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로 Zorro (알랭 들롱 주연)

2013.02.25 18:36

Q 조회 수:7403

조로 Zorro

 

이탈리아-프랑스, 1975     ★ 

 

A Mondial Televisione/Les Productions Artieste Associés Co-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58

 

Directed by: Duccio Tessari

Screenplay: Giorgio Arlorio

Cinematography: Giulio Albonico

Production Design: Enzo Bulgarelli

Editor: Mario Morra

Music: Guido & Maurizio De Angelis

 

CAST: Alain Delon (돈 디에고), Stanley Baker (후에르타), Ottavia Piccolo (오르텐시아), Adriana Asti (카르멘), Giacomo Rossi-Stuart (프리츠 폰 메르켈), Giampero Albertini (프란시스코 수도사), Moustache (가르시아 중사), Mariono Mase (미겔), Enzo Cerusico (호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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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은 까마득한 신석기시대에 (그나마 VHS 라는 매체는 존재했으니 구석기시대는 면했다고 봐주죠 ^ ^) 일본TV 에서 방영되었던 일본어더빙버젼을 소공동에서 빌려다보고 그 이후로 항상 찾아 헤매었던 한편입니다. 기억 나시는 분들은 기억 나시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봐도 정말 후졌었던 알랭 들롱의 (그무렵에는 완전 일본식으로 “아란 드롱” 이라고 표기) 이류 주연 작품까지도 도무지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괴이한 제목들을 달고 (불어 Hommes 를 “호메스” 라고 버젓히 읽어서 극장 공개 제목으로 붙여 공개하는 그런 류의) 대한극장 단성사 그런 데서 관객몰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르살리노] 같은 경우는 영화 자체에 대한 품평은 간곳없고 오로지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도가 같이 나왔다는 것만 가지고 난리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8년 이후에 출생하신 분들께는 외계행성의 얘기 같으시겠어요. ^ ^ 물론 여러분들의 부모님 되시는 분들은 분명히 그 외계행성에 사시면서 연애도 하시고 팬질도 하시던 분들이십니다. 그리 아시고...

 

그런데 갑자기 소머빌 하우스라는 (죄송합니다만) “듣보못”이었던 레벨에서 블루레이로 내놓았습니다. 사실 이 블루레이의 화질은 약간 구립니다만 (아, 그래도 물론 디븨디보다는 뚜렷합니다. 트랜스퍼보다도 프린트인지 네거티브 자체의 문제가 더 큽니다) 아마존 프랑스에다가 주문시도를 하기도 하고 오랜 시일을 걸쳐 손에 넣으려고 노력했어도 결국 실패했던 한편인데,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툭하니 옆집 가게에서 블루레이로 구할 수 있게 되니 행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조로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마 언제 나중에 또 썰을 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고 긴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리뷰에서 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조로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그런 캐릭터들처럼 유럽의 대중문학에서 기원을 두고 있지 않고, 존스턴 맥컬리라는 미국의 펄프 작가가 창조한, 백 퍼센트 미국산 캐릭터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은 돈 디에고고 스페인 총독과 싸우고 어쩌구 하냐구요? 캘리포니아주는 원래 스페인령 식민지였거든요. 1821년에 멕시코령으로 바뀌고 1848년이나 되어서야 미국의 일부가 됩니다. 캘리포니아 사람들한테는 (특히 그링고들이 밀려들어오기 전에 살던 히스파닉계의 자손들에게는) 감정이입이 쎌 수 있는 인물이죠.

 

사회적으로는 물컹한 인간으로 무시당하는 잘사는 한량인데 가면을 쓰면 액션히어로로 탈바꿈해서 공권력 및 범죄세력과 맞서 싸우는 그런 패턴을 배트맨이나 그런 수퍼히어로들에 앞서서 정형화한 대선배이기도 합니다 (조로를 짝사랑하는데 디에고는 멸시하는 여주인공, 또는 반대로 디에고와는 같은 편인데 조로의 적인 경찰간부 등의 정체성의 이중성을 활용한 캐릭터 만들기도 [조로]가 선구적인 시도를 보여줬죠). 조로 캐릭터는 타잔과 마찬가지로 수도 없이 영화화되었습니다만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무성영화판과 타이론 파워 주연의 [조로의 인장 (1940)] 이 가장 유명하지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나오는 최근작들은 전 별로 관심이 없어서 미견입니다 (반데라스 자신에게서도 그런 활달한 매력을 전혀 못느끼겠고). 그런데 요번에 검색해보니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하 참 깨도 많은 조로 영화를 만들었고 (본국에서 만든 수보다 당연히 많아요!) “코요테” 라는 조로의 빠꾸리 (“조로” 는 여우라는 의미) 캐릭터까지 있었답니다. ^ ^ 그런 상황이었으니 이탈랴에서 충분히 들롱 주연으로 조로 기획이 떴을만하죠. (아니 그런데 이자벨 아옌데가 2000년대에 집필한 조로 소설이 있네요! ;;; 이것도 일단은 영화화될 예정이라는데 궁금하긴 하군요).

