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Interstellar


미국-영국, 2014.     ☆☆☆


A Legendary/Syncophy/Lynda Obst Productions, distributed by Paramount Pictures and Warner Brothers. 화면비 1.44:1 (IMAX 70mm), 2.35:1, 35mm. 2시간49.


Directed by: Christopher Nolan

Screenplay: Christopher Nolan, Jonathan Nolan

Executive Producers: Kip Thorne, Thomas Tull, Jordan Goldberg, Jake Myers

Producers: Emma Thomas, Lynda Obst, Christopher Nolan

Cinematography: Hoyte Van Hoytema, N.S.C

Editor: Lee Smith

Production Design: Nathan Crowley

Supervising Art Director: Dean Wolcott

Special Effects & Visual Effects: New Deal Studios, Double Negative

First Assistant Director: Nilo Otero

Costume Design: Mary Zophres

Music: Hans Zimmer


CAST: Matthew McConaughey (쿠퍼), Anne Hathaway (브랜트 박사), Michael Caine (브랜트 교수), John Lithgow (도날드), Mackenzie Foy (10세의 머피), Jessica Chastain (30대의 머피), Casey Affleck (30대의 토미), Wes Bentley (도일),

David Gyasi (로밀리), Matt Damon (만 박사), Leah Cairns (로이스), Ellen Burstyn (노년의 머피), Bill Irwin (TARS 목소리출연), William Devane (윌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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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수시장에서는 [덤 앤 더머] 의 속편에도 밀리고 있는 [인터스텔라] 가 세계시장에서는 4억불이 넘는 돈을 이미 벌어들였고, 그 중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미국 언론에 소개될 정도의 규모로 메가히트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다크 나이트] 가 [미이라] 3편인지 뭔지 그 떨거지 같은 영화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 통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웬일이니? 그러나 이 사실 자체에는 너무 큰 사회-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대한민국 같은 작은 규모의 시장에서 세칭 1천만영화를 만들려면 스크린을 독과점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덤 앤 더머] 속편과 [인터스텔라] 가 똑 같은 숫자의 한국 극장 스크린에 걸렸어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라면 또 모르되, 극장가에 이른바 "볼거리 영화" 가 [인터스텔라] 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원래 좋아서 보시는 분들에 더해서 그냥 흥미본위 또는 호기심 위주의 관객수에 가속도가 붙어서 대박을 터뜨렸다고 해도 별로 신기하거나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에서도 꾸준히 보는 사람들은 보고 있으며 (웃돈을 얹어줘야 표를 살 수 있는 아이맥스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공석이 거의 양 가장자리의 두 서너 군데 밖에 없는 만석이었다. [인셉션] 첫날 개봉 때도 이렇게 꽉 차지는 않았었음) 현재 내 주위에서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화제거리가 조금이라도 되고 있는 영화는 단연 [인터스텔라] 이다.


아무튼 한국에서의 이 한편의 상업적 성공을 고려하면, 이 시점에 [인터스텔라] 에 대해 한국어로 쓰는 리뷰라는 것은 사실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분들께 새롭게 이 작품을 소개한다는 의미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다. 글 쓸 때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된다만, [인터스텔라] 를 보고 이게 SF 로서 아무런 새로운 게 없다는 둥, 뭐 소시적에 다 읽은 얘기라는 둥 콧방귀를 뀌는 고고한 SF통 분들, 멜로다, 질질짠다, 라고 무시하시는 분들, 대규모 헐리웃 영화고 우주선이 나온다는 "공통점" 을 지닌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하고 [인터스텔라] 하고 도통 아무런 구분이 안 가시는 분들께서 내 리뷰를 읽고 그분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러길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왜 여전히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머리통을 부여잡고 이 글을 쓰고 앉아 있는데? 글쎄.


