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드라마] 몽크와 홈즈

2012.02.12 22:55

dlraud 조회 수:2192

몽크와 홈즈

 

1. Holmesian Deduction

미국 TV 드라마 ‘몽크’의 에이드리언 몽크는 전형적인 홈즈식 추리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범인이 떨어뜨린 단추나 말투의 시제를 보고

범행을 확신하는 식이죠. 몽크가 심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홈즈식 추리의 본질에 어울립니다. 극적인 효과를 좋아하는 홈즈

와 달리 몽크는 그를 비웃는 범죄자들을 향해 더듬더듬 진지하게 그들의 중요한 실수를 열심히 설명합니다. 그의 진지하고 내성적인 성

격은 홈즈식 추리조차 건조한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2. Defective Detective

홈즈가 초인류적인 탐정이었다면 몽크는 실수로 누가 짓밟기 전에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탐정입니다. 홈즈의 결함은 그의 성격의 기이함과

 기벽, 범죄에의 매혹, 거만함, 여성혐오+무성애자적 성향 정도입니다. 현대사회로 옮긴다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성격이죠.

그에 반해 몽크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은 아주 단호하게 그가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이드리언의 결함은

아주 눈에 띄는 강박장애입니다. 100개 쯤 되는 보스의 공포증을 기록해서 가지고 다녀야 하는 비서 겸 조수 겸 보모(인 샤로나/나탈리) 없이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죠. 에이드리언이 느끼는 일상생활의 위험과 더러움, 질병과 무질서는 일반인의 스무 배, 백배쯤이니 그는

반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홈즈의 사기 캐릭터가 시리즈의 인기와 명성에 공헌한 만큼, 몽크의 결벽증 캐릭터와 그로 인한 해프닝은 넘쳐나는 수사 드라마 중 몽크가

특별한 이유이며 시리즈의 마르지 않는 유머 소스입니다. 종종 이야기의 진행을 비틀거나 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의 번역제목은 Defective Detective라는군요.

 

3. 난형난제

홈즈와 몽크에겐 여러모로 동생들보다 더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에이브러햄 몽크는 굉장히 닮았어요. 동생들보다 더

기억력, 지능(인지 강박증인지가)이 뛰어나고 외출하거나 걷는 등 육체활동을 싫어하는 폐쇄적인 성격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가졌습니다. 이 형들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동생들의 기벽을 극단으로 밀어붙힌 버전이란 생각입니다. 다른 점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확실한

 마이크로프트에 비해 에이브러햄은 매뉴얼 작성을 업으로 하며 집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유약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4. 주변인물

원작에서 왓슨은 강렬한 에스프레소같은 홈즈를 희석시켜주는 크림과 설탕이자 관찰자, 기록자였습니다. 몽크의 비서, 샤로나와 나탈리 중

존 왓슨에게 가까운 것은 나탈리라고 생각합니다. 샤로나는 아무리 고용주라도 져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몽크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둘의 콤비는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비씨의 존 왓슨에 가까운 것은 샤로나이겠네요)

주변인물 중 비중이나 매력이 가장 차이가 나는 인물은 경찰 관계자들 입니다.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에 비해 회가

 거듭할수록 정이 들게되는 스토틀마이어 경감과 랜디 디셔 경위는 비교하자면 오히려 허드슨 부인에 가깝달까,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샌 프란시스코가 범죄와 흉악범의 온상인 런던과 다르게 온화하고 가정적인 도시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몽크와 조수간의 궁합보다도 스토틀마이어와 디셔의 콤비를 보는 재미가 드라마의 반을 차지합니다.

 

5. 차이점: 트루디 몽크

홈즈와 몽크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트루디의 존재입니다. 신분, 배경 등이 거의 제거된 셜록 홈즈와 달리 몽크의 가정사와 과거(심지어 어린 시절도)

종종 에피소드에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트루디 몽크는 거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몽크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과거를 상징하며 단적으로

몽크에게 새로운 미래가 없는 이유입니다.

몽크가 일선 경찰이던 시절, 범죄 조직의 테러, 정확히는 차에 설치한 폭탄, 로 아내 트루디를 잃습니다. 에피소드 내내 강조되긴 하지만 몽크는

 아내가 죽은 후에도 결혼 반지를 끼고 자신을 기혼자라고 소개하며, 죽은 아내의 물건을 그대로 간직하며 매일 사진을 보고 대화하죠. 몽크에게

트루디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완전무결한 존재이자 유일한 질서였습니다. 트루디가 죽은 후, 몽크에게 세상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내면을 안정을 잃은 에이드리언은 외부세계의 무질서에 강박적으로 반응합니다. 직장인이자 결정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정상적인 우선

순위를 따를 수 없어 경찰직을 박탈당한 몽크는 탐정이 되서 수사에 협력합니다.

이것이 몽크가 탐정이 된 이유이자, 탐정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트루디가 범죄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범죄자를 잡는 일 만큼 몽크에게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죠. 트루디는 모든 이야기의 복수를 결심하는 주인공의 계기, 어떤 소명을 선택한 인물의 이유에

 해당하는 장치입니다(배트맨의 부모님이나 스파이더 맨의 벤 삼촌같은). 홈즈가 탐정을 직업으로 삼은 성격적 요인은 있어도 왜 다른 직업이

안 되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가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오페라 극장의 에릭이나 렉터 박사처럼(어째, 비유가..죄송합니다;) 자세한 설명이 나올수록 사족이 되는 캐릭터인 홈즈에 비해 몽크의 행복하지 못한

가족사와 아내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은 일상생활에서 이기적으로, 이해할 수 없이 행동하는 에이드리언에게 한없는 깊이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

애정, 한숨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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