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 (김하늘 주연)

2011.07.28 01:02

Q 조회 수:7022

 

 

블라인드  Blind

 

한국, 2011.   ☆☆☆★

 

A Moonwatcher/NEW Films Production. 1시간 51.

 

감독: 안상훈

각본: 최민석, 윤창업

촬영: 손원호

조명: 신상원

음악: 송준석

편집: 신민경

 

캐스트: 김하늘 (수아), 조희봉 (조형사), 유승호 (기섭), 양영조 (명진), (맹인견 슬기)

 

 

 [블라인드] 는 부천에서 마지막으로 좋은 의미로 예상을 배반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혀 기대를 안하고 보았으니까요. 사실 기대 수준으로 따지자면 [7광구] 가 약간 더 높았지요. [해운대]와 김지훈 감독의 전작 [화려한 휴가] 하고 안상훈 감독의 전작 [아랑] 하고 비교하자면 전자가 그래도 덜 찌질스럽게 뽑혀나올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끝났습니다.

 

먼저 이 리뷰를 쓰기전에 미리 써놓고 싶은 것은 [블라인드] 는 제가 좋아하는 타이프의 영화도 아닐 뿐더러 사상적인 면에서도 별로 공감을 느낄 수 없는 일편이라는 것입니다. [블라인드] 의 설정은 [7광구] 에 비교해서도 전혀 새롭지 않고 진부하기 짝이 없으며, 오드리 헵번이라는 대배우가 열연을 펼친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려라] 를 비롯해서 미아 패로우가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과 찍은 [악을 보지 말지어다] 까지 이미 이 소재를 이용해서 훌륭한 스릴러들이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명작들의 기준에 맞춰서 영화를 보는 저같은 소비자들에게 마치 앞이 안보이는 여성이 추리 미스테리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것이 전세계 영화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 것처럼 안이무식한 접근법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만, [블라인드] 는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개념이 없는 영화는 아니더군요.

 

사상적으로 [블라인드] 는 보수 카톨릭적 이념에 투철한 열 일곱살쯤 된 남자애의 주관적 입장에서 수미일관 만들어져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영화의 시점은 대충 이런 것이지요: 1) 경찰처럼 공공적 위치에 서서 범죄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좋고 착하다. 2) 부모도 친척도 다 필요없고 “나” 에게 필요한 것은 누나다. 누나는 아무리 동생녀석 즉 “내” 가 뗑깡을 부리고 철이 없이 굴어도 무조건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어야 된다. 왜냐하면 그러다 내가 사고치고 불행하게 되면 누나가 제일 슬플테니까 씨이... 3) 이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들은 인권을 짓밟거나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거나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이들이 아니고 낙태시술자다. 미국의 주류 관객들이 볼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3일테지만 한국 관객분들이야 별 관심이 없을터이니 12 가 문제인데, 이 두 가지 설정을 떠올리기만해도 골치가 아픈 분들께는 [블라인드] 는 추천해드리기 곤란합니다. ^ ^ 유승호와 김하늘과 같이 나오는 포스터를 보고 유승호가 누나의 위기를 구하러 달려가고... 그런 영화를 연상하시면 안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김하늘의 수아에요.  그러나 작가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굳이 설정을 해석하자면 수아가 장님이 된 것도 그녀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처녀엄마" 의 역할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벌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페미니즘 비평의 관점에서 두팔을 벌리고 환영할 영화는 못되죠.

 

일단 이러한 사상적 문제를 구석에 박아놓고 감상하자면 영화는 교활할 정도로 매끄럽고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하늘의 캐릭터 수아도 예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현실감이 있어요. 단순히 주위 사회에서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여지는 장애인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넘어선 레벨에서 자기의 고집 때문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던 상황을 놓치기도 하고, 반대로 자괴감 때문에 탐정 노릇을 그만두려고 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수아는 그녀 주위의 입만 까진 어린 멍청이들과 재수없는 바보 아저씨들이 모르고 있는 무슨 비밀을 초능력자처럼 혼자만 파악하고 있는 천재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수아에 대한 관객의 공감도를 높이거든요. 김하늘이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또래의 여자 연기자들보다 딱히 뭔가 더 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아이돌이나 예능 관계 프로그램에 더 어울리는 이쁜 여자애가 일부러 화장 덜 하고 나와서 불쌍한 척 하면서 궁상떠는 걸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형사역의 조희봉연기자의 코믹 릴리프 연기가 좀 과도하긴 하지만, 주인공의 말을 하나도 안 믿는 돌대가리 마초 형사가 아니고 오히려 주인공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나이스한 인물이라서 호감이 갑니다. 이런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는 캐릭터가 오히려 전복적으로 보일 정도이니, 그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진 스릴러 장르물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모습의 캐릭터들을 써먹고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재인식이 됩니다.

 

그리고 이부분은 잠정적 스포일러입니다만, 범인을 그 백그라운드와 피해자 여성들을 어떻게 죽이는가 등의 디테일을 거의 생략하고 대사도 사회 생활에 써먹는 온화한 목소리 이외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보기맨 같은 추상적인 악당으로 만든 것도 상업적 계산으로 볼때는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범인의 내적인 심리 이러한 요소들은 뭔가 깊이있는 또는 일반 관객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각본상의 설정이 따르지 않는다면 또하나의 진부한 공식을 끌어들이는 데 불과할 테니까요.

 

 

거기다 더해서 잘 빠져나온 헐리웃 스릴러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관객들의 소비성향에 딱 눈높이를 맞춘 스릴러 세트 피스들을 여러 개 준비하고 있어서 아마 좋은 입소문을 탈 것이라고 예상이 되는데요. 그 중 하나가 “지하철역 아이폰 뒤집어 찍기 추격전” 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현실성은 그다지 없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스마트폰의 영상 전송 기능을 실시간 중계처럼 사용해서 그것을 다시 서스펜스 연출에 반영시킨다는 기믹은 영리합니다. 또한, 영화 보기 전에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가 수아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비주얼로 해석한 독특한 영상이 나온다는 거였는데 말로 설명을 들었을 때는 완전 쪽박 차기 딱 좋은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상을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과다한 욕심을 안 부리는 게 장점이에요. 예를 들자면 “범인이 거기에 있는 줄 알고 바싹 긴장하는 수아,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범인이 피우던 담배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착각한 것이었다” 라는 상황을 영상화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블라인드] 에서 선택한 것은 그 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단순명료한 방식입니다. 쾅 하고 큰 소리를 내는 대신에 진동이라던가 스쳐 지나가는 목소리 등의 사운드를 강조하는 사운드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나홍진감독의 [추격자] 에 비할 정도 수준은 못됩니다만 [세븐 데이스] 처럼 내용은 완전히 우파 피의자 인권 개무시사상에 쩔었으면서도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사상들이 '좌파' 행세를 하죠) 마치 사회적으로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명품' 한국제 스릴러들과 비교하자면 제대로 즐긴 편에 속합니다. 조금만 더 뭔가 강렬한 긴장감을 주던가 내면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있는, 캐릭터들의 안쪽에서 봐도 풍요로운 한편을 만들었더라면 (그 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칭찬을 해줄 수 있었는데 단지 상업적으로 똑똑한 작품의 수준에서 그친 것 같아서 약간 아쉽습니다만, 감독의 전작 [아랑] 에 비하면 완전 딴 사람이 만든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60% 정도의 듀게 독자 여러분들- 특히 젊은 여성분들- 께선 제가 준 65점보다 점수를 더 올려 잡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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