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했던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소... 좋든 나쁘든 그걸로 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 모든 [과정과 결과는] 나의 것이오."

 

데인저러스 메소드/위험한 치료법 A Dangerous Method

 

영국-스위스-캐나다-독일, 2011.     

 

An RCP/Lago Film/Prospero Pictures/Astral Media Production, in association with Canadian Film or Video Tax Credit, Elbe Film, Millbrook Pictures, The Movie Network and Téléfilm Canada. 화면비 1.85:1, 1시간 40분

 

Directed by: David Cronenberg

Screenplay: Christopher Hampton

Based on the book “A Dangerous Method” by John Kerr, and Christopher Hampton's play, "A Talking Cure" 

Music: Howard Shore

Cinematography: Peter Suschitzky

Production Designer: James McAteer

Art Direction: Sebastian Soukup, Gernot Thöndel

Editor: Ronald Sanders

Costume Design: Denise Cronenberg

 

CAST: Michael Fassbender (칼 융), Keira Knightley (사비나 슈필라인), Viggo Mortensen (지그문트 프로이트), Vincent Cassel (오토 그로스), Sarah Gadon (엠마 융), Andre Hennicke (블로일러 박사), Katharina Palm (마르타 프로이드), Mignon Remé (융의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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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님의 신작이다.

 

곧이어 [코스모폴리스] 가 개봉될 것이므로 2012년에는 작년 초-중반처럼 크선생님 작품 금단증상에 괴로워하면서 살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수술하고 어쩌구 해서 2012년에는 극장영화보기에 크나큰 지장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다행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크라이테리언에서 크선생님의 80년대 “호러” 영화들을 복원해서 블루레이로 출시하고 하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크선생의 신작을 바라보는 영화저널리즘세력의 시큰둥하고 박자가 엇나가는 반응들은 여전하다. 나는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는 (왜 이런 영문 제목이 달린 것일까? [위험한 치료법] 이나 [위험한 방법] 이라고 번역해서 붙이면 맨숭맨숭해서? 싸구려 호러영화로 오인받을 까봐서? 이 지구상에서 자기의 일편이 “싸구려 호러”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가장 덜 신경을 쓸 위대한 예술영화작가의 제 일 순위가 크선생님이실텐데) 잘 알려졌다시피 칼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교우관계 그리고 결별에 관한 이야기를 두 심리분석이론의 창시자이자 그들과 실제로 복잡한 관계가 있었고 러시아에 망명해서 러시아와 소련의 심리분석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비나 슈피일라인 (1885-1942) 이라는 환자이자 심리분석가였던 여성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먼저 여기서 마치 융과 프로이트 사이에 사비나라는 여자가 끼어서 옥신각신 하면서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어쩌고 그런 멜로영화의 플롯이 들어가서 확 깬다 이런 투의 비난 리뷰를 읽으신 분들은 그런 글들은 집필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무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내용” 이 한국식 “멜로” 하고 비슷하다고 해서, 또는 여자의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리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그런 신이 나온다고 해서 무슨 에로영화에다 연애타령하는 연속극 합한거잖아, 이런 식으로 싸잡아 규정해 버리시면 어떡하나.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실 거면 장 뤽 고다르 초기 작품같은 “명작” 들은 그 세계관의 유치하고 코치함에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어떻게 보시려고 하시는지.

 

요번에도 [더 플라이] 이후의 크선생님께서 영화를 한편씩 만드실때마다 던져지는 세간의 뻔한 비판들이 빠짐없이 영화평론, 기사 쓰시는 분들이 쓰신 글들에 보인다. 이창동감독의 [시] 가 왜 “시적” 이 아니냐 해서 비판당했던 것처럼 크선생의 영화도 왜 이렇게 얌전하냐, 왜 괴상한 특수효과가 나오지 않느냐, 바꾸어서 말하자면 왜 이렇게 지적이고 사변적이냐 (인 척 하느냐) 라는 식의 비판이 어김없이 퍼부어지고, 개중에는 케이라 나이틀리의 정신질환에 걸린 사비나를 연기하는 스타일이 너무 과장되었다, 연기를 처절하게 못한다, 심지어는 크선생님이 연기 지도를 할 줄 몰라서 망쳤다, 라는 식의 나이틀리 캐스팅을 걸고 넘어지는 글도 있다 (후자의 지적에도 나는 단 1 마이크로그램도 찬성할 수 없지만 이해라도 가기는 한다).

