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우먼 1984 Wonder Woman 1984 (2020)

2021.01.19 16:44

Q 조회 수:28779

원더우먼 1984  Wonder Woman 1984


미국-영국-스페인, 2020.         ☆☆☆★★


A Warner Brothers/DC Entertainment/Atlas Entertainment/Stone Quarry Production. 화면비 1.43:1 (IMAX Theater), 1.78:1 (DVD, Blu Ray, 4K UHD), 2.39:1. 2시간 31분. 


Director: Patty Jenkins 

Screenplay: Patty Jenkins, Geoff Johns, David Callaham 

Cinematography: Matthew Jensen 

Music: Hans Zimmer 

Production Design: Aline Bonetto 

Costume Design: Lindy Hemming 

Special Visual Effects: Double Negative, DNEG, Method Studios, Framestore, Gentle Giant Studios 


CAST: Gal Gadot (다이아나 프린스/원더우먼), Chris Pine (스티브 트레버), Kristen Wiig (바바라 미네르바/치타), Pedro Pascal (맥스 로드), Connie Nielsen (히폴리타), Robin Wright (안티오프), Ravi Patel (바바지드), Lilly Aspell (어린시절의 다이아나), Amr Waked (사이드 반 아비도스), Stuart Milligan (미국 대통령), Lucian Perez (알리스테어), Lynda Carter (아스테리아). 


WONDER_WOMAN_1984-_CHINESE_POSTER 


약간 뒷북리뷰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어차피 나는 프로 리뷰어가 아니고 극장 공개나 VOD/광학매체의 출시 타이밍에 맞추어서 리뷰를 써야할 이유도 없고 하니 잠시나마 여유가 있을 때 작성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전작 [원더우먼] 은 나에게는 주로 한 시대 전의 헐리웃 장르영화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로맨틱 코메디와 드라마적 풍미 (일부 관객들에게는 둔중하거나 구태의연하게 비칠 수도 있었을) 가 가장 매력적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펙타클적 쾌감 (액션 연출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과다한 슬로우 모션이나 “만화적” 정지화면의 다용 등의 문제점을 위시해서) 은 적은 한편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패티 젠킨스가 다시금 각본과 감독을 맡은 직접적인 속편인 [원더우먼 1984] 는 여전히 “구티가 난다” 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딱히 개의치 않고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고전 헐리웃/미국 영화/TV 장르에 대한 접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는 “1984” 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주 구체적으로 80년대 TV 수퍼히어로 장르물의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인 낙관성과 플라스틱한 미적감각까지, 그러나 제대로된 블록버스터적인 대형 스케일로 재현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나이트 라이더], [두얼굴의 사나이] 그리고 물론 린다 카터가 타이틀롤을 맡았던 [원더 우먼] 시리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연상시키지는 않지만, 그 시대가 표방했던 일면 일천하게 보일수도 있었던 시대정신을 기리는 노스탈지아에 물들었으면서, 또한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레이건시대의 백인남성 중심의 세상을 비꼬는 풍자도 적절히 삼입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나는 이 영화가 나에게 무척 감정이입을 쉽사리 하게 만드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는 것인데, 이 한편을 보고 나서 왜 한 시대 전의 과거를 무대로 쓰는 마블영화들은 나에게 이런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이 한편에 묘사된 80년대 미국은 [백 투 더 퓨처] 등에서 “동시대적 시각” 으로 그려낸 80년대 미국보다 훨씬 나에게 감정적인 투자가 가능한 세상으로 다가왔는데, 그것이 왜 그랬는지는 사실은 영화 자체의 전략이나 미적인 방향성 (그것들도 무관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보다는 나 자신의 개인사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 얘기는 결론부에서 다시 풀기로 하고, [원더우먼 1984] 를 단순히 수퍼히어로 장르영화의 비교우위라던가 그런 측면에서 감상하시는 분들이시라면, 나보다 덜 공감을 느끼셨을 가능성은 인정을 하고 넘어간다. 


