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Mad God   


미국, 2021.     ☆☆☆★★


A Tippett Studio Production, distributed by IFC Midnight. 화면비 1.85:1, 1시간 23분. 


Director, Screenplay, Production Design: Phil Tippett. Cinematography: Chris Morley, Phil Tippett. Makeup: Jason Barnett. Music: Dan Wool. 


CAST: Alex Cox (마지막 인간), Niketa Roman (간호인/마녀), Satish Ratakonda (외과의), Tom Gibbons (연금술사), Harper Gibbons (우리에 갇힌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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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마도 현존하는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 기법의 북미 제1인자이고, 30-40년대의 윌리스 오브라이언 ([킹콩]) 과 50-60년대 레이 해리하우젠 (수많은 그리스 신화와 신배드가 주인공인 모험물들) 이후에 이 특수효과 기술을 전승해서 70년대부터 발전시켜온, 미국 특수효과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을 필 티펫의 극히 개인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이렇게 거의 30년의 세월을 두고 조금씩 생각 날때마다 순전 자신의 덕후심 내지 정말 좋아서 즐기는 심정으로 시간을 쪼개서 쌓아올려온 작업의 결과물이, 유투브에 십분짜리 단편 몇개의 꼴을 하고 올라오는 대신에, 그래도 한 시간 반 남짓한 길이의 장편영화로 부천영화제에서 극장 상영까지 가능해졌다는 것은 북미 고전 특촬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심지어는 조금 깊이있게 덕질을 한 [스타 워즈] 팬들까지도 포함한 영화팬들에게는 감개무량한 심정을 안겨다 주는 바가 있습니다. 


[스타 워즈] 언급을 해서 약간 의아해 하실 젊은 분들도 계실 지 모르겠는데, 지금 보면 (물론 디즈니 등에서 “특수효과 업데이트” 라는 명목으로 “세련된 CGI” 로 덧칠을 하면서 원본을 계속 수정 [이라고 쓰고 훼손이라고 읽는다] 해나갈 수도 있겠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CGI 로 도배된 프리퀄들과는 달리 원래 [스타 워즈] 삼부작의 시각효과에서는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고전적인 활극장르에 대한 애정과 오마주의 정신을 자양분삼아 태어난 [스타 워즈]시리즈에서 이러한 “오래된” 특수효과에 대한 존중심과 경배심이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필 티펫의 가장 훌륭한 업적 중 하나는 [제국의 역습] 의 임페리얼 워커를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 기법으로 그려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두번에 걸친 오스카 수상도 [드래곤슬레이어] 에 등장한 너무나도 위풍당당하고 박력있는 용, 그리고 [제다이의 귀환] 에 등장한 흉물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얘교가 있는 자바 더 허트가 사육하는 괴수 랑코어의 묘사 등 이미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여겨진 시절에 받은 것이죠. 