 

문제는 이분들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교양의 한계에 도전해서 어떤 경우는 그것을 초월해 버리거나, 아니면 이런 이슈는 이렇게 다뤄야 돼, 예를 들자면 “시” 에 관한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시적이라야 돼, 또는 정신분석의 기원에 관한 영화라면 이런 방식으로 정신분석이론을 반영하는 꼴을 보여줘야 돼, 라는 식의 자신들의 기대와 예상의 수준을 뭉개버리는 작품이 나타나면 (토니 레인즈가 박찬욱 감독의 [금자씨] 에 나오는 클래식 배경음악을 영국 TV 방송에서 써먹는 걸 유치하게 썼다는 둥 하면서-- 피에르 부르뒤에 아는 사람들이 읽으면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비웃었듯이), 정작 그런 한편은 갖은 핑계를 대면서 “어른스러운 영화, 생각이 깊은 영화” 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남이 만들어놓은 물건을 품평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에고를 만족시켜준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은 나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평론들이 SF, 호러나 스릴러 장르로 명망을 쌓은 작가들에게 유독 많이 던져진다는 사실은 사회적, 문화적 편견이 전제되어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게 만든다.

 

알기 쉽게 좀 저급한 방식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원작에 비해서 지적 수준이 떨어진다, 왜 영화란 이렇게 지적인 사고와 연결되지 않는가” 라는 투의 글쓰기를 하면서 사회에 팽배해 있는 영상매체와 장르적 문화상품에 대한 편견과 무지의 물결을 타고 쉽게 살아오신 분들께서 정작 지적 수준이 자신들의 그것을 훌쩍 넘어서는, 내지는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론적 고찰이나 사상적 성찰이 아예 핵심 주제인 영화에 부닥뜨리면 “재미없다, 왜 이리 짭짤한 게 안나오고 그냥 배우들이 앉아서 얘기만 하냐” 라고 불평을 늘어놓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웃기는 얘기가 아닐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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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저러스 메소드] 의 진정한 가치를 나보고 말해보라면 최근 본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내가 십몇년전부터 꿈꿔오던 지금보다 한단계 더 진화된 모습의 시네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을 영화로 만들어서 이걸 보면 그 어떤 대석학이 쓴 칸트 연구서 또는 개설서보다도 더 [순수이성비판] 의 내용을 더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미래 또는 공상속 세상 (누누히 말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공상” 은 “리얼리티” 보다 결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 “영화” 의 모습에 근접했다는 점일 것이다. 크선생님은 프로이드와 융의 이론을 “[아바타] 같은 애들 그림을 보고 열광하는 무지렁이 관객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폄삭하고 대중화” 하지 않았다. 그런 “심오한” 이론에 설탕물을 타려는 목적으로 사비나 슈필라인의 캐릭터를 끌어들여서 융과의 섹스관계니 연애타령이니를 삼입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이론체계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프로이트와 융의 물리적 육체적 경험과 관찰이 직접 머리속의 이론 체계로 발전해가는 양태를 그것 자체로 드라마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한편이 심오한 내용을 멜로드라마를 삼입해서 망쳐놓았다는 투의 비판은 나는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러한 견해는 (모두들 그렇게 질알맞게 평생을 통해서 “공부” 라는 행위에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자를 하고 자기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강요하는 주제에) 소위 말하는 “심각한” 사상이 우리가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익히 접하는 연애질,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 질투심, 자만심, 편집증적 두려움 등의 감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착각에 일상적으로 매여 살면서, 또 그러한 착각을 어려운 언어로 포장해서 설파하는 문화지배세력에 꽉 잡혀 살아가는 그런 사회의 “민중”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만.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주지하다시피 크리스토퍼 햄튼의 연극의 영화화라는 출신성분을 지녔지만, 루이 말 감독의 [42번가의 바냐 백부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극적이라는 소감은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계산적으로 “영화적” 이다. 피터 수쉬츠키 촬영감독, 제임스 매커티어를 위시한 프로덕션 디자인 팀, 그리고 의상 디자인 담당의 데니스 크로넨버그등 크선생님의 오랜 협력자들이 결코 관객들의 주의를 고의로 환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세심하고 유려하게 구축해놓은 비주얼의 세계는, 연극의 그것과는 다른 질감과 색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뿐 아니라, 이 한편의 사상적 주제와도 언제나 깔끔하게 유기적으로 대응한다.

