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책 힘들게 읽었습니다.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까미노 여행기 특성상 멈출 수가 없더군요. 한 마디로 이 책은 에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싶어한지 여러 해가 되었으면서 떠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숱한 여행기들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껴왔지요.

그러다보니 가보지도 않은 길인데 사진을 보면 여기는 어디겠다 하고 어려운 스페인어 지명도 줄줄 읊는 지경이 되었고,

아무리 읽어봐야 남의 여행 얘기지 나의 여행은 아니다 하는 회의가 들어서 까미노 여행기 읽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인상깊게 읽었던 '먼 그대'의 작가 서영은이 순례자의 길을 걷고 책을 썼다 하는 소식을 들으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읽었는데 정말 이런 기분으로 책을 덮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녀는 후기에서도 본문에서도 자신은 다른 사람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자기 동행이 쓴 순례기도 물론.)

저는 그분에게 닥치고 조이스 럽 수녀님의 '느긋하게 걸어라' 여행기를 읽어보라고 손에 쥐어주며 사정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순례의 길을 걷기 전 '준비'에 대해서, 아니 그건 됐고 누군가 '동행과 함께' 그 길을 나설려면 어떤 준비가 있어야되고 실제로 길을 걸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겠는지 꼭 생각 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책을 펴낸 후지만 지금이라도 강력히 권하고 싶군요. 아직도 모르고 계시는 듯하니.

 

순례자의 길 여행기들을 읽으면 픽션이나 다른 에세이들과는 달리 글 쓴 이의 성격과 장단점(특히 단점)이 아주 잘 보입니다.

매일매일 힘들게 걷는 일만을 수십일 동안 반복하는 나날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사람의 성질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편견이나 편집, 고집 같은 것들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읽고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순례기도 있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요.

 

제가 언급한 '느긋하게 걸어라'는 미국인인 60대 중반 수녀님이 70대 목사님과 함께 까미노를 걷고 쓴 여행기입니다.

이 두 분은 함께 그 길을 걷기로 한 후에 수 개월(혹은 1년이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누구에게 빌려주어서 지금 확인할 수가 없네요)동안 같이 여행을 준비합니다.

체력적인 준비나 장비의 준비도 컸지만 그보다 큰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만남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때로는 서로 리스트를 작성해서 바꿔보면서 서로의 장점과 (특히)단점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에게 원하는 것, 그 중에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 하고 상대편에게 꼭 원하는 것을 알리고 또 장기간 걷다가 생길 수 있는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떠나서 걷는 동안에도 매일매일 서로 대화를 하며 어려움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또 함께 나눕니다.

그래도 오랜 여행이다보니 상대에 대해 거슬리는 점이 생겨서 꽁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게 풀리기도 하면서,

그러나 결국 서로가 있어서 더욱 안전하고 풍성한 여행을 마무리 짓게 되지요.

수녀님은 그 책의 내용이 여행 동안에 동반자 목사님과 이미 다 나누었던 이야기들인데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기 위해서 쓰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해외여행을 늘 혼자하는데 혼자의 자유로움이 워낙 좋기도 하지만 동행과 사이좋게 다닐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가족은 혹시 다를까 하고 조카와 일본에 열흘 간 적이 있는데 다녀와서 다시는 누구와 같이 가는 시도를 하지 않기로 결심을 새로이 했지요.

순례자의 길을 가더라도 저는 분명히 반드시 혼자 떠날 겁니다.

그러나 만약, 만에 하나 제가 누구와 동행하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조이스 럽 수녀님의 책을 상대편에게도 읽히고 그분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서영은씨 책으로 돌아와서,

평소의 제 여행 동반자 문제에 대한 걱정을 최악의 결과물로 그대로 보여준 책이 이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기가 시작되었는데 이 분은 동행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습니다. 글자를 할애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처음엔 '같이 가기로 했다' 이런 표현이 없으니 같이 가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비행기 탑승하는 부분에서 독자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산티아고에 네 번 다녀온 지인(제자)이 그 길을 가라고 했다' 이정도 이야기와

'그 사람이 메일로 이거 알아두셔야해요 저거 알아두셔야해요 하는 메일을 보냈다'는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장비 몇 가지 구입한 이야기.

