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타델 Citadel <부천영화제>

2012.07.29 03:00

Q 조회 수:6268

시타델 Citadel

 

아일랜드-영국, 2012.  ☆☆☆★

 

A Blinder Films/Sigma Films/Irish Film Board Co-Production, 1시간 24분, 화면비 2.35:1

 

Written and directed by: Ciaran Foy

Cinematography: Tim Fleming

Music: tomandandy

Production Designer: Tom Sayer

Special Makeup Effects: Paul Hyett

 

CAST: Aneurin Barnard (토미), James Cosmo (신부), Wunmu Mosaku (마리), Amy Shiels (조온)

 

 photo CitadelPoster_zpsf26e4508.jpg

 

[시타델] 은 [그래버(스)] 처럼 기본적으로는 아일랜드 영화입니다만 그 성격은 판연히 다릅니다. [그래버스] 가 괴수영화의 약속사항들을 코믹한 터치로 풀어냈다면 [시타델] 은 영국식 '키친 싱크 리얼리즘' 과 더불어 보수적 종교적 호러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암울하고 피폐한 현대의 황무지를 배경으로 삼아서 전개되는 정통적인 호러영화죠.

 

[시타델]에 나오는 지옥의 풍경같이 썩어 문드러진 재개발 지역 (영국북부인지 아일랜드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미국처럼 Redevelopment 라는 표현 대신에 Regeneration 이라는 용어를 쓰더군요) 이라는 배경-- 그리고 광적인 신부 캐릭터가 막판에 밝히는 괴물들의 기원-- 이 피치 못하게 “버려진 자들” 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무관심이라는 안건을 떠올리게는 합니다만, 여기에서 중심적인 주제는 광장공포증 환자인 주인공 토미가 외부 세계에 느끼는 공포, 더 나아가서는 공포심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편은 토미라는 캐릭터의 개인적인 시점에 철저하게 복속되어 있고, 그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관객들에게 공유시키는 것이 각본가이자 감독인 키어런 피이 (“시아란 포이” 가 아니고) 의 일차적 목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피이 감독은 정체불명의 존재들에게 아내를 잃고 졸지에 갓난아기 딸을 혼자서 키우게 된 젊은 남자 주인공을 소개하면서, 어두운 동화와 비슷한 형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주인공 토미를 맡은 아뉘린 바나드 (이분은 또 아일랜드 사람이 아니고 웨일즈 출신이네요) 군의 캐릭터 해석은 상당히 현대적입니다. 무슨 신화적인 서사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고 실제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거죠. 그래서 이분의 연기가 좋기는 한데 그것이 반드시 이 한편의 호러영화적인 아젠다와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캐릭터들도-- 특히 토미와 교감하는 흑인 간호사 마리-- 섬세하고 현실감있게 그려졌다가도 결국은 컨벤션에 맞추어서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아예 동화 같은 설정에서나 등장할 수 있는 눈먼 소년 조력자 및 그의 행태가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더 적합합니다.

 

후반부에서는 공격적으로 맛이 간 (아마도 신부 되기 전에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종사해서 애꿎은 사람들을 많이 죽인 모양인) 신부님이 적극적으로 “괴물의 퇴치방법을 다년간 연구해온” 부주인공 역할을 맡아서 서사를 이끌고 나가는데, 이 분의 성격설정도 영화를 본 다음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말이 안 되지만 보는 도중에는 불만이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공포의 묘사 자체는 정공법이지만 꽤나 강렬합니다. 후드를 푹 눌러쓴 “아이들” 모양의 괴물이란 크로넨버그 선생의 [더 브루드] 가 원조인데, 여기서는 물론 일단 합리적인 것처럼 들리는 괴물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주어지긴 합니다만 거의 “하수구속의 백피증 (白皮症) 악어” 수준의 도시 전설이지 ([더 브루드] 와는 달리) SF적인 내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워낙이 진짜 우울증을 유발할 정도로 퇴락한 주위 환경과 철저하게 소외감과 불안감을 강조하는 연출이 일으키는 상승 효과가 무시 못할 수준이죠. 토미가 도망치다가 이층 버스에 치일 뻔 하고 다시 그 안에서 괴물들의 추적을 당하는 시퀜스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말에 대해서 좀 실망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는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작품은 토미의 공포증에 관한 영화이지 영국의 사회복지와 인프라의 처참한 붕괴에 대한 영화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토미가 공포증을 극복하는 순간에서 영화는 할 말을 다 한 겁니다. 그 다음에 괴물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또는 그렇게 도의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어떡허냐) 하는 등의 질문은 그래서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시타델] 은 상당히 효율적이고 쓸데없는 데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 호러영화이고 그런 면에서는 책을 잡고 싶지 않습니다만, 어딘가 너무나 서둘러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나면서 좀 여유나 층위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사족: 눈먼 소년이 토미에게 공포감에 휩싸였을때 사람들이 “빨간색으로 보인다” 라고 말합니다만 괴물들 시점에서 공포의 “냄새” 를 풍기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비추이는가를 보여주는 비주얼은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짐작컨대 피이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암울한 색조를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안 넣은 것 같기도 한데, 흑백에 가까운 영상에 그런 붉은 색의 쉬르레알한 영상이 삼입되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죠.

 

사족 2: 이건 좀 황당한 얘긴데 [스폰지밥] 의 문어 징징이하고 똑같이 생긴 캐릭터가 한분 나옵니다. 혼자서 쓸데없이 키길킬킬하고 웃었습니다 ^ ^ ;;; 남들 보시기에 민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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