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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베이비 킬  Operazione paura

 

이탈리아, 1966.  ☆☆☆★★

 

A FUL Films 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23분.

 

Director: Mario Bava

Screenplay: Romano Migliorini, Roberto Natale, Mario Bava

Cinematography: Antonio Rinaldi, Mario Bava

Music: Carlo Rustichelli

Camera Operator: Saverio Diamente

Editor: Romana Fortini

Set Decoration: Alessandro Dell’Orco

 

CAST: Giacomo-Rossi Stuart (폴 에스바이 검시관), Fabienne Dalli (루트), Erika Blanc (모니카), Luciano Catenacci (카를), Micaela Esdra (나디느), Giana Vivaldi (폰 그랍스 백작부인), Valeria Valeri (멜리사), Piero Lulli (크뤼거 경부).

 

12-3년전에 DVD 혁명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 영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영화들을 깨끗하게 복원된 이탈리아어판으로 볼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기적 같은 사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DVD 밴드왜곤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호러영화의 명장 마리오 바바의 대표작들을 마침내 한국 시네마테크의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입니다. 바바 감독은 20년이 넘는 촬영감독과 조감독의 경력을 거쳐서 마침내 다른 유명 감독들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치거나 일부러 손을 뗀 (리카르도 프레다 같은 경우는 거의 바바에게 감독을 맡기려고 작정을 했었다고 합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감독으로 입봉하게 됩니다만 현재의 콘센서스는 프레다가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흡혈귀 I Vampiri] (1956) 를 바바의 데뷔작으로 간주하는 모양입니다.

 

[킬 베이비 킬]은 이미 바바 감독이 크리스토퍼 리, 카메론 미첼 등의 유명스타와 작업을 하고 바바라 스틸이 주연한 흑백호러의 명작 [검은 일요일 (사탄의 마스크)] (1960) 과 지알로 장르의 개시 테이프를 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피와 검은 레이스] (1964)를 통해 북미시장에서도 그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절에, 원래도 돈 한푼 안들이고 실제 제작비에 비해 스무 배 정도의 시각적효과를 거뜬히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지만, 그런 바바 선생님의 기준으로 보아도 극저예산으로 빨리 찍어낸 소품 호러입니다.

 

제목을 보고 무슨 관능적인 패션 모델이 사냥용 칼을 들고 남정네들을 찍어죽이는 그런 60년대식 싸이케델릭 슬래셔 영화를 연상하시면 안되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귀신영화” 입니다. 호러영화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전적이죠. 기본 설정과 아이디어는 몇 년간 장독에 묻어둔 묵은지 맛이 나는 이탈리아/스페인풍 고딕 호러의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오래 돼서 뭉쳐진 거미줄이 가구에 엉겨붙어 있고, 대 저택의 복도 조명이 기사 (騎士) 의 갑옷 입고 쭉 뻗은 팔 모양의 촛대에 쥐어져 있는 촛불이라는 그런 고색이 창연한 세트 드레싱을 상상하시면 대충 이 작품의 분위기 파악이 되시겠죠?

 

근세의 어느 외딴 중유럽의 소도시에서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포장된 도로가 구비된 그런 곳이죠) 연속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폴 에스바이 (파울 에슈바이-- 발음?) 라는 검시관이 부임해서 옵니다. 그는 수사관으로 파견된 크뤼거 경부와 함께 진상을 밝혀내려고 하지만 주민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완고하게 협력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폰 그랍스라는 퇴락한 귀족 집안의 저주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폴과 크뤼거는 이러한 주민들의 태도를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의문의 죽음은 그치지 않습니다. 여기에 마을의 무당 내지는 기도사 (祈禱師) 역할을 하는 루트라는 칠흑머리 “마녀” 와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에 잠시 돌아온 여학생 모니카가 연루되면서, 파울과 모니카는 폰 그랍스 저택에 깃든 저주의 정체를 밝혀내게 되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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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킬 베이비 킬]은 상당히 전형적인 영화라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정과 스토리가 그렇다는 얘기고 마리오 바바가 이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전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사실은 주요 캐릭터들을 관습적인 고딕 호러의 틀 안에서 빚어내는 방식도 굉장히 독자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해머 영화 같은데서는 각자 반대되는 세력의 대표자인지라 서로 화형시킨다 저주를 넣어서 죽여버린다 하고 악다구니 싸움을 벌여야 할 면장 (Burgomeister) 카를과 “마녀” 루트가 이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서로 애인 관계입니다. 막판에 가서도 기독교 하느님의 힘을 빌리거나 과학자가 연구서 좀 찾아보고 도출해낸 퇴마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납득이 충분히 가도록 논리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수긍이 되는 방식으로 저주가 풀리기는 합니다만 결국은 귀신도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인식을 시키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요.