물론 “수퍼히어로 영화” 로서 [원더 우먼 1984] 를 구태여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나도 별로 없다. 단지, 전편에 비교해서 그 약점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보완하려고 한 눈에 띄는 노력까지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전편에 비해서 원더 우먼의 액션 코레오그래피와 전반적인 묘사가 가증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한결 더 명료해졌으며, 여전히 슬로우 모션과 동선을 “꺾어버리는” 스톱 모션의 기법이 눈에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매끄럽게 다가왔다. 물론 전편의 아레스와의 대결처럼 요번편의 치타와의 대결 장면이 지나치게 후반부에 몰려있고 생각보다 그 임팩트가 강하지 않다는 약점은 지적이 가능하겠다. 이 한편에서 가장 훌륭한 액션 시퀜스는 개인적으로 어린 다이아나역의 릴리 아스펠 (실제 삶에서도 승마 선수라고 한다) 연기자의 활약이 돋보이는 “아마존 올림픽” 프롤로그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중동에서의 카 체이스 장면이었는데, 다이아나의 초인적인 능력보다도 그 캐릭터의 감정적 동선에 더 중점을 두고, 마블의 경우처럼 기술적인 스펙타클이나 (“광선기” 의 다용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액션의 박진감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액션영화적인 측면은 [원더우먼 1984] 의 경우 부가가치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전편에 비해서 크게 나아진 점은 내가 보기에는 원더우먼의 캐릭터의 설정, 그리고 그것에 상응한 갈 가돗의 연기라고 여겨진다. 이 한편의 갈 가돗은 스크류볼 코메디에서나 나올법한 캐릭터의 전형에 적응하려는 현대적인 여전사라는 느낌이었던 전편의 다이아나와는 달리, TV 시리즈의 린다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우월한 육체적 조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남들의 눈을 피해서, 시공을 초월하고 문화적으로도 차별되는 “외계인” 의 삶을 살고 있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나는 이 한편에서 크리스 파인이 다시금 연기하는 스티브 트레버와의 관계가 상당히 의무방어적일 것을 예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존재감이 자칫하면 폭망할 수도 있었을 설정 (즉 트레버의 “영혼” 만 환생해서 관객들은 크리스 파인을 보지만 영화안의 등장인물들은 엉뚱한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다는- 이 설정 자체도 80-90년대 “몸 바꾸기” 코메디의 클리세를 원용하고 있다) 에도 불구하고 감퇴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적절하게 시대상을 반영하는 유머감각 (특히 1920년대의 인간인 스티브가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40년도 넘은 과거가 되어버린 1980년대의 “과학 기술” 을 보고 감탄하고 놀라는 모습의 나이브하면서도 아이러니칼한 귀여움) 을 배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글픔을 담은 로맨스의 동선을 그려낸다. 난 원더우먼의 수퍼히어로적인 묘사보다도 이런 80년대 워싱턴 디시를 재현한 로맨틱 코메디적인 부분의 알게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리는 노스탈지아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WONDER_WOMAN_1984-_DATING_AT_DC 


그에 비하면 전편과 마찬가지로 빌런들이 상대적으로 약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는데, 크리스틴 위그를 치타로 캐스팅한 것은 무척 좋은 아이디어이긴 했으나, 치타 자체의 캐릭터는 다이아나에 맞먹을 정도의 정서적인 강렬함이 부족하다. 페드로 파스칼이 역시 고전적인 빌런의 속성을 굵은 필치로 그려내보이는 맥스 로드도 연기적으로는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데,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를 연상시키는 구역에서 “장벽” 을 쌓아올리는 초능력을 시전하거나, 사기성 사업을 쳐서 파산 직전에 내몰리는 등, 현직 (인류를 위해 다행스럽게도 불과 하루만 더 있으면 “전직”) 미 대통령을 의식적으로 연상시키는 캐릭터 설정을 굳이 우겨넣은 것은 각본팀의 확집이 지나쳤다는 인상을 준다. 트럼프도 분명 가까운 장래에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유수한 장르영화의 빌런의 모델로 기능하긴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맥스 로드는 그냥 80년대형 “욕심은 자본주의를 살릴 것입니다” 적 빌런으로 밀고 나갔어도 충분한 것을, 구태여 그러한 시사적인 레퍼런스를 삼입해야 될 필연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맥스를 반성과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설정한 것에는 찬성의 표를 던지고 싶다. 이런 “나이브함” 이야말로 어떻게 보자면 고전적 수퍼히어로물의 가장 좋은 특질중의 하나인데 (크리스토퍼 리브 판 [수퍼맨] 시리즈에서도 보듯이), [다크 나이트] 처럼 그 반대 방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갈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이러한 귀한 특질을 저버리고 (특정 한국 영화들이 그렇듯이) “깨어있는” 자들의 비판정신을 가장한 천박한 씨니시즘으로 굴러떨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심지어는 [다크 나이트]에서도 뉴욕시의 일반 시민들과 죄수들은 카오스가 인간 사회의 정상태라는 조커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고 폭발장치의 스위치를 누르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다른 인간들이 다 썩었고 수퍼히어로만 잘났다는 얘기를 즐기시려고 수퍼히어로영화를 보시는가?). 


