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The Bad Sleep Well 

 

일본, 1960. ☆☆☆★★★  [* 흰별은 20점, 검은별은 5점으로 환산]

 

A Toho Production. 2시간 30분. 화면비 2.35:1

 

감독: 쿠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 키쿠지마 류우조오 菊島隆三,하시모토 시노부 橋本忍, 오구니 히데오 小国秀雄, 쿠사카 에이지로오 久坂栄二郎,

촬영감독: 아이자와 조오 逢沢譲

음악: 사토오 마사루 佐藤勝

 

캐스트: 미후네 토시로오 三船俊郎 (니시 코오이치), 모리 마사유키 森雅之 (이와부치 부총재), 카가와 쿄오코 香川京子 (이와부치 케이코 ), 미하시 타츠야 三橋達也 (이와부치 타츠오), 니시무라 코오 西村晃 (미사용 토지 개발공단 계약과장 시라이),후지와라 카마타리 藤原釜足 (개발공단 계약과장 보좌 와다), 카토오 타케시 加藤武 (사카쿠라), 류우 치슈우 笠智衆 (노나카 검사부장), 미야구치 세이지 宮口精二 (오카쿠라 검사), 남바라 코오지 南原宏治 (호리우치 지방검사), 미츠이 코오지 三井弘次 (목소리 날카로운 신문기자), 시무라 타카시 志村喬 (모리야마 관리부장), 사잔카 큐우 山茶花究 (카네코), 츠치야 요시오 土屋嘉夫 (사무관), 타나카 쿠니에 田中邦衛 (자객), 사와무라 이키오 沢村いき雄 (택시기사), 후지타 스스무 藤田進 (경찰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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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 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쿠로사와 아키라 100주년 기념 리뷰를 속행하겠습니다. 이미 극장에서 보실 기회는 거의 다 지났지만 다행스럽게도 고전기 일본 영화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쿠로사와 감독의 작품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금년 말까지라도 oldies 님과 함께 ‘쿠로사와 전작 리뷰’ 라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다짐하는 바입니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는 그 제목이 벌써 가리키고 있듯이 각본가 하시모토 시노부의 잘 듣는 칼로 베는 것 같은 용서가 없는 시각이 충분히 반영된 작품입니다. 남녀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악의 기운에 말려들어가고 만다는 점에서 [돌아가는 길] 이나 [악몽의 뒤안길] 처럼 주인공들을 그들의 도덕적 성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칠흑같은 어두움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모범적인 필름 느와르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원작에 기초하고 있지만 인간이란 가장 사악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밑바닥의 가정부터 시작해서 기막힌 스토리텔링과 연기력의 통솔을 통해 마침내 자기의 인생을 파멸시킨 극악한 인물이라도 스스로의 선의 가능성을 발견만 할 수 있다면 용서할 수 있다는 결말에 도달하는 걸작 [천국과 지옥] (‘도스토예프스키적’ 이라는 수사는 이러한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은 이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에 비하면 그 으악하고 비명이 절로 나오는 무서운 인간의 악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훨씬 낙관적이며,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습니다. 반면 [나쁜 놈] 의 경우는 [햄릿] 에서 빌려온 듯한 주인공의 복수라는 모티프에도 불구하고, 그 계보를 따지자면 오히려 애매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서 죽여버리기고도, 자기네들을 위해 충성을 바친 졸자들을 매립장에 묻는 쓰레기 더미 취급하듯이 하는 일본 관료 사회의 타락과 권위주의의 얼굴에 직접 뜨거운 찻잔을 집어던지는 [백주의 암흑] 과 같은 강렬한 사회비판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마뱀이 자기 꼬리를 자르고 몸통은 내빼듯이’ 하급 관리들을 자살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고급 관리들과 비지네스맨들을 진정한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하시모토 그리고 나아가서는 감독 쿠로사와 자신의 시점이라는 데는 별 의의가 없을 것입니다만, 영화는 냉철한 비판 정신으로 일관성 있게 밀어 붙이기 보다는 진솔한 멜로드라마적 열정과 그 일급 느와르적인 차가운 존재론이 정면으로 부닥뜨리면서 수증기처럼 발생하는 일종의  모순적인 에너지가 다른 잘 만든 사회 의식 강한 필름 느와르에서는 볼 수 없는 진땀 흐르는 긴박성과 가위 눌리는 것 같은 중압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의 진정한 힘을 중층적으로 묘사하는 데 너무나 공을 들인 나머지 쿠로사와의 전성기 작품에서는 반드시 맛 볼 수 있는 통쾌함이라던가 위트 넘치는 풍자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 난점이라면 난점일 수 있겠습니다.