위에 여행기를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순례자의 길을 (혼자)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만하지 않은 길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걸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저것 체크하고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분은 그 모든 것을 동행자가 알아서 해주고 본인은 자기 몸만 챙겨서 떠난듯. 물론 독자의 짐작이고 본인은 (당연한듯이)  언급이 없습니다.

 

정말 내가 깨기 시작한 것은 파리에 도착하고의 이야기인 75페이지의 이 부분.

 

한 시간 남짓 걸려서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했다. 동행은 이룬으로 떠나는 기차 시간과 기차가 출발하는 선(vote)을 알아본다며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동안 나는 2층에 있는 스낵점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그녀를 기다렸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내 곁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짐이 된다고 망고를 먹어치워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망고를 깎아먹는 그녀 때문에 곤혹스러웠다는 장황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러 해 전에 같은 역에서 제가 한국에서 예매한 기차표를 찾기 위해 그 넓은 곳에서  3시간 가까이 이리뛰고 저리 뛰다가

탈진해서 쓰러지기 직전에 하겐다즈 먹고 살아난;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몸종이 아니고)동행이 종종거리며 애쓰는 동안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앉아있다가 돌아온 동행을 비웃는 이 모습이 상상이 되자 머리가 띵 하더군요.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당시 서영은씨 66세 동행은 70세.;;)

 

이어서 자신이 손톱깎이를 사와서 동행과 나눈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렇게 큰 걸 샀단 말이예요?"

"이것밖에 없으니 어쩌겠어요."

"얼마 줬어요?"

"4유로."

"세상에나."

그녀는 혀를 차는 대신 '세상에나'라는 말을 썼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라며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읽는 나도 '세상에나'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행을 욕하는)시작에 불과했다는 말도 똑같이 쓰고 싶습니다. ㅠㅠ

 

어쨌든 자신의 감상 위주로 글을 써나가고 초반에는 여행 떠나기 전에 만난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면서

동행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대화(대사)를 통해서 정체를 짐작하게 하는데 그 대사라는 것도 이렇게 뭔지 모르게 정상적인 내용이 아니고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이상한 말을 했다거나 그런 내용들입니다. 

심지어 책이 끝날 때에 가서야 그 동행 분의 연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손녀 선물 운운하는 내용을 읽고 말이죠.

 

순례길 위에서 동행이 사용하는 이름 'ZITA'(짓다)에 대해서

 

그런데 나에겐 '짓다'보다 몸도 마음도 날쌘 치타(cheetah)로서의 이미지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라고 하며 이후로 동행을 '치타'라고 부르는데 읽는 나로서는 웬지 그게 매 번 불편하더군요. 치타는.. 치타가... 하면서 좋은 이야기 하는 적이 없고 하대하는 느낌이니까요.

 

기억에 남는 대목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세나루사 수도원 성당에서도 그랬다. 성당 바닥에 안치된 옛 성인 무덤의 돌판 위에 자신의 몸을 던져 한참 동안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내면에 항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그 신심이 나에겐 몹시 낯설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그 서슴없음이 공항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잔다든가, 비행기 안에서 좌석 등받이에 붙어있는 식판을 내리고 그 위에 다리를 올려놓는 식의 행동으로 드러날 때도 나는 낯설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엔 내 행동을 어느 선에서 꽉 붙들어 매고 있는 밧줄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서슴없이 행동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데 도움이 될까, 방해가 될까.

 

'낯설었다'는 표현을 쓰고있지만 누가봐도 '이상하다 몰상식하다'(네 그 동행이 이상한 건 사실입니다)로 읽히는 내용을 저렇게 세상에 폭로하고나서는 꼭 뒤에 보라색 같은 내용을 덧붙이는데 그런다고 앞의 내용이 흉본 게 아닌 게 되지는 않지요.-_-

은근히 동행의 영어가 서툴다고 밝힌다든지 (본인은 영어 잘하시는듯?)