전편보다도 훨씬 더 장대한 스케일과 임장감 (臨場感, 이 표현은 “임양감” 이라고 읽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을 느낄 수 있는 한편인데, 원래 [아스테릭스] 시리즈등의 프랑스 영화에서 활약하던 알리느 보네토 미술감독의 공헌도가 지대하다고 여겨지고, 특히 그 밑에서 일한 세트 드레싱 팀, 소도구팀 등의 노고가 화면에 고대로 드러나 보인다. 스티브와 다이아나가 짐짓 연애 데이트를 즐기는 워싱턴 디씨의 풍광이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아파트의 전모를 포함해서 막상 70-80년대 헐리웃 영화에서는 저렇게 명징하게 노출된 적이 거의 없었던 방식으로 아름답고 품위있게 그려지고 있다. 원더우먼의 “투명 비행기” 가 알고보니 보통 비행기를 그냥 투명하게 카무플라쥐한 것이라는 식의 수수한 아이디어도 오히려 호감이 가는 반면, 아스테리아의 금빛 갑옷같은 장치들은 더 정교하게 써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역시 [다크 나이트] 시리즈나 [인터스텔라] 등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스코어 역시 80년대적인 나이브함과 노스탈지아를 비꼬거나 착취하는 대신에 그냥 보듬어 안고 간다는 면에서 듣기 편하다. 단, 다른 영화도 아니고 내가 바로 전 달에 리뷰한 [선샤인] 에 등장하는 “Adagio in D Minor” 가 원더우먼이 처음으로 혼자 비행하는 장면에 사용되고 있어서, 그게 오히려 인터넷에서 회자되면서 짐머 자신의 음악을 화제성에서 눌러버린 느낌이다. 나도 몰랐는데 엄청나게 많은 영화에 사용되었더구만. 


WONDER_WOMAN_1984-_CONFRONTATION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 이 한편과 내 개인사와의 접점에 대해서 말해볼까.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의 대학에 오게 된 것이 80년대 초반이었고, 워싱턴 디씨는 아니지만 그 주변 동부에서 십 몇년을 거주했으니까, 딱 이 무렵의 “미국” 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미국” 이었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단지, 같은 미국 영화라도 [백 투더 퓨처]나 [캐리] 등에 나오는 미국은 내가 경험한 미국이 아니다. 나는 미국에서 자라서 고등학교를 다닌 미국인 (백인) 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 [원더우먼 1984] 에 나오는 미국은 바로 나이 먹고 이 사회에서 정착했지만 여전히 “외부인” 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사는 나같은 인간이 아무 준비없이 던져졌던 그 미국에 훨씬 더 근사 (近似) 한 모습을 보여준다. 폭력적이고, 시끄럽고, 천박하고, 오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하고, 눈이 부시게 밝고,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오가며, 미래를 향한 가능성에 가득찼던 그곳. 


영화가 끝날 즈음에 (스포일러 피하느라고 구체적인 상황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다이아나가 어떤 남자 (남자는 모르지만 다이아나는 구면이다) 와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눈을 맞으면서 짐짓 지나가는 말투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다이아나에게 그 남자가 말한다. “There are many things in the world. 세상에 정말 뭐가 많아요.” 다이아나는 슬프고도 밝은 얼굴로 수긍한다. “그래요. 정말 뭐가 많아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랬다. 내가 그때 다이아나처럼 스리슬쩍 눌러앉은 외계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도착한 그곳, 어렸던 내가 성인으로 자라난 그곳에는 “뭐가 많았다.” 40년 동안 그곳에 실망도 하고 위협도 느끼고 그 위선에 치를 떨기도 했지만, 뭐가 많은 곳, 이 기본적인 느낌은 그 세월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혈육의 끌림 따위의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원초적인 기억의 깊은 곳을 건드려준 [원더우먼 1984] 에 영화의 퀄리티와 전혀 상관없이 고마움의 뜻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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