 

영화의 만듦새를 놓고 논하자면, [나쁜 놈] 은 ‘액션’ 은 고사하고 캐릭터들이 화면을 가로질러 빠르게 이동하는 장면도 거의 없는, 80% 이상이 앉아서 얘기하는 장면들로 구성된 그런 영화가 와이드스크린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 가에 대한 훌륭한 전범으로 논의될 수 있습니다. [나쁜 놈] 에서는 거의 관료계급의 소모품같은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해놓고 거기에서 빠져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와다 과장보가 유서를 들고 부글 부글 증기가 끓어오르는 활화산을 비실 비실 걸어 올라가는, 당장이라도 용암을 소주 마시듯 들이키는 대괴수가 어흥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장면 등의 예외적 요소를 제외하면 카메라도 거의 상하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좌우 운동을 하거나 가만히 멈춰 서서 정면을 응시할 따름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이 과장이 흑막이 고용한 총잡이 ([산주로오] 에서는 그렇게 웃겨주는 제일 띨띨한 젊은 사무라이로 나왔던 타나카 쿠니에 연기자가 ‘니가 시라이 맞냐?’ 뭐 이러면서 쓰윽~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는데 우와~ 무섭습니다) 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는 시퀜스의 빛과 어두움으로 구성된 타블로, 진상을 마침내 파악한 이와부치 부총재가 니시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자기 딸의 순수함을 악랄하게 이용하는 연극을 벌이는 장면에서 미묘하게 전환하는 시점의 위치 등, 이 작품의 와이드스크린의 구도는 연기자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넓은 환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서 관객들에게 한 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연출의 도구로서 정교하고도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와부치를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지극히 형식을 중요시하는 구도가 그들의 전혀 다른 심리와 동기를 겉으로는 얼마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그 갈등을 암시하듯, 니시와 케이코 사이의 비극적인 로맨스도 두 사람의 ‘가깝고도 먼’ 사이를 은연중에 보여주고 또 물리적으로도 두 사람을 갈라놓는 요소들—침실과 거실을 나누는 얇은 다다미문 그리고 후반부에 니시가 마침내 아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전쟁당시 폭격으로 초토화된 건물 지하실에 깔려있는, 이제는 무릎 높이의 초석만 남은 벽 등—에 의해 좀체로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만, 마침내 아버지와 니시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갈등하는 케이코를 어린아이를 얼싸안고 무릎에 앉히듯이 보듬어 안고 입을 맞추는 니시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이 부분이 아마도 [햄릿] 의 변주 내지는 응용일까요—니시 자신이 고백하는 이 모든 일들을 획책한 동기도 사회적인 정의감이나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그냥 비겁하고 평범한 약자였던 아버지를 죽기 전에 매몰차게 거부했던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것이 밝혀지지요. 진정으로 선해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더 독하게 먹고 냉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그런 거창한 “선” 의 세력과는 거리가 먼, 소소한 악의 씨가 싹을 내고 자란 모습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이 부분에서는 각본가 하시모토 보다는 쿠로사와 감독의 의향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뿔테 안경을 끼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고전적인 인텔리 청년의 모습에서 일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 혐오의 감정을 섬뜩하게 표출시키는 미후네 토시로오 선생, 단순히 상황에 휩쓸려 가는 대신에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사는 여성 케이코역의 카가와 쿄오코 여사, 입장만 조금 달랐으면 우리편 적편이라는 위상이 완전히 역전 될 수도 있었던 와다와 시라이를 그야말로 소시민적인 고뇌와 불안으로 가득 채운 모습으로 그려낸 후지와라 카마타리와 니시무라 코오 두 조역 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십니다. 상대적으로 니시에게 거짓 신상 (身相) 을 제공하는 친구 역의 카토오 타케시가 약간 손해 보는 역할이랄까, 보통 설경구씨에게 맞겨야 될 것 같은 배역에 김수로씨를 캐스팅한 것 같은 위화감이 살짝 드는데, 로널드 리치나 다른 분들이 주장하셨듯이 “영화를 말아먹을 정도로 오버액팅을 했다” 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쁜 놈] 의 가장 대단한 연기는 [라쇼오몬] 의 신경질적인 무사 역할과 더불어 나루세 미키오, 미조구치 켄지 제 작품의 숱한 명연기를 통해서 일본 영화를 논하는 데 필연적으로 언급될 수 밖에 없는 대배우 모리 마사유키선생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분은 촬영 당시 미후네선생과 아홉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노회 (老獪) 한 여우 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상황을 정확히 판단 해내는 지적 능력과 진짜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을 짐짓 사려 깊어 보이는 진중함의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이와부치 부총재라는 캐릭터를 조금도 지나침이 없이 명료하게 표현해주고 계십니다. 모리 선생의 명인의 연기를 통해 투영된 이와부치의 잔악한 모습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부터 시작해서 교실내의 상습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사회악은 무슨 강우석 영화에 나오는 그런 “비 한국적인” 악당 들이나 가학성 싸이코들이 아니고 시스템의 위계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룰 수 있는 “충성스러운 멤버” 들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이 제목은 만들 때에는 아이러니칼한 의도로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대로 세상의 돌아가는 꼴을, 그 현실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한편이지만, 보고 나면 가슴이 무거워지면서 하늘을 응시하고 한숨을 크게 한 번 내뱉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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