동행이 자기 먹고싶어서 음식을 해놓고 억지로 식탁에 불러 앉혀놓고 국을 떠주면서 "내가 이것까지 바쳐야 돼?"라고 중얼거렸다는 내용...;;; (독자가 이런 것까지 들어야 돼?;;;)

간식 먹으며 쉬는데 기다려주지 않고 동행이 먼저 가버려서 나중에 숲에서 길을 잃고 비바람 맞으며 헤매다가 간신히 민가를 만나서 하루 묵게 되었고

그 때 앞으로는 혼자 걷겠다 결심하는 것을 보고 책을 읽는 나도 그래 이거야! 소리치며 제발 이제 혼자 걸으삼! 외쳤는데

다음날 동행이 경찰과 함께 수소문해서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나서(서로 잘못한 것 같은데) 다시 함께 걷기 시작하고

서로 마음에 응어리를 가지고 말도 없이 걸으면서 서영은씨는 속으로 "이제 내가 혼자 걷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라고 되뇌입니다.

아이고... 네. 그렇게 그녀는 몸은 동행과 함께 걷지만 마음으로 혼자 걷습니다.

이후로 걸으면서 서영은씨는 여러가지 신비하고 감동적인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지만

아무것도 동행에게 말하지 않고 나누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그 체험을 읽은 나는 서영은씨에게 남일 뿐인데, 

바로 옆에서 한몸인듯이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있는 동행이 서영은씨에게는 남보다 못하다는 거지요.;;

그녀는 동행의 여행에 대해서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듯하고 (이상하다는 얘기만 계속하고)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동행이 유럽인과 자신들을 차별하는 숙소 주인에 대해 불만하자

 

치타의 불만이 정당한 것이라 해도,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니 대화도 몇 마디 오고 가다 끊어지기 일쑤였다

 

라는 대목이라던지

동행이 자신을 위해 배려했는데 자신이 사례의 말을 않자 동행이 섭섭해하는 것 같다면서

 

나는 감동을 받으면 오히려 입을 다문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정말 두 사람 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고 둘만 한 달 이상 걷는 길 위에서(까미노 중 사람이 적은 북쪽길)  말 한 마디가 다른 세상에서의 백 마디보다 의미가 있을텐 말이지요.

 

어쩌다가 동행을 칭찬하는 듯한 대목이 나와서 유심히 읽는데,(칭찬인 듯하면서 결국은 흉이 섞였지만)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이야.'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순발력이 뛰어나다. ...(중략) 길에서 생기는 수많은 변수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일정을 조정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남이 귀찮아하건 말건 몇 번이고 물어서 그 궁금증을 풀고야 만다. 그녀 같은 사람과 동행했기 때문에 나는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고, 생고생도 덜한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

 

그러나 십자가를 지기 위한 훈련과정으로 이 길을 택한 나에겐 그녀의 성품이 지닌 남다른 추진력 덕분에 고생을 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너희는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살아 돌아오라'고 바빌론 노예로 끌려갈 동족의 수난을 미리 내다보고 절규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나는 피투성이 되어서라도 나의 그릇(用)됨이 우주를 담을 크기로까지 커지는 것만이 관심사다.

 

이렇습니다.;; 동행의 도움은 결국 고행을 위해 온 본인의 고귀한 길 위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요...

 

아침 햇살 아래 걷다가 마음이 기뻐져서 노래를 부르다가 (본인은 즐거워서 노래를 부르시겠지만 독자는 "대화도 없이 같이 걷던 동행은 어디에?"라고 궁금합니다.ㅠㅠ)  

 

'내가 살아 있다는 것도 기쁘고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도 기쁘고, 자연의 이런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쁘고, 소똥 말똥도 기쁘고, 개돼지도 기쁘고...... 내가 소똥이 되어도 기쁘고......' 기쁘다 앞에 무엇을 갖다 붙여도 기쁘고, 나를 무엇에 갖다 붙여도 다아 기쁘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소똥 말똥 개돼지도 기쁘다면서, 무엇을 갖다 붙여도 기쁘다면서 옆에 가는 동행 이야기는 없어요. 그럼 완전한 기쁨이 아니지 않나요???

