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들 (Clerks., 1994) ☆☆☆  

 

케빈 스미스의 데뷔작 [점원들]을 보고 나서 IMDB를 통해 검색해 보니 본 영화는 프리미어에 의해 과대평가된 영화들 20편들 중 하나로 뽑혔다고 하는데, 8.0이나 되는 IMDB 평점에 좀 신기해했던 저는 그럴 만한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상당히 과대평가된 동시대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처럼 본 영화는 한 재능 있는 신인감독의 오디션 용 영화쯤으로 볼 수 있고, 쿠엔틴 타란티노도 그랬듯이 스미스도 데뷔작을 발판으로 해서 그보다 더 매끈하게 잘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 재미있는 영화들을 내놓았지요. 그렇기 해도, 그 거친 불균일함 속에서 그의 감독/각본가 실력은 뚜렷하게 보이는 가운데 본 영화는 잘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은 캐릭터 코미디입니다.

 

  뉴저지의 어느 동네에 사는 주인공 단테(브라이언 오할란)의 어느 하루는 처음부터 일진이 안 좋았습니다. 대학 그만 둔 백수나 다름없는 가운데 동네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는 그는 비번임에도 불구 다른 직원이 아픈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타로 일하게 됩니다. 하필이면 그날 오후에 친구들과 하키 경기를 약속했으니 본인으로써는 이게 정말 짜증날 지경인 것도 그런데, 출근해 보니 가게 창문 셔터 자물쇠들에 누군가가 못된 장난을 치는 바람에 셔터를 올릴 수 없으니 영업 중임을 알리는 대자보를 만드는 귀찮은 일도 직접 해야 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편의점을 중심으로 그의 또 다른 하루가 무료하게 지나갑니다. 그의 영업시간은 처음 예상보다 더 늘어나고,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가고, 그런 와중에 편의점에 찾아드는 별별 인간이 찾아들고, 옆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는 그의 친한 친구 랜달(제프 앤더슨)은 여기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그의 사생활은 가게 안에서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현재 베로니카(마릴린 기글리오티)와 사귀고 있음에도 단테는 전 여자 친구 케이틀리(리사 스푼호어)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동네 신문에서 그녀가 약혼했다는 기사를 우연히 발견한 뒤 신문사에 전화까지 하면서 기사 진위까지 파악하려고 할 정도이지요.

 

  영화를 만들 당시 실제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케빈 스미스는 편의점 직원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어떤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잘 보여 주었고 영화는 지금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의점 알바를 재차 고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배경이야 차이가 있지만, 일감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 긴 시간 동안을 한 공간에서 내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들을 기다리는 그 무료함이란 사람을 참 멍하게 만들곤 하곤 하지요. 단테는 그 무덤덤함의 고수가 된 지 오래고 무슨 손님들이 와서 무슨 짓을 하든 간에 그는 카운터 너머에서 무심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빨리 떠나주길 기다립니다.

 

 

케빈 스미스가 친지들에서 빌린 돈과 신용카드를 통해 겨우 마련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을 무대로 해서 16mm 흑백 필름으로 찍은 본 영화엔 첫 시도에 따른 서투른 점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DVD 코멘터리에서 본인도 인정하듯이 일관성 유지나 카메라 조절 등의 여러 문제점들이 화면에 빤히 등장하곤 하지요. 하지만 그런 투박함은 황량하고 적적한 현실 분위기와 꽤 잘 들어맞는 편인 가운데 스미스의 재능은 자신의 영화가 대화들만으로 가득 찬 지루한 독립 영화로 추락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옥상 위에서의 그 웃기는 하키 경기 장면은 활력 있을 뿐더러 주인공들 간의 대화는 듣기 재미있을뿐더러 지켜보기에도 재미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그 많은 대화들 주제들은 대부분 연소자 청취불가이고 이 때문에 신체 노출이나 거친 폭력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 영화는 처음엔 NC-17등급을 받기도 하다가 나중에 R등급으로 재조정되기도 했습니다. 오럴 섹스나 포르노 등을 얘기하니 듣기에 저속한 거야 당연하지만 좋은 대사와 유머감각이 동반되니 여기에 웃지 않을 수 없지요. 이런 즐거운 저속함에 웃다 보면, [제다이의 귀환]에서는 죽음의 별이 공사 중이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 너무 진지하게 아닌가 싶지만 동시에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거려질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관점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관객들을 웃기 위해 뭐든 지 거침없이 얘기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 가운데 스미스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영리합니다. 저예산인 이유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는 현명하게도 영화 속 몇몇 아주 민망한 일들을 화면 밖에다 밀어 두었습니다. 이는 어떤 화장실 유머들은 들을 때는 웃길지언정 직접 볼 때는 웃기기는커녕 오히려 보는 사람 오금 저리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잘 예시해주지요. 영화들 만드는 사람들이 그걸 잘 알지 못한 탓에, 나쁜 화장실 유머 코미디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실책이 가끔씩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곤 합니다.

 

  몇 년 전에 상당히 착하고 모범적인 드라마인 [저지 걸]로 통해 진지해지려는 시도를 했던 케빈 스미스는 바로 그 다음엔 본 영화의 속편을 만들어서 다시 자신에게 익숙한 영역으로 돌아 왔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제목만 봐도 무슨 영화인지 금세 짐작되는 [잭과 미리가 포르노를 만들다]에서 그는 포르노와 스타워즈를 갖고 그리 얌전하지 않은 유머 감각을 발휘하면서 절 웃게 했습니다. 그 힘들던 초짜 시절 때에도 이들을 갖고 수다를 늘어놓은 걸 보면 역시 사람 바뀌는 건 쉽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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