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1/2

  

 

[셔터 아일랜드]는 분위기를 주 무기로 삼습니다. 처음부터 우린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거란 감지할뿐더러, 그 이후에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동안 우리가 그와 함께 보고 접하는 것들엔 늘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뒤늦게 오스카를 수상한 [디파티드] 이후 만든 첫 극영화인 본 작품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그러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탄탄히 유지합니다. 지금보다 옛날에 그가 더 훌륭한 작품들을 내놓았다고 우린 툴툴거리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릴 어떻게 쥐어 잡을 지 매우 잘 알고 있는 거장이고 영화는 분위기가 핵심 캐릭터인 수작들 중 하나입니다.

 

  보스턴 근처에 있는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는 최근 화장실에서 부담 없이 원서 페이퍼백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섬을 금세 연상케 합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그보다 훨씬 넓은 가운데 사람들도 많지만 그 섬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고립된 공간입니다. 숨을 장소는 어딘가 있을지는 몰라도 독 안에 든 쥐인 건 변함없고 그곳을 나갈 수 있는 출구는 오직 섬의 부두 밖에 없을뿐더러 여기에 보스턴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가 와야 합니다.

 

  냉전의 기승이 한창이던 1954년에 그 배를 타고 두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새 파트너 척 아울(마크 러팔로)가 그 섬을 방문합니다. 19세기 남북 전쟁 때는 연합군 요새이기도 했던 그곳은 이제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그 곳에 온 목적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곳에 갇혀 왔던 한 환자가 사라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섬을 구석구석 뒤져봐도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니 거친 파도와 파도가 덮치는 울퉁불퉁한 바위절벽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상당해 보입니다.

 

  한데 문제는 그 환자가 정말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섬을 빠져나가는 건 그렇다 해도 전기 철조망은 기본인 가운데 철저하게 이중삼중 관리되고 있는 그 병원에서 잠겨 진 독방을 빠져 나올 수 있다곤 해도 그 나머지 난관들을 뚫고 지나간다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습니다. 사건 자체가 이상한 것만도 그런데 다니엘스는 병원에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걸 감지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모두가 다 미리 짜 맞춘 것 같은 증언을 하는 것도 그럴 판에 병원 원장인 존 코리 박사(벤 킹슬리)는 정중한 위엄 뒤에 뭔가 있는 것 같고 상대방을 곧 미로에 넣을 실험쥐 후보인 양 대하는 제레마이어 내링(막스 폰 시도우)를 비롯한 코리 박사의 동료들은 고풍스러운 회의실에서 뭔가를 꾸미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듯합니다. 그리고 중요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는 그들 중 한 명은 공교롭게도 휴가 중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니엘스는 그 시대의 신경증을 대변하는 인물로 자리 잡아가고, 모자, 양복, 코트, 그리고 담배까지 갖추었으니 그는 그 불안정한 동네에 잘 어울리는 느와르 주인공입니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동안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그와 관련된 잊기 힘든 안 좋은 기억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 갑니다. 거기에다 냉전 시대 편집증까지 덧붙여지는 것도 그런데 몇 년 전에 사별한 아내(미셸 윌리엄즈)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인해 그는 매우 힘들어 해왔습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더니, 강한 폭풍이 섬을 덮치면서 병원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그 와중에서 이미 머리 안이 복잡해져 왔었던 다니엘스의 내면도 그에 따라 뒤흔들려갑니다.

 

영화에서 적절히 삽입된 많은 기존 곡들 중 하나인 리게티와 펜더레츠키의 불안한 음악을 시작으로 해서 스콜세지는 한 닫힌 공간 안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편치 않게 만들고 그러니 우리는 뭘 믿어야 할 지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잿빛 음울함이 짙게 깔린 정신병원과 그 주위 환경만큼이나 그에 비해 비교적 밝은 대니얼스의 꿈들도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고 이들 간의 경계는 가면 갈수로 흐려 갑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광기들, 바위들에 격하게 부딪히는 파도가 저 아래 아찔하게 보이는 절벽, 나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한 끔찍한 실험에 대한 가능성과 그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르는 의문의 등대, 꿈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기 시작하는 아내, 그리고 격렬하게 몰아치는 폭풍우 이 모든 것들이 한데 휘몰아집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동명 원작소설(우리나라에서는 [살인자들의 섬]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을 바탕으로 한 래타 캘로그래디스의 각본은 원작의 기본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른 편입니다. 영화화되기도 한 그의 보스턴 범죄 소설들과 다른 무대를 택해서 흥미로웠던 그 작품은 흔한 이야기라고 평하는 것 자체마저도 상당한 스포일러가 될 정도의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건 금세 휙휙 넘겨 읽게 만들 게 하는 팽팽하게 조여져 가는 폐쇄공포증적 긴장감에 있고 영화에서도 그 점은 놓쳐지지 않습니다. 영화에선 여러 옛 영화들에서의 영향들이 여기저기서 보여 지는데, 폐쇄공포증적 서스펜스 전문인 로만 폴란스키로부터의 영향이 특히 눈에 띱니다.

 

  본 영화는 막바지에 개봉 일정이 미루어지는 바람에 올해 오스카 레이스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 디카프리오는 예정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아마 남우주연상 후보에 도전할 법도 했을 것입니다. 본 영화를 포함해서 스콜세지와 네 차례 작업하는 동안 로버트 드니로의 자리를 이젠 거의 확실히 이어받은 듯한 그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 맴도는 동안 심리적 위기로 내몰아져지는 주인공으로써 훌륭합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아주 빵빵한 배역진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조연 배우들이야 의심스러운 구석을 적어도 하나쯤은 갖고 있는 캐릭터들로써 믿음직하고, 그저 잠깐만 등장하기도 하는 여러 익숙한 배우들(에밀리 모티머, 존 캐롤 린치, 패트리샤 클락슨, 재키 얼 헤일리, 테드 레빈, 일라이어스 코티어스)도 인상적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한 외국 블로거는 이 작품을 극구 칭찬하면서 스콜세지의 걸작으로 평했지만, 저는 그만큼의 호평을 던지는 데에 망설여집니다.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든 작품이지만 스콜세지의 걸작들과 비교하면 살짝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다시 되새겨봐야 할 점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블로거와 저는 하나에 완전 동의합니다. 본 영화는 재방문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마 전 생각보다 빨리 재방문할 것 같고 원작과 영화의 차이로 종종 얘기될 어느 모호한 작은 순간의 뉘앙스를 재확인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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