 

제작진과 배역진의 이름이 뜨는 메인 타이틀을 결코 범상하게 다루지 않는 크선생님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데인저러스 메소드] 의 메인 타이틀에서는 화면 가득히 껄끄러움과 푸석푸석함을 거의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확대된 하얀 종이에 잉크가 까맣게 번진 펜으로 쓴 알파벳들이 나타난다. 이 모두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종이와 펜의 글씨자국은 우리의 사상과 감정이 우리의 두뇌를 떠나서 소통의 흐름을 타고 전파되는 순간 그것들은 구체적인 소통의 도구를 통해 물화 (物化)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은근히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분석학의 기원을 다룬 영화라는 편견에 맞장구쳐주는 방식으로 캐릭터들의 “심리상태” 를 현란하게 시각화하는 대신에, 크선생님은 정갈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한 번 보았을 때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은근한 감각적 자극-- 에로티시즘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을 지 몰라도-- 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캐릭터들이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지성적 통찰을 어떻게 정리하고 표현할 것인지 사안에 사안을 거듭하면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일때 카메라는 어쩌면 우리가 부수적인 디테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물건과 배경들을 잡아낸다. 계속해서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물건” 과 “환경” 들의 모습들-- 심리반응 측정기의 검게 찌들은 가죽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감촉과 구리빛 금속의 둔중함이 결합된 기묘하게 전근대적인 텍스쳐, 프로이트 박사의 책과 잡다한 물품들로 꽉 들어찬 책상, 융의 부유한 아내 엠마가 남편에게 “선물” 한, 사비나가 처녀성을 상실하고 흘린 피에 물든 속옷을 연상시키는 검붉은 돛을 단 요트— 은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이런 물건들의 상징성을 “독해” 해서 캐릭터들의 “정신분석” 게임을 해보자고 홀리는 대신에, 오히려 그런 게임을 차단하고 열린 마음으로 융, 프로이트 그리고 슈피일라인의 행동과 생각을 규정하고 형성했던 “환경” 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가 정신의 세계이고 어디까지가 육체/물질의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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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기에 따라서는 21세기 최고의 유물론자 영화작가라고도 불릴 수 있는 (당연히 신도 믿지 않고 영혼도 믿지 않는)크선생님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있다고 증명도 할 수 없는 그 무엇”— 인간의 의식 그것도 겉으로 드러나보이지 않는 의식세계— 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다 바쳤던 프로이트와 융을 한쪽은 사이비 또는 워너비 과학자, 다른쪽은 무슨 타로카드와 심령술에 심취하고 했던 현대의 컬트 교주, 라는 식으로 비꼬아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크선생님은 이 역사상의 인물들을 자신들의 태생적, 사회적, 정신적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한계가 자신들의 물질적, 육체적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정직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물론 서로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거짓말도 늘어놓고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스스로의 행위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분석” 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수치스러운 줄 알면서도 문화권력을 얻기 위해서, “지식인” 이라는 특권계층에 편입되고 싶어서, 그리고 인터넷 그런 공간에서 남들에게 떠받들이기 위해서 자행하는 “이해될 수 없는 세상에 자기의 편견을 덧씌우기와 도덕적 판단이라는 이름의 난도질” 이 아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세계를 결코 그것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자명한 한계를 지닌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작업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에 대한 해석이 크선생님의 초기 호러영화부터 일관되게 존재하는 “세계관 (우주관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을지도 모르겠다)” 에서 1 옹스트롬도 벗어남이 없다는 사실은 내가 또 구태여 상기시켜드릴 필요가 있을까? (뭐가 “옛날 크로넨버그보다 도전적이 아니다” 냐? 옛날 크로넨버그 영화 보기는 보셨어? 뽀르노 배우 마릴린 체임버스가 나와서 겨드랑이의 흡입구로 게게 침흘리고 뎀비는 남자들 피빨아먹고 광견병을 옮기고 하는 [래비즈]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인겨?)