읽는 독자 불편해 죽겠습니다. 같이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달랑 한 사람인데. 저자의 기쁨이 와닿지가 않습니다.ㅠㅠ

 

동행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짜증냈다, 휴게소에서 빵을 먹는데 계란만  끼어있다고 불평했다 등등 오만가지가 시시콜콜 기록되어있고

물론 본인은 다른 차원에서 내려다보는 듯이 언급.

동행이 아프길래 가지고 있는 청심환을 주었더니

 

"그 약이 좋은 건가봐요. 집에 가면 우리 남편한테 선생님이 3만원짜리 청심환을 나 먹으라고 줬다고 얘기해야겠어요."

사실 그 청심환이 부자가 특별히 맞추어 제조한 것이긴 해도 그것이 한 알에 3만원이라고 말한 기억은 없다.

 

라는 식으로 모든 말들이 웬지 악의적으로 적혀있습니다.  읽는 기분이 계속해서 불편, 불쾌합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치타에게 하지 못했다.  (중략) 나는 그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아도, 길 위에서 깨달아지는 것들을 치타와 나누고 싶어 틈틈이 말을 꺼냈다. 그때마다 치타는 몹시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또 그 얘기야' 하는 듯이 눈길을 내린다. (중략) '할 수 없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해준 데(순례의 길로 안내한 데)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은데, 본인이 그걸 원치 않는다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두 사람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한 사람은 자신의 책에 모두 기록하고 있고...

 

종착지인 피네스테레 바닷가에 도착하여(여행기도 막판에 다다라)

 

치타가 나를 자매나 모성애적 사랑으로, '자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깨달아지자 그녀가 어째서 그토록 자주 짜증을 내고 눈길을 피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얼 시켜도 제대로 못해, 길을 앞세우면 엉뚱한 길로 가고, 박물관에서 자신이 감동받은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면, 못 들은 척 하나님 얘기를 꺼내고 (정말 동행의 박물관, 미술관 취미를 싫어하신듯) 그때마다 치타가 얼마나 상심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라고 쓰고 있지만

때는 너무 늦어 책의 마무리를 위한 형식적이고 공허한 갖다붙이기식 인삿말이라고밖에 안 읽힙니다.

책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 속에는 동행에 대한 감사도 포함되었는지 끝까지 집착하며 찾고 있는 나. 그런 건 없습니다. 아무 내용도.

이런 말은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그 길을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글을 통해서라도 내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걸으면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네. 그래서 저도 나중에 그 길을 걸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길을 나같은 미지의 독자와 나누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길 위에 있을 때 실제로 옆에 있었던 당신의 동행과 먼저 나누었어야지요!!!

 

네네네. 압니다. 당신의 동행인 그 분이 참 경우 없고 감각 없고 무대뽀인 사람이라는 것 너무 잘 알겠습니다. 충분히 보여주셨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지각이 있는 분이 그 긴 길의 동반자에 대해서, 같이 걷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도 생각없이 길을 떠날 수가 있는지요??!!

사람에 대한 준비가 제일 중요한 준비가 아닙니까?

 

이미 떠난 것은 할 수 없다고 치고, 걸은 후에라도 본인의 걷기에 그리도 방해가 된다면,

그리고 여러번 밝히셨듯이 그 분 걷는 것에도 본인이 방해가 된다고 느껴지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 후에 따로 길을 걸었어야지요!!

순례자의 길이 사실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까.