이 리뷰에는 사실 [인터스텔라] 영화와 비슷한 모티브가 있다. (뭐라구?) 하하, ^ ^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 마시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리뷰는 미래에 부치는 편지, 즉 내가 이런 영화를 좋아했다, 라는 기록의 편린과 같은 것이라는 거다. 니가 쓰는 모든 리뷰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을. 이렇게 어떤 영화의 미래에 자신의 영화연구가로서의 자존심을 다 걸고 그 한편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활동사진이라는 것은 백 편에 한 편, 아니 2백편에 한 편도 만나기 힘든 것이다. 내게 정팔포체 (테서랙트) 를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5차원에 사는 "그들" 의 능력은 없을지라도, 나는 20년, 30년, 50년 이후의 세상에서 [인터스텔라]가 누리게 될 진정한 고전으로서의 영광을 지금 예견하면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죽고 없어진 까마득한 훗날, 2014년 11월말에 쓴 이 리뷰가 컴퓨터 바이트로 남아서 어딘가 사이버스페이스 내부를 떠돌아다니다가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 발견자는 2014년 당시에 [인터스텔라] 의“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때 이렇게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도 있었구나 그것 참 신기하네,정말 그렇게 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스텔라] 는 예술작품으로서 신기원을 이룩한다거나, 뭔가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매체의 혁명적인 재구상을 시도한다거나 그런 한편은 아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이런 기준이 훌륭한 영화를 규정해야 한다는 프랑스 누벨 바그적인 사고방식이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씨네필들의-- “영화관”을 지배해왔다. 이제는 좀 벗어날때도 되지 않았나? 장 뤽 고다르의 혁신적 성취들의 진정한 적자 [摘子] 는 무슨 사회주의 시네마 베리떼 이런 게 아니고 MTV 라는 사실등도 좀 직시하고 말이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고 캐주얼한 SF 팬이 아니고 좀 그 방면에 읽은 게 있는 사람들이 보면 알 수 있듯이, [인터스텔라] 에서는 과거에 무수히 서사화되고 공식화되었던 SF 영화의 내용들을 압도적인 논리성과 서사의 밀도를 갖춘 채 최첨단의 시각적 상상력으로 표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인터스텔라] 를 보고 “내용”이 새로운 게 없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7인의 사무라이] 를 보고 왜 저렇게 뻔한 사무라이가 칼싸움하는 영화를 찍었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7인의 사무라이] 이전에도 그야말로 영화의 초창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 영화사상에서는 사무라이들이 주인공인 온갖 종류의 활극들이 수백편 (어쩌면 수천편?) 만들어져왔다. [7인] 의 위대성은 그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 뻔하디 뻔할 사무라이 활극 액션을 가지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에 있는 것이지, 그 재료가 닭고기냐 돼지고기냐에 있는 게 아니다.


[인터스텔라] 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SF 적 설정과 서사적 장치들은 이제까지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최소한 한번 정도는 시도가 된 적이 있는,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중고품” 들이다. 포인트는 이 한편에서처럼 정서적으로 강렬한 드라마, 우리의 혼백을 빼놓게시리 아름답고 웅장하면서, 또한 동시에 ([2001년 우주 오딧세이] 처럼) “예술”의 이름을 빙자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무시해버리지 않는 비주얼,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작가의 사상적 무장, 이렇게 삼위일체의 포스를 가지고 이러한 중고품들이 은막 위에 제대로 구현된 적이 이제까지 인류 영화사상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오리지널” 의 특질이 아니라면 뭐가 오리지널인가? 스마트폰이라는 단위에서 오리지널한 발명은 전혀 불가능하고 아예 “전화” 를 넘어서는 통신기계를 발명한 놈에게만 “창조자” 로서의 칭호를 주어야겠다면, 그렇게 하시라. 내 밥줄에 직통으로 연계된 연구서적을 제외하면 고전 영화를 블루 레이와 디븨디로 사 모으는데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고 사는 나같은 “고전주의자” 에게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 스스로 영화팬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한마디로 말해서 (코웃음이 나오는) 부조리에 다름 아니다.


시간도 없고 바이트도 부족한데, 구구하게 이 한편의 여러가지 우수한 측면을 늘어놓기 보다는 두번째 보고 나서 새로이 눈에 들어온 것들을 기술하는데 집중하기로 한다. 먼저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그냥 리얼리스틱하다는 측면을 떠나서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세월의 잔혹함” 과 “버림받은 우주관계 과학기술의 영세한 꼬라지” 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무슨놈의 우주선 안이 호텔 로비같냐” 라는 비판을 줄기차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SF 적인 상상력에 확고한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타 트렉] TV 시리즈에서 받는 인상과는 대극적이다. 엔듀런스호의 내부부터도 새까맣게 기름때가 끼었으며, 승무원들이 냉동수면을 하는 장치는 푯말만 그렇게 안걸었다 뿐이지 막 잡은 생선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널널해 보인다. 나같으면 10억원을 줘도 저런 냉동수면 장치에는 들어가지 않을거다.