 

물론 이러한 기획이 다 크선생님이 백퍼센트 주도하신 건 아니고 햄튼의 연극이라는 저본 (底本)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이러한 한계들을 우리가 명확하게 인식했을 때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맞먹을 정도로 기본적이고 절실한 질문을, 크선생님은 [데인저러스 메소드]라는 작품을 통해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던지려고 노력했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차치하고 (여기에서 프로이트와 융은 둘 다 겨우 자신들이 인류 역사상 줄곧 굳게 닫혀 있던 문을 한번 열어보는 시도를 해봤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선구자들의 투쟁을 통해 다시한번 던져 보는 것이다.

 

크선생님의 이러한 엄청나게 지적이면서도 겉으로는 맥이 빠질 정도로 평이한 (평이해 보이는) 접근법에 필수적인 요소는 훌륭한 연기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겠다. 그럼 이제 케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를 옹호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비나 슈피일라인은 자신이 처녀로 남는 이상 인간의 성 (性) 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기 때문에 섹스를 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을 거리낌없이 자기의 “선생님” 에 해당하는 남자에게 밝히고 또 거의 그자리에서 행동으로 옮긴다.  위험한 역할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요즘의 한국 남자 관객들 중 일부는 사비나를 보면 “골고루 맛이 간 미친X 이네, 대주기는 잘로 대주구 킬킬킬” 이라는 식의 저질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아주 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다른 여성 연기자들은 많지는 않아도 당연히 머리에 떠올릴 수 있다. 케이트 윈슬렛이라던지... (생긴 것은 전혀 실제 인물과 다르지만)

 

그러나 이 한편에 나오는 케이라 나이틀리는 이러한 충분조건을 채워줄 뿐 아니라 나름대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이틀리가 초반부에 보여주는, 그 이쁜 얼굴을 무슨 턱뼈가 빠진 말이 히힝거리는 것처럼 보기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몸 전체를 그로테스크하게 움직거리는, 차마 제대로 쳐다보기가 꺼려지는 연기는 일면 정신 질환의 과장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정치적인 공정함” 을 20세기 초의 정신질환자의 묘사에 투영한다는 것이 오히려 당시 실제로 사회의 차가운 눈살을 견디면서 요양원에 보내졌던 환자들의 고통을 업수이 여기는 행위가 아니될까? 실제로 그때 슈피일라인이 저런 식으로 현대인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게도 보이고 괴상하게 보이는 형태로 증세를 피로했는지 아닌지 당신이 조사해봤나?

 

비고 모르텐센과 미카엘 파스벤더의 연기에 이르러서는 구태여 첨언하기도 뭣하지만, 모르텐센의 경우는 심지어 목소리의 옥타브의 올림과 내림도 별로 변하지 않는,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프로이트 박사의 내면적 갈등과 자조 (自嘲)도 포괄하는 드라이한 유머감각을 유려하게 표현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융이 프로이트에게 초심리적-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벽장에서 우지직 딱 하는 소리가 나자 이것이 “촉매성 외재화 (catalytic exteriorization)”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박박 우기는 개소인데, 이 장면의 유머는 파스벤더의 공격적이고 머리 풀어헤친 융의 묘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프로이트의 어이가 빵하고 날아간 모습의 모르텐센의 외과의적으로 적확한 묘사에서 나온다. 그냥 이분들의 연기만 보고 있어도 내공이 너무나 뛰어난 무술가들이 무술시범을 적을 때려잡는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발레나 현대 무용같은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육체적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처럼 (아 이 표현은 [레이드] 리뷰에서 써먹으려고 한 건데 ^ ^;;;) 그 연기 자체가 나를 반쯤 최면상태에 빠뜨린다.