컴퓨터에 의한 모션 콘트롤을 도입하여 실사 캐릭터들과의 위화감을 최소화하는 등 Industrial Light and Magic 의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티펫이 그려낸 [드래곤슬레이어] 의 용, 임페리얼 워커, 랑코어 등은 여전히 해리 해리하우젠의 시기와 동일한— 정신이 아뜩해 질 정도의 인내심과 정치함을 기본으로 깔고, 몇 시간 몇십 시간에 걸쳐 미니어처 모델들의 포즈를 미세하게 변형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킨 결과, 단 몇 초 몇 분의 다이나믹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창출되었죠. 이 [매드 갓] 의 경우도, 모델들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실사처럼 매끄럽게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러한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짬이 날 때마다 조금식 만들어 더하는 “티끌모아 태산” 방식으로 완성된 한편이니만큼, [매드 갓] 에서는 일관된 서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처참하게 괴멸한 인류 문명의 잔해를 연상케 하는 잡동사니가 농밀하게 들어차고 폭력과 착취, 파괴와 재활용의 사이클이 일상화된 어떤 세계에서 (이것이 하나의 세계나 우주인 것인지, 각 층위별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벌어지는 멀티버스인지도 확실치 않습니다만)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파일럿이 무슨 대규모의 공장처럼 보이는 시스템을 폭파시키는 임무를 띄고 케이블로 내려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만, 이 임무의 수행은 별다른 플롯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에 르네 랄루의 [판타스틱 플래닛] 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온갖 종류의 괴상망측한 괴물, 도깨비, 마녀, 괴생명체, 요정, 벌러지들이 등장하여 세계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장시켜 나가면서, 종국에 가서는 중세 연금술 (alchemy) 의 우주관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든 것을 무 (無) 로 회귀시키려는 시도를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 코스믹 호러적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게 되지요. 물론 21세기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은유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들도— 진흙으로 빚어 대충 만들어진 듯한 휴머노이드들이 “감독” 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마 (牛馬) 같은 인상의 괴물들과 기차 비슷한 수송수단들에게 마구 짓밟히고 뭉개지면서 중노동을 강요받는 것을 보여주는 시퀜스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보이긴 합니다만, 이런 정도의 제스처나 은유적 비주얼은 수많은 주류적 상업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요. 여러번 감상하다 보면 이 한편의 구약성경적인 사상적 배경 (바벨탑의 에피소드를 우화적인 종이연극을 방불케 하는 형태로 제시됩니다) 의 함의라던지, 각 층위별로 여러 종류의 어둡고 파괴적인 세상을 전시해 보여주는 구조가 단테의 [신곡] 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닐까 라던지, 여러 해석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그런 지적인 자극을 받으려고 [매드 갓] 을 구태여 감상할 필연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사실은 [매드 갓] 을 감상하면서 약간 의외였다고 할까, 예상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점 하나는 피가 많이 튀기는 하드고어적인 색체가 꽤 진하다는 점인데요. 위에서 언급한 파일럿이 임무에 실패하고 포획된 연후 문자 그대로 생체해부를 당하는 장면이 그 한 예입니다. 메스로 마구 자르고 도려내고 내장을 들어내는 (이 내장들이 피 범벅이 된 오래된 책자라던가 동전이라던가 그런 “유물” 들로 구성되어 있는 등, 대놓고 우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긴 합니다만) 존재들이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이 아닌 괴기한 메이크업을 한 배우들의 연기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슬래셔적이고 메디컬 호러적인 색채가 더 짙어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해리하우젠 특촬 작품들에의 알콩달콩한 오마주, 또 어딘지 모르게 귀여우면서도 혐오스러운— 극색채로 화려한 모습을 지녔지만, 이리저리 꼬물거리면서 자기보다 더 작은 벌레들을 탐욕스럽게 흡입포식하는 벌레들 처럼 말이죠— 비주얼들과 공존하면서 기이한 섬뜩함과 묘한 기시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피 튀기는 고어/잔학/포식/착취 장면들은 그렇다 치고, 개인적으로는 2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손톱을 달고 흰 가운을 입고 등장하는 알렉스 콕스 이하 “인간” 들 캐릭터가— 존재들의 극단적인 사이즈의 스케일이 의식적으로 작화 구조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인간들이 다른 괴생명체들보다 몇십배나 더 거대한 거인으로 비추이기도 하고 또 그들보다 훨씬 작은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매드 갓] 의 미적 일관성을 조금 갉아먹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물론 이것도 티펫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기술적인 어젠다가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델들이 움직여서 촬영된 푸티지를 어떻게 합성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같은 신에서 섞어낸다는 것은 사실 보통 기술 가지고는 어려운 일일테고, 그러한 시도를 여러 각도해서 해보이고 싶었다는 순수하게 기법적인 목표가 있었는지도요. 


아무튼, “이 영화는 대체 무슨 의도와 사상적 의미를 지니고 만들어졌는가?” 라는 질문보다도 “와 이런 이상하고 괴이하고 잔혹하고 끔직하지만 또 (모순적으로) 귀엽고 알록달록한 것들이 뭐 이렇게 많이 나와? 뿅가네!” 라는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티펫의 “의도” 에 더 가까운 것이었을 거라고 나는 짐작하게 되네요.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톱 모션 아니메이션 고전 특촬영화의 광팬이라던가 그런 분들께서는 솔직히 [매드 갓] 에 어떻게 반응하실지 잘 모르겠네요. 해리 해리하우젠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일면 수공업적이고 장인적이면서 클래시칼하게 동화적인 매력은 이 한편의 주된 매력포인트는 아닌 것 같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체코인 아니메이터 거장 얀 슈방크마여와 위에서도 언급한 롤랑 토포르와 르네 랄루의 [판타스틱 플래닛] 등의 동유럽-아방 가르드계열 작품들이 지닌 독특한 초현실적이고 부조리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더욱 미국식으로 “가열화 (加烈化)” 시킨 버전이라는 느낌입니다. 현대영화의 역사에 이름을 이미 남긴 한 명의 특수효과 장인이 상업적인 고려나 “서사” “플롯” 그리고 일반적인 “작가의식” 따위에서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마음껏 자신의 덕후기질을 발휘해서 만들어놓은 하나의 세공품적 예술로 감상하시는 것이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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