 

무엇보다도 [킬 베이비 킬] 을 한번 보신 분들은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존재는 이 영화의 귀신입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는 끼끼끼끼하고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내는 인형같이 생긴 예쁜 금발머리 여자아이 귀신이에요. 그네를 쓱쓱 타다가 (건방 떠는 관객들의 기를 팍 죽이면서 괴이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그네 시점 카메라” 신도 있습니다) 죽이기로 찜한 희생자들을 창문 너머로 빤~ 히 쳐다보면 희생자들은 땀을 흘리면서 번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여자아이 귀신 멜리사의 공간적-시간적 이동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쪽 복도에서 “넌 누구니?” 라고 물으면 반대방향으로 탁탁탁 달려가고 주인공이 뒤쫓을까 말까 망서리는 순간 그의 등에다 대고 “멜리사에요 흐스스~” 하고 목소리가 걸리는 그런 식입니다.

 

이 멜리사의 인증 제스처는 하얀색 고무공을 던지고 노는 것인데 정신없이 도망치는 주인공들 뒤로 탁 탁 탁하고 이 공이 따라오는 게 취향이죠. 이러한 “하얀 공가지고 노는 여자아이 귀신” 이미지는 이후 수도 없이 표절과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페데리코 펠리니가 에드거 알란 포의 단편들을 영화화한 [죽은 자들의 영혼] 안솔로지 중의 “토니 대밋” 에피소드를 연출할 때 “공가지고 노는 여자아이” 캐릭터를 거의 바바가 구상했던 모습 고대로 “사탄” 역으로 등장시킨 것이겠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스콜세시의 [예수 최후의 유혹] 의 어린 여자아이 사탄도 결국 바바의 멜리사에서 비롯된 존재라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판 [아우터 리미츠] 의 도입부의 컴퓨터 그래픽에서 난데없이 불쑥 등장하는 고무공이 통통통하고 튕겨내려가는 나선 계단부터 절라 후진 최근 호러 [피어 닷 컴]의 여자애 귀신까지 다 따져보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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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거의 형이상학적인 귀신의 초능력이 압도적으로 발휘되는 부분이 주인공 폴이 폰 그랍스 저택에서 멜리사에게 완전히 굴림을 당하는 준클라이맥스의 시퀜스입니다만 (이 시퀜스는 이것도 또 절라게 후진, 안하느니만 못했던 [아벤저스] 리메이크에서 베껴먹었죠) 여기의 마술적이고 몽환적인 묘사는 가히 상상을 불허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헐…” 하고 얼이 빠지는 반응을 감추기 힘듭니다만 혹시 이 아이디어가 자본과 시간과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실질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바야흐로 바바 감독의 재능과 임기응변력에 다시한번 경외심에 가까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바바 선생님과 그의 조감독 (아마도 아들 람베르토?) 와의 가상적인 대화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조: 저… 감독님

바바: 왜 그래?

조: 저 다음에 찍을 “그랍스 저택에서 주인공이 귀신의 마력에 시달리다가 쫓겨난다” 장면 말씀인데요. 돈이 하나도 없어서 배우들 급료를 못줘서 주인공역의 롯시 스튜어트 씨 한사람만 쓸 수 있고 이분도 1시간만 찍고 나가보셔야 한답니다. 그리고 세트도 저 응접실 세트 하나만 달랑 있고요. 특수효과 메이크업팀도 다 일 못한답니다. 그러니 오늘 촬영은 포기하시는 게…

바바: 걱정말고 내게 맡겨.

조: 네?! 제 말씀을 들으셨어요? 세트는 하나밖에 없고 연기자도 한분이고 1시간 걸려서 다 찍어야 하는데…

바바: 걱정말고 너도 집에 가라.

조: …. ;;;

바바: 한시간내로 찍을 테니까 아무 염려 말고.

 

진짜 만들어 놓으신 걸 보면 세트도 하나고 연기자도 한 사람이고… 그러나 그 연출의 스타일과 편집과 촬영의 기막힘으로 인해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괴이하면서도 고전적으로 멋들어진 명장면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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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상영회에서 쓴 프린트는 2001년에 만든 복원판입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검은 일요일] 나 [검은 사순절/블랙 사바스] 만큼 깨끗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행스럽게도 나선계단의 층마다 파란색, 녹색, 베이지색 이렇게 색깔이 다른 조명이 달린다는 식의 바바감독의 기막힌 색채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은 됩니다. 디븨디와 비교하자면 1.33비율로 출시되었던 VCI 판과 나오자마자 절판된 Dark Sky 판보다는 앵커베이판에 가장 흡사한 색조입니다. (스크린샷은 앵커베이판에서 따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운드의 기복이 좀 있고 틀어줄 때 포커스가 흐려지는 개소가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상영때에는 영화 자체는 영어대사인데 자막은 이탈리아어 대사의 영어 자막을 다시 번역한 것 같은 약간의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피터 로르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것 같은 대머리 면장님의 이름이 분명히 “카를” 또는 “카알” 인데 자막에서는 “케이르” 라고 나오는 등) 이후 상영때에는 시정되었으면 좋겠지만 자막을 염두에 안두고 비주얼만 즐기셔도 충분히 임팩트가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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