 

물론 크선생님의 영화이니만큼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등의 스탭진의 공헌에 못지않게 하워드 쇼어의 음악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쇼어 선생님처럼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들리면서도 일종의 근대적인 정신적 불안감과 괴리감을 그 저변에 깔아놓는 작법을 마스터풀하게 운용하는 작곡가는 없다. [데인저러스 메소드]에서도 그런 그의 작풍이 빚어낸 그러나 역시 극도로 절제된 음악을 충분히 감청 (監聽) 할 수 있는데, 의표를 찌르는 것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쓰고 [니벨룽겐의 반지] 얘기까지 나오면서도 정작 중요한 클래식 발췌곡으로 쓰이는 것이 [지그프리드의 목가 (牧歌: Sigfried Idyll)] 의 피아노 편곡 버젼이라는 점이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굉장히 60년대식인 섹슈얼아나키스트 오토 그로스가 융의 환자로 들어오면서 후자의 프로테스턴트적인 금욕적 체질을 변화시키는 대목은 뱅상 카셀이 나와서 좋기는 했지만 사실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는 오히려 곁가지에 해당되는 얘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크선생님은 쓸데없이 늘어지지 않고 한 얘기가 소진된 시점에서 칼처럼 정확하게, 끝내야 될 때 끝내는 감독님으로써 나의 절대적인 신용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지만,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경우는 1시간 40분이라는 런닝 타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아니 온갖 감독들이 이 한편과 비교하면 얼마나 찌질하게 먹물스러운, 또는 “역사적인 혜안” 이 넘치는 (넘친다고 지네들은 착각하고 있는) “심오한 주제” 를 가지고 세시간 네시간짜리 영화를 찍는 세상인데, 이 얘기가 이렇게 빨리 끝장을 봐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왕 슈피일라인이 프로이트와 융이 자신들의 이론체계를 현재의 모습으로 구성하는데 엄청나게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바에는, 슈피일라인의 임상 진찰을 하는 모습이라던지 그녀에 관한 사실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이 영화를 아주 지루하게 자리에서 배배 꼬면서 보신 분들께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들리시겠지만, 나는 한 2시간 반 정도의 길이는 있어야지 (제임스 본드 영화도 2시간 10분 넘는 작품들이 있는데!) 충실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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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라고 써놓고 또 장황하게 말이 길어진다) 혹시 이 문단에 이르기까지 도중에서 때려치우지 않고 내 리뷰를 읽어주신 분들께는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굽쇼 ^ ^) 이 영화를 꼭 보실것을 강력히 권장드리고 싶은데, 물론 여러분들께서 이 작품을 보시고 지루하게 재미없게 보셨다고 해도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어차피 우리는 특정한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영화를 보는 것이고 크선생님 영화가 애초부터 마음에 안드시는 분들은 마음에 안드실 권리가 엄연히 있다 (내가 [트랜스포머 2] [7광구] 를 아이구 이게 언제 끝나나 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고 간신히 봤듯이).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데인저러스 메소드] 를 (물론 중간에 전화로 텍스팅하고 여친 남친이랑 계속 잡담하고 이러지 않고 영화에 집중을 하고 보셨다는 전제하에) 보시고 나시면, 본인들께 다음 두 가지 질문을 한번 던져 보시기 바란다. 첫째, 이영화를 보면 사비나 슈피일라인이 융과 프로이드와 맺었던 관계가 어떤 종류의 관계였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둘째, 프로이트와 융의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대한 해석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이 두 질문에 이 영화를 보았음으로 해서 여러분들께서 나름대로 각자 답을 얻어서 극장을 나오셨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이 한편의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수함을 증명하신 것이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의 중반부에서 프로이트가 슈피일라인에게 융의 심리 분석 접근 방식의 문제점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그냥 그러한 것이에요. 세상의 그러함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의 건강을 도모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환자들의 한 환상을 다른 종류의 환상으로 대치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소?"