금빛의 고리안에 박힌 흑진주 같은 블랙홀, 천천히 회전하는 수정구처럼 생겨먹은 웜홀, 아이슬랜드의 어디에서 저런 데를 찾아서 로케이션했을까 라는 의구심이 절로 드는 닥터 맨 행성의 얼어붙은 구름 등의 외계 세상의 비주얼의 디테일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레벨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3시간에 육박하는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강약이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놀란의 각본과 편집, 그리고 도킹 신 등의 강렬한 서스펜스. 그리고 필립 글래스의 [코야니스카치] 를 방불하게 하는 장중하면서도 섬세한 한스 짐머의 음악. 처음 감상했을 때는 이 음악이 어느 정도 귀에 거슬렸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그리고 사운드트랙으로 수없이 감상하고 나니) 그것은 단순히 내가 생각하던“우주여행”을 다룬 영화에 걸맞는 스코어라는 편견에 그의 거의 종교적이고 명상적이다시피 한 음색이 충돌했기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들. 두번째 보았을 때 나는 앞좌석 네번째 열에서 보았는데 그 정도면 스크린에 거의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였지만, 20분 정도가 지나자 영화에 완전히 몰입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연기자들의 연기에 뒷좌석에 앉았을 때는 전혀 몰랐던 것들이 쇼킹하게 포착이 되더라. 다른 분도 아닌 케선생님께서“당신의 연기를 카메라가 찍을때는 0.5 밀리미터의 차이지만 스크린에 당신 얼굴이 크게 펼쳐져 보일때는 1미터의 크기로 확대해서 나타난다”라고 말씀하셨던 글이 새삼 생각난다. 매튜 맥코네이가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는 신이 여러 곳 나오는데 두번째 봤을때는 그 신들의 각자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감정의 표현력이 뚜렷이 느껴진다. 마이클 케인 교수님의 점차적인 노쇠와 그 슬픈 눈망울에 배인 절망감, “23년이 지났다”라는 말을 로밀리로부터 듣는 순간의 앤 해서웨이의 눈매에 어른거리는 정신이 와해될 것 같은 수준의 죄책감, 맥켄지 피 소녀의 앙칼지게 노려보는 표정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혼자 따로 떨어져서 고독한 존재가 되리라는 예감에 대한 슬픔과 분노, 그리고 윌리엄 드베인, 엘렌 버스틴 등의 출연시간이 불과 2, 3 분도 안되는 조연들의 압도적인 관록. 메이크업부터 연기와 대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시간”의 중압감과 그 무자비함, 그리고 그 시간의 폭위로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켜내려는 캐릭터들의 투쟁이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촬영하고 지도했다. 하긴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차피 오스카도 골든 글로브도 “지구에 발을 디디고 선 (시시껍절한) 예술영화” 제위에서 연기를 피로하신 분들께 갈 터인데.


단지, 자막 번역에 관한 한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으신 (나도 좀 번역을 하긴 했지만 주로 한국어에서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oldies 님도 사석에서 언급하신 바 있으되,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에는 한국사람들을 포함한 비 영어권관객들에게 불친절한 요소가 하나 분명히 있다고 여겨지긴 한다. 그것은 자막으로 짧게, 또한 정확하게 옮기기가 무척 힘든, 농축된 대사다. 놀란 영화에서 대사로 표현되는 유머감각이나 또는 감정상의 기복은 단촐하다는 수식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결하고, 또 그의 작품에는 다른 SF 나 장르 영화들이 리얼리즘의 환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는 “기술적” 대사 (“CF-1 체크. S-11 에서 E-42 로.” CF-1 체크 완료. 이상 없음, 로져.” 뭐 이런 따위의,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고 자막번역상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대사들) 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인위적인 클로스업이나 대립되는 의견차이 따위를 각본에 집어넣어서 현재의 상황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구실로 삼지도 않는다. 까놓고 말하자면 내 주위의 미국 관객들도 대사에서 분명히 전달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스를 여러 번 보았으니, 단순히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수준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인터스텔라] 를 한 번 이상 보면 “말이 막히니까 배우들을 울리거나 스펙타클로 메꾸려한다”라는 식의 인상은 그야말로 편견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스펙타클로 때우려는 짓거리는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행태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이 [2001년 우주 오딧세이] 를 공개했을 당시만 해도, 그는 [스파르타쿠스] 와 [닥터 스트렌지러브] 를 만든 재능 넘치는 헐리웃의 “주류”영상파 감독이었으며 (아직 [시계장치 오렌지] 가 많은 평론가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전의 일이다) 누구도 손 댈 수없는 신적인 작가라는 오라가 없었다. [2001년] 에 대해서도, 당연한 일이지만, 상당수의 “별것도 아닌 영화를 가지고 호들갑들을 떤다” 라는 식의 시큰둥한 리뷰들이 쓰여졌었고, [키네마 준포] 1969년 외국영화 베스트텐 리스트에서는 그나마 [졸업], 루키노 비스콘티의 [이방인], 장 뤽 고다르의 [남성-여성] 을 누르고 5위를 차지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 최고의 “충격적인 뉴 시네마” 는 [2001년] 이 아니라-- [2001년] 은 그 파격적인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SF” 영화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아서 펜 감독의 [보니와 클라이드] 였다. 이 한편이 향후의 뉴 어메리칸 시네마의 발전과 융성에 미친 영향력을 가늠해 보면 [2001년] 의 비주류적인 영화사적 위치를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작금의 [2001년] 의 고전으로서의 위상은 그 계보를 잇는 후기의 작품군들이 1968년 시점에서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형태로 쏟아져 나오게 된 미국영화의 70년대 이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인터스텔라] 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영화사라는 측면 뿐 아니라, SF 와 현실 세상과의 유기적인 연관이라는 또하나의 역사와 계보라는 측면에서도-- [그래비티] 와 더불어, 그러나 [그래비티] 보다 더 요충 [要衝] 의 지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진다--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한편이라고 믿고 있으며, 결국 그러한 의미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총체적인 문화사에 있어서 [2001년] 을 능가하는 위상을 획득하게 되리라고 감히 예상을 하고 싶다.