그러지 않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절대 인정 안 하시겠지만 모두 혼자 걷는 그 길을 혼자 걷기가 그렇게 무섭고 자신이 없고 수발을 받고싶어서)

계속해서 같이 걸을 거라면

그런식으로 상대에 대한 험담을 계속 해서는 안 되지요! 

할 수 없어서 몸은 같이 걷지만 사실 나는 따로 걷고 있다라는 식의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것은 너무나 비겁합니다.

나에게만 말하는 거라는 듯이 속삭이는 책을 읽는 제 얼굴이 붉어지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순례기를 쓴 어떤 젊은 독일 남자는 까미노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특히 여자들)에 대한 뒷담화를 마구 늘어놓았습니다.

그것을 저는 같이 낄낄거리며 매우 유쾌하게 읽었어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 실제로 있으니까요. 상상이 가고 동감이 가고 나 대신 욕해주는 것이 시원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여자들이 그 남자의 (유일한)동행자는 아니었습니다. 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웃으며 읽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의 치타는 당신의 유일한 동행자였는데, 그녀와는 아무것도 풀지도 나누지도 않으면서 책에다가 그렇게 모든 말을 하는 것은,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할 말이 나쁜 말밖에 없으면 책에서 그 분 얘기를 빼야지요! 

 

따로 걷자고 하면 그 분이 서영은씨를 안내한다는 생각으로 느끼는 만족감을 빼앗을까봐라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었지요?

그럼 그 동행(의 만족감)을 위해서 같이 걸었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아니지요.

속 마음을 숨기고 게다가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나중에 이렇게 늘어놓을 거면서 같이 걸어준 것이 그녀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오히려 그녀를 기만하는 것이지요.

여행중의 감동적인 느낌과 체험을 독자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해주면서 바로 옆의 동행에게는 입 꾹 다물고 나는 다른 세계에 입네..하면 독자 맘은 편하겠습니까.;;;

당신은 편안하고 무시하면 그만일지 몰라도 저는 안 되더군요...

당신이 자연에 감탄하고 길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과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동행을 위해서는 맘을 열지 않고 그녀를 위해 한 마디 기도도 하지 않고 미움이 깔린 마음으로 흉만 죽도록 보는 것에 정말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당신은 우월감에서 말하는지 몰라도 그러는 당신이 절대 그녀보다 우월해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건 책으로 만들어서 세상사람들에게 읽히는 거잖아요? 이래도 되나요?

본인은 본인의 글이므로 본인 입장을 얼마든지 설명하고 변명할 수 있지만 아무 반응도 못하고 그대로 서영은씨 시각으로 세상에 까발려져야하는 그 분의 인권은요?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그 분도 전에 여행기를 펴냈다고 하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도 남을텐데) 

아 정말 이런 책은 보다 처음 봤고 그 분과 가족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아찔합니다.

(지금도 문제없이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만.;;)

 

그 길과 당신의 체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면 그것만 쓰면 되지

혹시나 싶어서 끝까지 잘 읽어봐도 도대체 알 수 없는 그 당신의 치타에 대한  집요하고 불쾌한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런 동행과 동행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럼 그 동행의 입장은? 잔인하군요.

그녀를 선택한 것도 결국 당신 자신 아닙니까. 우아하고 무심하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걸음 물러나는 당신 모습도 충분히 상상은 됩니다만. 에휴.

 

여행 후 변화되어서 온전히 새 삶은 살게 되었다고 후반에 장황하게 쓰셨는데 저는 위와 같은 이유로 정말 그 말들이 공허하게 들리네요.

천사의 말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같다고 했던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선택받았고 성스러운 체험이라고 믿는 그 경험들이 '나만이'라고 강조하는 '교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는 본인만의 착각이거나.

 

인터넷 서점의 서평들을 봤더니 작가의 체험과 변화에 감동받았다는 글 일색이군요. 사람들은 잘도 좋은 말만 골라 읽는 재주가 있네요.

저는 그런 태도로 산티아고 백 번 걸어서 성인이 된다고 해도 절대 감동을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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