 

나중에 융이 역시 슈피일라인에게 프로이트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 닫힌 문을 열고 겨우 찾은 것이 환자가 두꺼비처럼 거기에 쭈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다란 말이요? 나는 환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길을 찾게 만들어주고 싶소. 그 길을 따라 떠난 여정이 끝날 때에는 그 환자가 되려고 했던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단 말이오!"

 

나는 극장에서 영화 끝판에 나오는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 아주 간결하게 벌어지는 메인 캐릭터들의 입장 정리를 보았을 때 와락 눈물이 나왔다. 수술 끝나고 나서 막 출시된 블루 레이로 다시 한 번 봤는데 역시 이 장면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엔딩 크레딧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좌파고 우파고 정치적 공정성이고 고양이 혓바닥이고 뭐고 나는 프로이트가 틀렸고 융이 옳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때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다-- 는 것을.  이것을 나에게 깨닫게 해주면서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대해 지닌 접근방식과 이해방식의 일단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해 준 것은 오로지 위대한 영화작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라는 분이 만드신 [위험한 치료법] 이라는 영화이다.  영화속의 파스벤더/융이 말하듯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해 주는 것, 예술이란 게 그런 게 아니면 뭐가 예술인가? 

 

여러분들께서도 나처럼 반응하시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내가 평생을 살면서 이 세상이란 대체 어떻게 생겨먹고, 인간이란 동물은 왜 이런 질알을 떨고 살아야만 하는지, 그런 문제들을 부둥켜안고 스스로의 천박함과 무식함에 치를 떨고 이를 갈아야 하던 시절에 훌륭한 “사상” 이 나를 그 구덩이에서 꺼내주었던, 그 “계몽” 의 경험 (“몽매함을 깨침” 이 없이 포스트모던 “지적유희” 만 하고 자빠졌는 의사소통의 공간이란 원자력 발전소 폐기물 방사능에 오염된 쓰레기더미만도 못한 것이다) 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시는 위대한 예술가가 젊은 시절에 싸구려 SF 호러 만든다고 온갖 쿠사리를 먹던 크선생님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영화매체의 위대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엥?! 어째 문장의 논리가…;;;).

 

하여간에 나한테는 목이 꺽꺽 쉴정도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감동을 주고 두뇌세포를 어루만져주는 천사의 손길 같은 한편이었습니다. 별점 평가는 너무 주관적으로 주면 안 될 것같아서 좀 깎았으니까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사족: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영화 찍으려고 만든 것 같이 보이는” 프로이트와 융에 관한 에피소드들— 위에서 말한 “촉매성 외재화” 에 관한 희한한 대화나 이집트의 파라오 아크나톤이 부왕의 이름을 지우려고 했다는 사례를 따지는 와중 프로이트가 융 앞에서 전신이 마비되면서 쓰러지는 장면등— 은 그들의 전기나 연구서에서 인용된 역사적 기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다 “사실” 을 묘사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관심있는 분들께는 디어더 베어 (Deirdre Bair) 의 칼 융의 전기 (Jung: A Biography) 를 추천드린다. 융을 찬양하는 책은 결코 아니고 프로이트 사후 1940년대에 스위스에 살면서 나찌정권 밑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심리분석학을 전개했다는 심각한 대내외 비판에 대해서도 이념적 편견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답하려고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

 

사족 2: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보면서 이 영화의 파스벤더가 누군가 저명한 영국배우를 연상시킨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의문이 풀렸다. 누굴까요? 힌트: 최근에 이분 역할로 케네스 브라나가 나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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