[인터스텔라] 만 보지 말고 지금 우리의 현실도 보고 [카트] 도 봐야 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모 기자님의 글을 읽었다. 공감한다. [카트] 같은 상업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든 절실한 스토리가 될 수 있으면 많은 대한민국의 관객들과 접속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주장들이 [인터스텔라] 의 퀄리티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나는 [인터스텔라] 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어진 다음에도 여전히 위대한 영상예술작품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여기부터 밑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시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보시고 나서 다시 읽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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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똑똑한 관객/평론가분들이 (왜 이분들께서 크리스 놀란 영화에다가만 이러시는 건지 난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지스] 에서 마치 배트맨이 무슨 월 스트리트 자본주의의 수호자인 걸로 해석을 내린 것처럼, [인터스텔라] 를 “사랑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라는 식의 시시하고 “비과학적인” 메시지를 옹호하거나, 또는 무슨 미국의 제국주의적 과학 기술을 찬양하는 한편이라는 식의 사상적인 “호도 (糊塗)” 를 하고 계신 걸 볼 수 있는데, 물론 겉에 드러난 모티브는 서부극적인 외톨이 히어로의 설정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천조국 만세성 이념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러한 해석에 심각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물론 [인터스텔라] 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영상예술에는 많은 종류의, 심지어는 서로 상호모순될 수도 있는 주제의식과 모티브가 혼재한다. 그 중에서 내가 비교적 명료하게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사상적 실마리 (쓰레드) 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터스텔라] 는 결국 이것에 관한 영화다, 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러면 “이것”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 와 “인간” 의 생존의 가능성과 의미에 관한 고찰이다. 그야말로 더 이상 고전적일 수가 없는 SF 테마의 왕도를 가는 주제이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가져다주는 플롯 요소 중 하나는 인류의 멸망을 과연 주인공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영화 후반부에서, 보통 이런 장르 작품에서는 통상 “이성의 목소리” 로 기능해야 할 과학자들-- 브랜트 교수와 (정말 얄밉도록 적절하게 캐스팅된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닥터 맨-- 이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인 시점에서 이미 이 딜레마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내놓았다는 “반전” 이 제시된다. 즉 인류는 하나의 종 (種) 으로서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개인으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사회학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지닌 사랑과 우정 등의 감정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내려야 하는 냉철한 결단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닥터 맨과 브랜트 교수는 “우주여행을 통해 당신들의 가족을 구할 수 있다” 라는 사기극을 연출하고 잔인하게도 주인공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용해서 우주에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살도록 보내버린다. 한 시대 전의 일본 SF 같았으면  “쿠퍼,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구할 수 없었어요... (눈물)” “브랜트 박사님,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야말로 새로운 아담과 이브입니다.” “(눈물을 닦으며) 그래요 쿠퍼. 사사로운 감정에 좌우되는 이 약한 여성을 용서해 주세요!”  뭐 이딴 식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내용이란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안에서는 닥터 맨은 스스로 “인류를 유전자로부터 재활시키는” 플랜 B 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왜냐고? 닥터 맨 스스로가 말하지 않는가. 죽기 직전에 자기 자식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가 종의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개체가 살도록 발버둥치도록 만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개체가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이 종이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의 유전적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인류의 생존” 따위의 추상적인 대의를 저버리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는 것도 역시 생존 본능의 유전적 프로그램에서 나온다. 쿠퍼가 닥터 맨보고 “비겁자” 라고 비난하자 그는 “예스. 예스. 예스” 라고 그 비난을 수긍한다. 그는 자신이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행위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살고 싶다는 욕망이 유전적 프로그램에서는 나오는 것 (이라고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인 이상, 헤어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져버린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인류가 살아남아야 하는 당위” 라는 것은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스스로의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결단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공념불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존 본능을 거슬러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게 하게끔 하는 포스는 무엇인가? [인터스텔라]는 이러한 포스가 우리의 유전적 프로그램이라는 답을 일단 제시하고는 그것이 어떻게 자기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제시되는 것이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브랜트 박사가 주장하는“사랑”이다. 사회진화학적인--“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존재하는가-- 해석을 제시하는 쿠퍼와 도일에 맞서서 브랜트 박사는 말한다.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토록 강렬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라고.


