은 잘못 틀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숭고한 사랑을 긍휼히 여기사 그의 영혼을 구제해 주시길 바라 마지 않는다.


사족: (스포일러로 간주할 수도 있는 내용) 이 한편에서는 위에 쓴 본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낭카와 이소벨은 그냥 얼굴이 우연히 닮은 두 다른 여성일 뿐이고, 이소벨이 아낭카의 환생인 것은 아니다. 환생이라는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더 로맨틱한 측면을 강화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지 모르겠는데, 최소한 내 입장에 보자면, 카리스가 몇 천년을 가슴에 품어온 사랑이,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구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고, 그 사실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감동적이고 슬프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냥 엉뚱한 여자를 잘못 본 거잖아? 착각은 자유…" 라는 투의 비아냥을 무릅쓰는 한이 있더라도, 지미 생스터의 각본은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사족 2: [미이라] 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투탄카멘왕의 저주" 라는 "미스테리"는 메리 셀레스트호의 실종사건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와 루머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카나본경의 1923년의 뜻하지 않은 죽음 때문에 이 "저주" 얘기가 탄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카나본경이 지휘한 분묘의 발굴에 관여한 58명의 인원중에서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에 여덟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건데 확률상으로보면 어처구니없이 실력이 모자라는 "저주" 가 아닐 수 없다.  자연사할 확률보다는 그래도 많은 수의 관계자들을 죽여줘야지 "저주" 로서의 체면이 서지 이건 뭐.  당사자가 그냥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저주" 는 보통 저주라고 부르지 않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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