 

알랭 들롱판 조로는 프랑스자본이 영입이 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탈리아 영화입니다. 프랑스영화같으면 좀 더 느리고 실내극같은 분위기가 날 텐데, 이 한편은 촌티 양아치티가 좀 나더라도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냅다 내뛰지요. 그래서 그런지 무대를 좀 서부극적으로 황량한 (미국 캘리포니아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남미의 “누에보 아라곤” 이라는 가상 식민지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마카로니 웨스턴 만들던 스탭이 그대로 기용되었다는 감이 나는데, 프로덕션 퀄리티는 아주 좋습니다. 대부분이 로케이션 촬영이긴 하지만 총독관저 같은 시설은 제대로 감이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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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도 제대로 짜여져 있습니다. 애당초에 조로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고 수퍼히어로의 “탄생편” 에 해당되는 한편이라서, 돈 디에고가 조로가 되기까지의 경과를 나름 설득력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보여줍니다. 모두에 신임 총독으로 임명된 친구 미겔이 암살당하자 돈 디에고가 자기 친구를 사칭해서 총독으로 취임한다는 프롤로그를 붙였는데, 이것도 어쩐지 서부극적인 설정이죠. 미겔이 평화주의자라서 디에고가 총독으로 부임하면 절대로 인명살상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게 만든다는 전제가 특히나 그렇습니다. 물론 그게 조로의 활약상에 부담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클라이맥스 결투신에서 “넌 이사람을 죽였으니 이제 나의 미겔과의 맹세는 효력이 끝났다!” 라고 자세를 부여잡기 위한 복선 정도의 기능밖에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들롱의 연기의 폭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중 하나로 간주하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이병헌” ^ ^ 알랭 들롱의 진면목을 보시려면 [로코와 그의 형제들] 이나 [태양은 가득히] 쪽으로 가셔야 하겠지만 사실 그의 스타 카리스마는 [조로] 처럼 아무런 문화적 부하가 걸리지 않고 “어린이들” 감상용으로 만든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오락영화” 에서 더 잘 과시되는 것 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환하게 이빨이 다 드러나는 미소를 짓고 상당히 신빙성있게 어리벙벙 주책바가지 연기도 피로하고 하는데 연기자의 즐거움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무라이] 등의 무표정하고 우수에 찌든 마스크로 유명한 분이신데 좀 어리숙하게 웃어보이고 또는 전형적인 활극 주인공의 정의롭게 성난 표정 그런 모습도 나쁘지 않아요.

 

액션은 약간 과다하게 코믹스러운 부위를 제외하면 (조로가 나타났다 라고 비상나팔을 불려는 경비병에 관한 개그라던지, “무스타쉬” 라는 예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가르시아 중사의 슬랩스틱 등) 준수합니다. 동시기의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면 시도때도 없이 트램폴린을 타고 방~ 방~ 뜨는 게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해지는데 [조로] 에서는 그런 특정 스턴트 테크닉의 남용은 없고요.

 

물론, 모든 액션히어로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악역의 훌륭함에서 나오고 [알랭 들롱의 조로] 에서는 웨일즈 출신의 위대한 영국 배우 스탠리 베이커가 그 짐을 짊어지고 분투합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악역이 취약해도 문제고, 또 너무 실력이 뛰어난 연기자분을 고용하는 바람에 이분만 튀어도 문제인데 베이커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칼싸움 연기가 실감이 나요. 검은 옷의 조로에 대해 흰색 유니폼을 입고 벌이는 클라이맥스의 거의 10분을 넘어서는 칼싸움 결투만 따져도 에롤 플린과 베이질 라스본의 후예를 자청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돼죠. 칼싸움을 제대로 못 벌이는 조로 영화라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오징어는 없고 튀김옷만 있는 오징어튀김이죠.

 

기타 인상에 남는 점: 묘하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 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처음 조로에 대한 얘기를 돈 디에고에게 하는 흑인 꼬마 치코가 백묵으로 “Z” 마크를 가축사 울타리에 그리는 장면이라던가. 이건 상호 연관의 가능성은 없고,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다루다보니까 나온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게 적절하겠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치코 같은 캐릭터가 흑인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베테랑 두치오 데사리 감독에게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런데 치코 자신이 상상하는 조로는 “인간들을 혼내주고 가엾은 동물들을 풀어주는 흑여우” 였습니다. “민중의 해방자” 그런거 아니고요. ^ ^


매력 넘치는 오타비아 피콜로가 당찬 여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조로와 오르텐시아의 로맨스는 시작은 좋은데 막판에 가서는 흐지부지 끝나는 감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조로가 그 물컹이 총독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면 뭔가 오르텐시아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기도와 마우리지오 델 안젤리스가 담당한 음악은 뭐랄까, 좀 단조롭고 음악적으로는 그렇게 세련되지 않을 지 몰라도 한번 들으면 멜로디가 머리속에서 계속 맴도는 그런 신나는 스코어죠. 개인적으로는 조로가 등장할 때마다 흥겹게 흘러나오는 테마송보다 악당 후에르타에 연관된 비관적이고 운명적인 선율이 더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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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머빌하우스 블루레이의 판본은 영어판인데, 영화를 보시면 들롱, 베이커, 피콜로 최소한 이 세 분은 영어 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들롱의 영어 대사의 목소리는 본인 것 같은데 백퍼센트 확신은 못하겠고요. 프랑스어영화와 동시녹음으로 촬영한 미국영화출연작을 (꽤 있습니다. [스코피오] 라던가 [콩코르드: 에어포트 1979]라던가) 비교대조 해보지 않으면 모르겠죠. 약간 코맹맹이인 독특한 목소린데 [시실리안] 의 영어대사 목소리와는 확실히 같은 사람입니다. 본인이 아니라면 전속 영어 더빙성우 (?) 일 수 밖에 없는데... 혹시 모르죠. 그럴 수도 있을지. 

 

마지막으로,  이 판본은 1시간 58분 완전판입니다. IMDB 에는 무려 20분 이상이 짤려나간 “축약본” 이 원본인 것처럼 잘못 적혀 있으니 디븨디나 파일 구입하실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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