이미 많은 SF 가 이 주제를 천착했지만, 예를 하나 들자면 스페이스 오페라의 걸작인 댄 시먼즈의 [하이페리언] 시리즈에서도 [인터스텔라] 를 방불케하는 시공을 초월한 수만년 미래의 인류가 등장하는데, 그 인류 진화의 궁극적인 모습인 “신” 은 허공을 연결하는 무 (無- The Void That Binds), 지성 (Intelligence)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존재인 공감 (Empathy) 이라는 “3위일체” 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그 신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은 바로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랑 (Banal Love)” 에서 나온다는 설정이 되어있다. [인터스텔라] 는 막판에 블랙홀 속에 들어가버린 쿠퍼의 모험을 통해 브랜트 박사와 에드먼드 대원의 사랑, 그리고 쿠퍼가 자신의 딸 머피에게 쏟아붇는 사랑이 우리의 뇌가 일시적으로 생화학적으로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고, 무한히 연속되는 테세랙트 안의 각 시간의 유닛의 한 시점과 다른 한 시점을 연결할 수 있는 포스라는 것을 구체적인 비주얼로 묘사해 보여준다. 왜 하필이면 자기 집의 딸의 방인가? 왜 하필이면 열 살 때 딸의 방의 책장 뒤에 떨어졌나? 그것이 “사랑” 이라는 나침반이 인도하는 좌표였기 때문이다. 이해가 가시는가?


[인터스텔라] 자체가 서사상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길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지쳐서 더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단지, 여러분들이 [인터스텔라] 에서 보여지는 모든 장면들-- 교차 편집의 장면들은 특히나 더-- 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거나 혹은 “앞의 장면 뒤에 뒤의 장면이 온다” 는 직선적 서사의 구조를 지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영화를 보신다면, 지금 이미 존재하는 각종의 해석들보다도 훨씬 많은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만 강조하는 데서 그치고 싶다. 이 영화 전체가 노인이 된 머피의 회상일 수도 있고, 마치 [배틀스타 갤럭티카] 신판과 [스타 워즈] 원판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마지막 시퀜스의 시간적 위상도 처음 보고 은연중 생각한 것만큼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브랜트 박사가 에드먼드를 땅에 묻은 것은 언제의 일인가? 브랜트 박사의 에드먼드 행성의 캠프는 저게 다 두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시설 맞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인터스텔라] 가 [인셉션] 보다 더 “단순한” 영화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환경파괴로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류의 어두운 장래에 관한 한편이지만,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에 바탕을 둔, 슬프지만 희망이 가득찬 영화였다는 것을 재삼 확인한다. 제임스 모나코가 [닥터 스트렌지러브] 를 두고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지성이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있는 이상 우리는 핵전쟁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 언사를 [인터스텔라] 에 헌정하고 싶다.



그대여, 나의 아버지여, 이제는 슬프게 줄어든 모습

비노니, 그대의 신랄한 눈물로써 나를 저주하시고, 축복해 주세요

순순히 그 좋은 밤 속으로 가지 마세요

빛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시고 또 분노하세요 


And you, my father, now on the sad height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 딜런 토머스 (1914-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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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영화] 쌍생령 Twin Spirit (차예련 주연) <부천영화제> [2] Q 2015.07.23 2508
77 [영화] 하빈저 다운 Harbinger Down <부천영화제> [2] Q 2015.07.21 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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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영화] 미이라 The Mummy (1958) (크리스토퍼 리, 피터 쿠싱 주연) [1] Q 2015.06.16 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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